이보미도 일본 생활 정리…‘이별’ 말하는 황금세대

[이슈]by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보미. 뉴스1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자랑하던 프로골퍼 이보미는 지난달 27일 깜짝 선언을 발표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자신의 주무대인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완전한 은퇴는 아니었지만 현역 생활을 차분히 정리해가겠다는, 사실상의 ‘예고 은퇴’ 발표였다.


이보미의 은퇴 선언문을 보면서 떠올린 모임 하나가 있다. 바로 ‘V157’이라는 이름의 사조직이다. 박인비와 신지애, 이보미, 김하늘, 이정은5 등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1988년생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모임이다. 또 절친한 동료인 1987년생 최나연과 1990년생 유소연을 더해 총 7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V157은 이름부터 특별하다. 2018년 결성 당시 7명의 통산 우승을 모두 합친 숫자가 바로 157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V157은 비시즌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재능 기부나 봉사활동과 같은 사회 공헌에도 힘을 합친다. 또, 멤버의 결혼과 같은 경사가 있으면 함께 달려가 축하하는 자리도 마련하기도 한다.


V157은 한국 여자골프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들이 곧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물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와 JLPGA 투어까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급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V157의 끈끈한 우정은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매체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세월의 무게를 조금씩 느껴 가는 눈치다. 하나둘 필드와 작별을 고하면서 이제는 현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가장 먼저 은퇴를 고한 이는 김하늘이었다. 김하늘은 2007년 KLPGA 투어에서 신인왕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어 2011과 2012년 상금왕 2연패를 달성하는 등 KLPGA 투어에서만 8승을 올렸다. 또, JLPGA 투어로 진출한 뒤에도 6승을 추가하면서 전성기를 달렸다. 그러나 2021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필드를 떠났다.


뒤이어선 최나연이 현역 생활을 정리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실력이 소문났던 최나연은 LPGA 투어 2세대로 활동하면서 9승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한국인 역대 6번째로 US여자오픈도 제패했다. 선수로 뛰는 동안 타고난 실력과 빼어난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역시 현역으로서의 한계를 느꼈고 지난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김하늘과 최나연의 뒤를 이어서 이보미도 은퇴를 암시했다. 국내외에서 ‘스마일 캔디’ 혹은 ‘보미짱’이라는 다정다감한 별명으로 불렸던 이보미는 “JLPGA 투어 은퇴를 결정하기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마지막 시즌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은퇴를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구시드권이 있는 KLPGA 투어에는 앞으로 간간히 출전할 계획이지만, 주무대인 JLPGA 투어는 올 시즌이 마지막이 된다.

중앙일보

지난해 10월 은퇴 경기를 치른 최나연(오른쪽 3번째)을 격려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다니엘 강과 박인비, 김하늘, 유소연, 이정은5(왼쪽부터). 사진 BMW코리아

V157 멤버들의 연이은 은퇴는 곧 황금세대의 퇴장으로 연결된다. 이들을 비롯해 박인비와 신지애 등 1988년생 선수들은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을 드높였다. LPGA 투어에서 21승을 달성한 박인비는 25승의 박세리 다음으로 한국인 최다승을 달리고 있다. 또, 신지애는 LPGA 투어 11승, JLPGA 투어 26승, KLPGA 투어 20승을 비롯해 전 세계 투어 62승이라는 압도적인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그러나 V157 멤버들이 필드를 지키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미 2명이 은퇴했고, 이보미도 일본 생활을 정리한다. 박인비는 4월 출산 예정으로 최근 몇 달간 공백기를 거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이들의 빈자리는 이제 후배들이 채워가는 중이다.


한때 LPGA 투어 등 세계무대를 압도했던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침체기를 겪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그리고 국내 선수들의 저조한 진출로 힘을 쓰지 못하는 중이다. V157 황금세대의 릴레이 은퇴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2023.03.06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