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올 여름에는 아무도 모르는 계곡에서 바람과 놀아야겠다

오지여행 전문가 이원근이 콕 찍은 여름이 제일 좋은 전국 숲·계곡 4곳 깊은 숲 초록세상 무건리 이끼계곡 구름 속 두메산골 영월 모운동마을 열목어 노니는 얼음물 백천동 계곡 지리산 가장 깊숙한 골짜기 대성골


여름 들머리다. 졸졸 소리 내 흐르는 시린 계곡물이 눈에 선하고, 서늘한 바람 솔솔 불어오는 숲 그늘이 자꾸 생각나는 계절이다. 번다한 건 사양한다. 한갓진 길섶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나 들었으면 좋겠고, 양지바른 오솔길에서 하늘나리 같은 들꽃이나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이원근 여행작가로부터 숲과 계곡이 좋은 여행지 네 곳을 추천받았다. 이원근 작가는 3년 전 전국의 오지마을 51곳을 추려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도서출판 달)를 펴낸 오지여행 전문가다. 강원도 삼척과 영월, 경북 봉화, 그리고 지리산 자락 경남 하동에서 한 곳씩 골랐다. 하나같이 찌든 도시 생활 잠시 잊고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아직도 우리 강산엔 사람의 발길 드문 곳이 남아 있다.


국내 최대 이끼계곡 - 삼척 무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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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에서 삼척시 도계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오르면 봉우리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띈다. 정상이 평평해 밥그릇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여서이다. 평퍼짐한 산꼭대기에서 조 600마지기는 농사지을 수 있겠다고 하여 산 이름이 육백산(1244m)이다. 육백산 자락 깊숙한 골짜기에 국내 최대 규모의 이끼계곡이 숨어 있다. 오지마을 무건리에 있어 ‘무건리 이끼계곡’으로 불린다. 임도를 따라 1시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끼는 습하고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야 하며, 적당히 선선하고,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자란다. 이 어려운 조건이 딱 들어맞는 곳이 무건리 계곡이다. 물 색깔만 봐도 청정지역임을 알 수 있다. 계곡물이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짙은 파란색이다.


무건리라는 이름이 남다르다. 굳셀 무(武), 세울 건(建) 자를 써 무건리다. 원래는 ‘물건래’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깊은 골짜기에 숨어 나라를 세우려고 무예를 연마했던 게 아닐까 상상하기도 한다. 그만큼 깊숙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삼척시 도계읍 하고사리에서 3㎞ 정도 산속으로 들어가면 ‘무건리 이끼계곡’ 간판이 보인다. 여기에서부터 차량을 통제한다. 걸어야 한다. 시멘트가 깔린 오르막을 500m 정도 걸으면 능선이 나온다. 능선에 오르면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띄엄띄엄 민가가 놓여 있는 한갓진 오솔길이다. 한 집에서 막걸리와 감자전을 판다. 쉬엄쉬엄 2.5㎞를 걸으면, 초록색 비경 이끼계곡이 나타난다.


10년 전만 해도 계곡 가는 길은 험했다. 지금은 데크로드가 설치돼 크게 어렵지 않다. 무건리 이끼계곡의 초록 세상은 7∼8월 절정을 이룬다.


구름 속 마을 - 영월 모운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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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심심산골에 ‘구름 속의 마을’이 숨어 있다. 망경대산(1088m) 기슭에 들어앉은 모운동마을이다. 모운동(募雲洞)이라는 이름이 구름이 모이는 마을이란 뜻이다. 해발 700m 언저리에 박힌 두메여서 수시로 구름이 마을을 덮는다. 마을 토박이인 이장님한테 들은 얘기를 전한다.

강원도 탄광에서 일을 구했다는 남편을 찾아 아주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영월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는데, 버스가 비포장 산길을 한없이 올라갔다. 이윽고 깊은 산속에 들어왔는데, 세상에, 산속에 엄청난 도시가 숨어 있었다. 식당과 술집 수십 곳이 늘어섰고, 심지어 극장과 우체국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 좋은 데에서 혼자 살고 있던 남편이 서운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마을에 눌러앉았다.


모운동마을이 탄광산업으로 흥청거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폐광이 된 지 오래여서, 마을엔 30여 가구만 남았다. 주민도 칠순이 넘은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장님은 마을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을 구석구석에 벽화를 그려 산속 벽화마을을 조성했다. 마을 주민 손수 그려서 다른 벽화마을처럼 벽화가 세련되지는 않았다. 되레 푸근하고 정감이 간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운탄길 트레킹 코스’도 마련돼 있다. 전체 약 9㎞ 길이로 3시간이면 넉넉하다. 마을처럼 길도 평화롭다. 이장님에게 미리 연락하면 주민이 차린 점심밥을 먹을 수 있다.


모운동마을에 들어가려면 김삿갓 계곡에서 주문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넌 뒤 좁은 임도를 한참 올라야 한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마을에서는 걸어 다니길 권한다.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 - 봉화 백천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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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목어는 맑고 찬 물에서만 사는 민물고기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분류돼 있다. 이 희귀 물고기가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백천동 계곡에 모여 산다. 백천동 계곡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백천동 계곡은 물이 하도 차 한여름에도 오래 발을 담그지 못한다.

백천동 계곡은 상류일수록 물이 점점 많아지는 희한한 계곡이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량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바위에 낀 이끼도 많아진다. 물론 열목어도 많아지겠지만, 안타깝게도 열목어를 직접 본 적은 없다. 주민들에 따르면 팔뚝만 한 놈들이 펄떡거린다는데, 얼마나 의심이 많은지 물 밖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바위 속으로 숨어 버린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백천동 계곡은 지세도 범상치 않다. 조록바위봉(1088m)과 달바위봉(1092m), 그리고 태백산 문수봉(1517m)이 나란히 놓여있는 형세여서 지기(地氣)가 세기로 유명하다. 계곡 입구에 있는 현불사는 선거에 나서는 유력 정치인이 수시로 드나든다고 하고, 지금도 여러 종교 단체가 계곡 주변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주민의 반대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대현리에서 백천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대현마을을 지나면 황장목 늘어선 숲길이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 소나무를 벌목하기 위해 조성한 임도를 대현리 청년회가 정비했다. 숲길 대부분이 평탄해 걷기에 편하다. 백천동 계곡은 2016년 지정된 태백산 국립공원 맨 아래쪽에 있다.


빨치산 최후의 근거지 - 지리산 대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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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이다. 산이 많으니 골도 많고, 산이 크니 골도 깊다. 지리산 국립공원의 수많은 골짜기 중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가 대성골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빨치산이 대성골에서 최후의 격전을 치렀다. 빨치산이 마지막까지 숨어 있었을 정도로 골이 깊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성골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속한다. 화개장터에서 화계천을 따라 오르면 쌍계사다. 쌍계사에서도 계곡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야 대성골이다. 계곡 맨 안쪽에 숨은 협곡의 기암절벽, 우렁차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지리산 최고의 오지임을 증명한다. 대성골 위가 지리산 주 능선의 세석평전(1500m)이다.


1953년 9월 토벌대는 빨치산을 섬멸하기 위해 대성골 아랫마을 의신에 모였다. 토벌대는 대성골로 가는 도로만 터놓은 채 다른 도로는 다 차단했다. 그리고 열흘간 총공세를 펼쳤다. 대성골 전투에서 빨치산 1000여 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대성골은 오지 중의 오지지만,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성골 계곡이 오랜 옛날부터 기도처로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대성골 가장 깊숙한 자리에 위치한 영신대(靈神臺)는 지리산에서 가장 영험한 기도처로 통한다.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린 제단과 좌대의 흔적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대성골은 길이 좁고 험하다.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사람이 산다. 의신에서 1시간 정도 걸으면 외딴집 한 채가 나타난다. 이 집에서 비빔밥을 판다. 양푼 그릇에 산나물 몇 가지 넣고 고추장을 얹혀주는 게 끝인데, 이 맛이 천하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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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근 여행작가 keuni7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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