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전과에 살인 암매장까지… 말 많았던 드래프트

[트렌드]by 점프볼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돌아보기⑧] 2005년 드래프트

2005년 신인드래프트는 가장 혼란스러웠던 드래프트로 불린다. 대어급도 많았지만 거기에 따른 논란도 많았고 이후 불미스런 사건사고, 구설수 등이 이어지며 많은 농구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전은 물론 이후까지 포함해도 안팎으로 이만큼 시끄러웠던 적은 손에 꼽힐 정도다.


일단 해당 드래프트는 굵직한 이름값을 자랑하던 선수들이 상당수 참여하며 적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문경은 이후 최고 슈터로 꼽히던 ‘미스터 빅뱅’ 방성윤(40‧195cm)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는 눈부실 정도였다. 이미 아마무대 시절부터 특급으로 통하던 선수로 2002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았던지라 거칠 것이 없었다.


‘현주엽, 김주성 이후 최대어다’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으며 어느 팀이 1순위를 가져가도 방성윤을 거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던 해외파를 포함해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하승진, 오세근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통 저 정도의 평가를 받는 선수는 대부분 빅맨 포지션에 해당됐다. 하지만 방성윤은 외곽슛을 특기로하는 스몰포워드였다는 점에서 꽤나 의미심장했다.


정재호(40‧178cm)는 신장은 작았지만 아마시절부터 에이스로 활약해오며 공격형 가드로서 대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며 정상헌(40‧192cm)은 가드로서 큰 키에 득점, 패싱력 등을 두루갖춘 천재형 선수로 불렸다. 김광원(40‧205cm) 또한 완성도는 낮았지만 큰 신장으로 인해 성장 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해외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특히 캐나다 출신 김효범(39‧191cm)은 캐나다 국가대표 엔트리 포함 등으로 인해 교포 사회에서 유명했는데 이후 덩크 영상 등이 농구 커뮤니티 등에 퍼지며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김효범이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 재미교포 한상웅(37‧180cm)도 덩달아 관심을 받았다. 미국 지역리그에서 인정받는 유망주였으며 탄탄한 몸에 빠른 몸놀림 거기에 개인기도 수준급이다는 평가를 받았다.


갑작스런 해외파의 등장은 환영하는 의견 못지않게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김효범이 전체 2순위로 지명을 받자 아마농구 지도자들은 드래프트에 참가한 국내선수들을 모두 밖으로 철수시켰다. 거기에 더해 3순위로 또다시 한상웅이 뽑히자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난감한 사태에 당황한 KBL측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1시간 정도가 지난후에야 다시 드래프트에 참여했다.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던 경희대 최부영 감독은 "미국에서 농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국내선수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않는다. 이렇게되면 선수들도 농구할 맛이 안나고 지도자들도 가르친 보람이 없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효범, 한상웅의 지명은 규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전해 개정된 한국농구연맹 규약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고, KBL에 선수등록을 한 적이 없다면 해외동포라도 누구나 드래프트 신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SBS 김동광 감독은 2라운드에서 자신의 아들 김지훈을 직접 뽑으며 부자가 감독과 선수로 만나는 진풍경이 만들어지기도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이슈가 많았다 할 수 있겠는데 진짜 문제는 시간이 흐른 이후에 발생하게 되는데…

1라운드에서만 4명, 기대에 비해 건진게 적었던 SK

당시 SK는 해당 드래프트에 제대로 승부수를 던졌다. 무려 4명의 1라운더를 데려오는 굵직한 행보를 보여줬다. 먼저 전체 1순위 방성윤을 얻기위해 3대3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는데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 등 핵심전력을 셋이나 내줬다. 반대급부로 정락영, 김기만을 받기는 했지만 역시 핵심은 방성윤(지명권)이었다.


SK는 거기서 그치지않았다. 본인들이 가지고있던 지명권으로 재미교포 가드 한상웅을 지명한것을 비롯 고려대 포워드 김일두, 한양대 포워드 서동용까지 트레이드를 통해 품에 안는다. LG와 SK의 황성인 트레이드 당시 LG의 1라운드 지명권과 SK의 2라운드 지명권이 맞교환되었다.


그로인해 LG에 지명된 1라운더 김일두와 SK가 2라운드에서 뽑은 김종완은 서로 유니폼을 바꿔입고 입단하게 된다. 서동용같은 경우 시즌 개막을 앞두고 삼성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오게 된다. 만약 기대대로 선수들이 성장해줬다면 SK는 단숨에 강팀의 초석을 마련했을지 모를 일이다.


1라운드에 지명되었다는 것은 그만한 재능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더해 모두 신인급인지라 연봉적인 측면에서의 부담도 적었다. SK 역시도 이같은 부분을 기대하며 트레이드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않았다. 김일두는 불과 1시즌밖에 뛰지못했으며 한상웅과 서동용은 2군을 전전하며 전력에 거의 도움이 되지못했다.


특히 야심차게 3픽으로 뽑은 한상웅의 부진은 SK입장에서 뼈아플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아픔은 방성윤이었다. 방성윤만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줬다면 다른 부분에서의 아쉬움 정도는 흘려보낼 수도 있었다. 한상웅, 김일두, 서동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닌 방성윤이 워낙 거물이었고 거기에 따른 투자도 제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 한상웅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9경기 출전 평균 1.41득점, 0.28리바운드, 0.55어시스트, 0.17스틸


◆ 김일두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91경기 출전 평균 4.32득점, 1.47리바운드, 0.56어시스트, 0.41스틸


◆ 서동용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1경기 출전 평균 1.12득점, 0.31리바운드, 0.27어시스트, 0.24스틸

그때는 알지 못했던 방성윤과 김동욱의 선수 커리어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프로에 데뷔하기 전부터 방성윤은 이미 스타였다. 연세대 선배 문경은이 그랬듯 폭발적인 외곽슛을 앞세워 상대팀을 융단폭격하던 대형슈터였다. '현주엽의 슈터 버전이다'는 말이 나왔을만큼 신장과 덩치까지 갖추고있어 이전의 슈터들과는 결이 달랐다. 슛감이 좋지않은 날에도 난사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과감하게 슛을 던지는 배짱은 타고난 에이스를 연상케했으며 외곽슛에 더해 덩치를 앞세운 돌파도 위력적이었다.

슛을 쏘는데 있어 워낙 거침이 없는지라 클러치 상황에서도 주눅들지않고 좋은 장면을 종종 만들어냈다.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있었지만 장차 한국농구의 스타중 한명이 될 것이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심을 품지않았다. 그만큼 가지고있던 재능의 영역이 남달랐다는 평가다.


문제는 욕심이 너무 컸다는 부분이다. 국내리그에서는 SK에서만 뛰었지만 해외진출에 대한 열망때문인지 수시로 미국 G리그를 오갔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SK 입장에서는 토종 에이스가 자꾸 빠지게됨으로서 팀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않았다. 방성윤 개인 또한 별반 소득이 없었다.


거기에 고질적인 발목, 손목통증에 어깨 대흉근 파열, 왼 무릎 내측 인대파열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통산 정규시즌 165경기, 플레이오프 2경기 출전에 그치고만다. 그렇다고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도 못했다. 당초 기대치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 결과다.


◆ 방성윤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65경기 출전 평균 17.5득점, 4.21리바운드, 2.5어시스트, 1.64스틸


방성윤이 짧고 허망하게 커리어를 마감할줄 몰랐던 것처럼 김동욱(41‧193.5cm)이 지금까지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리라 예상한 이들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마산고 재학시절 고교 랭킹 1위였을 정도로 재능만큼은 확실했으나 어이없는 사정으로 인해 고려대를 재수로 들어가게되면서 한창 성장이 필요했던 1년을 날리게 된다.


거기에 더해 프로로 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대학 3,4학년 시절을 부상으로 말미암아 거의 뛰지못하게 되면서 2라운드에서 겨우 뽑히게 된다. 좋았을 때를 기준으로보면 자존심 상하는 결과일 수도 있었겠지만 거듭된 부상으로 인해 망가졌다는 혹평 등을 감안하면 프로지명자체가 다행이다는 의견도 많았다. 어쨌거나 부상이 잦은 이미지에 더해 살이 꽤 많이 찐 상태로 경기에 나서며 ‘돼동욱’ 등으로 불렸던지라 롱런이라는 단어는 생각하기 쉽지않았다.


본격적으로 김동욱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수비다. 한창 잘 나갈 때의 방성윤, 함지훈 등은 상대 팀에서 전담 수비수를 붙여도 쉽지 않을 정도로 골치 아픈 존재였다. 김동욱은 이름값이 높지 않은 시절에도 둘의 수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도 잘 막았다. 신장이 크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묵직한 몸을 잘 이용했고 힘과 센스까지 좋은지라 활동량이 좋은 선수보다는 기술자형 선수를 상대로 수비가 잘 통했다.


이후 연차가 쌓이면서 김동욱은 공격적인 부분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포인트 포워드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스피드의 장점은 없지만 상대 수비의 타이밍을 뺏는 능력이 탁월한지라 흡사 능구렁이처럼 플레이하며 내외곽에서 꾸준히 득점을 올렸다. 수비수가 붙으면 힘을 이용해 포스트업을 펼치거나 돌파를 시도하고 떨어졌다 싶으면 정확도 높은 슛을 꽂아 넣었다.


거기에 패싱 센스가 매우 좋아 김동욱이 공을 잡고 있으면 상대는 그가 공격을 할지 패스를 할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전체 게임을 읽어가며 그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라 단순히 득점, 어시스트에 욕심내지 않고 팀 내 막힌 혈을 풀어주는 역할을 잘 해낸다. 시야가 넓고 매우 영리하게 플레이한다.


거기에 테크니션 플레이어임에도 볼을 오래 끌거나 소유하지 않는다. 공격은 최대한 간결하게 하고 자신의 찬스가 아니다 싶으면 볼 욕심을 내지 않고 공간을 찾아 움직인다. 김동욱이 경기에 투입되면 ‘볼이 잘 돈다’, ‘BQ로 경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면에서 해당 드래프트 최고의 선수는 김동욱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 김동욱 정규리그 통산기록(현재 진행중) ☞ 통산 673경기 출전 평균 7.67득점, 2.34리바운드, 2.57어시스트, 0.82스틸

김효범과 한상웅, 엇갈린 해외파의 명암

말 많았던 해외파의 일원이었던 한상웅은 3순위라는 높은 순번에 걸맞지않게 실패로 끝나고말았다. 재능은 가지고있던 선수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아직 완성되지않은 고졸 출신(역대 1호)으로서 기량이 다듬어지지 않았고 한국농구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나쁘지않은 개인기에 비해 취약한 외곽슛도 치명적이었다. 차라리 당초 목표대로 대학에 먼저 입학해 경험을 쌓은후 도전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반면 김효범은 초반에는 고전했으나 이후 차근차근 한국농구에 적응해가며 전성기 시절에는 국내 최고의 슈팅가드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등 나름대로 성공한 커리어를 만들어냈다. 국내 기준으로 탑클래스급 운동능력을 갖추고있던지라 조금의 틈만보여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덩크슛을 찍어댔고 높은 타점에서 쏘는 3점슛은 어지간히 수비가 좋다는 선수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효범은 ‘농구人터뷰’를 통해 “좀 더 팀 플레이를 이해하고 영리하게 강약조절도 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했을까 등 후회되는 부분이 많다. 선수 생활 막판에서야 농구에 대해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는 말로 아쉬움을 드러낸바 있다.


김효범은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플레이 등으로 인해 스타가 될 자질을 두루두루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않은 말실수 등이 겹쳐 안티팬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선수시절 내내 마음고생을 겪어야만 했다. 여기에는 본인의 잘못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한국식 화법이나 문화에 대해 제대로 모르던 시절 언론의 유도질문에 낚인 부분도 적지않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김효범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뉴스를 통해 나간 내용은 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뀌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그 뒤로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됐고 깊은 이야기를 할 때는 막 내뱉기보다는 좀 더 생각하고 거르게되는 습관이 생겼다. 이래저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김효범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67경기 출전 평균 8.81득점, 1.77리바운드, 1.11어시스트, 0.52스틸

프로에서의 성공은 재능순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드래프트에는 천재과로 불리는 선수들이 여럿있었다. 정재호, 정상헌, 김동욱 등이 대표적인데 김동욱을 제외하고는 가지고있던 재능의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 정재호는 군산고 시절 저학년때부터 주전으로 출전해 야전사령관겸 에이스로 활약해온 득점과 리딩능력을 겸비한 전천후 1번이었다.


2000년 회장기배 전국 고교농구 대회 우승을 이끌고 MVP에 발탁된 것을 비롯 같은해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제16회 FIBA U-18 대회에서는 방성윤, 정상헌, 김일두, 김학섭 등과 함께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4강에 공헌하기도 했다. 프로생활 초창기 3시즌 동안 공격형 가드로서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군복무 이후 급격히 불어난 체중 등으로 인해 몸놀림이 둔해졌고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치며 이전의 몸놀림을 회복하지못한채 은퇴의 수순을 밟게된다.

스포츠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다재다능함으로 유명했던 정상헌이 성실하게 성장했다면 김동욱 이상가는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는게 중론이다. 그만큼 아마시절부터 재능 하나는 진짜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멘탈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단체생활에 적응하지못하고 종종 팀을 무단이탈해서 문제를 일으키더니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때문에 2005 드래프트에는 일반인 자격으로 참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아쉽게도 시즌 시작 전부터 무단 이탈 사고를 쳤고 결국 자신을 지명해준 구단에서 방출당하는 황당한 사건까지 만들어낸다. 이후 현대모비스에 입단해 마음을 잡는가싶었으나 상무제대 후에도 돌발행동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결국 임의탈퇴로 공시되면서 짧은 선수생활을 마감짓고 만다.


주로 백업 빅맨으로 코트에 나섰던 강은식(40‧198cm)은 선수 생활을 길게 가져가지 못했음에도 KCC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코트 안팎에서의 성실한 플레이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몸을 사리지않는 수비를 통해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고 공격시에는 준수한 3점슛으로 팀 득점에 일조했다. 치명적인 부상이 연달아 터지며 선수 생활을 오래가져가지는 못했으나 팬들은 역할을 따지지않고 늘 최선을 다해온 강은식을 잊지않고 있다.


◆ 김광원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7경기 출전 평균 1.34득점, 0.72리바운드, 0.11어시스트, 0.19스틸


◆ 정재호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40경기 출전 평균 7.49득점, 1.64리바운드, 3.17어시스트, 0.89스틸


◆ 정상헌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6경기 출전 평균 1.13득점, 0.5리바운드, 0.06어시스트, 0.06스틸


◆ 강은식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43경기 출전 평균 2.1득점, 1.06리바운드, 0.36어시스트, 0.36스틸


◆ 윤병학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20경기 출전 평균 2.13득점, 0.63리바운드, 1.21어시스트, 0.53스틸


2016년 당시 농구 팬들은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된다. 방성윤이 폭행과 사기 등의 혐의로 법정구속되었다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이후 재심을 통해 폭행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사기 혐의만 인정되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2017년 8월 석방됐다. 이에 대한 팬들의 실망은 매우 컸다. 폭행에 대한 부분에서는 직접적인 혐의를 벗었다고하나 사기죄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범죄에 연루된 것 자체부터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넌 셈이었다.


힘든 일을 겪은 이후 농구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졌던 것일까. 2018년 방성윤은 프로선수로의 복귀를 타진했다. 은퇴한지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점에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닌 방성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적지않았다. 그만큼 선수로서의 방성윤은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성윤의 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사기사건의 피해액 전액을 변제했고 피해자와 합의까지 했다고 밝혔지만 그렇다고 범죄전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KBL 재정위원회는 당시 집행유예 중이라는 점을 들어 복귀불허 조치를 내렸다. 이후 일본 진출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범죄 혐의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드래프트 출신 중 가장 충격을 안겨준 것은 정상헌이었다. 정상헌은 은퇴후 처갓집에서 지내면서 농구와 관련없는 일을 하면서 생활했다. 하지만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했던 아내의 쌍둥이 언니와 사이가 무척 나빴고 결국 2013년 6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된다. 다툼 끝에 처형을 우발적으로 살해했고 시신을 인근 야산에 암매장하는 짓까지 저질렀다. 1심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최종적으로 20년으로 확정되었다. 현재 교도소에 복역중이며 2033년 출소예정이다. 정상헌 사건은 이후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재구성되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한상웅은 스킬트레이너 등 여러가지 일을 거치다가 현재는 미국에서 학교팀 코치를 하고있으며 부친은 강화도에서 수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한다고 알려져있다. 김광원은 2016년부터 한국스포츠교육희망나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김일두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정재호는 어린이 농구교실을 운영중이다. 강은식은 KCC 본사에서 건설자재 유통 영업팀을 맡고있는 것으로 근황을 알려온바 있다.


윤병학은 전주고등학교, 진상원은 양정중학교, 윤지광은 김해가야고, 김지훈은 휘문고에서 코치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3라운드 출신 추철민도 지난해부터 숭의여중 지휘봉을 잡았다. 


서울 삼성에서 코치로 활약중인 김효범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국내 농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국내, 해외를 모두 경험하고 양측의 문화에도 익숙한 인물답게 많은 후배들에게 멘토로 꼽히고 있는데 현역 KBL 선수 이대성, 최준용을 비롯해 NBA를 꿈꾸며 해외에서 활약중인 이현중, 여준석 등 다수의 후배들이 김효범에게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표필상 농구클럽 제공​


​​#이미지편집_김종수 칼럼니스트

2023.03.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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