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구독 중장년 크리에이터 만드는 시니어 유튜브PD

[비즈]by 전성기

흔히들 PD하면 방송PD를 먼저 떠올리지만, 콘텐츠의 영역이 TV에서 온라인으로 확장되면서 이젠 방송국이 아닌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유튜브PD’가 새로운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니어 유튜브PD 지성현(65)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현재까지 두 명의 시니어 유튜버를 직접 발굴하여 각 채널 당 구독자 수를 5천, 1만으로 성공시켰고, 유튜브 채널 안에서 시니어 전문 콘텐츠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CF감독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그가 인생 2막에 접어들어 시니어 유튜버PD로 주목받기까지 어떠한 삶의 과정들이 있었을까?

알고 보니 은퇴였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영화 현장에서 조감독생활만 4년. 현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30대에 광고회사에 들어갔던 그는 TV CF가 한창 주목받던 시기에 다양한 광고를 찍으며 영상 기획, 연출에 대한 전문성을 6년 동안 키워나갔다. 일에 대한 자신감은 확신으로 이어졌고, 직접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을 했다. 그렇게 어언 10년간 CF감독으로서 일에 전념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평생 직장은 없다’는 말을 실감이라도 하듯, 나이 오십이 넘어가자 일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한평생 광고 일만 했으니, 광고가 나를 먹여 살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원래 광고는 일찍 은퇴하는 업종 중 하나예요.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없으니 속상하더군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광고 말고 영화나 드라마 기획에도 참여해봤는데, 잘 안 풀렸어요. 이제는 이 업계에서 직접 나서서 일을 하기엔 늦었구나 싶었죠. 이게 바로 저한테 은퇴더라고요.”

모래사장에서 동전을 찾는 기분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위해선 새로운 일감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일이나 할 수 없었기에, 그동안 경험했던 영역 안에서 일감을 찾기로 했다. 모래알이 반짝이는 모래사장에서 동전을 찾아야 하는 기분이었지만, 의외로 동전은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지 씨에게 그 동전은 ‘유튜브’였다.


“광고 일이 점점 끊기던 즈음에 모 잡지사에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왔었어요.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 연출하는 것에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죠. 그때 처음 유튜브를 접하게 됐어요.”


그러나 유튜브는 그리 만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영상을 찍기만 하면 편집팀에서 편집하고, 송출팀에서 영상을 방송에 내보냈던 과거와 달리, 영상 촬영부터 편집, 업로드, 채널 운영까지 전부 직접 도맡아서 해야 했다.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이해는 혼자서 해낼 수 있었지만, 영상 편집은 그에게 상당히 서툰 분야였다. 다행히 딸의 도움으로 영상 편집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CF감독으로서 연출만 했었기 때문에 편집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딸에게 영상 편집을 부탁했어요. 그러다가 직접 해봐야겠다 싶어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고, 모진 수모(?)를 겪어가며 편집 기술을 익힐 수 있었죠(웃음). 매일 열심히 배우니까 실력이 금방 늘더군요. 영상 편집은 하는 만큼 느는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덕분에 유튜브 세계에 눈을 뜨게 됐고, 이곳에서 2라운드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단추는 시니어 유튜버를 발굴하는 일

지 씨는 유튜브가 앞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꿈을 실현해 줄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유튜버가 되고 싶은, 또는 될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날것의 아이디어를 잘 다듬어 광고라는 작품을 만든 것처럼, 가공하지 않는 원석 같은 사람을 찾아 보석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단, 대상을 그와 동년배인 시니어로 잡았다. 처음 같이 일하게 된 사람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은퇴하고 현재는 전업 작가로 전향해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신석주 씨였다.


“처음에는 반드시 지인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라는 건 철저하게 개인을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제가 그 사람을 잘 알아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유튜브와 맞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처음 연락한 사람이 충무로에서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에게는 ‘그림’이라는 소재가 있었고, 배우가 꿈이었던 터라 카메라 앞에서 능숙한 대화가 가능했죠. 그래서 이 친구한테 유튜브하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줬어요.”


첫 영상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영상을 올린지 단 3일 만에 조회수가 1,000회를 넘었고, 기세를 몰아 하루에 구독자 수가 300명 넘게 늘었다. 채널은 성공했고, 덩달아 화실도 덕을 봤다. 화실에 그림을 배우러 오겠다는 사람은 줄을 섰고,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도 넘쳐났다.


“둘이 같이 출연해서 대담하는 식으로 영상을 찍었어요. 우리는 어떤 사이고, 우리의 꿈은 무엇인지 얘기했죠. 제 꿈은 영화감독이고 앞으로 유튜브 감독이 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지금은 화가이지만 원래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이렇게 유튜브에 나온 것만으로도 배우의 꿈을 이룬 기분이다.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며 영상을 마무리했죠.


그런데 이 영상이 히트를 친 거죠. 이 영상을 시작으로 채널이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봤는데, 중요한 건 ‘스토리’였어요. 서로의 생각과 꿈을 솔직하게 얘기하니, 우리의 진심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졌고, 우리의 기획과 기획물이 그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간 것이죠.”

Youtube < 윤제린갤러리> 캡처

시니어 유튜브PD로서 첫 작품을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지 씨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 자신감이 두 번째 시도로 이어졌다. 다음 주인공은 강원도 동해시에서 린넨 소재로 옷을 만드는 윤제린 씨였다. 손녀에게 선물할 린넨 옷 만들기, 쳔연염색으로 원피스 만들기, 시니어 패션 코디 등을 영상 소재로 삼아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고, 두 달 만에 구독자가 1,000명을 돌파했다.


“윤제린 씨는 원래부터 유튜브를 하고 싶었던 분이에요. 지인의 추천으로 그 니즈를 알게 됐고, 무리 없이 같이 시작하게 됐죠. 이분과 같이 하면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던 이유는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경험치가 분명했기 때문이에요. 남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이 풍부했던 거죠.


그래서 처음엔 이분이 왜 ‘린넨’을 좋아하게 됐는지, 어쩌다 옷을 만들게 됐는지, 그 스토리부터 끄집어내서 영상으로 녹여냈어요. 이에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팬심이 생겨 한 번 보고 마는 영상이 아닌, 계속해서 보고 싶은 영상이 만들어지게 되었죠. 팬심의 원동력은 솔직한 스토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네 달 만에 구독자가 3천명이 넘고, 지금은 5천명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거죠.”

유튜버와의 의견 대립은 넘어야 할 산

시니어 유튜브PD는 아직은 생소한 직업이지만, 지 씨는 성공사례를 하나둘씩 늘려가며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아직 탄탄대로를 걷는 중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시행착오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시니어 유튜버PD로서 당면했던 과제들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수익 구조’와 ‘의견 충돌’.


“유튜버PD는 기획부터 촬영, 편집, 채널 운영까지 손 가는 부분이 많아요. 하지만 처음엔 돈을 받지 않았어요. 지인이기도 했고, 공동으로 채널을 운영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추후에 채널이 성공해서 수익이 생기면 그때 분배하자고 얘기했죠.


그런데 실제로 채널이 성공을 해서 수익이 났잖아요. 처음엔 금액이 크지 않아서 반반 나누는 게 쉬웠는데, 금액이 점차 커지니까 유튜버 입장에서는 수익의 절반을 떼어주는 걸 손해라고 인식하더라고요. 애매한 수익 분배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수익 구조에 대해 명확히 계약하게 되었죠. 지금은 편당 제작비를 받고 있습니다.”


지 씨는 예전에 광고일을 할 때도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광고주와의 의견 충돌이었다. 전문가로서 제안한 의견이 광고주의 취향에 따라 묵살되는 경우가 수차례. 영상 콘텐츠를 책임지는 PD는 최선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영상이 그렇게 만들어지도록 광고주와의 의견 간극을 좁히는 사람이기도 했던 것이다. 시니어 유튜버PD인 그도 유튜버와의 의견 충돌은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엔 다들 제 의견을 존중해줘요. 제가 먼저 제안하기도 하고,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나마 높은 제가 제안하는 방향으로 잘 따라와주죠. 그런데 점점 영상이 인기를 끌게 되고, 자신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광고 수익이 생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견 충돌이 생기더군요.


이때 저는 유튜버의 의견을 100% 존중해줬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 저에게 유튜버들은 광고주거든요. 그들을 통해 수익이 나는 거고, 결국 그들의 이야기이니까요. 지금도 저는 유튜버PD는 철저하게 유튜버들의 서포터 역할이라는 걸 명심하고 있어요. 그래야 의견 충돌이라는 간극을 좁힐 수 있더라고요.”

유튜브는 삶의 콘텐츠가 풍부한 시니어에게 유리한 시장

전업 작가 신석주 씨와 린넨옷 제작자 윤제린 씨의 경우처럼, 콘텐츠 소재가 분명한 시니어들을 발굴하면 앞으로 더 많은 채널을 성공시킬 수 있겠지만, 지 씨는 여기서 안심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유튜브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한다. 이를테면, 유튜브에서 새롭게 개발한 수익 창출 정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유튜브를 유료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제공하는 특별한 혜택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습득하고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시니어 한 사람씩 채널을 성공시킬 때마다 느껴지는 뿌듯함은 계속해서 이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잠재력이 무성한 시니어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그가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시니어들 또한 유튜브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유튜브에서 다양한 영상을 접하고 있고, 다들 한번쯤은 유튜버에 도전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람이 바로 시니어 유튜버PD인 것.


“저는 특히 시니어들에게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이미 경험치가 많다 보니까 영상 소재로 제격인 거죠. 그 경험치들을 유튜브 영상 소재로 접목시켜주는 게 저의 역할이고요. 우리 시니어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생활의 달인’들이에요. 지금까지 집안일만 했더라도 집안일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이처럼 그동안 쌓인 노하우들이 유튜브 콘텐츠가 될 수 있어요. 모두들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 못지 않게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거죠.”


의외로 많은 시니어들이 유튜브 채널에 들어와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 씨의 콘텐츠들을 신뢰해주고, 좋아해주고, 반응해주었다. 사실 그가 처음 시니어 유튜버PD를 한다고 했을 때 시니어들의 이러한 호의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만약 젊은 사람이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만들었으면 이렇게까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들조차 시니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렵고 스토리를 끄집어내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같은 나이대라 그게 가능했던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우리 세대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떤 포인트를 건드리면 되는지 알고 있던 거죠. 제가 시니어 유튜버를 키울 수 있었던 건 저도 시니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지 씨는 시니어 유튜버PD로서 목표가 있다. 일차적인 목표는 10만 구독자 시니어 유튜버를 만드는 것이고, 최종 목표는 그동안 만난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소재 삼아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극장 개봉 대신 ‘넷플릭스’ 독점 개봉을 하는 추세인데, 지 씨는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면 우리나라 최초로 유튜브 영화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영화 업계에서는 영화를 ‘꿈의 공장’이라 불러요. 현실에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거 같은 상상 속 일들이 영화에서는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저는 유튜브야말로 꿈의 공장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상상하면 뭐든 이뤄낼 수 있는 곳이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내용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디지털에 서툰 시니어들을 위해 제가 있는 거고요.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유튜버가 되고 싶은 시니어들은 꿈을 이루고, 그로 인해 저도 꿈을 이루는 선순환이 이루어졌으면 해요.”


기획 우성민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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