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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엄마의 40년 사과밭에 이야기를 덧입힌 아들

by전성기

직접 재배한 사과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선암리 농부들’의 권도형 대표. 음악에 푹 빠져 있던 그가 돌연 가업에 뛰어들었다. 선암리에서 가장 젊은 농부가 사연을 들어봤다.

패밀리 브랜드 열전

여기 부모의 1라운드를 이어받아 가족의 2라운드로 만든 자식들이 있다. 이들의 브랜딩 스토리를 소개한다.


1편 엄마의 사과에 이야기를 더하다, 선암리 농부들

2편 아버지의 꿀에 디자인을 입히다, 꿀건달

3편 아버지의 쌀을 브랜딩하다, 솔직한 농부

어머니의 SOS에 고향으로

권도형 대표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음악인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 졸업 후 소믈리에, 바리스타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계속 서울에 머물렀다. 그렇게 일과 음악 작업을 병행하며 꿈을 향해 가던 중 어머니의 SOS를 받았다.


“어머니가 과수원 일을 도와달라고 연락하셨어요. 몇 년에 한 번씩 바꾸던 사과 박스를 세련되게 디자인해 유지하고 싶다고 하셨죠. 기존의 과수원을 브랜드화하면서 새로운 이름과 패키지 디자인도 동시에 부탁하셨는데, 제가 이 일에 점점 빠져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선암리로 내려와 작업을 하게 됐어요.”


문경으로 내려와 선암리 농부들의 대표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도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가업을 이을지, 음악을 계속할지 꼭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투잡이 필수인 시대에 가업을 잇기 위해 꿈을 포기한다는 건 옛이야기죠. 저는 사과 농사를 짓는 음악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암리를 담은 브랜딩

그는 가장 먼저 브랜드 스토리에 집중했다. ‘선암리 농부들’이라는 콘셉트를 잡기 위해 부모님의 과수원에서부터 선암리의 역사까지 모두 수집했다.


“브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하죠. 저는 어떻게 하면 진정성 있게 저희 사과를 설명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패키지 디자인에도 선암리 고유의 색을 담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음악을 전공한 그에게 디자인은 친근하면서도 어려운 산이었다. 음악을 하며 디자인을 많이 접하기는 했지만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틀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 디자인이 과해지더라고요. 최대한 단순하게 선암리를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디자인하는 친구들에게 수십 번의 피드백을 받았죠. 그렇게 완성된 디자인으로 패키지는 물론 전용 머그잔도 만들어 함께 판매하고 있어요. 굿즈가 대세인 요즘, 사과즙과 어울리고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으로 선정했죠.”


그는 선암리 농부들의 맛 비결을 감홍 사과로 꼽았다. 감홍 사과는 특유의 높은 당도와 신맛, 단맛의 조화로 풍미가 일품이며 문경에서 주로 생산된다. 거기에 선암리 농부들만의 40년 노하우로 사과즙 맛의 편차를 줄인 것이 비법. 그는 이 맛을 도시에 알리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은 서울로 향한다.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맛을 보이는 것이 가장 정확한 홍보라고 생각해요. 바리스타로 일했던 카페와 협업해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공간을 빌려 팝업 스토어를 열어 사과와 사과즙을 직접 맛볼 기회를 만들죠.“

차근차근 맞춰는 단계

아무리 가족이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이 척척 맞기란 쉽지 않다. 일손이 부족한 과수원에 꼼꼼한 아들이 와서 두 팔 걷고 일하니 든든하면서도 종종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특히 어머니 황동화 씨는 속포장을 고집하는 아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는 30년 넘게 과수원을 하면서 항상 10kg 단위로 판매했어요. 하지만 아들은 5kg, 2.5kg으로 줄이는 데다가 사과를 하나하나 속포장하고 스티커를 붙이더라고요. 포장 말고도 할 일이 많은데 여기에 시간을 이렇게 투자하다니 처음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2~3배의 매출 신장과 고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는 아들을 인정했죠.”

밤샘 작업에 익숙한 권도형 대표는 새벽 4시까지 일하고 귀가하다가 일 나갈 채비를 하는 부모님과 마주친 적이 있다고 한다. 부모님과는 그렇게 엇갈린 생활 패턴 때문에 마찰이 생긴다.


“저는 서울에 살 때 주로 새벽 시간에 음악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새벽 근무가 익숙하죠. 일할 때 같이 일하고 쉴 때 같이 쉬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매일 밤샘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조금 억울할 면이 있죠. 이 점은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함께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년. 이 가족은 서로를 배려하며 차근차근 맞춰가는 단계라 말한다. 함께 절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같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서가 아닐까?


“지금 제 목표는 서울에 선암리 농부들의 쇼룸을 만드는 거예요. 도심 속에서 선암리 농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를 통해 선암리라는 작은 마을도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어요.”


기획 이채영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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