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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박원숙, 문숙, 이영란, 혜은이의 찐어른으로 살기

by전성기

평균 연령 66세, 이런 저런 사연으로 혼자된 중년 여배우들이 같이 사는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가 중년 시청자들을 TV 앞에 모으고 있다. 좌충우돌하며 함께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생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엿볼 수 있어서다.

평생 홀로 사는 사람도 드물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가족이나 보호자와 살게 되고, 그 후에는 독립해서 혼자 살기도 하다가 결혼, 동거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실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오래 보내다 혼자가 되기도 한다. 인생에는 오히려 타인의 온기가 필요한 노년에 홀로 살 게 된다는 슬픈 역설이 있다.

예순 넘어, 같이 살게 된 여자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원래 2017년 <같이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KBS 1TV에서 토요일 예능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박원숙이 집주인으로 평균 나이 63세, 동년배의 여성 배우들을 맞아 함께 산다는 내용으로, 2017년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가 그해 말 정규방송으로 편성되었다. 1기에는 김영란, 박준금, 김혜정이 메인 게스트로 활약했다.


2020년 7월 1일부터 2기가 시작하여, 이전과 같이 남해의 삶이 펼쳐진다. 채널도 KBS2로 옮겼고, 방송 시간도 수요일 10시 40분이 되었다. 박원숙을 중심으로, 1기와 같이 김영란이 출연하고, 파일럿에 출연했던 문숙, 그리고 새로 혜은이가 더해져 라인업을 만들었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여러모로 특별하고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거나 밤 시간대의 예능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노년, 여성 배우들을 중심으로 촬영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공동 주거를 그린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주로 미혼의 젊은 연예인들이 출연자였다.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는 생활 밀착형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MBC), <온 앤 오프> (tvN)의 주요 출연진들도 주로 20~40대 초반, 미혼에 집중되어 있다.


중장년, 노년이 등장할 때도 tvN의 <꽃보다 할배>처럼 노년의 남성 배우들이 등장하는 여행 프로그램 정도가 있었을 뿐, 대체로 가족 중심이거나 젊은 세대와 함께하며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노년에 다시 혼자가 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삶을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각양각색의 우리, 함께해도 괜찮을까?

가족의 삶으로부터 다시 혼자인 삶으로의 전환. 이제는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는 그들의 공동 주거를 보며 노년의 삶을 생각해본다. 드라마 내에서는 주로 부잣집 마나님이거나 성격이 강한 시어머니 등으로만 그려졌던 박원숙, 김영란, 문숙과 화려한 무대에서 귀여운 모습을 보여줬던 과거의 가수로 기억되던 혜은이가 이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프로페셔널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통 큰 언니 박원숙, 늘 우아하고 부지런한 문숙, 두루두루 둥글둥글 너그러운 혜은이, 엉뚱 발랄한 김영란 등 배우들은 자신들의 모습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물론, 타인과 같이 산다는 건 편안하고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랫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살다가 누군가와 같이 살 게 됐을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을 유추하게 된다.


첫 번째, 공동생활일 때는 책임은 모두의 것이다. 2회 시작 부분에서 큰 언니 박원숙은 모두를 모아놓고 “집에서 나가줘야겠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요지는 자신의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주거를 옮기자는 것. 자기가 집주인으로 있는 한은 계속 접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이 집중된다면 평등한 공동생활이 가능하지 않다.


두 번째, 서로의 다름을 이해한다. 이들 네 사람 중에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호박도 잘 자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를 못마땅하게만 여기지 않고 서로 가르치고 배워간다. 

세 번째, 갈등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타협도 가능하다. 아무리 서로 양보한다고 해도 다른 점은 다르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상황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새집으로 이사 간 네 사람, 방이 모자라서 한 사람은 거실에서 자야만 한다. 하지만 김영란은 침대가 제일 중요하다고도 말했고 거실에서 자는 걸 노골적으로 꺼리는 티를 보인다. 하지만 박원숙은 강경하게 돌아가면서 써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규칙에는 적응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공동생활이 가능하다.


네 번째, 협업이 좌절되어도 화내지 않고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박원숙은 동생들을 위해서 조립 가구들을 사 오지만, 이제는 눈이 침침해서 설명서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나이이다. 초반에 간단한 가구를 함께 조립하며, ‘이래서 같이 살아야 하나 봐’ 하며 즐거웠던 네 사람, 하지만 좀 더 복잡한 계단식 의자를 조립해야 하는 시점이 오자 좌절이 닥쳐온다.


결국 유순한 혜은이는 화를 내고 마는데, 친구들은 처음 보는 모습에 당황하지만, 곧 그냥 땔감이나 해버리자면서 그 상황을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실패해도 오래 화내지 않을 여유가 있어서 같이 사는 삶을 버틸 수 있다.

굴곡진 인생, 이제는 함께 걷자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의 강점은 서로 힘든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사람들만이 보일 수 있는 이해의 힘이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인생이었지만 인생에서 기쁜 일만큼 슬픈 일도 있었다는 것만은 똑같다. 그리고 이들은 그를 모두 견디고 버텨온 사람들이다. 박원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디스코텍에서 명랑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던 경험을 회상한다.


혜은이는 데뷔 이후로 계속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래해야 했던 사연을 털어놓는다.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게 된 혜은이의 소극장 공연에 김영란과 문숙이 특별 출연해 준 장면은 인상 깊다.


스스로 음치라고 하지만 친구를 위해 노래한 김영란, 그리고 하와이 요가 요정으로서 훌라춤을 보여준 문숙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서 새로 쌓아가는 우정을 볼 수 있다. 친정 식구가 없다는 말을 담담하게 하는 김영란에게 박원숙은 내가 언니가 되어줄게, 라고 말하며 눈물을 터뜨리기도 한다.

비 내리는 밤, 거실에 누운 혜은이와 문숙은 서로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앞으로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라고 서로 위로한다. 가족이 없다고 해서, 곁에 같이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외로울 리만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노년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찬가 같은 프로그램이다. 나이 들면 어느덧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여성 배우들은 삶은 여전히 이어지며, 희망도 여전하다고 명랑하게 말한다.


과거의 슬픔을 말하며 눈물지을 때도 있고, 죽음에 대해 평안하게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일들도, 관계도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시도하는 친구를 지지하는 마음이 있다. 삶은 지속하는 이상은 늘 가능성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 기사의 이해를 돕는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2020> 명장면 감상하기 https://tv.naver.com/v/15139761


박현주(방송칼럼니스트) 사진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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