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보면 대학생? 퇴직 공무원이 패션 모델 된 사연

[라이프]by 전성기

36년 간의 공무원 생활을 끝으로 퇴직한 유효종 씨. 그가 최근 주목을 받은 건 국내 한 백화점에서 주최한 시니어 패셔니스타 선발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면서다. 평생 아내가 사온 옷을 입으며 살아왔다던 그는 어떻게 패셔니스타 모델이 됐을까?

평범한 공무원 생활을 이어가던 유효종 씨에게 변화가 생긴 건 퇴직을 3년 정도 앞두고 있었을 때다. 인터넷을 돌아보던 중 우연히 젊은 사람들의 옷을 판매하는 쇼핑몰을 보게 됐고, 그 옷들이 머리 속에 각인처럼 새겨졌다. 홀린 듯 바지를 구입해 그 옷을 입던 날, 그의 일상이 달라졌다. 


“이 나이대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듯 아내가 사오는 옷을 불만없이 입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본 그 옷이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스키니 바지라고 하더군요. 배송되어 온 스키니 바지를 입는 순간, 그 동안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녔던 바지가 너무 아저씨같아 보이는 겁니다. 망설임없이 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죠.”


스스로도 희한하다고 느껴질 만큼 하루 아침에 옷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나이 든 사람들이 ‘애들이나 입는 옷이야’라고 말하던 옷들이 그의 옷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회사 후배나 동료들이 ‘멋있다’ ‘잘 입는다’는 이야기를 건네니 은근한 자신감도 붙었다. 젊은 옷을 입고 난 후 생각 역시 젊어지는 생경한 경험이 시작된 것이다. 

저 모델이 되려고요

퇴직을 1년 앞두고 삶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규칙적이고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늘 긴장 상태로 살아온 삶과는 이별하고 싶었기 때문. 36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했으니 이제는 조금 게을러도 누가 핀잔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은퇴 이후 살고 싶은 삶이란 ‘조금 덜 절박한 일상’이었다.


“주변에 퇴직한 사람들을 보니 손주를 돌보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등산처럼 운동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게 없더라고요. 사실 그런 일도 하루 이틀이잖아요. 뭘 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시니어 모델을 보게 됐습니다. 16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해서 나이에 비해 울룩불룩한 몸이 아니었고 또 옷 잘입는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어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 길로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죠.”


모든 일은 반전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법. 그는 자신의 인생 반전은 모델 아카데미를 등록한 일탈 같은 혁명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워킹 수업을 비롯해 전혀 접점이 없었던 다른 시니어들과의 만남은 삶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시켰다. 무엇보다 고정되어 있었던 생각의 틀이 흔들리고,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하는 일은 이전에 몰랐던 즐거움이다. 

“퇴직 후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사람들이에요. 겉모습뿐 아니라 말투, 가치관 등 모든 게 다 해당됩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배울 점이 생기니 절로 자극을 받더라고요. 행동, 말투, 옷차림에 더 신경 쓰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힘들거나 어렵지 않고 너무 즐거웠어요.”

시니어 모델 2년차의 패션 조언

전문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사람들에게서 옷 잘 입는 팁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어려워서 늘 비슷한 조언을 하게 된다는데, 듣고 보면 이보다 더 현명한 팁이 없다. 


“패션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망설여지는 게 워낙 주관적이라 딱 떨어지는 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만 저는 스스로 멋있어 보이는 옷을 갖춰 입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자존감이 올라갔어요. ‘옷 신경 안 써, 사람이 중요하지 옷이 중요해’ 하는 사람도 물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장례식장에 갈 일이 생기면 신경 써서 검은 옷을 입으려고 하고, 결혼식장에서는 양복을 입잖아요. 또 그옷을 입고 함부로 행동 하지 않고요. 편한 옷차림이 품격을 낮추지는 않지만 점퍼든 청바지든 자신이 생각하기에 갖춰 입었다고 생각하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 이유없이 표정도 우울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져요. 그런데 옷을 갖춰입은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가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저는 자신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보라고 해요. 비싼 옷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멋진 옷을 입은 걸로 충분합니다.”

 시니어 모델에서 시니어 엔터테이너로

그는 아직은 작은 걸음이지만 2라운드의 행복을 확장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중이다. 모델에서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전문성을 넓히기 위한 연기 공부가 그중 하나. 공부하면서 얻은 최대 수확은 대형 백화점에서 진행한 시니어 패셔니스타 선발대회 1등이다. 수상 이후 어떻게 1등을 했냐, 자신의 강점이 뭐냐는 쏟아지는 질문에 물음표로 답하는 그는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려는 생각이 이미지로 발현된 것 같다며 겸손한 마침표를 찍는다. 


“60년 동안 매일 봐온 얼굴이고 몸이다 보니 제 매력이 뭔지 잘 몰라요. 이미지가 중요한 대회였으니 추측건대 제 이미지를 좋게 봐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표정이 중요하다고 해서 연기를 배운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후 재미있는 일도 많이 들어왔고요. 작년 하반기에만 독립영화 9편에 출연하고 CF와 화보도 서너개 찍었어요. 얼마 전에는 힙합 가수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고요. 이 얼마나 새로운 인생입니까”


늙는 것은 젊음을 잃는 것이 아니라 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젊음을 아름답게 품기 위해 늘 노력하는 그를 보니 다른 이보다 좀 더 느리게 흘러가는 인생의 시계를 품은 것처럼 느껴진다. 

유효종 씨가 전하는 옷 잘 입는 법 두 가지

1. 곧고 바른 자세

자세가 구부정하면 아무리 멋진 옷을 입어도 태가 안 난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걷기만 해도 입고 있는 옷이 달라 보인다. 


2.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것

비싼 옷, 남들과 다른 옷보다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옷 즉, 스스로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옷을 입자. 그런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올라가 표정부터 달라진다.


기획 서희라 사진 이대원(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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