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시니어 바리스타로 새로운 내 삶을 로스팅하다

by전성기

생두가 그윽한 원두가 되기까지 커피를 볶는 로스팅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로스팅으로 익어가는 것은 아닐까?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서 행복을 로스팅하는 중년 바리스타를 만났다.

커피가 알려준 행복의 맛
인치언

서울 방배동의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스테이지9(Stage9)라고 쓰여 있는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커피를 내리는 공간과 두 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이곳은 인치언 씨가 운영하는 더치커피 전문점이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세 가지 메뉴가 전부다. 망설이는 사이 들려오는 목소리.


“시음해보시겠어요?”


그는 매일 마시는 커피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느껴지는 맛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시음을 권했다.


“손님들이 더치커피가 어떤 맛을 갖고 있는지, 혹은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 커피숍을 찾는 분들이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항상 시음을 권하고 있습니다.”


더치커피를 좋아해 더치커피 전문점을 차렸다는 그는 원래 컴퓨터프로그램 관련 일을 했다. 직장 생활을 할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고, 고민이 깊어졌을 무렵 우연히 참석하게 된 커피 관련 교육이 그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한번 커피에 흥미를 느끼고 나니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궁금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선생님을 쫓아다니면서 질문하곤 했어요. 그렇게 커피 공부가 무르익을 때쯤 강사 제의가 들어오더군요. 커피가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중심으로 강의를 했는데, 강의 요청이 많아지면서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었죠.”


커피 강사로 활동하던 그에게 변화가 일어난 건 5년 전이다. 강의를 듣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커피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더 많은 사람에게 맛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커피숍을 차리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 하지만 생각처럼 잘 운영되지 않았다. 손님들의 컴플레인이 계속 들어오고 점점 매출도 떨어졌다.


“당시 강의를 엄청 많이 다닐 때였어요. 사실 가게에 나올 시간이 없었죠. 직원들 교육만 잘 시키면 되겠거니 했는데 제가 매장에 가면 손님들이 엄청나게 항의를 하더라고요. 맛이 없고, 서비스가 나쁘다는 게 대부분이었죠. 결국 가게 문을 닫았고, 쓰라린 교훈을 얻었습니다.”


수업을 모두 정리하고 재정비에 들어갔다. 스스로 맛있다고 느끼는 커피만 판매하자는 생각으로 더치커피 전문점으로 바꾸고 메뉴도 확 줄였다. 하지만 매출 회복은 더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음이었다.

“우리나라는 커피를 음식이 아닌 음료로 생각해서 쉽게 마시는 물처럼 생각하는데 저는 커피를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지죠. 그리고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시음을 생각했습니다. 커피는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맛도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어제 맛있게 마신 커피가 오늘 맛이 없을 수도 있죠. 손님들이 다소 귀찮아하시더라도 하나하나 설명해드리면 결국 가장 맛있는 커피를 손에 들고 가시거든요. 그럼 꼭 다시 찾아주시더라고요.”


시음을 시작한 뒤 손님들의 반응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커피 맛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행복한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의 맛은 행복의 맛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커피를 내리며 행복을, 맛을 찾아가는 중이다.

커피의 선물
김한기

“정년퇴직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퇴직 후 한 달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낮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백수로 생각할 것 같은 괜한 자격지심이 있었지요.”


30여 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2016년에 퇴직한 김한기 씨는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하며 퇴직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수록 잘 노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조언을 듣고서야 집 밖으로 나섰다. 등산을 하고 산책도 하면서 무엇을 하고 놀면 좋을지 찾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실버 카페’. 가족들이 평소 커피를 즐겼던 터라 카페에서 일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지브라운이라는 실버 카페가 눈에 들어와서 전화해보니 인천 노인인력개발센터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면 일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하길래 그길로 바리스타 아카데미에 갔죠.”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고 지브라운 카페에서 일을 하고 보니 점점 커피 공부에 욕심이 났다.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었다. 평생학습관에서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부천의 오르막커피 아카데미에서 라테 아트를 배운 후 나간 시니어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손님들께 맛있고 예쁜 커피를 내어드리고 싶어서 전문적으로 라테 아트를 알려주는 학원을 더 다녔어요. 열정적으로 공부해서 1급을 취득했는데 라테 아트를 알려준 선생님께서 시니어 바리스타 챔피언십에 팀을 꾸려서 나가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두 달 넘게 낮밤 없이 연습한 게 빛을 발했는지 대상을 받았습니다. 60세 넘어 상을 받으니 정말 감격스럽더라고요.”


대상 수상은 그의 커피 열정에 불을 지폈다.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홈카페마스터와 커피지도사 2급까지 취득했다.


“30년 넘게 책상에 앉아서 일할 때는 몰랐는데, 카페에서 일하는 게 제 적성에 맞더군요. 카페는 다양한 사람이 머물다 가는 곳이잖아요. 잠시 머무는 거지만 제가 만든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게 좋고, 종종 대화도 나누는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커피지도사 1급 공부는 조금 뒤로 미뤘어요. 공부를 시작하면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잖아요. 그리고 같이 근무하는 분 중에 70대 후반의 바리스타 선생님도 계세요. 그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돼요. 그런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어요.”


그는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인사와 감사를 담당했다. 회사 생활은 즐거웠지만, 포상도 하고 징계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직장 동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퇴직 후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에서 새로운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 스스로도 놀랍고 감사하다.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경험하고 있어요. 커피 하나로 이렇게 인생이 즐거워질 수 있다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