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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고향 귀농 8년, 감자 농사로 답을 찾았습니다

by전성기

7년의 직장생활, 3년의 창업 도전. 도시라는 정글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노재석 씨는 10여 년간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양평으로 귀농했다. 어느 덧 귀농 8년차, 그는 요즘 '별똥밭' 감자칩으로 귀농 성공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도시에서 틔운 싹, 양평에 아주심기

감자 농사는 싹 틔우기부터 시작된다. 바람이 잘 통하는 상자에 담아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싹이 날 때까지 보살핀다.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그곳에 완전히 심는다는 의미.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뿌리가 들뜨지 않고 튼튼하게 자란다.


노재석 씨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양평에서 살아온 양평 토박이다. 어린 시절 낙농업을 하시던 부모님은 매일 새벽 젖을 짜야 했기 때문에 한평생 외박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는 시골을 떠나겠다 다짐했고, 성인이 되던 해에 곧바로 인천으로 갔다.


“인천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 생활이 시작됐어요. 전역 후 인천에서 취직해 7년 동안 직장 생활도 했죠. 그런데 경기가 나빠져 뜻하지 않게 퇴사를 했고, 그 후 카페를 운영했어요. 하지만 우후죽순 생겨나는 카페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더라고요.”


유명한 바리스타나 로스터가 있는 카페가 인기 있던 시절, 그는 바리스타나 로스터가 되려고 공부를 하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많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은 방안이 그 중간 단계인 커피 농부였다. 그는 도시에서 커피나무를 키워보겠다는 싹을 틔우고 양평에 아주심기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

작목반 막내에서 별똥밭 대표로

양평으로 귀농했을 때 그의 나이, 30대 중반이었다. 커피나무를 키우려 내려온 그가 가장 먼저 수확한 것은 감자였다. “커피나무를 키우려면 온실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 비용을 모으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속해 있는 작목반에 스카우트됐죠. 작목반 어르신들이 농사지을 젊은 청년이 왔다며 다들 좋아하셨어요. 저는 농사도 배울 겸 작목반 막내 자리를 꿰찼죠.”


그해에 수확한 감자는 총 20톤. 하지만 절반도 팔지 못해 처치 곤란인 상황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가마솥이었다. “시골집에는 다들 가마솥 하나는 있잖아요. 팔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감자를 큰 가마솥에 양념도 안 하고 그냥 튀겼어요. 튀긴 감자칩은 근처에 사는 조카들 유치원 간식으로 싸주고, 시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친형 가게에 주전부리로 나갔죠. 그게 별똥밭의 시작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감자칩을 판매할 생각은 아니었다. ‘별똥밭’이라는 이름도 감자칩이 아니라 커피나무를 판매하기 위해 등록한 상호였다. 그런데 감자칩을 맛본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판매를 원하면서 미리 등록해놓은 ‘별똥밭’으로 시작하게 된 것.


“조카가 다니는 유치원 원장님에게서 아이들 간식으로 주고 싶으니 감자칩을 판매해달라는 전화가 왔어요. 전화를 받고 얼떨떨했죠. 돈 받고 감자칩을 판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또 얼마 후엔 친형 가게 손님들도 감자칩을 사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조금 붙었죠.”

그는 반신반의하며 지역 축제에서 첫 장사를 나섰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하루 만에 300봉지가 불티나게 팔려 재료 소진으로 장사를 조기 마감했을 만큼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손님들은 짭조름하지 않아 처음에는 약간 실망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간다며 물리지 않는 맛이라고 칭찬했다. 지역 축제를 시작으로 그는 전국 곳곳의 프리마켓을 돌아다니며 별똥밭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런데 계속해서 승승장구할 것 같던 장사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식품제조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미처 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결국 허가 없이 식품을 제조한다는 누군가의 신고로 장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허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허가가 나올 때까지 몇 개월 동안 감자칩을 팔 수 없었죠. 그 당시 감자칩 제조 시설을 만들려고 건물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더욱더 어려웠어요. 그래서 막노동도 하며 대출 이자를 충당했죠.”


그러는 동안 그는 별똥밭을 재정비하고 별똥밭의 미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했다. 감자뿐만 아니라 고구마도 튀겨보고 모든 종의 감자, 고구마를 맛보며 칩에 가장 어울리는 종을 찾으려 애썼다. 별똥밭은 현재 백화점 팝업스토어, 온라인몰 등에서 감자칩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감자칩 제조 시설을 카페로 탈바꿈시켜 감자칩과 커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가장 많이 팔았을 때는 월 4000만원까지도 매출이 나왔지만, 기복이 아주 심한 편이에요. 매스컴을 타거나 팝업스토어를 열면 주문이 밀려왔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하죠. 특히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팝업스토어나 프리마켓도 열리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도시의 경험, 좋은 씨앗이 되어

“커피는 원두 생산지와 로스팅을 누가 했는지, 어떤 바리스타가 내렸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이와 마찬가지로 감자와 고구마도 생산지와 품종, 누가 튀겼는지에 따라 맛이 다 다르죠. 가장 맛있는 감자, 고구마에 별똥밭만의 기술이 더해져 다른 첨가물 없이도 별똥밭 감자칩과 고구마칩이 맛있는 겁니다.”


별똥밭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밤고구마, 호박고구마뿐만 아니라 자색고구마, 주황미 등 계절마다 다른 종의 감자와 고구마를 사용한다. 마치 제철 음식처럼 ‘제철 칩’을 만드는 것이다. 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자이언트 호박도 매년 재배한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의 원천이 도시 생활에 있다고 말한다.


“귀농하기 전 카페를 운영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때부터 ‘손님을 끌려면 스토리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자이언트 호박을 키우고 가마솥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또한 신뢰를 얻기 위해 저의 모든 일상을 SNS에 공유해요.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짓고 어떻게 칩을 만드는지 고객들이 확인하기 쉽게 말이죠.”

지금이 있기까지 부모님은 그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가 감자칩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무뚝뚝한 아버지는 ‘알았다’고만 하셨다. 그런데 며칠 뒤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보니 젖소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평생 키워온 젖소 농장을 단숨에 정리한 것.


“부모님의 믿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언제나 묵묵히 저를 지켜보고 든든한 힘이 되어주시죠. 또 제가 만약 양평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곧장 농사를 지었다면 이만큼의 열정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다양한 감자를 튀겨보자는 생각은커녕 감자를 튀겨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도시에서 제가 아주심기를 할 이유를 찾아 돌아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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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채영 사진 이준형(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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