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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방송인 이상벽처럼 2라운드 ‘거리’를 찾으려면...

by전성기

나만의 ‘거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쉴 틈 없이 거리를 찾아 실행에 옮기는 방송인 이상벽에게 물었다.

13년간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국민 MC로 사랑받은 방송인 이상벽. 10여 년 전 그의 인생이 담긴 프로그램에서 돌연 스스로 물러나며 사진작가로 2라운드 삶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네 차례, 미국에서 두 차례 전시회를 열 정도로 사진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런 노력 덕에 방송계에서는 성공적으로 2라운드 삶을 보내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예전처럼 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아니지만 여러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보내와 방송 출연도 잦다. 최근에는 행복한 노후를 코치하는 강연자로도 인기가 높다.


그는 “홍성에서 보자”고 했다. 충남 홍성군 구항면 백월산 중턱에 그의 세컨드하우스가 있다. 호수를 바라보고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한눈에 봐도 배산임수의 명당터다. 평소 서울에서 지내지만 2~3일 정도 일정이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 머문다고 한다.


단지 쉼을 위한 공간만은 아니다. 그는 이곳에 오면 기왓장, 석탑 등 집 곳곳에 취향을 불어넣고 소나무, 감나무 등 조경도 손수 한다. 올해는 텃밭을 일굴 생각이다. 이상벽에게 쉼과 놀이를 동시에 채우는 공간인 셈이다.

이곳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삶의 놀이터네요.

재미있지요. 집을 짓고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방을 어떻게 하면 좋겠다, 창은 어디로 내며 방과 방을 어떻게 연결할까, 내 나름대로 설계하는 것이지요. 과정의 즐거움이 진짜 즐거움 아닐까요?


조경도 그래요. 대소 대비, 즉 큰 나무 옆에 작은 나무를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를 고민하며 남들이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발견해내려고 노력합니다.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죠. 다만 뭐든 과하지 않게 합니다. 집을 가꾸든, 텃밭을 일구든 내가 지닌 에너지에 맞게 규모를 가져갑니다.

선생의 집엔 유독 나무와 그림이 많습니다.

제가 미대 출신이라 그런지 집을 캔버스로 보고 벽지나 가구 등을 그림 요소로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 집에 가면 어떤 그림이 어떻게 배치돼 있나를 먼저 봅니다. 그리고 가구가 어떻게 배치돼 있나를살핍니다. 제가 나무를 무척 좋아해 집 인테리어에 원목을 많이 사용했고 정원에 제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습니다.

사진의 테마도 한결같이 나무였습니다. 유독 나무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나요?

나무에 대한 저 나름의 철학이 있지요. 나무는 선 자리에서 자기 일생을 마치는데 백년도 가고 천년도 가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 된 나무로 만든 좌탁의 나이테를 보면 우리 삶이 하잘것없다는 것을 느끼고요.


나무는 살아서 서 있을 땐 동물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새들을 위해 잠자리를 내주고 꽃이 피어서 향을 건넵니다. 죽어서는 가구가 되거나 이쑤시개가 되거나 쓰임이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버릴 게 없는 삶이에요. 그런 아낌없이 주는 삶에 감동하고 닮고 싶지요.

정원에 감나무가 많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사진전 도록의 첫 페이지도 감나무입니다. 성장환경의 영향이지요. 아버지가 늘 감나무가 많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북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에 어차피 어느 곳인가에 고향을 정해야 하잖아요.


새로운 터전으로 감나무가 많은 곳을 찾아다녔지요. 왜냐하면 감나무는 동해를 잘 입는 나무여서 양지바른 곳이 아니면 못 삽니다. 양지바른 마을은 온화한 기운이 감돌아 대체로 사람들이 온화하고 인심이 좋다는 겁니다.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이, 배고픈 시절에도 감을 딸 때 맨 끝에 달린 한두 개는 까치 먹이로 남겨두잖아요. 감나무가 지닌 특징이지요.

감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이네요.

그렇지요. 감나무는 나무부터 꽃, 잎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그래서인지 감나무가 느티나무처럼 우거진 모습을 보면 고향 외할아버지를 만난 기분이에요. 듬직하고 반갑고요.

10여 년 전 사진작가로 2라운드를 시작할 때 불안감은 없었나요?

뭘 할 것인가, 나름의 준비를 했지요. 아마 2007년부터 사진을 시작했을 겁니다. 당시 을 오래 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잘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지요. 그때가 오기 전에 ‘나 스스로 물러나자’고 생각했는데 딸(이지연 전 KBS 아나운서)이 방송국에 입사하면서 실행에 옮긴 겁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잡은 것이 사진이에요. 모든 활동을 접고 3년을 매일 사진만 찍었지요.

취미를 넘어 작가가 됐습니다. 취미를 직업으로 연결한 비결이 궁금합니다.

제 인생의 모토가 성실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공의 조건이라는 학연, 지연, 혈연 이 세 가지 중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지요. 자녀들을 키울 때도 그 점을 강조했지요. 아이들을 키울 때도 우등상보다 개근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자식들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을 개근했습니다. 자식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그게 습관이 되니 지금까지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어요. 지난번 KBS <1대 100>이라는 프로그램에 딸과 함께 출연했는데 제가 두 시간 전에 도착했고, 딸이 조금 뒤 도착했지요.


그렇게 일찍 와서 할 게 뭐가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대본을 보고 현장을 돌아보며 감을 익힙니다. 현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사진도 그랬어요. 하늘, 빛, 날씨, 계절 등 환경적인 요건이 최상인 상태를 프레임에 담기 위해 새벽에도 가고 해 질 녘에도 가고 계속 갑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기 위해 1년 동안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든 하게 되면 투철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래야 남보다 한 수를 더 보는 것이지요. 살아보니 열심히 사는 사람과 어영부영 사는 사람은 한 수 차이예요.

그 차이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것이네요.

나훈아가 절친한 친구입니다. 저를 보면 “요새 운동하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서 늘 “우리처럼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최고의 팬 서비스가 몸을 어떻게 보여주느냐다. 무대에 서는 한 나를 철저하게 가꿔서 서야 한다”고 말하지요.


또 나훈아는 자기 일에 투철합니다. 타고난 끼도 있지만 매일 연습합니다. 무대에서 취하는 몸짓, 하는 말, 모두 연습합니다. 프로도 그런 프로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못 당하지요. 그것이 공연 예매가 3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나훈아 쇼’가 인기 있는 이유입니다. 삶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봐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굉장히 잘 활용하네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속된 말로 일흔이 넘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당연히 제 나이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금쪽같을 수밖에 없지요.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열심히 살려고 하지요. 또 몸을 많이 활용하니까 건강하고요. 왜, 넋을 놓고 있으면 병이 온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살면 병이 올 틈이 없지요.

쉼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멍때리는 걸 좋아합니다. 이곳에 오면 창밖으로 소나무가 펼쳐집니다. 방해 없이 가만 앉아 소나무를 바라보곤 합니다. 제겐 명상이지요. 그러다 졸리면 10~20분 정도 자고요.


절에도 다닙니다. 제겐 삶의 정비소 같은 곳이지요. 나를 잠깐 그곳에 세워두고 ‘내가 여기까지 잘 왔나? 너무 속력을 내지 않았나? 내 차에 타고 있는 가족들이 불안해하지 않았나? 내가 추월해서 남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나?’ 가만히 묵상하며 생각합니다. 그리고 염주 돌리듯 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돌아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시간이네요.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자녀들과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고 있는데 ‘각자 아무 일 없기’입니다. 설령 일이 있더라도 그건 네 몫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사는 가족들이 너무 고맙지요. 나는 나만 건사하면 되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리고 어머니가 95세입니다. 아직도 정정하세요. 저뿐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면 삶에는 감사할 것들 천지예요.

요즘 인생 특강 무대에도 많이 서는데 중년들과 어떤 주제로 소통하나요?

내가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강연하는데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한글 중 ‘ㄲ’으로 이뤄진 글자 여섯 개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야기 나누지요. 끼, 깡, 끈, 꾀, 꼴, 꿈이 그것입니다.

각각의 글자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나요?

‘끼’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재주일 수 있고 몸속의 탤런트일 수도 있고요. 너무 넘치면 푼수데기가 될 수 있지만 끼가 없다면 그걸 보충하려고 애써야 하고요.


‘깡’은 결단력입니다. 살면서 단호하게 결단해야 할 일이 많아요. 그걸 제대로 못하면 비극적인 최후를 만나지요. 깡이 있게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고요.


‘끈’은 관계성입니다. 관계성을 맺느냐에 따라서 내가 하는 일에 성과가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꾀’는 지혜로움, 슬기로움입니다. 꾀를 잘못 부리면 얍삽한 사람이 되지만 부족하면 슬기로움이 부족한 사람이 돼요.


‘꼴’은 얼굴인데 자존감입니다. 좀 부족하다고 해서 핸디캡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나의 전부고 나의 전체이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꿈’은 나이를 불문하고 가져야 하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이고요.


원고 쓰고 방송하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왕이면 사람들에게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이 방법을 연구해 사용했지요. 강연은 내가 공부하고 연구한 걸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기회가 되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입니다.

일상에서 행복이 그려집니다. 2라운드 삶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거리’이지요. 뭔가 할 수 있는 거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재미있게 즐겁게 살아왔던 것도 그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일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요. ‘전공을 살려 그림을 그릴 것인가? 기자 시절 원고를 썼던 경험을 살려 글을 쓸 것인가? 계속 사진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지요. 이 셋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건데, 내게 이런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마지막으로 2라운드를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한다면?

제가 어렸을 때 60~70대 어른을 보면 ‘저분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항상 궁금했습니다. 100수를 맞이하신 노교수님의 말씀이 ‘살아온 걸 돌아보니 70대가 전성기였다. 60대까지 젊은 사람이었다면 70 즈음 되니까 제자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발휘하고 주변에서도 어른 대접을 하더라’였습니다.


100세를 산 사람으로서 70대가 가장 전성기였다고 하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그분의 일생에 비춰보면 지금이 전성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아주 금쪽같이 쓰려고 노력하지요. 지금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 2라운드 준비의 시작입니다.


기획 이인철 사진 박충열,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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