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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은퇴를 준비하는 도시인의 자연 속 한옥 마을이지요

by전성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취향이 비슷한 도시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작은 마을을 형성한 곳이 있다. 이름난 목수가 10년 동안 원하는 사람에게 한 집 두 집 지어주 다 보니 어느새 20가구 가까이 되어 마을을 이룬 것이다.

이곳에 어떻게 한옥 마을이 조성됐나요?


목수 이정섭 씨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이정섭 씨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공공 미술을 하려던 청년이었는데, 농사지으며 살 생각으로 시골로 내려갔지요. 하지만 막상 시골에서 생계가 해결되지 않자 궁리 끝에 목수 일을 해보려고 집 짓기를 배웠답니다.


그리고 2002년 강원도 내촌에 땅을 사 살림집 겸 샘플 하우스를 지었어요. 하지만 집은 덩치가 커서 다 지은 후 팔리지 않으면 손해가 컸어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죠. 가구야 하나 만들어서 안 팔려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게 바로 내촌목공소의 시작이군요.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평생 목재를 만지며 살아온, 목재 회사 대표인 저도 이정섭 씨의 가구를 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내촌목공소의 고문으로 이정섭 목수를 도우면서 살자 하고 내촌에 와서 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지내다 보니 자연도 좋고 집도 좋아 옆에 집 짓고 같이 살자고 친구들을 설득했고, 친구들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내촌에 집이 늘고 마을이 형성됐어요.


구경하러 왔다가 내촌에 정착하게 됐군요.

서울 갤러리에서 열린 이정섭 목수의 가구 전시를 보고 내촌목공소로 구경을 왔다가 집을 보고 반해서 집을 짓다 보니 내촌마을 1·2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홍천군 내촌면에 골짜기를 끼고 있는 지골마을과 길 건너 큰골마을이 각각 내촌 1·2인데, 현재 윗마을에는 8가구, 아랫마을에는 6가구가 있고 지금도 자기 집이 올라가길 기다리는 이들이 있지요.

집들이 참 멋있습니다.


보통 집을 지을 때는 3~4개월이면 족하지만 이정섭 목수는 1년 가까이 걸립니다. 건축할 때 시간은 다 비용이지만 문고리 하나에도 정성을 쏟다 보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평생 한 번 지을까 말까 한 집을 갖게 되는 거죠.


흔히 생각하는 한옥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만, 왜 한옥이라 부르나요?

내촌목공소가 만든 집의 공식 명칭은 ‘내촌목공소 한옥’입니다. 한옥이라는 말을 듣고 집을 보면 의아해하는 분이 많죠. ‘기와 한 장 없는 집이 어찌 한옥일까?’ 하면서요.


우리는 ‘한국인의 삶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한옥이라 부릅니다. 고려 시대에는 고려 한옥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조선 한옥이 있고, 21세기에는 그에 맞는 집 형태가 있겠죠. 이는 건축가 김봉렬 교수가 말한 한옥의 개념이기도 하고요.


내촌목공소 한옥이 특별한 점은 무엇입니까?

내촌목공소 한옥에 사는 이들은 하나같이 새 집에 들어가도 불쾌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나무 향기가 솔솔 난다고 말합니다. 나무 외에는 보온재로 쓰이는 그 흔한 글라스울도 전혀 쓰지 않지요. 그래서 절대 가격이 싸지 않죠. 보통 주택 건축비가 평당 600만 원 정도인데 내촌목공소는 평당 1,000만 원 정도 듭니다.


나무로 만든 집이라니, 무슨 나무를 쓰나요?

기와 얹는 전통 한옥을 짓는 이들은 우리 소나무가 최고라고 고집하지요. 그런데 좋은 나무란 무겁고 비싼 나무가 아닙니다. 용도에 맞게 써야 좋은 목재입니다.


세상에는 가볍고 경제적인 나무도 많습니다. 내촌목공소 한옥의 기둥, 보, 도리 등은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로 만들고 창틀과 문틀은 물푸레나무나 참나무, 문손잡이는 참나무와 호두나무를 씁니다. 소박하게 보이는 지붕에는 프랑스산 고급 목재를 썼지요.


전 세계의 목재를 다루어본 제가 내린 결론은, 나무는 적재적소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내구성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요.

마을엔 어떤 분들이 모여 삽니까?


백우산 기슭의 이층집은 미술품 컬렉터인 치과의사 조문건 원장의 집입니다. 목수가 하나하나 손으로 지은 것에 감동해 작품을 소유한다는 마음으로 집을 샀답니다. 살아보니 지형에 맞게 자리하고 있어서 집에 머무는 맛이 대단하다고 해요. 배훈식·박정수 부부는 서양화가인 딸이 부모님 손을 잡고 내촌마을을 구경하러 왔다가 정착하게 되었죠.


직접 살아보니 어떻습니까?

(마을 주민 조문건 씨) 나이 50이 넘으니 일상의 고단함을 해소할 휴식처가 절실했지요. 저는 내촌 집 덕에 생활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툇마루를 쓸고, 나무를 하고, 풀도 베고… 노동이 주는 즐거움이 좋습니다.


(마을 주민 배훈식 씨) 아내가 개업의인데, 토요일 진료가 끝난 오후에 들어와 일요일 오전에 나갑니다. 스케줄이 빡빡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의 포근함과 자연도 행복을 주지만, 일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들어 더없이 힐링이 되죠. 아내는 여기에 앉아 뒤뜰을 보는 맛에, 저는 불 피우는 맛에 빠져있어요. 서울 아파트는 짐이 참 많은데, 여기에 와보니 이것저것 갖추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은퇴 후 비워내는 삶을 미리 연습하는 중입니다.


(마을 주민 박성주 씨) 내촌마을에서 가장 작은,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있는 43m²(13평) 집에 살고 있어요. 한옥을 기본으로 하되 모던한 점이 좋았고, 상업적 느낌이 아닌 진정성이 느껴져 남편과 상의도 안 하고 계약부터 해버렸어요. 다행히 남편이 더 좋아해 집 둘레의 돌담도 손수 쌓았답니다. 중·고등학생 아이까지 네 식구가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아 여름휴가도 이곳에서 보냈어요. 나중에 이 집 옆에 16m²(5평)짜리 집을 지을 예정입니다.

마을 주민들끼리는 어떻게 교류하고 있나요?


집들이 가까이 있지 않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서로 알고 있습니다. 여름에 바위를 테이블 삼아 별 보며 맥주를 마신다거나 모닥불을 피우는 등 주말에만 오는 입주 1년 차 주민들끼리도 추억을 쌓고있어요.


내촌마을의 묘미는 이웃에 있습니다. 내촌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내촌 토박이들과도 이웃으로 지내는데, 고구마나 단호박 철이 되면 농작물을 팔기도 해요. 농촌 사람들은 팔아서 좋고, 도시 사람들은 싱싱한 로컬 푸드를 먹을 수 있어 좋은 식이지요.


은퇴자의 마을이 아니라 은퇴를 준비하는 마을이군요.

어떤 의사분이 은퇴 후 내촌에 작은 병원을 열어볼까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약사 출신 주민은 여기에 약국도 없다며, 그 옆에 약국을 열어볼까 하며 운을 뗐죠. 은퇴 후 삶은 이처럼 이웃과 함께할때 행복이 배가되지 않을까요. 좋은 옷 입고 나가도 봐주는 이가 있어야 즐거운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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