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배우에서 다시 배우로

[라이프]by 전성기

차화연만큼 ‘제2의 인생’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끝으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20년 넘게 멈춰 있었다. 정상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 뒤 아내와 엄마로 살다가 어느 순간 다시 배우의 삶을 찾고 싶어졌고, 큰맘을 열 번쯤 먹고 나서야 2008년에 다시 대중 앞에 설 수 있었다. 20대 시절보다 화려하게, 또 지혜롭게 두 번째 배우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녀는 젊을 땐 미처 몰랐던 너그러움과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8년 복귀 이후부터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복귀할 때 1년에 한 편 이상 하고 싶다는 바람과 다짐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꿈을 이루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틈틈이 잘 쉬고 충전하면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쉴 때는 침대에 누워서하루 종일 시사 고발 프로그램 보는 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힐링법이에요.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 같은 시사 프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 사람은 왜 저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왜 저런 기이한 행동을 할까 그 심리가 참 궁금해요. 화면으로 전달되는 생생함과 현장감도 영화, 드라마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 흥미롭고요.


저는 술도 잘 못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것도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아요.

가정주부도 잘 어울렸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외골수적인 면이 있어서 동시에 두 가지를 잘 못하거든요. 성격상 살림이든 일이든 하나만 해야 했는데, 저는 그 시절 아이들 육아에 열정을 다 쏟아붓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몇 번 드라마를 보다가 ‘저 역할을 내가 맡았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상상한 적은 있지만, 그건 직업병 같은 것일 뿐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낄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딸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우울증, 빈둥지증후군 같은 게 오더라고요.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차릴 궁리도 해봤지만 제가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어요. 마침 드라마 출연 제의가 들어와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컸는데,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게 결정했죠. “엄마만 생각하라”는 딸의 조언도 큰 힘이 됐고요.

일종의 은퇴 후 재취업에 성공한 셈입니다.

운이 좋기도 했고,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각오도 단단히 했어요. 그리고 설령 잘 안 된다고 해도 괜찮다는 제 자신과 세상에 대한 너그러움이 생긴 나이라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연륜이 빛을 발하더라고요.


그래서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사람들에게 “잘못됐을 때 치명타를 입는 일이 아니라면 무조건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일이 풀릴 수도 있거든요. 걱정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다만, 치열하게 노력하겠다는 각오는 돼 있어야 해요.


저는 복귀 초반에 몸이 너무 아줌마 같아 보여서 혹독하게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해 체중을 줄였어요. 그렇게 관리를 해야 개성 있는 배역이 들어와도 소화할 수 있거든요. 노력하며 준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존감이 높아지더라고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도전하되 치열하게 노력할 것. 이게 제가 재취업에 성공한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직업을 다른 두 시기에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20대 배우와 중년 배우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배우는 혼자가 아닌 협업을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경험이 쌓인 만큼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이 커진 점이 배우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젊은 시절에는 경험이 부족하니 제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제멋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래, 그럴 수 있어’ 하며 스스로 납득시키게 되더라고요.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받아들이고 인정할 줄 아는 여유가 생기면서 화나거나 스트레스받을 일도 자연히 줄었어요. 전체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갔다고 할까요.

배우에게 ‘관리’는 영원한 숙제잖아요. 지금까지 그 숙제를 모범생처럼 잘해왔는데 어떻게 관리를 하시나요?

기본적으로 피나는 다이어트를 합니다(웃음). 골프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절대 카트는 타지 않아요.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무조건 걷죠. 걷기만 해도 칼로리가 꽤 소모되거든요.


평소엔 꾸준히 헬스로 몸을 단련하고, 살이 좀 붙었다 싶으면 바로 식단관리에 들어가고요. 나이가 있으니 무조건 굶기보다는 단백질 위주로 소식하는 게 나름의 방법이에요.


피부는 가끔 고주파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1년에 한 번은 피부 상태에 따라 보톡스나 레이저, 리프팅 시술의 도움을 받기도 하죠. 나이가 들수록 모발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제품은 피하고, 1~2주에 한 번 숍에서 트리트먼트를 받고 있어요.

역시 꼼꼼한 관리가 필수였네요. 스키니 진에 하이힐을 즐겨 신는가 하면, 아이돌 가수의 음악을 즐겨 듣는 이런 태도와 취향이 나이와 상관없이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감각’ ‘늙은 감각’ 이런 걸 구분하기보단 개인의 취향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올드한 것보단 새롭고 신선한 걸 더 좋아하는 취향이고요.


접해 보지 못한 물건이나 문화라도 일단 경험해 보고 판단하자는 주의라 더 그래 보이는지도 모르겠어요. 덕분에 매년 쉬지 않고 다양한 세대의 스텝들과 일하며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휴식기가 한 번 있었기 때문에 다음 은퇴는 한참 후일 것 같습니다.

은퇴 걱정이 하나도 없다면 너무 오만한 생각일 거예요. 다만 다른 직업을 가진 동년배에 비해 배우는 일할 기회가 좀 더 많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래 일하기 위해 저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젊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의 중심이 늘 ‘나’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의 노고와 배려에 눈길이 가요. 확실히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요령이 늘었죠.


그렇게 조금씩 제 그릇을 넓히고 제몫을 다하면서 살다 보면 좀 더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인생 후반기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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