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성에게 은폐의 대상도 아니다

[컬처]by 경향신문

강인한 여자들의 전쟁, 넷플릭스 ‘사이렌 : 불의 섬’…체력·정신력·단결 필요한 여성판 ‘강철부대’

경향신문

넷플릿스 오리지널 시리즈 <싸이렌:불의 섬> 에 호랑이같은 여성 24명이 모였다. ‘아레나전’에서는 단합해 체력을 겨루고 ‘기지전’에서는육탄전을 마다하지 않으며 때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유명인이 없는 탓에 늦게 발동이 걸렸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2021년 온라인을 휩쓸고 지금까지 회자되는 문장이 있다. “강함은 아름다움에 뒤처지지 않는 가치이다.”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려고 노력하지 마라.” 이것은 디시인사이드 유도 갤러리에 올라온 글로, 체격이 큰 여성들에게 유도를 ‘영업’한다. 작성자는 유도에서 체급은 농구에서 신장만큼 중요하다며, 큰 체격의 여성은 곧 “호랑이로 태어난” 것이니 고양이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몸과 운동 담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활약한 여성 운동선수들의 인기 등과 맞물려 이 글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몸과 운동 능력에 대한 특정 가능성에서 여성은 아주 자연스럽게 차단되어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환기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큰 체격은 ‘갓 피지컬’이라며 찬사를 받는데, 여성의 큰 체격은 축소의 대상으로 문제시된다. 호랑이를 본 적 없거나, 호랑이를 호랑이로 대하지 않는 세상에서 호랑이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닫기란 불가능하다. 아름다움 자체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개념이지만 여성들에게 절대적이고 유일한 가치로 제시되는 것은 ‘(남성적 시선에서 성적 매력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무해하고 무력할수록 좋은. 편견과 편향적 조명은 실존하는 다양한 직업군과 몸의 여성들을 지우고, 대상화된 아름다움 외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체험할 기회를 박탈했다. 힘센 여자는 ‘도봉순’처럼 겉보기에는 체격이 작거나, 역도 전설 장미란처럼 세계를 정복할 정도는 되어야 호의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우우우웅, 사이렌이 울린다. 시야를 차단하던 장막을 들추고 24명의 호랑이가 등장한다. 지금 가장 뜨거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이렌: 불의 섬>(이하 <사이렌>) 이야기다.


<사이렌>은 6개 직업군에 종사하는 여성 24명이 출연한다. 이들이 4명씩 팀을 이루어, 고립된 섬에서 생존을 걸고 격돌하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총 10회 분량으로, 2023년 5월30일 처음 1~5화가 공개되었고 6월6일에 6~10화가 마저 공개되었다. 출연자들은 각각 경찰, 소방관, 경호원, 군인, 운동선수, 스턴트 배우로 일한 일반인이며,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처음 만난 사이다. 유명인이 없는 탓에 처음에는 넷플릭스 내 순위가 높지 않았으나, 곧장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사이렌>은 매우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다. 서바이벌 예능의 본질인 박진감과 긴장감은 기본으로 갖추었고, 출연자들이 전원 여성이라는 데서 오는 신선함과 매력이 불을 붙인다.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매일 하루에 한 번, ‘기지전’과 ‘아레나전’이 벌어진다. 기지전은 점령전이다. 각 팀은 기지를 하나씩 배정받고 그곳에 수비 깃발을 숨긴다. 불시에 사이렌이 울리면 기지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어떤 팀은 공격하고 어떤 팀은 수비한다. 각 참가자는 공격 깃발을 등에 메고 있는데, 이것을 뽑으면 탈락해서 그날 기지전에는 참여할 수 없다. 공격팀이 수비팀 깃발을 모두 뽑아서 기지를 점령하고, 수비 깃발을 찾아서 뽑으면 기지를 점령당한 팀은 탈락해 섬을 떠나야 한다. 아레나전은 기지전에서 유리하게 쓸 수 있는 ‘베니핏’(혜택)을 걸고 벌이는 경쟁이다. 장작 패기, 불 피우기, 불 끄기, 팔씨름, 삽질로 땅파기가 종목이다.

경향신문

사이렌 울리며 등장하는 여걸 24명

군인·운동선수 등 6개 직종 출신

고립된 섬 안에서 생존을 걸고 격돌

장작 패고 거침 없이 삽질을 하며

육체적·정신적 능력과 근성까지

남성보다 부족하다는 편견을 깬다

땀 흘리고 겉옷을 벗고 섹시미 발산

하지만 성적 대상화라는 비판 없어

그간 육체를 다뤄온 방식과 차별화

여성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줘

기지전이나 아레나전은 모두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단합이 필요하다. 서바이벌인 만큼 출연자들은 처음 도착하자마자 갯벌을 달리고 60㎏이 넘는 깃발을 운반했다. 나약한 현대인들은 보는 것만으로 앓아누울 것 같지만, 출연자들은 거침없이 돌파한다. 체력과 영혼이 호랑이다. 이들은 모두 몸을 쓰는 직업인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여성 비율이 낮고, 또 여성에게 권장되지 않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여자는 못하는’ 일이라고 폄하당하기 일쑤인 직업군이다. 1화에서 경찰팀은 현장에서 남자 경찰들은 ‘형사님’ 소리를 듣지만 자신은 ‘아가씨’라고 불린다며 “아가씨가 아니고 형사입니다”라고 단언한다. 소방팀 리더 김현아는 출연을 결심한 이유로 “신고받고 출동하면 여자란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경호팀 역시 “여자가 무슨 경호냐”며 불신을 드러내는 상황에 맞닥뜨린다고 말했다. 여성을 평생 따라오는 ‘증명’의 압박. 이들 직업이 이토록 여성을 배제하는 이유는 ‘육체적인 능력’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육체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믿음’으로써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여성 종사자가 해당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범죄 피해자를 착취하는 남성 경찰관의 사례가 아무리 많아도 ‘남경 무용론’은 나오지 않지만, 왜곡된 정보를 재생산하며 여자 경찰관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려는 시도는 얼마나 집요했던가. <사이렌>에서는 ‘그렇다던데?’라는 편견을, 실재하는 몸과 운동 능력이 시원하게 불태운다(소방팀 미안해요).


아레나전에서 참가자들은 장작을 패고, 맨손으로 장작을 찢고, 소리를 지르며 삽질을 한다. 그 순간의 시각적 쾌감은 어마어마하다. 장작 패기는 돌쇠의 계보에서 시작하여 언제나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소방팀 정민선과 군인팀 강은미는 릴레이로 하는 장작 패기에서 첫 번째 순서로 나와 30개 다 ‘패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힘쓰는 일에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다. 웃통을 벗고 포효한다. 장작을 팰 때 참가자들은 팀원 사기를 북돋기 위해 “섹시하다!”고 외치는데, 이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이 장면은 명백하게 성적 매력을 발산하고 또 극대화하는 순간이다. 장작 패기는 육체적 매력을 과시하라고 깔아준 멍석이다. 조명은 은은하고, 땀방울이 튀고, 근육이 두드러진다. 불 지키기 싸움이나 삽질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이렌>은 온라인에서 “여자들의 육체미 소동”이라고 불릴 만큼 강인한 힘과 육체에 끌리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런데도 어떤 시청자들은 물에 젖고 땀 흘리고 옷을 벗는 출연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느낀다. 여성의 성적 매력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협소한 분류에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성적 대상화 자체는 텔레비전 쇼에서 어느 정도 필수적이다. 올해 초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피지컬: 100>에서 강인한 육체들이 그려지던 방식을 보라. 대상을 물건 취급하거나 착취하지 않고도 관능적으로 연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지금까지 그런 식의 재현이 여성에게 할당되지 않았을 뿐이다. 파편화되고 왜곡되는, 관음당하고 평가받는 육체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서 오는 짜릿함. <사이렌>이 출연자를 소개하는 문구는 ‘아름답고 위험한 여자들’이다. 여성의 매력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로 ‘힘’과 강인한 육체를 선택한 것이다. 그간 미디어가 여성 육체를 다루어온 단순하고 납작하고 게으른 방식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경향신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기지전에서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었던 출연자들이 각자의 경험치와 전략을 활용하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서 각 팀의 서사와 매력이 돋보인다. 작은 단서로 정황을 파악하는 경찰팀, 생존이 최우선이기에 비열하다는 평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팀, 침략하는 상황에서도 구조 본능이 삐져나온 소방팀, 드라마틱한 구도를 살린 스턴트 배우팀, 지켜주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강력한 동기였던 경호팀, 정정당당함을 최우선 가치로 둔 운동선수팀이 흘리는 매력이 헨젤과 그레텔의 빵가루처럼 다음 회차로 이끈다. 기지전이 벌어지면 공격과 수비가 팽팽하게 맞선다. 다른 팀 기지로 돌진하는 공격력, 압도적 열세에도 끝까지 두려움에 맞서는 패기, 악을 쓰고 씨근덕거리며 벌이는 몸싸움, 유리창을 깨부수고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는 박력, 질질 끌려 나가면서도 등의 깃발을 지키고자 드러눕는 근성, 연합을 맺고 전술을 짜는 전략, 협상에 나서는 순발력, 대립각을 세우거나 갈등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 숨 막히는 긴장감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팀원을 배려하는 우정 등이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빼어난 소수가 아니라 자기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는 일반인 여성에게서, 그동안 ‘여자에게는 없거나 부족하다’고 속았던 매력을 발견한다. 아, 호랑이가 호랑이답게 활개 치는 장면을 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운동하는 여성들, 자신의 체격과 운동 능력을 만끽하는 여성들의 계보는 <노는 언니>(E 채널)와 <골 때리는 그녀들>(SBS), <오늘부터 운동뚱>(IHQ)을 거쳐 <사이렌>까지 왔다. 그렇게 조금씩 누군가의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제작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오늘도 자신만의 기지전과 아레나전에 한창일 여성들과 감자를 나눠 먹고 싶다. 왜 감자냐고? <사이렌> 보시면 압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2023.06.22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다, 말하다
채널명
경향신문
소개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다, 말하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