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보게 달라진 시장, 몰라봤던 낙지의 맛…지나치면 후회할 걸요

[푸드]by 경향신문

지극히 味적인 시장 (44)

전남 함평 오일장


비빔밥 먹으러 갔다가 봤던 함평 시장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전라도를 수없이 다녀도 함평에 간 적은 몇 번 없었다. 2000년 초반에는 새로 출시하는 복분자주 맛보러 갔었고, 양파 때문에 한 번, 해보면에 식당 개업한 지인을 보러 간 정도. 간 적은 드물지만 지나친 건 수백번이다. 광주에서 2번 국도를 타고 나주, 함평, 무안, 목포 순으로 많이 다녔다. 광주에서 영광으로 가려면 함평을 지나야 한다. 나주에서는 세지면의 토하젓을, 무안에서는 양파 음료와 유기농 고구마와 배추를 보러 가면서 함평의 특산물은 항상 물음표였다. 알고 보면 전라도의 여느 지역 못지않게 품질 좋은 농수산물이 나고 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식품 MD가 직업인 필자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위로 영광, 아래와 옆으로 무안을 마주하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무안의 곱창김 수확을 볼 겸 5년 만에 함평 시장을 찾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5년 사이 시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경향신문

5년 전 찾은 함평 시장 풍경(왼쪽 사진)은 을씨년스러웠다. 전라도 여느 지역 못지않게 품질 좋은 농수산물이 나오는데도 덜 알려졌다. 5년 사이 함석판으로 만든 간이 점포만 있던 시장은 현대식 아케이드로 변모했다. 붐비는 사람에, 길게 늘어선 좌판 덕에 활력이 넘쳤다.

이상하리만큼 덜 알려진 함평

5년 만에 찾은 시장은 활력 넘쳐


함석판으로 만든 간이 점포만 있던 시장은 현대식 아케이드로 변모했다. 붐비는 사람 하며 시장은 활력이 넘쳤다. 상설 점포는 오일장이 서지 않더라도 문을 연다. 시장 주변으로 오래된 육회비빔밥 식당 몇 곳이 자리를 잡고 있기에 사람들이 제법 주변으로 모인다. 함평 오일장은 2·7일 든 날에 열린다. 상설 점포를 사이에 두고 길게 좌판이 들어선다. 좌판 구성은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다. 다만 바다를 품고 있으면 비린 것이 다른 지역보다 많다. 함평 오일장에는 낙지가 많았다. 낙지 하면 무안, 목포를 많이들 생각한다. 사실 펄이 있는 바다라면 맛 좋은 낙지가 난다. 함평은 무안 해제면을 마주 보는 함평만이 있다. 다른 시·군처럼 큰 항구는 없어도 넓은 펄이 있기에 맛있는 낙지가 많이 잡힌다. 목포 낙지가 유명해도 목포 주변의 시·군에서 올라오는 낙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 함평에서 잡은 낙지가 목포로 가면 목포 낙지가 된다. 낙지 하면 세발낙지가 최고라고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말. 앞에 용도를 붙여야 비로소 맞는 말이 된다. ‘회’로 먹을 때는 세발낙지가 최고이고, 연포탕이나 볶음으로는 큰 낙지가 더 낫다. 낙지볶음 할 생각으로 낙지 몇 마리를 샀다. 낙지 요리를 할 때 필자만의 방식이 있다. 일반적인 요리법은 식당에서 사 먹듯이 갖은 채소를 넣지만 필자는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있으면 챙겨 넣지만 채소 살 돈으로 낙지 한 마리 더 산다. 식당이야 원가 생각에 양을 늘려야 하지만 낙지 양이 많을수록 더 맛있다. 낙지를 준비하고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양념만 먼저 볶는다. 전분 푼 물을 넣고 농도 조절하면서 끓인다. 한소끔 끓이고 바로 불을 끈다. 양념이 품은 열로 낙지를 볶는다. 이렇게 볶으면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한 진정한 낙지볶음이 된다. 오징어나 낙지로 음식을 만들 때는 열 접촉을 최소로 해야 질겨지지 않는다.

경향신문

살짝 데친 낙지를 새콤하게 무친 초회는 맛도 제법 이상이었다. 채소 더미를 뒤질 필요도 없이 낙지 양도 넉넉했다.

무안 낙지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함평서도 맛있는 낙지 많이 잡혀


11월 마지막 주 함평 오일장의 주인공은 젓새우였다. 김장철이기에 찾는 이들과 파는 이 모두 많았다. 젓새우는 신안에서 온 것들이다. 우리나라 젓새우 대부분이 신안과 목포 어판장에서 공급한다. 물론 가을이면 강화도도 큰 몫을 한다. 젓새우는 선도가 좋을 때는 튀김을 하거나 찌개 끓일 때 넣으면 맛있다. 젓새우 옆에 있는 민물새우도 같이 넣고 끓인 찌개는 인생 찌개가 된다. 찌개 대신 끓인 라면도 인생 라면이 된다. 시장은 계절에 따라 주인공을 달리한다. 시즌 1의 봄, 시즌 2의 여름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이 바뀐다. 물론 조연도 바뀐다. 젓새우 찾는 이들이 그다음으로 많이 찾는 게 미나리와 같은 집안의 당근이다. 찬 바람이 불어야 제 맛이 드는 것들이다. 집에서 고기 구울 때 자른 미나리와 함께 구워 먹으면 따로 쌈 채소가 필요 없다. 사실 겨울 쌈 채소는 맛이나 향이 약하다. 게다가 가격도 비싸다. 늘 먹는 것을 찾으면 제철 식재료는 그냥 지나간다. 고기 먹을 때 먹는 채소를 상추에서 미나리로 바꾸면 바로 제철 음식이다. 가을 전어만 제철이 아니다.

경향신문

함평 오일장의 주인공은 젓새우(위 사진부터)다. 함평군에서 생산한 팥으로만 만든 단팥빵은 공장의 그것과 맛의 차원이 다르다. 매콤한 육회비빔밥은 짭조름한 묵은지와 담백한 선짓국을 곁들여 나온다.

김장철 시장의 주인공은 젓새우

민물새우와 끓이면 ‘인생 찌개’


함평서 난 팥으로 만든 단팥빵

공장 생산 단팥과는 식감 달라


맑은 선짓국과 묵은지 곁들인

푸짐한 육회비빔밥 꼭 맛봐야


시장 구경을 끝내면 무거운 카메라 가방은 차에 두고 카메라 한 대만 달랑 들고 시장 주변을 돌아다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인터넷에서 미리 정보를 알고 온다 해도 뚜벅이로 걸어 다니다 보면 얻어걸리는 식당이 있다. 시장을 나와 군청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서 육회비빔밥으로 첫 끼를 먹을 생각이었다가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단팥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멀리서 본 간판에서는 ‘단팥빵’ ‘1960’ 두 글자가 검은색 바탕에 쓰여 있었다. 둘의 관계가 갑자기 궁금했거니와 단팥빵을 무척 좋아하기에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가 되어 들어갔다. 카페는 단팥빵을 전문으로 몇 가지 빵과 쿠키를 만드는 곳이다. 단팥빵과 1960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한다. 은퇴한 부부가 귀향에서 빵을 굽는다고만 하는데 부부의 탄생 연도가 아닐까 추측만 했다. 확실한 것은 단팥은 함평군에서 생산하는 것만 사용해서 팥소가 상당히 맛있었다. 국내산 팥을 사용하는 곳들이 많지만 공장에서 나오는 팥소에는 타피오카 전분이 많이 있어 팥 고유의 맛이 안 난다. 여기 단팥빵은 공장에서 만들어낸 진득한 단팥하고는 다른 식감이다. 오랜만에 맛있는 단팥빵을 맛봤다. 단팥 1960 010-4943-1996


처음으로 함평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은 것이 2007년 무렵이었다.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만 있을 뿐 식당 이름이나 위치는 모른다. 지금이야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면서 저장과 기억을 동시에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다시 함평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식당을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 군청 앞으로 갔다. 지역에서 정보가 없을 때는 군청, 경찰서, 농협 주변 식당으로 간다. 모르고 들어가도 기본은 하는 곳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작정 찾아간 군청 앞에 육회비빔밥 식당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사람이 없겠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았다.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육회비빔밥과 반찬, 맑은 선짓국이 나왔다. 함평의 육회비빔밥이 육회 양도 많아 좋지만 실제로 비빔밥을 더 맛있게 하는 요소는 맑은 선짓국과 묵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맑게 끓여낸 선지는 방금 씹어 넘긴 매콤한 비빔밥의 맛을 깔끔하게 지운다. 제법 짭조름한 묵은지는 얼른 밥을 넣으라 재촉한다. 매콤한 비빔밥은 담백한 선짓국을 찾는다. 이렇게 몇 수 돌면 비빔밥은 바닥을 드러낸다. 어느 지역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맛이었다. 함평에서 먹은 비빔밥이 몇 그릇 안 되지만 13년의 시간 사이 맛이 변했다. 예전 기억에는 비빔밥 위에 조미김 가루가 아주 조금 올려졌다. 깨는 진짜 아끼듯 솔솔 뿌리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미김 가루 듬뿍, 깨는 왕창 뿌려졌다. 조미김 만들 때 넣는 향이 강한 기름 맛이 비빔밥 향의 균형을 깨버린다. 인도, 아프리카 참깨를 수입하면서 낮아진 참깨 가격에 살짝 으깨서 넣어야 제 맛인 것을 통으로 뿌려버린다. 비빔밥 주문할 때 깨는 뿌리지 말라고 한다. 조미김은 대충 젓가락으로 걷어낼 수 있지만 깨는 걷어낼 방법이 없다. 조미김과 깨를 걷어내야 비로소 육회와 고추장과 채소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조미김이나 깨의 방해 없이 말이다. 남매식당 (061)322-2430


시장에서는 손불 낙지가 최고라고 이야기하는데 함평군 안에서 최고는 맞다. 사실 1읍 8면인 함평군에서 바다와 접한 곳은 함평읍과 손불면뿐. 함평에서 낙지가 많이 나는 곳이 손불이니 최고가 맞다. 함평 읍내에서 돌머리 해수욕장 방향으로 가면 주포가 나온다. 넓은 펄에서 나는 조개며, 낙지로 음식을 내는 곳들이 제법 있다. 지역 음식점 중에서 슈퍼와 식당을 같이하는 곳이 있다. 슈퍼가 먼저인지 아니면 식당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이런 곳의 음식은 맛있다. 주포 해변 근처의 신흥상회는 탕탕이, 볶음, 연포탕 등 낙지 음식이 전문이다. 볶음과 초회 중에서 초회를 주문했다. 살짝 데친 낙지를 새콤하게 무친 맛이 제법 이상이었다. 낙지가 많이 나는 동네답게 낙지 양도 많았다. 보통은 볶음을 시키든, 초회를 시키든 섭섭한 낙지 양에 채소 더미를 뒤지곤 하는데 여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흥상회 (061)322-9431


경향신문

김진영

2020.12.09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다, 말하다
채널명
경향신문
소개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다, 말하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