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숙의 같이 삽시다’···TV 속 중년 여성의 ‘쓰임’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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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수요 예능 <같이 삽시다> 는 혼자 사는 중년 여성들의 동거생활을 통해 중장년층의 고민과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KBS 제공

“밥 먹는 것도 전쟁이다.”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육아 예능도, 남자 연예인들이 오지에서 삼시 세끼를 차려먹는 예능도 아니다. 평균 나이 66세, 여자 넷이 모인 KBS 2TV 수요 예능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들려오는 탄식이다. 이곳에는 자식 걱정만 하는 엄마도, 사고뭉치 남편 고민을 털어놓는 아내도, 장금이도 울고 갈 요리 실력을 뽐내는 주부도 없다. “여전히 배울 게 많은” 성장하는 여자들이 있을 뿐이다.


시즌1에 이어 2년 만에 돌아온 <같이 삽시다>는 혼자 사는 중년 여성들의 동거생활을 통해 중장년층의 고민과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 1일 첫방송에서 MBC <라디오스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상파 동시간대 1위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에는 원년 멤버인 배우 박원숙, 문숙, 김영란에 이어 가수 혜은이가 새롭게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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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삽시다> 시즌2에는 원년 멤버인 배우 박원숙, 문숙, 김영란에 이어 가수 혜은이가 새롭게 합류했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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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난 54년생 동갑내기 문숙과 혜은이는 금새 친구가 된다. 편식이 심한 혜은이와 엄격한 채식주의자 문숙은 식탁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밀감을 쌓는다. KBS 제공

흔한 톱스타 게스트도 없지만 호평이 쏟아진 이유는 TV 속 여성의 ‘쓰임’을 뒤집은 신선함이다. 그간 중년 여성들은 관찰 예능에선 결혼 ‘못 한’ 자식의 일상을 보며 한숨을 내쉬어야 했고,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선 ‘○○년차 주부’로서 생활 속 꿀팁을 한 마디 거들 줄 알아야 했다. 부부 토크쇼에선 무서운 시어머니 혹은 억척 아내 역할로 가부장제 안에서 ‘제몫’을 하는 ‘정상 여성’을 재현해야만 했다.


<같이 삽시다>는 달랐다. 오히려 가부장제 바깥에 선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박원숙·김영란·혜은이는 이혼을 경험했으며, 문숙은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여자가 혼자사는 것’이 낙인이 되는 시절을 지나온 이들은 남들이 멋대로 깎아내렸던 자신의 삶을 이제야 가만히 돌아본다. “결혼생활을 잘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상처가 되게 컸어. 잘 사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들여다보니까 다 ‘희생’이더라.”(김영란) “내가 너무 바보 같이 살았던 것 같아. 전국에 맛있다는 집은 한 번도 못 가봤어.”(혜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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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삽시다> 는 ‘중년 여성=살림’이라는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부순다. 요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는 통에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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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을 하느라 집안일이 낯선 혜은이가 우여곡절 끝에 전기밭솥 뚜껑 여는 법을 터득하자 결승골 장면을 본 듯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KBS 제공

이들이 예능감을 뽐내는 장소가 주방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요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는 통에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 인덕션을 켜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혜은이가 우여곡절 끝에 전기밥솥 뚜껑 여는 법을 터득하자 결승골 장면을 본 듯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온다. 주방 도구 사용법을 몰라 연이어 사고를 치는 김영란을 보며 박원숙은 “니가 요리는 배웠는데, 그릇 사용하는 법은 아직 안 배웠구나!”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중년 여성=살림’이라는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장면이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울타리를 벗어난 중년 여성의 말로가 고립이 아닌 ‘자유’와 ‘연대’일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건강하다. 이혼 도장을 찍고 나오는 날 “이 자유스러움은 뭘까?” 생각했다는 혜은이를 향해 멤버들은 이구동성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이 없어서 그런거야. 열심히 했어. 훌륭하다” 말하며 격려한다. 편식이 심한 혜은이와 엄격한 채식주의자 문숙은 식탁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박원숙은 끊임없이 일을 벌리는 김영란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도 결코 영란의 일에 함부로 개입하는 일이 없다. 취향도, 습관도, 성격도 다르지만 서열이 아닌 공감을 앞세운 이들은 빠르게 서로에게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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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도장을 찍고 나오는 날 “이 자유스러움은 뭘까?” 생각했다는 혜은이를 향해 <같이 삽시다> 멤버들은 이구동성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이 없어서 그런거야. 열심히 했어. 훌륭하다” 말하며 격려한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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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울타리를 벗어난 중년 여성의 말로가 고립이 아닌 ‘자유’와 ‘연대’일 수 있다는 <같이 삽시다> 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 건강하다. KBS 제공

“네 자매 모두 이젠 꽃길만 걸으시길. 늘 응원합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을 ‘자매’라 부르며 응원한다. 50년 전 드라마에서 박원숙을 고모와 조카 관계로 만난 혜은이는 지금까지 원숙을 “고모”라 부르며 의지한다. 가족에게 상처받고, 가족 때문에 아팠던 여성들은 전혀 다른 유형의 가족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상파 평일 프라임 시간대에 이같은 질문을 곱씹게 만드는 예능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2020.07.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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