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내한 행사 가보니 ‘여기가 마블의 나라입니까?’

[컬처]by 경향신문
‘어벤져스: 엔드게임’ 내한 행사 가

팬들로 구성된 마블 코스튬 플레이팀 ‘RZ히어로즈’ 멤버들이 지난 15일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가 열린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히어로 옷을 입으면 히어로의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석예다 인턴PD yeda@kyunghyang.com

“초등학생이던 2008년,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가 <아이언맨>이에요. 이후 마블 영화들을 차례로 보면서 저도 중학생, 고등학생이 됐죠. 히어로들과 함께 나이를 먹은 것 같아요.”


대학생 김대한씨(22)에게 미국 영화제작사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은 ‘성장’을 함께한 친구다. 경북 경산에 사는 김씨는 ‘애틋한 친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지난 12일 저녁부터 꼬박 24시간을 공항에서 보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주연 배우 브리 라슨과 제러미 레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지난 13일 새벽부터 차례로 한국에 입국한 것이다. 공항에서의 오랜 기다림 끝에 가까스로 배우들을 볼 수 있었지만, 김씨는 여전히 마음이 바빴다. 1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 팬 이벤트’에 참석하는 배우들과 한 뼘이라도 가까운 자리에 서고 싶었다. 행사 시작 28시간 전인 14일 낮 3시, 김씨는 선착순 입장을 위해 장충체육관에 도착했다. 이미 10여명의 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벌써 이틀째라는 팬도 있었다. 김씨는 그날 밤 100여명의 팬들과 함께 체육관에서 밤을 지새웠다.

“11년 전 처음 <아이언맨>을 만들고 첫 내한했을 때, 여러분의 사랑을 통해 이 시리즈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땐 여러분 다수가 어린아이였을 텐데, 멋지게 성장한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습니다.” 이날 팬 이벤트에서 ‘아이언맨’ 다우니는 이같이 말했다. 김씨를 포함한 4000여명 현장 관객들, 인터넷 생중계를 지켜본 이들까지 5만여명의 팬들은 그의 말에 뜨겁게 환호했다. 다우니 역시 한국 팬과 마블이 함께 일군 ‘성장’에 감격하는 듯했다.


이 성장은 수치로 보면 더욱 명확하다. 2008년 국내 43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아이언맨>으로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2019년 현재까지 한국에 총 21편의 영화를 선보였고, 총 관객 1억630만명을 모았다. <인크레더블 헐크> 등에서 성적이 부진할 때도 있었지만, 세계관이 넓어질수록 관객의 반응도 커졌다.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예매 오픈 이틀째인 18일 현재 사전 예매량 100만장을 돌파했다. 예매가 시작된 16일에는 팬들의 폭주로 CGV 등 영화관 예매 사이트가 접속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11년간 마블이 일군 성장은 세계관의 너비나 깊이, 시장 영향력 등 다방면에서 놀랄 만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마블 영화를 향한 한국 팬덤의 뜨거운 사랑이다. 마블 영화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지만 한국에서의 반응은 특히 열광적이다. 영화의 원작이 된 마블 코믹스에 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도, 한국 관객들은 아이언맨을 비롯해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블랙 팬서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슈퍼히어로에 거침없이 사랑을 퍼붓는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내한 행사 가

배우 브리 라슨이 지난 15일 국내 마블 영화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제부터 팬이었냐구요? 태어났을 때부터요!” 이날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난 대학생 김효선씨(23)는 이렇게 외쳤다. 주변에선 “와 대박 타노스야!” “캡틴 아메리카다!”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행사 시작까지 아직 5시간 가까이 남은 오후 3시, 체육관 앞은 인터뷰를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들끓었다. 가지각색의 코스튬 플레이어가 등장할 때마다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의 움직이 분주해졌다. 직접 만든 500여장의 ‘캡틴 마블’ 손팻말을 나눠주는 팬까지 등장했다. ‘왜?’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당신들을 이렇게 뜨겁게 하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벤져스>를 보고 마블을 좋아했어요. 영상으로 전공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대학생 김선민씨(25)는 마블의 매력을 자신과 함께 성장한 거대한 세계관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영화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재미있는 과정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어요. 마블은 제게 그냥 ‘친구’죠. 캐릭터나 상품을 사는 것도 ‘친구를 만나는 과정’ 같아요.”


전문가들 역시 한국인에게 소구한 마블의 매력으로 ‘상호 호환적이고 확장성 있는 세계관’을 꼽는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확장하는 문화 콘텐츠를 이야깃거리로 삼아 집단적으로 유희하기 좋아하는 한국 대중들에게 매년 약속된 주기에, 한층 넓어진 세계관을 선보이는 마블 영화의 개봉 방식이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정병욱 영화평론가는 “인터넷 발달과 높은 교육 수준 덕분에 한국 관객들은 하나의 작품을 두고 분석과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이들의 취향에 긴 시간 동안 방대하고 구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마블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만난 팬들 대부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마블에 대해 논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내한 행사 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에서 캡틴마블 팬이 직접 제작한 손팻말을 나눠주는 행사도 열렸다. / 배동미 기자 bdm@kyunghyang.com

마블 영화 특유의 ‘소수자성’ 역시 한국 팬들을 이끈 주요 요인이 됐다. 이날 영화 <캡틴 마블>에 나오는 고양이 구스 캐릭터 분장으로 나타난 회사원 조성빈씨(25)는 “남성 히어로들만 가득한 영화들 사이에서 여성도 이입할 수 있는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중학생 이소영양(15)은 “페미니즘 영향으로 여성 히어로에 관심이 많아 <캡틴 마블>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강유정 평론가는 “애초에 마블은 DC 코믹스의 보수적인 영웅들과 달리, 스파이더맨으로 대표되는 소수자성을 강조하며 시작됐다. 스스로를 갑 아닌 을이라 생각하는 대다수의 한국의 문화 소비자들에게 소수자성을 유쾌한 영웅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마블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마블은 한국 팬들의 일상까지 거침없이 침투하고 있다. 마블 코스튬 플레이팀 ‘RZ히어로즈’에서 캡틴 아메리카로 활동하고 있는 캡아노(활동명)는 “팀원들 대부분이 평범한 회사원인데 마블을 좋아하면서부터 이렇게 코스튬 플레이까지 하게 됐다”면서 “히어로 옷을 입다보니 히어로가 된 듯한 마음을 갖게 되더라. 회사와 집만 오가는 따분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자선단체에서 주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심지어 직장까지 그만둔 팀원도 있다”고 덧붙이니 어디선가 들은 농담이 문득 떠올랐다. 여기가 마블의 나라 입니까?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2019.04.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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