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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12만 구독자 식물 블로거 프로개 “발아 퀘스트에 참여하시겠습니까?”

by경향신문

경향신문

식물 블로거 프로개(드루이드)가 카페 음료수 위에 장식으로 있던 로즈메리를 나무로 키워냈다.

카페 음료 위에 장식으로 올려진 로즈메리를 집으로 가져와 목질화된 어엿한 나무로 키운다든가, 양념으로 파는 페페론치노 속 씨앗을 발아시켜 무한 복제한다. 때로는 집에서 샤인머스캣을 키워 ‘진짜 망고향’ 샤인머스캣을 수확한다. 한 폐교를 5년간 임차해 ‘지박령’으로 불리는 아내와 고양이 ‘백호’, 강아지 ‘현무’, 거위 ‘주작들’과 함께 사는 식물 블로거 ‘프로개’ 김형기씨는 자신을 ‘폐교 성주’ 혹은 ‘백수’라고 칭한다.

■ 식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구독자 12만명이 넘는 ‘식물’ 블로거 프로개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드루이드다. 드루이드란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속 캐릭터로 대자연의 균형을 수호하는 존재다. 다양한 동식물과 깊이 교감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얻는다. 작은 씨 하나를 발아시켜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로 만드는 그의 솜씨가 마치 마법과 같아 붙은 별명이다.


드루이드는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익숙한 호칭이 됐다. 그는 “어느새 내 아이덴티티가 됐고 스스로도 그렇게 지칭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드루이드 퀘스트(함께 키우기)’를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사람들과 랜선으로 함께 식물을 키우며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게임 같은 놀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드루이드 퀘스트는 고구마, 용과, 미나리, 인삼, 샤인머스캣, 삼동파, 방울토마토, 망고스틴, 페페론치노 키우기 등이다. ‘식집사’들에게는 WOW만큼 흥미로운 게임이 아닐 수 없다. 김씨는 발아가 어렵다고 알려진 씨앗은 도전의식을 불끈 솟게 만든다고 말한다.


“식물은 동물에 의지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합니다. 꿀벌 등 곤충의 도움으로 수정이 되고, 참새 등 동물의 먹이가 되어 씨앗이 먼 곳에 배달되도록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과일을 먹고 나온 씨앗을 화분에 심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식물이 곁에서 건강하게 자랄 때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밝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의 순간을 뽑는다면 씨앗을 심어둔 화분에서 귀여운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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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프로개가 직접 집에서 키운 샤인머스캣. 프로개 제공

향 좋은 꽃과 열매가 맺히는 것은 또 하나의 소중한 이벤트다. 그는 최근 샤인머스캣을 집에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시중에서는 사라진 ‘망고향’ 가득한 샤인머스캣 열매를 직접 수확해 먹은 것이다.


“샤인머스캣은 당도가 높은 청포도가 아니라, 향포도에 가까워요. 입안에서 망고향이 함께 터질 때 매력적인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에 샤인머스캣이 유행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마트에서 파는 샤인머스캣에서도 그런 향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 농가가 5년 차 이상이 되는 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다 보니 향포도라기보다는 당도만 높은 포도로 생산되고 있어요. 나무가 나이 들었기 때문은 아니고 비좁은 면적에서 더 커지지 않도록 제한하다 보니 가지와 뿌리가 불균형을 이루어서입니다.”


아무리 마법을 부리듯 씨앗을 틔우고 자라나게 하는 드루이드라도 발아에 성공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씨앗 자체가 발아할 수 없는 상태일 때도 있지만 환경적으로 맞지 않아서 발아하지 않거나 자라는 도중 원인 모를 이유로 죽기도 합니다. 해충과 같은 벌레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고요. 식물을 키운다는 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순 없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배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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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으로 파는 페페론치노 속 씨앗을 발아시켜 무한 복제. 프로개 제공

■ ‘망고스틴’이 싹을 틔웠다

그는 대학에서 영상 연출을 전공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학자금과 단편영화 제작비가 필요해 제빵공장, 물류센터, 아파트 지반 공사, 송전탑 노동, 공공미술 삽화가, 요식업까지 다양한 분야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다 시골에 가서 밭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감자와 망고수박 농사로 아르바이트 이상의 수익을 얻기도 했다.


현재는 자칭 ‘안식년’ 중이다.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5년 임차한 폐교에서 아내와 함께 거주하며 ‘성’으로 꾸미고 있다. 그간의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은 그가 ‘성주’가 되는 데 큰 바탕이 됐다. 그는 폐교 이곳저곳을 고쳐 생활 공간을 만들고 텃밭을 일궈 식물을 키우는 일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망고스틴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싹을 틔우면서부터다.


“아내가 망고스틴이라는 열대과일을 좋아합니다. 이 과일을 먹기 위해 동남아로 여행을 갈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대형마트에서 수입해 팔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때도 관성처럼 씨앗을 흙에 심었습니다. 자라난 잎이 독특하고 예쁘더라고요.”


그 뒤로도 망고스틴 발아는 계속됐다. 너무 많은 망고스틴이 싹을 틔운 덕에 자랄수록 공간이 부족해졌고 그는 사람들과의 ‘나눔’을 위해 블로그를 열었다.


“우선 블로그를 개설하고, 망고스틴 화분이 예쁘다는 걸 알리며 나눔을 시작했죠. 그렇게 같이 망고스틴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함께 키우는 게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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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려놓은 울타리가 지금처럼 작은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울타리 안의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든 지킬 수 있는 수준까지가 좋아요.” 프로개 제공

많은 식물을 돌보고 있지만 그의 일과는 꽤 자유롭다. 새벽까지 일할 때도 있고 온종일 뒹굴뒹굴할 때도 있다. 식물에 물을 주는 일은 규칙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식물이 달라는 신호를 보내면 그때 준다.


“녀석들이 물 달라는 신호를 보이면 그때야 주는 편이거든요. 나머지 일과도 대부분 그런 식입니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건 오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하루 일과가 됩니다. 규칙적인 건 함께 사는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일뿐이겠네요.”


그의 생활이 블로그에 공개되고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예능·교양 TV 프로그램에서 섭외 문의가 쇄도했다. 그는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제가 그려놓은 울타리가 지금처럼 작은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울타리 안의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든 지킬 수 있는 수준까지가 좋아요. 그래서 외적으로 알려지고, 내 세상이 더 커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가 지키고 싶은 울타리 안 ‘작은 세상’을 무단으로 방문하는 이도 있었다. 그가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는 ‘폐교생활백서’를 보고선 폐교를 방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는 폐교 완전 개방은 안 하는 대신 초대 행사를 할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주말이면 이른 아침에 오셔서 ‘계십니까’라고 소리치세요. 그러면 현무가 멍멍 짖고, 우리 가족은 잠옷 차림으로 나가볼 수밖에 없습니다. 씻지도 못한 몰골로 맞이하려면 정말 창피합니다. 갑자기 찾아오셔서 교실 하나만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분도 있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진로 상담을 요청하는 분도 있었고, 멀리서 왔는데 왜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 거냐며 화를 내고 돌아간 분도 있었습니다.”


그는 향후 생활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어서 소소하게나마 볼거리도 만들려 준비하고 있다. 다만 조용하고 작은 시골 마을이기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주차할 곳도 없고, 마을에 피해가 갈 수 있어 지자체와 협의해서 안전 문제 등 도움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다.

■ 드루이드에게 식물이란?

그는 ‘식물들처럼 오늘을 살고 싶다’고 담백하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수발들고 있는 동물들을 먼저 보내고 가장 마지막에 남겨지는 게 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20대의 저는 굉장히 빨리 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멀리 보면 앞에 있는 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소중한 것들은 조용조용하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에 지나치기 쉽거든요.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앞에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는 최근 식물 실용서 <드루이드가 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를 펴냈다. 출간되자마자 별다른 홍보 없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재고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책의 특이한 점은 식물 잘 키우기가 아니라 ‘식물 죽이는 방법’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식물을 살리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식물은 죽습니다. 우리는 당연한 이 사실을 놓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가드닝이 거기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식물이 죽는 과정을 알게 된다면,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해 갈 수도 있으니까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우리는 식물을 키웠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위안을 받는 일이다. 단지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가 주는 위안은 크다. “식물을 키우기만 하면 죽는다”고 토로하자 그는 ‘죽음의 손’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그 또한 위로되는 말이다.


“ ‘죽음의 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식물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겠죠. 서투름은 잘못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식물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저 거기서 멈출 것인지, 알아가면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있었을 뿐이에요. 이건 식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항상 여기서 멈출 건지, 나아갈 건지를 선택하잖아요.”


그에게 식물에 감정이 있는 것 같으냐 물었다. 그는 중요한 건 ‘내게 감정이 있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식물에 감정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내게 감정이 있다는 거죠. 감정이 있는 나는 언제나 식물과 교감하고 있어요. 너무 일방적인가요?”

드루이드의 식물 발아 노하우

씨앗이 발아하는 데는 물, 산소, 적절한 온도가 필요하다. 흙 발아, 솜 발아, 물 발아, 질석 발아, 습기를 이용한 발아, 지피펠릿(압축상토)을 이용한 발아 등 다양한 방법이 쓰이지만 어떤 것이든 발아 메커니즘은 비슷하다는 것이 김형기씨 설명이다.

씨앗은 곰팡이나 각종 병원균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보호 물질이 있다. 발아가 진행되는 동안은 다소 나쁜 환경이더라도 어느 정도 견뎌내지만 싹이 나온 다음에는 보호 물질이 소진되어 병원균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① 병원균이 적은 깨끗한 흙과 물을 사용해야 한다.

② 씨앗의 발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싹 틔우기 전 미지근한 물에 먼저 불려본다. 이 단계에서 소독제나 살균제를 물에 희석하면 발아 안정성을 증대할 수 있다.

③ 단, 2㎜ 이하 작은 씨앗은 물 불림 효과가 크지 않다. 작은 씨앗은 불리지 않고 그대로 흙에 심는 게 낫다.

④ 씨앗은 발아할 때 산소가 필요하다. 그러니 습도를 높인다고 작은 컵을 씌워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⑤ 씨앗은 대부분 25도 이상에서 잘 발아한다. 온도가 낮을수록 발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빛이 있어야 발아하는 씨앗(광발아): 상추, 베고니아, 유칼립투스, 민들레 등

·어둠 속에서 발아하는 씨앗(암발아): 호박, 오이, 토마토, 고추, 가지, 파, 바질 등

·빛과 상관없이 발아하는 씨앗: 아보카도, 망고, 벼, 보리, 옥수수, 콩 등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