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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는다 여기가 땅끝이었나

by경향신문

전남 해남

 

천연기념물 우항리 공룡화석지

33만㎡ 넘는 국내 최대 규모에

박물관·테마파크·보호각 등

다양한 전시·체험 시설로 가득

공룡·익룡·새 발자국 2300여개

실물 화석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백만년 전 ‘공룡 여행 끝판왕’


전남을 대표하는 명승 대흥사

‘한반도 마지막 단풍’ 숲길 간직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문 대통령 고시 공부’로 유명세

인도서 돌배에 실려 온 불상 모신

달마산 자락 최남단 사찰 미황사

기암괴석 걸친 ‘일몰의 끝판왕’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공룡과 익룡, 새 발자국 화석(오른족 사진)이 한 지층에서 발견된 전남 해남 우항리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왼쪽)이 조성돼 있다. 해남 우항리에서 발견된 대형 초식공룡의 발자국, 길이가 80㎝, 깊이는 20㎝에 이른다.

우리가 가진 공룡에 대한 지식은 다섯 살 때 정점을 찍은 뒤 하강곡선을 그리다 자기 아이가 다섯 살이 됐을 때 다시 급격히 상승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실제로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주말마다 공룡 모형이나 화석 등을 갖춘 박물관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할 것이다. 고만고만한 박물관을 돌며 엇비슷한 전시를 반복 관람하는 것이 질린다면 땅끝으로 떠나보자. 전남 해남에선 거대한 공룡 발자국 화석을 바로 코앞에서 관찰할 수 있다. 공룡에 대한 모든 것을 종합 전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박물관도 그곳에 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은 어른과 아이를 고루 만족시킨다. 공룡 여행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눈앞에 공룡 흔적이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해남 공룡박물관의 알로사우르스 진품화석.

해남 우항리 공룡화석지(천연기념물 394호)는 국내에 지정된 천연기념물 459개 가운데 가장 가까이에서 문화재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희귀 동식물에 비해 공룡화석은 훼손이나 생태계 교란의 위험도 적고, 화석을 관찰할 수 있는 시설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공룡화석이 발견된 땅은 원래 바다였다. 방조제 건설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 아래 숨겨졌던 공룡 발자국이 드러났다. 1996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고, 다양한 공룡 발자국 화석 300여점을 비롯해 익룡과 새 발자국 화석 등 2000여점이나 한 지층에서 발견됐다. 특히 물갈퀴가 달린 새 발자국 화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학회에 해남(군)·황산(면)·우항리 등 지명을 딴 학명이 정식 보고됐을 정도로 학술적 가치도 높다.


공룡화석지는 전체 면적이 33만㎡가 넘는다. 공간은 크게 공룡박물관과 실물 크기의 공룡 모형으로 꾸민 야외 공룡테마파크, 그리고 공룡 발자국 화석 실물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야외보호각 등 세 곳으로 나뉜다. 관람은 공룡박물관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50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해 2007년 개관한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다양한 전시품과 체험 시설로 꽉 차 있다. 바닥에 붙어 있는 공룡 발자국 모양의 스티커로 동선을 안내하고 있어 관람하기 편리하다.


박물관은 다양한 공룡뼈 화석을 전시하고 있는데 중생대 포식 공룡인 알로사우르스의 진품 화석이 가장 귀한 전시품이다. 미국의 사막지대에서 발견된 것을 개관 당시 15억원이나 주고 사온 것이다. 다른 공룡 모형들도 크기가 큰 것은 억단위가 넘어가는 고가품들이다. 중생대 백악기 재현실은 센서가 설치돼 있어 관람객이 다가가면 공룡들이 울부짖으며 움직인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제 몸집보다 큰 초식공룡을 쓰러뜨려 물어뜯고 하늘에선 거대한 익룡이 큰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게 꽤 실감나게 꾸며져 있다.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해남 공룡박물관의 VR 체험

체험형 시설로 4D 입체상영관과 가상현실(VR) 체험장도 마련돼 있다. 4D 영상물은 입체안경을 쓰고 공룡알 모양의 좌석에 안전벨트를 매고 앉으면 시작한다. 화면 안의 티라노사우르스가 입을 쩍 벌리자 앞좌석에서 발사된 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익룡 여러 마리가 날아오르는 장면에선 어깨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휙 불고 의자가 들썩거렸다. 공룡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아들인 주인공 ‘해남’이 모험을 떠나는 스토리 전개에 따라 상영관 바닥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비누거품 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공룡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크로마키 포토존과 트릭아트 포토존도 인기다. 공룡 화석 발굴하기, 공룡 비누 만들기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도 늘 어린이들이 몰린다. 박물관 측은 내년부터 공룡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박물관 캠프’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물관 밖으로 나가면 잔디가 깔린 넓은 부지에 브라키오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트리케라톱스, 프테라노돈, 벨로시랩터 등 실물 크기로 재현한 공룡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초식공룡 알라모사우르스는 키가 22m에 이른다. 익살스러운 포즈로 공룡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걷다 보면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자리에 설치한 야외보호각에 이른다. 보호각은 조각류 공룡관, 익룡·조류관, 대형공룡관 등 세 곳인데 길이 85㎝에 깊이가 평균 20㎝를 넘는 대형공룡관의 발자국이 가장 인상적이다. 용병주 학예연구사는 “발자국 크기로 추산한 공룡의 몸통 길이만 7m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문득 거대한 공룡이 육중한 발걸음으로 걷는 모습이 연상되며 시간여행이라도 떠난 기분이 들었다.

평생 불법을 어깨에 지고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대흥사 천불전 꽃살문

해남엔 공룡화석지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명승이 두 곳 있다. 대흥사(명승 66호)는 올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전남을 대표하는 명찰이다. 대흥사는 산문부터 일주문까지 절을 향해 들어가는 십리 숲길이 사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11월 말에 찾은 숲길은 ‘한반도 마지막 단풍지’라는 별명답게 아직도 노랗고 빨간 잎이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절의 입구인 해탈문을 넘어서자 정면으로 산 능성의 바위봉우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두륜봉부터 왼쪽으로 노승봉과 가련봉까지 차례로 누워 있는 부처님의 머리와 손, 발 모양 그대로였다.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대흥사 천불전 송학도(위), 대흥사 천불전에 모셔진 1000개의 불상(아래).

대흥사는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중심으로 크게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는데, 전체를 둘러보기 힘들더라도 천불전(보물 1807호)만은 꼭 방문해야 한다. 천불전은 남원의 출입문인 가허루(駕虛樓) 너머에 있다. ‘빈 멍에’를 뜻하는 가허루는 실제로 소에 씌우는 멍에처럼 생겼다. 김철수 해남군청 문화관광해설사는 “불자라면 평생 불법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가허루를 지나 천불전 앞에 서면 울긋불긋한 색으로 화려하게 조각한 꽃살문이 반긴다. 건물 안에 모신 천 개의 불상은 1817년 경주에서 만들어 싣고 오던 중 풍랑으로 일본까지 갔다가 해남으로 돌아온 사연 깊은 불상이다. 천불전 안 좌우 벽에 그려진 송학도는 소나무 가지에서 두 마리 학이 노니는 모습인데, 화면의 절반을 허공처럼 비워둔 여백의 미가 오래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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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시험 공부를 했던 대흥사 동국선원 7번방

대흥사 동국선원(東國禪院)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1978년 사법시험 공부를 위해 머무른 사실이 알려지며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해졌다. 문 대통령이 머물렀다는 7번 선방은 조그만 책상을 한쪽에 두고 자리에 누우면 방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벽에는 청와대에서 제공하는 ‘대통령 문재인’ 글씨가 선명한 기념시계가 걸려 있었다. 지금도 난방을 위해 문에 새시를 설치한 것 외에는 문 대통령이 공부하던 때와 똑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일출은 낙산사, 일몰은 미황사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해남 달마산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해넘이로 유명하다. 바위 봉우리 틈바구니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 도솔암(왼쪽 사진)에선 남해 바다가 붉게 물들어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미황사 응진당에서 내려다 본 남도의 산과 바다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를 닮았다(오른쪽 사진).

달마산 자락에 자리 잡은 미황사(명승 59호)는 한반도 최남단의 사찰이다. 신라 경덕왕 시절인 749년 의조 스님이 창건했다는 미황사는 인도에서 온 돌배에 실려 있던 불상과 경전을 모시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창건설화가 있다. 대웅보전 주춧돌에 새겨진 게와 거북 등 바다생물은 대웅보전이 창건설화에 나오는 돌배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미황사는 크지 않은 규모지만 절집 위로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치를 이룬다. 대웅보전은 1754년 수리하며 새로 칠한 단청이 260년 넘는 세월 동안 바닷바람에 깎이고 벗겨져 기둥으로 쓴 느티나무의 본래 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주변 산수와 어울리는 고졸한 멋이 일품이다. 응진당 내부에 수묵으로 그린 나한벽화도 유려한 선의 흐름이 돋보이는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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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자락에 자리잡은 한반도 최남단 사찰 미황사

미황사는 2000년 금강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며 유명해졌다. 금강 스님은 경내 들머리의 누각인 자하루에 미술관을 만들어 일반에 개방했고, 지난해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사람 힘만으로 달마산 둘레의 12개 암자를 도는 약 18㎞ 길이의 트레킹 코스인 ‘달마고도’를 만들었다. 기존의 템플스테이에 각종 명상 프로그램도 추가됐다.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늘면서 해마다 10만여명이 미황사를 찾는다.

공룡들이 뛰놀던 곳… 천년 고찰은 묻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처마 끝 풍경에 붙잡은 석양.

미황사는 석양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매월당 김시습이 일출은 낙산사, 일몰은 미황사가 제일이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전해진다. 미황사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응진당 마당에 서면 해질녘 진도와 주변 섬들이 붉게 물들어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좀 더 특별한 해넘이를 원한다면 미황사에서 약 4㎞ 떨어진 작은 암자 도솔암을 권한다. 깎아지른 암봉 사이에 위태롭게 들어선 암자 마당에 서면 진도와 완도 사이 남해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겨울철에는 일몰시간이 이르기에, 섬과 바다가 은빛에서 금빛으로 빛나다 서서히 붉은 어둠에 가라앉는 광경을 넉넉히 지켜보려면 오후 5시 이전에는 자리를 잡고 기다려야 한다.

 

해남 | 글·사진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