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 간호사는 어떻게 영혼까지 태워졌나

[이슈]by 경향신문

선망하는 큰 병원 입사했지만

2개월 짧은 교육 뒤 실전 투입

실수마다 “미쳤냐” 막말 세례

1년여 만에 퇴직…정신과 상담

“삶을 잃게 한 병원, 용서 못해”

1년차 간호사는 어떻게 영혼까지 태워

“삶의 의욕을 잃었어요. 한국에선 다시 간호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 간호사는 사람이 아니라 소모품이죠. 절 이렇게 만든 현실을 용서할 수 없어요.”


전직 간호사 ㄱ씨(28)는 두 달째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ㄱ씨는 자신의 상태를 “식욕·수면욕·성욕 같은 욕구가 전혀 없다. 먹고 싶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식사는커녕 물조차 마시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담당 의사는 그를 두고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의사는 ㄱ씨가 “오랜 시간 힘든 환경에 노출돼서 치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봤다. ㄱ씨는 일주일에 한 번 의사를 만나는 것 외에도 주중에 두 번 이상 상담치료사에게 전화를 건다.


ㄱ씨를 이 상황으로 만든 건 간호사로서 일했던 경험이다. 그는 병동 간호사로 근무하며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2번 퇴사했다. 처음 그를 괴롭힌 것은 “살인적인 근무여건”이었다.


ㄱ씨는 지난해 초 간호학과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 소재 공공의료기관에 입사했다. 2017년 채용시험 때 예비 합격자로 뽑히고 1년을 기다려 입사한 것이다. 인력상황이 나쁘지 않고 임금 수준도 빠지지 않는다는 주변의 평가에 기다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현장은 예상과 달랐다. ㄱ씨에게는 환자 10명이 맡겨졌다. ㄱ씨 개인지도를 맡은 선배 간호사(프리셉터)의 첫 가르침은 “출근하면 물부터 뜨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물을 못 마시면 하루종일 못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ㄱ씨는 “식사 시간에는 10분 만에 밥을 말아서 먹고, 씹으면서 올라왔다. 월경 때도 화장실을 못 갔다”고 했다.


ㄱ씨는 고작 2개월을 교육받은 후 실전에 투입됐다. 잔뜩 긴장한 ㄱ씨는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3시간 일찍 출근해 업무를 준비했다. 자신이 간호할 환자의 전산 정보를 파악하고, 물품 개수를 확인하는 등 ‘막내일’을 마친 뒤 오후 9시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퇴근 시간인 다음날 오전 7시까지 10시간 동안 엉덩이를 붙일 새 없이 일했지만 막상 근무 교대 시간이 되자 빠뜨린 업무들이 쏟아져 나왔다. “왜 이렇게 안 한 게 많아, 다 하고 가”라는 선배의 말에 ㄱ씨는 그날 낮 12시에나 퇴근할 수 있었다. 꼬박 18시간을 근무한 것이다.


손에 익지 않은 일, 쏟아지는 업무량,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은 ㄱ씨의 노력 여하와 관계없이 실수로 귀결됐다. 그는 “제가 실수하면 환자에게 위해가 가해질까봐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며 “환자한테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울면서 기도했다”고 말했다.


ㄱ씨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선배들은 더 이상 ㄱ씨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수액을 맞고 있던 환자가 병상에서 사라진 채로 연락이 두절됐다. ㄱ씨의 근무시간이 종료될 때쯤 환자는 병상으로 돌아왔다. 60%는 남아 있어야 할 수액은 30%밖에 없었다. 환자가 투여량을 잘못 조절한 것이다. 다음 근무자였던 선배 간호사는 “죄송하다”고 연신 말하는 ㄱ씨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너 미쳤어? 그놈의 죄송하다는 소리 좀 하지 마.”

“병원에 ‘정신적 피해’ 산재 신청…다른 간호사들에 도움 되고 싶다”

영혼까지 태워진 1년차 간호사


선배 간호사는 ㄱ씨의 해명을 ‘변명’이나 ‘거짓말’로 치부했다. 이후로도 ㄱ씨의 크고 작은 실수에 질책과 막말이 이어졌다. 신입 간호사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자행돼온, 말로만 듣던 ‘태움’이 시작된 것이다. 태움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장난해요?” “ ‘예’ ‘아니요’로만 대답해.”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네가 왜 실수를 하는지는 너도, 다른 사람도 이해 못해.” 조금 더 여유 있는 병원으로 이직도 해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ㄱ씨는 무력감 속에 급격히 무너졌다. 그는 “내가 실수하면 환자가 잘못될까봐 그렇지 않아도 죄책감이 드는데, 비난의 화살이 동료에게서 올 때 내가 모자란 것 같고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돌아봤다. 결국 이달 초 ㄱ씨는 병원을 떠났다. 그는 “출근할 때 차라리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라며 “더 버틸 자신이 없어 그만한다”고 했다.


ㄱ씨는 병원에서 근무하며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산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한 법무법인이 공익변론을 맡기로 했다. 산재 인정까지의 과정, 또 그 이후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ㄱ씨가 누구보다 잘 안다. 10여년 전 페인트공이었던 아버지는 작업 중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했다. 골반이 4조각났다. 아버지는 “보상금을 많이 줄 테니 산재를 신청하지 말라”는 사측의 회유를 거절하고 산재를 신청했고,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업계에서 외면당했다.


그럼에도 길고 어려운 싸움을 시작한 건 지난달 목숨을 끊은 서지윤 간호사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의료기관인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던 서 간호사는 올 1월 극심한 태움을 겪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일을 시작할 때쯤 숨진 박선욱 간호사의 일도 떠올렸다. 굴지의 대형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던 박 간호사 역시 지난해 2월 같은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ㄱ씨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죽는 것보다는 사회에 이득이 될 것 같다. 다른 간호사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효상·김서영 기자 hslee@kyunghyang.com

2019.02.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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