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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심은경, 한국인 첫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주연상의 의미

by경향신문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연출한 영화 . 정권의 압력에도 서슴지 않고 진실규명의 목소리를 내 ‘일본 언론의 상징’으로 불린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동명 저서가 원작이다. 아베 정권과 연루된 사학비리·성폭행 등 부도덕한 사건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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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아름 areumlee@khan.kr

배우 심은경(26)이 한국 배우 최초로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베 신조 정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영화로 이뤄낸 쾌거다.


심은경은 지난 6일 일본 도쿄 신 다카나와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날아라 사이타마>의 니카이도 후미, <꿀벌과 천둥>의 마쓰오카 마유,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와 세 명의 여인들>의 미야자와 리에,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의 요시나가 사유리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영예를 안았다.


심은경은 이날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해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함께 작품에 참여해 영광이었다. (<신문기자>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마쓰자카 토리씨 정말로 감사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연기하겠다”고 덧붙였다.


1978년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된 이후 한국 배우가 최우수 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10년 배우 배두나가 <공기인형>으로 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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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에 대한 예리한 비판으로 호평과 압력을 동시에 받아온 영화 <신문기자>는 이날 최우수 여우주연상과 최우수 남우주연상, 작품상까지 3관왕을 차지하며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영화는 개봉과 홍보 과정에서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0월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가와무리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이 영화를 일본 TV에선 전혀 다뤄주지 않았다. 홍보를 실어준 곳은 신문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밖에 없었다. 라디오 광고도 거절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은경은 댓글 조작, 민간인 사찰, 가짜뉴스 유포에 나서는 정권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4년차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을 맡아 열연했다.


요시오카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심은경이 한국인이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가나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진실’이란 가치가 중요했다.


심은경은 1년간 일본어 공부를 한 뒤 직접 일본어로 연기하며, 진지하고 투박하게 권력과 맞서 싸우는 기자의 모습을 구현해냈다. 심은경은 이 작품으로 지난 1월 제74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는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지난해 11월 다마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후지이 감독은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다른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심은경을 염두에 뒀다”면서 “지적인 부분, 다양한 아이덴티티, 진실을 추구하는 캐릭터에 딱 맞다고 생각했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여적] 심은경의 일본 영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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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지난해 6월 개봉된 영화 <신문기자>의 주연을 한국 배우 심은경이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영화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리관저(官邸)로 불리는 권부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치는 신문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할에 일본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다 보니 한국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는 일본 주간지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개봉 때 방한한 가와무라 미쓰노부 프로듀서는 “일본 여배우에게는 전혀 출연 제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문기자>는 아베 신조 정권을 뒤흔든 ‘가케학원 의혹’과 흡사한 사학 스캔들을 소재로 한다. 정부가 가케학원 산하의 오카야마 이과대학에 수의학부 설치를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한 사건이다. 스캔들에 연루된 고위 관료의 자살, 총리와 가까운 기자의 성폭력 사건(이토 시오리 사건) 등 실제 사건이 줄줄이 등장해 리얼리티를 높인다. 이렇듯 아베 정권을 정면에서 직격한 영화이다 보니 권력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고, TV홍보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문기자>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다카사키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데 이어 지난 6일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작품상(후지이 미치히토 감독), 최우수 남우주연상(마쓰자카 도리), 최우수 여우주연상(심은경)을 거머쥐었다.


일본 아카데미상을 결정하는 회원 상당수는 도호(東寶), 쇼치쿠(松竹), 도에이(東映) 등 3대 영화사 사원들이다. 이 때문에 3대 영화사 작품들이 주로 수상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중소영화사 ‘스타샌즈’가 제작한 <신문기자>의 수상은 이례적이다.


영화를 보면 아베 정권 치하의 일본 사회를 감싼 무거운 침묵과 정치 니힐리즘(허무주의)을 깨뜨리는 데는 일본인 아닌 타자(他者)가 적격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은경의 캐스팅은 이런 점에서 성공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로 한국발 일본 방문자의 입국규제를 결정한 다음날 시상식이 열린 것도 공교롭다. 지난해 수출규제로 한·일 양국 간 물자 이동을 막더니 이젠 사람의 왕래까지 끊고 있다. 심은경의 수상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지혜 기자 kimg@khan.kr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