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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밀레니얼 취향 저격
K-ASMR…“문화유산은 ‘노잼’ 편견 깼다”

by경향신문

문화유산채널, 무형문화재·ASMR 결합한 콘텐츠로 호평


유튜브 올린 명주 짜는 장인 영상

3개월 만에 조회수 146만회 넘겨

구독자들에겐 ‘힐링’의 공간으로


360도 카메라로 문화유산 소개

집콕 상황서 ‘방구석 여행’ 호응

“댓글 중 ‘세금 잘 썼다’ 흐뭇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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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콘텐츠실 예상욱 실장, 김은진 콘텐츠기획팀 PD, 김솔비 콘텐츠기획팀 PM, 강민우 콘텐츠기획팀 PM, 김한태 콘텐츠기획팀장(왼쪽부터)이 11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덕분에 챌린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는 146만 조회수를 기록한 문화유산채널의 ‘명주짜기 ASMR’ 영상이 보인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등이 굽은 노인이 베틀 앉을깨에 앉아 부티(허리에 두르는 넓은 띠)를 허리에 건다. 베틀신을 신은 발을 앞뒤로 밀고 당기자 ‘탁탁’ 소리가 나며 명주가 짜이기 시작한다. 누에치기, 타래실 만들기를 포함해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인 명주짜기 전 과정이 별다른 기교 없이 보여진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빗소리를 연상시키고, 간간이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마음의 안정을 준다. 유튜브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에 ‘K-ASMR’이란 이름을 달고 올라온 이 25분짜리 영상은 3개월 만에 조회수 146만회를 넘겼다. 댓글엔 ‘유튜브의 순기능이다’ ‘진정한 명품을 보았다’ 등 호평이 이어졌다.


무형문화재와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의 만남. 언뜻 상상이 잘 안 가는 이 조합이 상대적으로 문화유산에 관심이 적은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약혐주의’에서 수정된 ‘누에나옴, 벌레주의’ 경고문도 어딘지 신선하다. 지난 11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콘텐츠실에서 만난 김한태 콘텐츠기획팀장은 “명주짜기 ASMR이 ‘문화유산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뒤집었다”고 했다. 문화유산채널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공동 운영한다. 구독자는 지난 1월 4만5000여명에서 13일 기준 11만70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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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만 조회수를 넘긴 ‘전통부채를 만드는 장인, 선자장’ 영상(위)과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주왕산 폭포의 모습이 담긴 ‘360도 VR영상’. 문화유산채널 유튜브 캡처

‘K-ASMR’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많이 보는 콘텐츠 2위가 ASMR이란 통계에서 착안했다. ASMR은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한다고 알려져 인기다. 문화유산 ASMR은 단순히 듣는 콘텐츠가 아닌, 문화유산의 숨결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김 팀장은 “섭외 1순위는 인간문화재 장인”이라며 “고령인 장인들의 생전 모습을 기록해 구독자에게 친근감 있게 소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소리뿐만 아니라 장인의 몸과 몸짓에서 고된 노동의 흔적을 읽어냈다. 선자장(전통부채 만드는 장인)이 부채를 만드는 영상도 조회수 132만회를 넘겼다.


구독자들은 문화유산채널을 ‘힐링’ 공간으로 찾는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문화유산을 360도 카메라로 소개하는 ‘360도 VR영상’의 반응이 좋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 갇힌 사람들은 VR영상으로 주왕산 폭포를 거닐고,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 바닷속을 헤엄치며, 간헐적으로 개방되는 창덕궁 희정당 내부를 자유롭게 산책한다. 한 구독자는 “코로나19로 집에 콕 박혀서 너무 심심했는데, 영상을 보니 마음이 좀 트인다. 방구석 여행을 시켜줘서 감사하다”는 후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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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만 조회수를 넘긴 ‘전통부채를 만드는 장인, 선자장’ 영상(위)과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주왕산 폭포의 모습이 담긴 ‘360도 VR영상’. 문화유산채널 유튜브 캡처

2010년 개설된 문화유산채널은 ‘한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을 꿈꾸며 출범했다. 하지만 무명 시절이 길었다. 2011년부터 문화유산채널과 함께한 김 팀장은 “문화유산채널이라고 하면 ‘텔레비전 채널 몇 번에 나와요?’ 물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며 “해외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영문 영상만 제작하다 2014년부터 지금의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검색과 알고리즘 중심의 유튜브에서 문화유산 콘텐츠는 쉽게 노출되지 않았고, “아이돌 가수를 섭외해 채널을 홍보할까 고민한 때도 있었다”고 했다.


김 팀장은 문화유산채널을 ‘당첨 확률 100퍼센트 복권’에 비유했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몰라서 모르는 거지 알고 나면 누구나 알 거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리고 10년의 인고 끝에 채널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김 팀장은 “‘세금 잘 썼다’는 댓글이 가장 흐뭇하다”며 “공공기관의 숙명은 돈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좇는 것인데, 이를 알아봐 주신 듯해서 감사했다”고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열명 남짓한 직원이 문화유산채널 운영 외에도 문화유산 다큐멘터리나 웹무비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문화유산채널의 지향점을 묻자 “건강한 음식 같은 영상을 선보이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팀장은 “건강식은 때론 맛없을 수도 있지만 몸에 좋지 않나. 구독자의 심신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건강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유의 맛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끝으로 “문화재의 매력은 사람·자연·문화 이 세 가지가 모두 어우러진 것”이라며 “문화유산채널에서 많은 분들이 이러한 매력을 느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