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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 (3)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예술인가 기술인가

by경향신문

AI 화가, 빅 퀘스천을 던지다

경향신문

두민(도성민) 작가와 (주)펄스나인의 ‘이메진AI’ 협업 작품인 ‘commune with…’(2019, 60×120㎝). 독도를 소재로 ‘인간 화가’와 ‘AI 화가’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수면 위는 두민 작가, 아래는 이메진AI의 작품이다. 아이아갤러리 제공

인공지능(AI)의 힘을 일상생활 곳곳에서 체감하는 시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AI가 향후 우리 삶을 얼마나 어떻게 변혁시킬지 전망조차 쉽지 않다. 1950년대 초보적 AI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지나 이제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진화했다. AI는 과학·산업 측면뿐 아니라 미술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에서도 주목된다. 나름의 그림을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쓴다. 이른바 ‘AI 미술가’ ‘AI 화가’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고, ‘AI 시인’의 시는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AI 작곡가’의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다. 국내외적으로 ‘AI 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갤러리와 경매를 통해 작품 거래가 이뤄지며 미술시장의 한 축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예술 활동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인간다움이란 또 무엇인가

1만5000개 이미지 학습한 AI의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

질감까지 살려낸 ‘더 넥스트 렘브란트’ 등 ‘AI 아트’의 진화는

인간에 맞설 경쟁자의 탄생일까 아니면 새 장르의 출현일까

‘인간의 저작물’ 만을 대상으로 하는 저작권법에도 대변혁 예고


AI시대의 미술, 예술을 둘러싼 여러 주장과 견해들이 백가쟁명 속에 갑론을박을 벌인다. ‘AI 화가’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창조적 예술활동을 시도하면서 ‘인간 화가’를 돕는 첨단 도구일 뿐이라는 시각부터 제2의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이 될 수 있다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과연 ‘AI 화가’의 작품은 우리가 말하는 예술작품인가 아닌가? 왜 예술작품이고 어떻게 예술작품이 아닌가, 예술활동은 인간만의 것인가, 그럼 예술이란 무엇이고 인간·인간다움이란 또 무엇인가…. 정립되지 못한 개념과 용어들 속에 물음이 꼬리를 문다. AI가 예술의 본질,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 ‘빅 퀘스천’을 던지는 것이다.


담론 차원만도 아니다. 저작권법 개정을 추진 중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주체와 범위 등 AI 관련 저작권도 검토하고 있다. 시대적 요구 및 해외 주요국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6월이면 1차 논의가 마무리된다. ‘인간의 저작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현 저작권법에 대변혁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AI 화가’의 예술적 시도

AI 작품이 국제적으로 큰 화제를 모은 것은 2018년 10월이다. 크리스티 미국 뉴욕 경매에서 초상화 ‘에드몽 드 벨라미’(영어로 Edmond Belamy)가 추정가의 40배를 넘은 43만여달러에 낙찰되면서다.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 작품들과 함께 크리스티 경매의 첫 ‘AI 작품’으로 출품돼 소장 미술품이 된 것이다. 당시 크리스티의 리처드 로이드는 “AI는 향후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예견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향후 미술시장에 충격을 줄 여러 기술의 하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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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AI 작품’으로 출품돼 43만여달러에 낙찰된 ‘에드몽 드 벨라미’(영어로 Edmond Belamy)’. 크리스티옥션 제공

이 초상화는 프랑스의 AI 예술팀인 ‘오비어스’(Obvious)의 기획으로 이미지 생성에 주로 활용되는 AI 알고리즘(GAN·생성적 적대 신경망)의 결과물로 알려졌다. 캔버스에 인쇄된 작품은 14~20세기에 걸친 1만5000여 작품 이미지를 기반으로 탄생됐다. GAN은 ‘진짜 같은 가짜’의 이미지나 음성 등을 만들어내 놀라움과 우려를 함께 낳는다. 지난해 3월에는 독일 작가 마리오 클링게만의 AI 작품 ‘행인의 기억 I’이 소더비 경매에서 4만파운드에 팔렸다.


구글이 만든 ‘AI 화가’로 불리는 ‘딥드림’(Deep Dream)의 작품은 2016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딥드림은 특정 이미지를 입력하면 반 고흐·르누아르 등 유명 화가의 화풍이 적용된 이미지로 거듭난다. 다국적 금융그룹 ING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참여한 프로젝트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pandt)도 미술계에 잘 알려져 있다. 렘브란트 작품의 색채나 구도·기법 등을 학습한 AI가 작품 표면의 질감까지도 드러낸다. 전문가들도 렘브란트 작품이라고 생각할 정도여서 ‘렘브란트의 부활’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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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CAN’ 작품으로 미국 마이애미 스코프 아트페어에서 소개된 ‘Green Genesis’(2018). Image courtesy of AICAN

미국 럿거스대학·페이스북 등은 GAN을 진화시켰다는 CAN을 개발, ‘AICAN’이라 이름 붙였다. 럿거스대 마리언 마조네·아흐메드 엘가말 교수는 창의성이 강조된 AICAN은 기존과 달리 특정 화가·작품의 화풍을 넘어 ‘새롭고 창조적 예술작품을 창작한다’고 말한다. 딥드림, 넥스트 렘브란트 등과는 격이 다른 ‘AI 화가’라는 주장이다. 실제 관람객 대상 조사에서 ‘인간 화가’의 작품과 잘 구별되지 않았다. 이 밖에 작가·프로그램 개발자인 헤럴드 코헨의 로봇 화가 ‘아론’(Aaron) 등도 있다. 세계적으로 ‘AI 아트’ 연구는 단순한 이미지 변환·생성부터 진화된 최첨단 기술로까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카이스트(KAIST)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AI 연구진, (주)펄스나인·(주)인공지능연구원 같은 기업이 전시회 등을 통해 AI 관련 작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또 ‘AI 아트’에 관심 있는 작가들, 미술 애호가들이 AI와 협업하거나 AI를 도구로 활용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주사위를 소재로 한 극사실적 작품으로 잘 알려진 두민(44·도성민) 작가와 펄스나인의 ‘AI 화가’라 할 ‘이메진AI’의 협업 작품 ‘Commune with…’가 지난해 9월 공개돼 주목을 끌었다. 독도를 소재로 한, ‘교감하다’라는 뜻의 작품은 ‘인간 화가’와 ‘AI 화가’의 첫 협업 작품으로 불린다. 캔버스 화면의 수면 위는 두민 작가의 유화이며, 수면 아래는 이메진AI의 작품이 인쇄됐다. 물론 이메진AI의 단독 작품들도 있다.


사진가 이수진, AI 엔지니어인 임채석 등은 AI를 작업 도구로 활용한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창작활동 도구인 ‘페인틀리AI’도 선보인 펄스나인이 서울에 문을 연 AI 아트 갤러리 ‘아이아갤러리’에선 비정기 전시회와 경매·관련 세미나 등도 열린다. 아이아갤러리에 따르면 ‘AI 아트’는 10만~3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으며, 관심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AI, 우리를 성찰케 하다

AI의 진화 양상을 보며 사회적으로 낙관적인 테크노필리아와 비관적인 테크노포비아의 시각에 따라 뜨거운 논쟁도 벌어진다. 미술계 안팎에서도 AI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그 작품을 둘러싼 토론회 등 논의가 무성하다. AI 작품을 인간 화가의 예술작품과 같은 의미의 예술작품으로 볼 것인가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예술작품은 디지털화가 힘든 사고력이나 직관력·상상력·창의성 등의 산물로 여겨진다. AI 작품이 예술작품인가 아닌가란 질문에 답을 하자면 예술과 예술작품의 본질, 직관과 상상·창의성 같은 인간 고유의 특성 등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AI가 꽤나 뜨거운 논의가 필요한 근원적 질문들을 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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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여름(왼쪽)과 가을을 표현한 ‘이메진AI’의 ‘Dokdo’(2019, 120×50㎝). 아이아갤러리 제공

아직까지 AI 작품은 인간 예술작품과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알고리즘 개발부터 데이터 제공, 설사 AI 스스로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이건 작품이다”라고 선별하는 등 작품화 과정 곳곳에서 인간의 개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고유의 창의성에 따른 새로운 창조물이라기보다 인간이 제공한 정보의 새로운 조합이라는 것이다. 창작의 주체 문제를 따져봐도 인간 고유의 주체적 특성을 AI가 대체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 등도 결국 성장하면서 습득한 수많은 정보들을 조합한 결과물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머지않은 미래엔 더 진화된 AI가 인간의 개입을 없애고 창의적 예술작품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오히려 기존의 예술, 예술작품에 대한 개념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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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pandt)의 작품들. 더 넥스트 렘브란트 홈페이지

여기에 AI의 새로운 창의성조차도 결국은 인공적인 창의성 아니냐는 반론이 이어진다. 미술사가들은 AI가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작가로서의 해석, 가치부여 등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미술교육자인 펠드먼의 서술~분석~해석~평가라는 유명한 미술작품 감상·비평의 4단계론으로 보면 AI 작품은 거론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 화가의 작품과 구별되지 않고,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관람객·소장가들이 예술작품으로 여기면 어떻게 될까.


일부에선 ‘인간 화가’의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사진이 등장했을 때 화가·회화는 쇠퇴한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회화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사진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발터 베냐민 등의 통찰력을 언급하며 창조적 예술작품이냐 아니냐의 여부를 넘어 AI 작품이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네덜란드 정부는 AI 기반의 작품을 ‘전산 예술’로 평가하며 새로운 장르 개척에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주목받는 디지털아트처럼 AI 아트도 신선한 예술적 체험을 풍성하게 안기고, 더 많은 사람이 편하고 쉽게 AI를 활용해 활발한 미술활동을 펼칠 수도 있다. 보다 풍성한 문화예술 향유의 가능성을 주는 것이다.


AI가 진정 주체적 ‘AI 화가’가 될지, 인간 화가의 창의성·기법·영감 등을 돕는 도구가 될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그것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고, AI가 이미 미술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AI 작품이 예술작품이라면 저작권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진다. 저작권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AI 알고리즘, 알고리즘 개발자, 데이터 저작자나 제공자, 작업 운용자….


AI로 인해 나오는 수많은 질문들에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인류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AI가 던진 예술과 인간의 본질 등에 관한 근원적 질문들의 답을 끊임없이 찾아왔으며 아직도 찾고 있다. 어쩌면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 결국은 인간과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이자, 우리 스스로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이해일 수 있어서다. 폴 고갱은 100여년 전 죽음을 앞두고 예술혼을 쏟아부은 작품의 화면 귀퉁이에 한 문장을 써놓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