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의 ‘한국 엄마’ 이슬예나 “대중을 제3의 크리에이터로 존중하죠”

[컬처]by 경향신문

MZ세대 크리에이터 이슬예나 EBS PD

경향신문

경기 고양시 EBS 로비에 들어서면 <자이언트 펭tv> 의 스타 펭수의 이미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이슬예나 PD는 “펭수가 본연의 매력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팬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남극에서 온 펭수의 ‘한국 엄마’를 만나러 가기 전, 펭수 팬인 지인 딸에게 물었다. 대신 질문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지. 돌아온 대답은 “펭수가 코로나19 걸리지 않게 몸조심(하도록) 해달라”였다. ‘펭클럽’(펭수 팬)의 마음이 느껴졌다. 지난 8일 EBS에서 이뤄진 <자이언트 펭TV> 이슬예나 책임PD와의 인터뷰는 ‘펭하!’(펭수 하이·펭수의 인사법)로 시작됐다.


‘국민 스타’의 탄생

펭수 영입 아이디어 냈을 때

선배들 왈 “메시지가 뭐야”

내 대답은 “시청자가 정하겠죠”


- 최근 한국PD대상 ‘올해의 PD상’을 수상했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자이언트 펭TV>(이하 펭TV)는 원래 B급 감성을 지향하는 콘텐츠인데, A급 대우를 받고 있네요(웃음). 팀원들이 함께 이뤄낸 성과이고, 펭클럽의 응원과 사랑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PD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통신 대기업의 광고 담당부서에서 2년9개월간 일했다. 이후 방송사 시험을 봐서 2011년 EBS에 입사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 <모여라 딩동댕> <생방송 톡! 톡! 보니 하니>, 환경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 등을 연출했다.


- 펭수는 어떻게 EBS 연습생이 되었습니까.


“EBS가 기존 콘텐츠와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어요. 공영방송으로서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왔지만, 중심축을 좀 더 시청자 쪽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한 영향력과 대중의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좋겠다고요. 기존 콘텐츠가 어떤 메시지·교훈·지식을 전할 것이냐에 초점을 뒀다면, 저는 시청자와 어떤 감성으로 소통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돌발적 상황에서 리얼리티적 유머가 있는, B급 코드를 가진,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었어요. 그 중심에 크리에이터형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종(種)을 초월해 다양한 주인공이 있어왔던 EBS답게, 사람이 아닌 귀엽고 색다른 친구 펭수를 발탁했습니다.”


- 펭수를 영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윗분’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선배들도 ‘정말 다른 것’을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들 했어요. ‘낯설기는 하네. 메시지가 뭐야?’라는 질문은 좀 받았죠.”


- 뭐라고 답했나요.


“(메시지는) 각 에피소드마다 다르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시청자가 정할 거다, 억지로 정하려는 순간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고요.”


펭수는 지난해 4월 <보니 하니>의 10분짜리 코너 <펭TV>에 처음 등장했다. 동시에 개설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외롭고 힘든 상황을 딛고 한 단계씩 성장하는 모습으로 공감을 얻었다.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쿨한 성격, “(EBS 사장) 김명중”을 스스럼없이 외치는 탈권위주의,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젠더 프리’ 코드도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펭TV>는 독립해 별도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스타덤에 오른 펭수는 EBS를 넘어 지상파 방송 3사, 케이블·종합편성채널을 넘나드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15만명에 이른다.


펭수의 매력은?

당당한 자세로 무엇이든 도전

우리 모두 속의 ‘어린아이’를

보듬어주는 편안함 있어


- 펭수의 가장 큰 매력은 뭡니까.


“펭수의 ‘빅 팬’으로서, 항상 당당하다는 게 제일 큰 매력 같아요. 날씬하지 않고 눈동자도 작지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요. 팬들이 ‘펭수를 너무 좋아하다 몸매도 펭수 닮아가서 큰일’이라고 하면 ‘그게 왜 큰일?’ 하고 시크하게 받아넘기죠. 김명중 사장을 만나든, 유산슬(유재석)을 만나든, 어린아이를 만나든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빌보드 프로젝트’라고, 펭수가 빌보드 차트에 진출하고 싶어해요. 다들 ‘난 저런 건 못할 거야’ 하는데, 펭수는 우리가 하지 못하는 생각과 행동을 성큼성큼 합니다. 카타르시스를 주는 거죠.”


‘래퍼 펭수’는 이미 국내 음원을 석권했다. 지난달 타이거JK 등과 함께 선보인 곡 ‘펭수로 하겠습니다’(This is PENGSOO)는 다수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 제작진이 모두 젊다고 들었습니다. 유튜브채널 구독자가 1만명쯤 됐을 때 김명중 사장이 “지금부터 이슬예나 PD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은 펭수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면서요.


“제작진 가운데 36세 이상이 없어요(이 PD가 35세다). 저희 팀이 모두 젊다 보니 아이디어를 서로 주고받는 데 장벽이 낮아요. 툭툭 던졌을 때 ‘그게 얘기 돼?’ 하는 대신, 같이 웃고 어떻게 ‘디벨롭(발전)’할까 의논하는 열린 분위기가 있어요.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다 보면 특정 문법에 젖을 수도 있는데, 우리 팀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요. 경험이 얕아서 두려움은 있지만, 한번 시도해보자는 자세가 강점인 것 같아요.”


- 펭수는 모든 연령층의 사랑을 받지만,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열광이 눈에 띕니다.


“콘텐츠를 기획할 때 MZ세대가 메인 타깃층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세대의 삶이 녹록지 않잖아요. 저도 제작하다 지치고 피곤할 때 펭수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시청자들이 보시기에도 그럴 것 같아요.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이 있어요. 다들 성인이라고 해도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들어있잖아요. 내 안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 MZ세대 콘텐츠 제작자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전엔 콘텐츠 제작자가 특정 미디어에 소속돼야 했지만, 디지털 플랫폼이 활성화되며 나만의 화법을 만들고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스피커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레볼루션’(혁명)이 일어나고 있어요. 콘텐츠에도 이런 레볼루션이 녹아들고 있고요. 펭TV를 예로 들면, 10살짜리 펭귄이 정말 다양한 데 도전하거든요. ‘자기가 뭐라고 감히 BTS를 입에 올려?’ 할 수 있지만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이뤄나갔어요(펭수는 지난 1월 골든디스크어워즈에 시상자로 초청받아 BTS를 만났다). MZ세대 콘텐츠 제작자들은 오디언스(audience)를 수동적인 수용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눈높이에서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가는 ‘제3의 크리에이터’로 존중합니다.”


- 펭수의 세계관도 그 과정에서 형성된 것인가요.


“처음에는 10살짜리 펭귄이 스타가 되고 싶어 한국에 왔다는 정도만 있었지요. 그 이후에는 대중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며 쌓여갔습니다.”


콘텐츠가 ‘별처럼’ 흘러넘치는 시대다. 창작자가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사실 콘텐츠가 너무 많아 피로할 지경이죠. 그 틈바구니를 뚫고 나가려면 매력이 필요합니다. 새롭고 의외성을 주는 무엇이 핵심입니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건 리얼리티인데요. 리얼한 상황들이 재미있게 도출돼야 합니다. 관건은 콘텐츠를 이끄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강력한 캐릭터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객관화가 절실합니다. 팀원과의 소통이든, 대중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일이든 겸허해야 해요. 제작자는 자신의 작업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에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 ‘좋은데, 재미있는데, 너희들이 몰라주는 거야’ 하기 쉬워요. 아프더라도 받아들이고, 다시 수정해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펭TV도 빛을 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왜 사람들이 덜 볼까,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고 토론했습니다.”


- 시간을 주는 부분이 중요하겠네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개인에게도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시스템도 (콘텐츠가) 숙성될 때까지 시간을 주고 지원해줄 필요가 있어요. 저도 펭TV 시작할 때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건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니까요. 안전장치를 만들면 기존 콘텐츠와 비슷하게 나오기 쉽습니다. 회사에서 기다려주고 선배들이 격려해주신 데 감사하죠.”


- 창작자로서 어떤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이디어를 모을 때 ‘이런 걸 넣으면 좋겠다’ ‘이런 요소를 포함시키면 웃음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게 있어요. 대중의 시선과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요?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걸 했을 때 반응이 좋았어요. 촬영하면서 스스로 재미있어야 실제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이 PD는 어린 시절 공상을 많이 하고 시도 ‘끄적거리곤’ 했다. ‘덕후(특정 분야에 강한 관심을 갖고 몰입하는 사람)’는 아니었다. 뭔가 좋아하다가도 금세 빠져나오는 성향에 가까웠다. 대신 다양하게, 이것저것 ‘찔러봤다’. 대학 때는 영상동아리를 했고, 미국으로 교환학생 가서는 영화평론에 빠졌다. 밴드 활동도 했는데 “실력은 없고 열정만 있는 보컬”이었다고 한다. 이런 체험과 성향이 PD 생활에 도움이 됐다. 아이디어를 모을 때 별로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내는 편이다.

경향신문

MZ세대 기획자 / ‘펭수 맘’ EBS 이슬예나 PD/권호욱 선임기자

자신의 제작관은?

디지털 플랫폼의 활성화로

나만의 색깔 낼 가능성 열려

재미있게 일해야 결과도 좋아

자기객관화로 발전하려 노력


- 콘텐츠 기획·제작 과정에선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둡니까.


“앞서 자기객관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편집할 때도 ‘시청자가 갑자기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봐도 재미있어 할까’ 생각해보려고 해요. 책임프로듀서가 된 뒤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동기를 갖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데 신경쓰고 있고요.”


- 펭수가 펭TV에 출연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펭수의 한국 엄마’로서 소망은 뭔가요.


“문화 트렌드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펭수도 뜨거운 인기를 모으다가, 가끔씩은 내리막길도 겪고, 다시 안정기에 접어들기도 하는 식으로, 여러 번 변곡점을 맞을 텐데요. 펭수가 본연의 매력을 잃지 않고 오래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파도를 탄 느낌이랄까요? 제가 노를 젓는 방향으로 (‘펭수호’가) 꼭 가는 게 아니고, 여러 변수가 작용하며 흐름을 잡아주고 있거든요. 저도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펭수가 팬들에게 계속 희망과 웃음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펭수는 폭발적 인기 속에 다른 분야와 협업을 많이 하고 있다. 광고도 많이 찍었다. 이 PD는 “처음부터 수익성을 염두에 뒀다”(조선일보 인터뷰)고 했다.


-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솔직히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요.


“활동영역을 확대하는 관점에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선이고요. 그다음으로는, 스스로 벌고 스스로 제작하며 선한 영향력을 넓혀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펭수의 ‘과로’를 염려하는 팬들이 많은데, “펭수는 하루 촬영하면 하루 쉰다”(제작진).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단편 어린이드라마와 웹드라마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데, 언젠가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제작해봤으면 해요. 드라마를 통해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2020.05.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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