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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위근우의 리플레이

MBC <놀면 뭐 하니?>, 비와 유재석의 촌스러움 속에서 더 빛난 이효리의 카리스마

by경향신문

올드한 중년 남성 취향에 제동 이효리라는 산뜻한 ‘브레이크’

경향신문

올여름 MBC <놀면 뭐 하니?> ‘여름×댄스×혼성그룹’ 프로젝트의 활약이 기대된다면, 아마도 그룹의 ‘센터’에 이효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7년 전 히트곡 ‘10 minutes’의 퍼포먼스를 즉석에서 여유롭게 재연하는 이효리는 ‘중년 남성의 과거형 취향’인 혼성그룹 개념에도 산뜻함을 불어넣었다. 해당 프로그램 화면 캡처

맞다, 저 사람 가요대상이랑 연예대상 둘 다 탔지. 지난 5월30일 방영한 MBC <놀면 뭐 하니?>에 출연한 이효리를 보며 든 생각이다. 해당 방송에서 그의 수상 내역을 자막으로 짚어주기도 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여름 시장을 겨냥한 혼성 댄스 그룹을 만드는 ‘여름×댄스×혼성그룹’ 프로젝트에서 처음부터 섭외 0순위로 꼽히며 제주도에서 <놀면 뭐 하니?> 팀과 미팅을 가졌던 그는, 역시 섭외 0순위급인 가수 비와 함께 이번 방송에서 유재석, 비와의 혼성그룹 결성을 확정지었다. 솔로 가수로서 2000년대 초중반을 말 그대로 지배했던 두 명의 퍼포먼스 머신과 유재석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이미 크게 회자될 수밖에 없는 방송이었지만, 그 조합에서도 이효리는 압도적이었다. 솔로 첫 타이틀이었던 ‘10 minutes’의 퍼포먼스를 즉석에서 여유롭게 재현하고, 혼성그룹 멤버 구성에서 잘난 사람만 모은다고 잘되는 건 아니라는 말로 유재석의 공감을 사는 듯하다가 자신이 강한 캐릭터니 나머지는 그냥 “수줍수줍 하고 쭈뼛쭈뼛 하고 기죽어 있는 사람으로” 모으자고 훅 치고 나가는 것까지, 그는 방송의 모든 순간을 자신의 리듬대로 지배했다. 물론 이효리가 방송을 잘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며, 반대로 이효리가 아니라 해도 웬만큼 능숙한 선수라면 분위기에 따라 방송 한 회 정돈 물오른 토크를 보여줄 수는 있다. 이번 <놀면 뭐 하니?>에서의 이효리가 특별한 건, 비와 유재석 사이에서도 자기 페이스를 유지해서가 아니라, 비와 유재석이 ‘여름×댄스×혼성그룹’ 프로젝트를 더할 수 없이 촌스럽게 끌고 가는 걸 자신의 카리스마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방송을 전후해 제작진과 유재석이 비의 ‘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보자. 최근 인터넷 밈(meme)으로 열렬히 소비되고 있는 이 곡에 대해 비 스스로는 의연한 듯 ‘대인배’ 포지션을 수행하고, 유재석과 <놀면 뭐 하니?> 제작진은 이조차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나 ‘It’s Raining’ 등 비의 과거 뛰어났던 곡과 무대의 연장선으로 연결해 해석한다. ‘깡’의 안무가 굉장히 고난도이자 그나마 비이기에 그 정도 느낌이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깡’의 제목과 가사의 정서, 테크닉에만 치중했던 안무 구성까지 모든 게 시대착오적이다. 사람들이 이 곡을 즐기고 가지고 노는 건 바로 그 시대착오적이지만 비 본인만 그걸 모르는 것에서 오는 불일치의 반미학 때문이다. <놀면 뭐 하니?>보다 한발 앞서 ‘깡’ 신드롬을 다룬 유튜브 <문명특급> ‘제1회 숨듣명 총회’에서 비의 팬클럽 출신이자 K팝 팬덤과 인터넷 밈에 해박한 재재가 사람들이 ‘깡’에 열광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짚고 밈으로서의 ‘깡’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교해, ‘춤선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 K-pop의 자랑’ 같은 자막을 다는 <놀면 뭐 하니?>는 신드롬의 맥락을 전혀 잡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해 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 이번 ‘깡’ 신드롬이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의 과거 명곡들과 무대를 소개하는 창구가 되어 좋다는 비를 향해 “너, 멘트가 계속 똑같다? 정해진 것처럼? 그 질문 나오면 그 대답 해야지, 정해놓은 거 아니야?”라고 ‘깡’과 비를 원래 그랬어야 할 자리로 끌고 오는 건 이효리다. 비와 이효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전설의 귀환이라는 느끼한 맥락으로 구성하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가볍게 무시된다.


이효리가 입을 열 때마다 비는 쩔쩔매고 유재석은 당황하는 모든 순간이 매우 합당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놀면 뭐 하니?>와 유재석이 ‘깡’의 소비 맥락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성급히 접근한 것처럼, 멤버 구성을 이야기하다 펭수를 들이는 아이디어를 내며 “웃기려고 하는 거 아니”라며 역시 펭수의 인기에 억지로 편승하려는 비에게 이효리는 “펭수는 웃기려고(하는 거)지”라는 정론으로 바로 반박한다. 그런 거침없음이 이효리의 오랜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를 흔히 말하는 ‘센 언니’라는 성격적 개념으로 퉁치는 건 부당하다. 이효리가 예능인으로서의 전성기 중 남성 방송인들과 우호적인 케미스트리를 보여주긴 했지만, 2017년 즈음부터 KBS <해피투게더>나 MBC <라디오스타> 등에 출연할 때부턴 자신의 권위와 거침없는 발언으로 남자 방송인들끼리 주도하는 분위기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해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연예대상과 가요대상을 둘 다 탄 유일한 연예인이다. 이번에도 멤버 구성 및 음악 스타일에 대해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끄는 이효리에 대해 비는 “이럴 거면 ‘이효리와 아이들’로 해요”라고 투덜댔지만, 실제로 비와 유재석의 제안 중 쓸 만한 건 별로 없었다. 레트로 혹은 뉴트로 감성에 대한 합의를 전제했다 해도 코요테 스타일의 여성 고음 보컬에 집착하는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지난 영광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하며, 비는 작사·작곡에 대한 작은 욕심을 드러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이효리를 통해 다행히 기각당했다. 이효리가 나머지 둘보다 유독 더 합리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남성, 그것도 성공한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서로 의기투합해 자신들의 취향과 미감을 아무 브레이크 없이 펼쳐 보일 때, 그 질주의 끝엔 제2의 ‘깡’이나 <자전차왕 엄복동>이 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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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칼럼니스트

이처럼 이효리가 재미에 있어서든 프로젝트 본연의 목적에 있어서든 ‘하드캐리’ 했음에도 방송 후반부터 지코, 광희, 쌈디와 코드쿤스트까지 등장하며 방송 내 성비가 6 대 1이 되고, 쌈디의 출연에 “쌈디쒸, 쌈디쒸” 하는 유재석과 “재석쒸”라 호응하는 쌈디가 경상도 방언 억양으로 남자들끼리의 친분을 과시하는 전형적 장면을 연출하면서부터 이효리의 토크 비중이 급속히 줄어든 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새로 오는 남성 멤버들마다 ‘깡’ 무대를 재현하거나 편곡하는 방식으로 ‘깡’에 대한 존경을 반쯤 강요받는 구성에서 이효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물론 그렇다고 비가 ‘깡’을 중심에 놓고 그 상황을 재밌게 가지고 놀 줄 아는 타입도 아니다. 중반까지의 높은 텐션이 무색하게 그 순간부터 방송은 견딜 수 없이 따분해졌다.


다시 말해 이번 ‘여름×댄스×혼성그룹’에서 이효리의 활약상은 성평등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당위적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왜 방송에서 할 말 하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와 성비 균형이 필요한지 증명한다. 특정한 성별과 연령대 위주로 구성된 방송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맹점들을 드러낸다. 남성의 성기를 간접적으로 지시하는 ‘꼬만춤’ 이야기 중 이효리가 가슴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보이자 기겁하는 유재석을 보라. 남성 예능인 중 가장 덜 마초적이며 균형감과 소통의 아이콘인 그조차 남성을 기본값으로 하는 대화 중 여성이 남성의 ‘꼬만춤’에 준하는 말과 행동을 보이자 크게 당황한다. 어떤 광고를 찍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효리가 “유기농 생리대”라 답하자 말문이 막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기농 생리대’라는 단어 하나도 쉽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취향과 생활방식과 정치적 입장이 공존하지 못하는 자리라면, 대체 혼성그룹의 동시대적 의의와 발전적 방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 방송 전까지 유재석이 이상민, 윤일상 등과 이야기한 혼성그룹이란 개념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댄스 음악에 고착된 중년 남성의 과거형 취향이었다면, 이번 이효리와의 토크를 통해 혼성그룹이란 개념은 지금 이곳에서 다시 재구성해볼 만한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이 생겼다. 분명 이효리기에, 이효리만이 할 수 있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효리가 아니어도 그럴 수 있는 방송환경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세 번째로 말하지만, 이효리 같은 커리어를 지닌 사람은 이효리 단 한 명이니까.


위근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