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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도재기의 현대미술 스케치 (4)]

위작, 감정, 그리고 진위논란… 내가 그린 가짜, 남이 그린 진짜

by경향신문

예술의 역사와 함께 한, 속이려는 자와 밝혀내려는 자…거짓은 인간만의 것이다


“지금도 그런 게 나돌고 있으니….” “무슨 말씀이신지?” “며칠 전에 친구 지인의 소장품을 봤거든. 근데 알 만한 유명 작가의 위작인 거야.” “컬렉터가 충격받았겠네요.” “아니, 위작이라고 말 못하고 그냥 얼버무렸지.” “위작이다 가짜다라고 얘길 안 했어요?” “못하지, 충격이 클 텐데.” “아니 어디서 어떻게 샀길래.” “알 만한 양반이 1억 가까이 주면서, 그걸 비공식 루트로 수집한 모양이야.”


최근 한 원로 미술평론가와 주고받은 말이다. 미술품 감정활동도 하는 그는 “요즘 위작과 달리 정교하지도 않아 더 성질이 나더라고”라며 언성을 높였다. 갤러리 대표가 말을 보탰다. “아직도 그러니, 참 내. 모두가 불신받고 욕먹고…. 하기야 사람 사는 곳, 돈이 오가는 곳에는 늘 위작이 있지. 고대 로마시대에도 그리스 작품을 위조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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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진위 논란 속에 결국 법원의 진품 판결을 받은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 (오른쪽) 이중섭 화백의 ‘물고기와 아이’ 위작.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렇다. 진품(진작)과 위품(위작)은 늘 함께다. 역사적으로나 지금이나, 세계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예술혼을 불태우는 화가들이 있다. 그 화가의 작품을 베끼는 위작 화가도 있다. 유명하고 비싼 작가 작품을 원하는 컬렉터도 있고, 위작을 진품인 것처럼 속여 거래하는 중개상도 있다. 물론 작품의 진위와 가치를 판단하는 감정가도 활동 중이다. 때론 진위 논란도 불거진다. 현대미술 생태계의 일부다.

“멈춰라” “속여주마” 속의 진위 논란

“멈춰라! 교활한 자들아, 노력을 모르는 자들아, 다른 사람의 머리를 날치기하는 자들아! 감히 내 작품에 그 음흉한 손 댈 생각을 마라 (…) 똑바로 듣고 명심하라! 원한 때문이든 욕심 때문이든 (내 판화 위작을 만들고 팔 경우) 모조리 압수되고 그대들의 몸까지 위험할 것이다.”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북유럽의 대표적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1511년 펴낸 판화 연작 ‘성모의 생애’에 남긴 글이다. 예술가로서의 당당한 자의식을 드러내며 작품에 서명을 한 첫 화가로도 불리는 뒤러다운 경고다. 당시 뒤러는 유명했고 그의 작품은 인기가 높아 위작이 거래됐다. 그는 위작 화가와 법적 소송까지 했으나 만족스러운 판결을 얻지 못하자 위작가와 거래 화상들에게 날선 경고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위작은 이어진다. 뒤러와 동시대 작가인 미켈란젤로도 한때 위작을 하지 않았던가. 돈벌이를 위해, 유명 작가만큼 된다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세상을 속이는 쾌감이나 미술계 기득권에 대한 반발 등 위작 이유는 많다. 페르메이르 위작으로 나치의 괴링까지 속인 것으로 유명한 한 판 메이헤런(1889~1947) 등이 대표적이다. 메이헤런 같은 ‘위작의 전설’들은 이후에도 계속 나타난다. “세상이 속기를 원하니, 속여주마”라고 한 로마 페트로니우스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어쩌면 미술품 위작의 역사는 미술품 거래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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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위작 전시회에 나온 ‘모나리자’ 위작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선시대에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였다. <현종개수실록>의 현종 8년(1667년) 10월16일자 기록이 대표적이다. 기사에 따르면, ‘완평부수 홍’은 선조가 그린 대나무 병풍을 한 선비로부터 빌린 뒤 화가로 하여금 베끼게 하고는 진품은 자기가 갖고, 위작을 빌려준 선비한테 줬다. 홍이란 자는 이후 진품을 조정에 진상했다가 결국 위작마저 들통났다. 동아시아 대국이던 중국의 ‘짝퉁’ 실태도 당시 조선에 이미 알려질 정도였다. 유명 미술품의 소장 욕구는 역사적으로 시공을 초월한다. 부와 권력의 상징이자 뇌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위작 사건들에서 보듯 고서화부터 현대 작품까지 가리지 않고 위작은 나온다. 지금의 고미술 시장 침체도 결국 위작 거래에 따른 신뢰 하락이 큰 이유다. 불미스럽지만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만한 사회적 파장을 낳은 사건들도 많다. 2005년의 ‘이중섭 위작 사건’은 진위 논란까지 불붙으며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고, 2800여점의 위작이 확인돼 미술계를 경악시켰다. 작가의 유족까지 관련돼 충격은 더 컸다. 2007년 말~2008년에는 박수근의 ‘빨래터’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한국 대표 작가인 데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작품이라 관심을 끌었다. 외국인 소장가가 방한해 소장 경위 등을 밝혔고, 결국 법원에서도 진품으로 결론이 났다. 진품을 위작으로 만들 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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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동안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냐를 놓고 진위 논란을 빚은 ‘미인도’가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2016년에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대표적 현대미술가 이우환 화백의 유명 시리즈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의 위작 사건도 터졌다.


‘미인도’의 경우 작가는 위작이라 주장했지만 감정가들은 진작이라 판정한 반면 이 화백의 작품은 감정가·위조범들은 위작이라 했지만 정작 작가는 진작이라고 해 큰 파장을 낳았다. ‘미인도’는 2016년 12월 검찰이 “소장 이력이나 안목감정, 과학감정, 전문가 조사 등 수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진품으로 판단된다”고 밝혔고, 법정 소송도 마무리됐다. 이 화백 작품 논란은 2017년 법원이 문제가 된 13점 중 4점을 위작으로 판결하고 관련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대표적인 이들 사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유명 작가의 값비싼 작품이 위작의 대상이다. 명작에 대한 소유 욕망, 더불어 돈이 되기 때문이다. 또 진위 논란이 벌어지면 미술계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 판단으로 결론이 난다. 판사들도 미술계 전문가의 판단을 바탕으로 판결하는데 말이다. 특히 진위 논란은 미술계 내부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한두 마디씩 하고, 이를 언론이 소개하며 더 확대된다. 외국과 달리 장기간의 학술적 검토 등을 통해 진위 논란이 끝나는 게 아니라 ‘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는 풍토 속에 혼란이 가중되고, 이는 미술계와 미술품 감정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감정, 건강한 미술시장 풍토 조성

미술품 감정은 중요하다. 특히 진위감정은 미술시장 유통질서 확립이나 작품의 경제적 가치 등의 핵심 요소이지만 무엇보다 위작이란 주홍글씨를 새기는 일이다. 우리는 외국과 달리 미술품 감정 하면 진위감정을 먼저 떠올리지만, 미술품 감정은 진위감정만이 아니라 작품의 시장가치를 평가하는 시가감정(가격감정), 미술사적 의미 등을 살피는 가치감정도 있다. 최근엔 자산가치 평가나 보험료 책정, 상속·증여 등에 따른 시가감정이 느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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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감정위원들의 미술품 감정 모습.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제공

미술시장의 감정 역사는 50년이 채 안 된다. 고미술품 중심의 한국고미술협회의 감정이 1971년 시작됐고, 근현대미술품은 1981년 한국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가 그 시작이다. 물론 개인 감정가도 있고, 옥션들이 자체 감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인력은 제한적이다. 현재 고미술품 감정은 고미술협회 감정위원회가 주로 진행하며, 현대미술품 감정은 부침의 역사를 거쳐 대표적 감정기관으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매주 다양한 장르 미술품을 진위·시가 감정한다. 연구센터는 미술품 복원·관리 컨설팅 등도 한다. 감정이 의뢰되면 감정위원들이 모여 판정한다. 감정위원 명단은 청탁 예방 등을 위해 공개되지 않지만 미술사가와 평론가, 많은 작품을 다뤄온 30여년 경력의 화랑 대표, 전문 연구자, 작가, 표구·수복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 작가 유족이나 관련자, 특정 작가 연구자가 참여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진위감정의 경우 안목감정, 과학감정으로 나눈다. 안목감정은 감정위원들의 경험과 지식·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감정이다. 작품과 작가의 독특한 기법이나 재료, 채색, 구도, 붓터치나 운필, 서명 등을 분석한다. 특히 기법과 재료는 작가마다 그 특성이 있어 핵심 요소다. 여기에 작품 출처와 소장 이력, 표구 방식 등도 점검된다. 전시회나 경매 자료, 작가·유족의 증언이나 기록물 등도 감정의 근거다. 대부분 만장일치로 진위를 가리지만 의견이 엇갈리면 재감정, 그래도 견해가 부딪치면 진위 판단 불가능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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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감동이 거짓인 거 보단 내 존재가 거짓인 게 나을 수도 있겠다…

과학감정은 X레이나 연대 측정, 안료의 화학적 분석 등을 통한 감정이다. 감정위원들은 대개 과학감정을 안목감정의 보조수단으로 여긴다. 과학감정의 데이터도 결국 사람이 해석하는 데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어도 안료 배합 등 작품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등 여러 한계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위작도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만큼 오히려 안목감정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물론 안목감정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계는 있다.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감정만으로 먹고살기 힘든 미술계 실정에서 감정 전문가들의 가장 큰 보람, 기쁨은 바로 미공개된 명작의 발굴이다.


그동안 진위감정 결과가 정리된 것은 2013년 당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펴낸 통계가 있다. 2003~2012년 감정한 작품은 모두 5130점(작가 562명)인데 그중 26%가 위작이다.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이 최상위인 작가들의 작품 감정 의뢰가 많았다. 천경자,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이대원, 이우환, 김종학, 이응노, 김기창, 장욱진 등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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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기 선임기자

이 중 위작 판정이 가장 많은 작가는 이중섭으로, 의뢰된 187점 중 108점이 위작이었으며, 박수근의 경우 247점 중 94점이었다. 사실 시중에 떠도는 위작은 감정을 받지 않거나 감정서를 위조한 경우이며, 화랑이나 경매 등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거래된다.


위작, 진위 논란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여전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위작 출현을 최대한 줄이고 감정에 대한 신뢰를 높여 진위 논란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위작의 엄정한 처벌, 무자료 밀실거래 대신 투명한 거래를 통한 소장 이력서 상용화 등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작가들의 전작 도록(카탈로그 레조네), 아카이브 구축도 중요하다. 컬렉터의 안목 키우기, ‘살바토르 문디(구세주)’ 같은 작품으로 ‘대박’을 노리는 것을 지양하는 게 위작 피해를 막는 일이다. 같은 작가라도 작품마다 가치가 다른데 작품보다 작가 이름값을 중시하는 풍토의 변화도 요구된다. 진정한 미술애호가라면 ‘위작이 없는’ 동시대 젊은 작가 작품을 통해 작가를 지원하고 함께 성장하며 작품 가치도 높이는 일을 할 만하다.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인 기대일까?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