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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플랫

“태어나서 (힘으로) 져본 적 없다” ‘근수저’ 김민경의 고백에 열광하는 이유

by경향신문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지난 1월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맛녀석) 5주년 기자간담회에선 운동 프로젝트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의 첫번째 주자 선발이 있었다.


코미디언 김민경·김준현·문세윤·유민상 등 4명의 출연자 중 책상 위에 놓인 아령을 들지 못한 1인이 그 주인공이었다. 쉽게 아령을 들어올린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책상에 단단히 고정된 아령을 택한 김민경이 보인 모습은 놀라웠다. 아령을 손잡이 삼아 책상을 한 손에 번쩍 들어올린 것이다.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아서왕의 모습이 이랬을까. 어쨌거나 이날 그 누구도, 김민경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훗날 PD가 김민경 앞에 (진짜) 무릎을 꿇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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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0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 호텔에서 열린 <맛있는 녀석들> 방송 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오늘부터 운동뚱> 첫 참가자 ‘복불복’에 당첨된 김민경이 책상을 통째로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그래픽|이아름 areumlee@khan.kr

‘시켜서 한다’라는 타이틀처럼 <운동뚱>은 다이어트 프로젝트가 아니다. ‘운동으로 더 건강해져서’ 오래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운동뚱에 당첨된 김민경은 ‘절대로 와선 안 될 곳’에 온 듯 어색한 표정으로 헬스장에 들어섰다. 숨쉬기 운동 외에 운동은 처음이라고 했다. ‘몸짱’ 연예인들의 헬스 코치로 유명한 양치승 관장의 혹독한 트레이닝에 그의 입은 “첫날인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못하겠어요”를 연신 외쳤다.


하지만 몸이 문제였다. 레그익스텐션, 스탭박스 운동 등 이름도 낯선 운동을 ‘입력값을 넣으면 출력값이 나오듯’ 척척 해냈다. 그 덕에 첫회 만에 ‘로보캅’이란 별명을 얻었고, 양 관장 입에선 “타고났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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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의 서브 콘텐츠 웹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의 프로젝트 첫 주자는 코미디언 김민경이다. 그는 뛰어난 힘과 신체 조건·운동 이해력을 모두 가진 ‘근수저’로 통한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맛녀석>의 서브 콘텐츠로 출발한 웹예능 <운동뚱>은 21일 기준 유튜브 평균 조회수 191만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시청자들은 재미요소 중 하나로 ‘민경 유니버스(세계관)’를 꼽는다. 뛰어난 힘과 신체조건·운동 이해력을 모두 가진 ‘근수저’이지만 자신의 운동능력을 김민경 본인만 모르는, 전형적인 소년스포츠물 서사라는 것이다.


해머 체스트프레스 80㎏, 레그익스텐션 196㎏ 등 매회 기록을 경신하면서도 김민경은 “이게 잘하는 거라고?”라며 어리둥절해한다. “(힘 때문에) 사람이 다칠까봐 그 무서움에 터치조차 못했다” “태어나서 (힘으로) 져본 적이 없다”는 김민경의 뒤늦은 고백은 그의 재능 발견을 더욱 빛나게 했다.


김계란·심으뜸·말왕 등 운동 유튜버들은 김민경의 관절 가동 범위와 자세 등을 지적하며 “욕심이 난다”고 입을 모았고, 시청자들은 여기에 맞장구를 치며 “체육 대신 제육, 운동 대신 우동을 선택한 아까운 인재” “태릉이 빼앗긴 금메달리스트” 등의 댓글로 민경 유니버스를 더욱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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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뚱> 을 통해 생애 첫 운동에 도전한 김민경은 해머 체스트프레스 80㎏, 레그익스텐션 196㎏ 등 매회 기록을 경신하면서도 “이게 잘하는 거라고?”라며 어리둥절해한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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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낯선 운동을 ‘입력값을 넣으면 출력값이 나오듯’ 척척 해내는 김민경의 모습에 ‘로보캅’이란 별명을 붙었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프로그램의 인기에 당초 10회 헬스 도전을 약속했던 PD는 “<운동뚱>을 계속하자”며 결국 김민경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후 종합격투기, 필라테스에 도전한 김민경은 “또 잘해버리고 말았다”고 탄식하면서도 엄청난 습득력으로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여성의 운동은 자연히 다이어트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 김민경은 ‘날씬한 몸’이 아닌 ‘건강한 몸’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겼다.


한 시청자는 “<운동뚱>을 보고 운동을 시작했다”며 “여자 몸무게는 50㎏을 넘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운동하는 재미를 알게 한 소중한 프로그램”이란 시청후기를 남겼다. 또 다른 시청자는 “마른 여성들 사진을 볼 땐 다이어트 자극은커녕 자존감만 더 낮아졌는데 운동하고 맛있게 먹고 즐기는 모습에 운동 의욕이 더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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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운동뚱> 의 재미요소로 ‘민경 유니버스(세계관)’를 꼽는다. 자신의 운동능력을 김민경 본인만 모르는, 전형적인 소년스포츠물 서사라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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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체육 대신 제육, 운동 대신 우동을 선택한 아까운 인재” “태릉이 빼앗긴 금메달리스트” 등 유튜브 채널에 댓글을 남기며 ‘민경 유니버스’를 더욱 공고히 했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이처럼 <운동뚱>은 김민경의 재발견이자, 여성의 몸에 대한 재발견이다. 2008년 KBS 공채 23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민경은 <개그콘서트>에선 빛을 보지 못했다. 비만이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인 코미디 무대에서 과체중 여성 코미디언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품처럼 쓰이기 일쑤였다. 인기 코너 ‘생활의 발견’에선 신보라·송준근이 헤어지는 연인을 연기할 때 대사 하나 없이 뒤에서 열심히 먹기만 했고, 코너 ‘만수르’의 만수르(송준근) 딸 ‘마르다’ 캐릭터를 연기할 땐 “마르지도 않았는데 마르다가 뭐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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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이후 종합격투기, 필라테스에 도전한 김민경은 “또 잘 해버리고 말았다” 탄식하면서도 엄청난 습득력으로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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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운동은 자연히 다이어트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 김민경은 ‘날씬한 몸’이 아닌 ‘건강한 몸’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긴다.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캡쳐

최근 노숙인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 표지 모델로 참여한 김민경은 인터뷰에서 “나를 보고 운동을 시작했다는 분이 많더라. 사람들이 나를 보며 힘을 얻어서 운동하고 건강해지는 선순환이 참 좋다”고 말했다. <맛녀석>을 통해 ‘민경장군’으로 불리며 자신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렸지만, 이 역시 ‘먹방’(먹는 방송)이란 영역에 국한된 이미지 변신이었다.


김민경은 “예쁘다” “똑똑하다”는 말을 <운동뚱>을 하며 마흔 평생 처음 들었다고 말한다. 비만인에 대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깬 <운동뚱>이야말로 ‘재발견’이란 단어에 딱 들어맞는 도전이 아닐까.


‘버스 손잡이를 나도 모르게 훅그립으로 잡고 있다.’ ‘주문한 생수 택배가 오면 번쩍 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역도 경기 생중계가 너무 재미있다.’


역도에 중독된 여성들이 바벨을 들어 올렸을 때 희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