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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성큼 다가온 ‘전기 비행기’ 시대…‘배터리 성능 향상’ 넘어야 할 산

by경향신문

엔진 대신 모터 사용해 조용하고 배출가스도 없어 온난화 방지

“중대형 여객기는 리튬이온 뛰어넘는 새 소재 배터리 개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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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비행 첫 성공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시험 비행에 성공한 ‘e캐러밴’ 은 최대 9명을 태울 수 있어 현재로선 세계 최다 탑승 전기 비행기이다. 매그니엑스사 제공

바다에 접한 인천국제공항과 달리 대규모 주거단지가 인접한 김포국제공항 주변에선 비행기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이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다. 비행기 이착륙 시에는 야외에서 일상적인 목소리 크기로 대화하기 쉽지 않고, 집 안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음량을 키우는 일이 다반사다. 여름에도 창을 활짝 열어놓기 어렵다. 조용한 주택의 소음은 40㏈(데시벨) 수준인 데 비해 제트엔진의 소음은 무려 120~140㏈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운항 횟수를 줄이거나 운항 지역을 분산시키는 것 외에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최근 세계 과학계와 기업들이 제트엔진보다 훨씬 조용한 ‘전기 비행기’ 개발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전기 비행기는 모터를 쓴다. 전기 모터만 달고 있거나 가솔린 엔진과 함께 탑재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소음이 너무 적어 보행자 안전을 위해 일부러 엔진 소리를 녹음해 외부 스피커로 내보내는 모델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모터는 엔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소음 감소는 공항 주변 주민뿐만 아니라 승객과 승무원의 안락한 비행에도 도움이 된다.


더 근본적인 시각에서 보면 전기 비행기는 지구온난화를 줄일 중요한 수단이다. 제트엔진을 주로 쓰는 상업용 비행기가 현재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이다. 하지만 2050년에는 24%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과학계에선 나온다. 이런 전망을 바꾸기 위해선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는 전기 비행기 개발이 필수이다. 특히 국제사회는 2027년부터 비행기 배출가스를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협약을 맺었다. 배출가스를 줄이자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전기 비행기를 보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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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모터 12개와 큰 모터 2개가 장착된 전기 비행기 X-57. 날개가 좁고 얇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이런 배경 속에서 2~3년 전부터 속도가 붙던 전기 비행기 개발 움직임은 올해 상용화 목전까지 이르고 있다. 가장 괄목한 만한 성과를 보인 건 미국 항공기 엔진업체 매그니엑스가 내놓은 ‘e캐러밴’이다. 모두 9명이 탈 수 있어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태우는 전기 비행기이다. 엔진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전기 모터만을 사용하며 5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에서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e캐러밴은 경비행기 시장의 대표작인 세스나기의 엔진을 들어내고 모터를 넣었다.


세계 주요 항공엔진 회사인 영국의 롤스로이스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12월 ‘악셀’이라는 이름의 전기 비행기를 공개하며 시속 480㎞ 이상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개발 중인 전기 비행기 가운데 가장 빠른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전기 비행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X-57’이라는 비행기인데, 기존 다른 비행기보다 날개 폭이 좁고 작은 모터 14개에 연결된 프로펠러가 달려 있어 형태가 이색적이다. 독일 등에서도 개발에 뛰어들고 있어 전기 비행기 시장은 ‘블루오션’이 됐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공항에 나가 전기 비행기에 올라타는 일이 현실이 되기까진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모터에 동력을 공급하는 배터리의 성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무게 1㎏당 뿜어내는 힘인 ‘에너지 밀도’를 보면 리튬이온배터리는 제트엔진에 들어가는 항공유의 50분의 1이다. 같은 무게라면 배터리가 가진 동력은 항공유의 2%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제트엔진과 같은 힘을 내려면 엄청나게 많은 배터리를 비행기에 실어야 하는데, 이래서는 이륙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리튬이온배터리 대신 더 많은 전기를 저장하는 새로운 소재의 배터리를 만들거나 수소 등을 활용하는 연료전지를 탑재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로선 단기간에 기술적인 돌파구를 만들기는 어려운 과제다. 10명 내외 승객을 태우는 소형 경비행기를 넘어 수백명이 타는 중대형 여객기가 전기 모터를 달고 하늘을 가르는 건 당장은 힘들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중대형 여객기는 일단 모터와 제트엔진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과학계의 전망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압박이 발목을 잡고 있다. 유럽 에어버스사가 2017년부터 추진하던 ‘e팬-X’ 사업이 올해 중단된 게 대표적이다. 100인승 하이브리드 항공기를 2021년에 시험비행시킨다는 이 계획은 기술적인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 투자가 문제로 떠오르면서 ‘스톱’됐다. 하지만 온난화가 가중되고 있고 전기 비행기 보급으로 소음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큼 과학계와 각 기업의 기술 개발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