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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지극히 味적인 시장 (33)]

쌉쌀 머위·달콤 토마토·단짠 ‘막장’…기찻길 따라 선 ‘맛남’의 장

by경향신문

춘천 오일장

경향신문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물의 도시 춘천 오일장에는 맛있는 쓴맛을 머금은 머윗대가 차고 넘친다(왼쪽 사진). 대추토마토는 껍질이 얇아 씹기 편하고 과즙이 팡팡 터진다(가운데). 색은 거무칙칙해도 묵직한 감칠맛을 품은 강원도의 된장인 ‘막장’(오른쪽).

기차 타고 떠난 춘천…그곳엔 추억 서린 철길 따라 기차처럼 장이 선다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만 있는 건 아니다…강원도 된장 ‘막장’으로 만든 장칼국수, 기가 막히다

시장 위쪽 고개엔 주변 농산물로 한 그릇 요리 만들어내는 로컬푸드 식당도 발길 잡는다


7~8년 전 춘천 가는 열차를 예매한 적이 있다. 어렵게 2층 객차도 예매했지만 작은 실수로 잔소리를 조금 들었던 여행이었다. 차를 주로 이용하는지라 기차 여행은 생초보. 춘천에는 춘천역과 남춘천역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춘천이니 춘천역으로 예매를 했다. 여행 당일 기차에서 내리니 새로 생긴 춘천역 주변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하니 남춘천역 근방이라 한다. 남춘천역으로 택시 타고 가는 동안 벌판은 도시로 바뀌었다. 아내와 딸아이의 혀 차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렸다. 추억 어린 남춘천역과 춘천역 사이 철길 중에 고가 구간이 있다. 그사이 기찻길 따라 기차처럼 길게 장이 선다. 매달 2, 7일이 낀 날에 춘천 가는 기차를 타면 흥과 정이 오가는 오일장을 덤으로 만날 수 있다.


남춘천역을 나와 기찻길 아래로 조금만 걸으면 약 600m의 길이의 시장 입구가 나온다. 남춘천역 방향에서 시장으로 접어들면 식당부터 반긴다. 시장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 잔치국수며,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올챙이국수, 메밀전병이 장 보러 오는 이를 유혹한다. 오일장이 주말에 열릴 때는 말 그대로 사는 이와 파는 이로 파시(波市)를 이룬다고 한다. 평일 열릴 때보다는 훨씬 볼 것도, 살 것도 많다고 한다. 서울 인근의 양평장도 주말 장이 서면 똑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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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2일과 7일에 남춘천역과 춘천역 사이 기찻길을 따라 길게 오일장이 열린다. 로컬푸드로 한 그릇 담아낸 ‘어쩌다 농부’의 농부네소보로텃밭. 철판이 아닌 숯불에 구워먹는 춘천닭갈비(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제철 식재료가 눈에 띄었다. 가장 많이 띈 것은 머윗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집 건너 팔 정도로 자주 보였다. 삼삼오오 모인 할머니들 사이에서 누구는 입으로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부지런히 머윗대 껍질 벗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봄철 머위 꽃망울은 튀겨 먹고 억세지 않은 잎은 쌈으로 먹는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5월에는 자른 머윗대는 껍질 벗겨서 다양한 요리로 먹는다. 머윗대는 살짝 쓴맛이 매력이다. 초여름에 들깻가루 넣고 끓인 것도 좋고, 얼큰하게 끓인 육개장에서는 고기보다 맛난 식감이 나는 식재료다. 게다가 물기 많은 어디든 심어 놓으면 저절로 자라니 농촌에서 머위는 손 바쁜 시기에 간단하게 반찬 삼을 수 있는 유용한 채소다. 머위는 습하고, 그늘지며 서늘한 곳에서 잘 자란다. 더위에는 약하지만, 추위에는 강해 별문제가 없으면 이듬해 싹이 나 다시 자란다.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물의 도시 춘천이기에 맛있는 머윗대가 오일장에 차고 넘친다.


시장을 나서는 필자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다. 머윗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다음으로 많은 것이 토마토와 방울토마토다. 6월 춘천의 토마토는 달다. 한겨울 남녘에서 나던 토마토는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남부 지방에서 시작해 충청도를 거쳐 한여름에는 강원도에서 주로 난다. 기온이 더워지면 춘천을 비롯한 영월, 정선 등지에서 난다.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는 뜨거운 한여름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화천을 비롯한 양구, 평창, 인제에서 토마토가 난다. 8월 초 화천에서 토마토 축제가 열리는 것도 토마토 제철 산지이기 때문이다. 토마토는 주먹만 한 크기의 둥근 모양으로 색은 빨간색이다. 어느 날 미니 토마토가 방울토마토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작은 토마토는 대추 모양의 토마토로 진화했다. 근래에는 토마토가 빨갛다는 상식을 깨버리는 노란색과 주황색의 방울토마토가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다른 방울토마토보다 껍질이 얇아 씹기 편하고 과즙이 팡팡 터진다. 방울토마토는 일반 토마토보다 먹기도 좋거니와 당도도 좋아 인기몰이 중이다. 토마토에는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풍부해 요리에 흔히 사용한다. 카레 만들 때 토마토즙을 넣으면 카레 맛이 풍부해진다. 방울토마토 300g의 칼로리는 약 48㎈로 300㎈의 공깃밥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낮다. 다이어트 식품의 단점은 맛이 없다는 것이다. 여름철 식이조절이 필요하다면 방울토마토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맛까지 좋으니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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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담근 막장과 시래기를 넣고 끓여 구수한 장칼국수.

시장 안에 검은빛을 띤 강원도의 된장 ‘막장’이 눈에 띄었다. 된장과 간장을 분리할 때 간장을 덜 뺐기 때문에 거무칙칙한 생김새다. 색이 그래도 맛은 강원도답게 묵직한 감칠맛을 품고 있는 것이 꽤 매력적이다. ‘단짠단짠한’ 맛이 있어 쌈장 만들기도 좋고 장을 풀어 칼국수 끓이면 천하일미다. 오일장에서 춘천호 방향으로 길을 잡아 운전해서 조금 가다 보면 칼국숫집이 하나 나온다. 직접 담근 막장과 시래기를 넣고 끓인 기가 막힌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막장과 시래기의 조합이 봄철 바지락의 감칠맛과 견주어 떨어지지 않는다. 바지락에는 없는 구수함 때문에 어찌 보면 한 수 위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태백산맥 너머 속초의 얼큰한 장칼국수와 다른 모양새다. 장칼국수와 직접 만드는 만두의 조합은 최강이다. 춘천 하면 막국수지만 장칼국수 또한 춘천을 대표하는 맛이다. 옛날손장칼국수 (033)253-5565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 실제 지명은 조양동, 서울 명동처럼 쇼핑과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본 이름보다는 별칭인 명동으로 더 불리고 있다. 철판에 갖은 채소와 닭고기를 볶아 먹는 춘천식 닭갈비 골목과 중앙시장이 이웃해 있다. 시장 위쪽으로는 작은 고개가 있다. 이름은 육림. 고개 주변으로 개성 가득 품은 식당, 카페가 모여들면서 춘천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되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돌다 보면 춘천 시내를 품듯이 바라보고 있는 고즈넉한 죽림동 성당도 만날 수 있다.


여러 식당과 카페가 있지만 그중에 ‘어쩌다 농부’라는 곳을 선택했다. 필자의 오일장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것이 ‘로컬푸드’다. 어쩌다 농부에서는 춘천과 주변 시·군에서 나는 농산물을 한 그릇의 요리에 담아낸다. 점심 메뉴로 ‘농부네소보로텃밭’을 주문했다. 채소 샐러드와 소보로빵이 부서진 듯한 모양새의 고기볶음, 그 위에 살포시 달걀 프라이를 얹은 모양새의 음식이 나왔다. 따로 주는 간장 소스를 조금씩 비벼서 먹어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소스를 다 넣고 비볐더니 먹는 데 조금 짰다. 어디든 말 잘 들어서 손해 보는 예는 없다. 저녁이라면 지역에서 생산한 맥주에 가볍게 한잔하면 좋을 듯싶다. 식당을 나오면 주변에 디저트 파는 곳이 많다. 그중에서 닭갈비빵을 선택했다. 밀가루 반죽에 팥, 커스터드, 생크림, 치즈를 소로 넣은 모양새만 다른 특산물 빵들이 차고 넘친다. 육림 고개 닭갈비빵은 모양새도 닭갈비가 아니다. 닭갈비로 모양새를 낼 수 없으니 닭 모양이 아닐까 싶지만 그도 아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지만 춘천 닭갈비빵에는 진짜 닭갈비가 들어있다. 종류는 매운맛과 크림맛이 있다. 두 개 다 맛을 보니 중간이 있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맛을 크림의 고소한 맛이 달래줬다. 어쩌다 농부 010-8443-9012, 춘천닭갈비빵 동감 010-7477-4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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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지만 춘천 닭갈비빵에는 진짜 닭갈비가 들어있다

닭갈비의 고장 춘천에는 채소와 닭고기를 철판에 볶아 먹는 방식과 닭고기만 숯불에 구워 먹는 방식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 방식 중에서 숯불구이를 좋아한다. 닭갈비를 먹는 이유는 닭을 먹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철판에 볶는 방식은 먹다 보면 채소 더미에서 고기 찾는 젓가락 모양새라 가끔 자괴감이 들어 잘 안 먹는다. 춘천 시내에 있는 이 집은 서너 번 정도 갔을 듯싶다. 처음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사람이 아무리 바빠도 밥을 밥솥에서 퍼준 점이다. 퍼 놓은 밥이 없어서 그랬나 싶었는데 두 번째 갔을 때도 같았다. 밥상 위의 주인공인 밥을 제대로 대우한다면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다. 닭갈비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밥이 맛없으면 마무리가 영 찜찜하다. 오랜만에 갔을 때도, 최근에 갔을 때도 이 집은 한결같았다. 방송을 탄 덕분에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도 여전히 맛있는 밥을 내줬다. 닭갈비 맛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기본이 충실한 곳이다. 원조 숯불닭갈비집 (033)257-5326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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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