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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5)

영화 ‘인디펜던스데이’ 속 서울시 크기만 한 우주선…지구에 추락한다면 충격은 얼마나 될까

by경향신문

외계인은 어디에

경향신문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리써전스> 포스터

은하 속 통신 가능한 외계문명

20 ~ 50,000,000개 추정

가장 가까운 문명도

신호 탐색하는 데만 3천년 걸려


사상 최초의 핵무기 실험 때 종잇조각을 날려 그 위력을 추정했던 천하의 페르미에게도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이 있었다. “대체 외계인은 어디 있는 거야?” 일화에 따르면 1950년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산책하다가 페르미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우주에는 은하가 수천억개 있고 은하마다 다시 수천억개의 별이 있다. 이 우주에 그렇게 많은 별이 있다면 그중에는 분명히 지구 같은 행성을 품은 태양 같은 별이 꽤나 많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인간만큼 또는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외계 생명체가 적지 않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일부는 아주 수월하게 우주여행을 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우주 구석구석에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추정 또한 ‘페르미 추정’의 아주 간단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아직 우리는 단 한 명의 외계인을 만나거나 적어도 그들의 신호를 받지 못했을까? 대체 외계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이 페르미가 제기한 의문의 요지로서, 이 문제는 ‘페르미 역설(Fermi’s paradox)’로 알려져 있다.


페르미 역설이 역설의 지위를 가지려면 일단 이 우주에 고등문명을 건설한 외계인이 상당히 많아야 한다. 얼마나 많을까? 바로 이 질문에 페르미 추정법을 적용해 보자. 문제를 간단히 하기 위해 외계문명도 우리처럼 별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행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먼저, 우리 은하부터 살펴보자면, 우리 은하수 은하에도 수천억개의 별이 있다. 나이가 어린 별들은 고도의 문명을 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므로 자격이 없다. 아주 오래전 고도의 문명을 건설(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그렇다)했다가 멸망한 외계인들도 우리와 접촉할 길이 없으므로 제외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주에 의미 있는 신호를 보낼 수준의 고등문명을 건설하고 유지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진 별들만이 고려 대상이다. 이런 지적생명체를 ‘체티(CETI·Communicating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라 한다.


체티는 우리 은하에 몇 개나 있을까? 과학자들은 가능하면 잘게 쪼개서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고등문명을 충분히 성숙시킬 만큼 시간을 가진 별의 개수는,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매년 생성되는 별의 개수(R*)에 고등문명이 유지되는 기간(L)을 곱하면 될 것이다. 문자가 등장했다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첫걸음은 기호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그냥 영문약자일 뿐이다. R*는 별(*)이 매년 생성되는 비율(Rate)의 약자이고 L은 문명존속기간(Longevity)의 약자에 불과하다.


시간이 오래된 별이라고 해서 모두 고등문명이 발전한 행성을 품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잘게 쪼개서 살펴보자. 일단 별이 행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별 하나가 행성을 가질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 비율을 fp라 하자. 그렇다면 (R*L)개의 별 중에서 (R*L)fp개의 별만이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다. 행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행성에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별 하나당 생명이 있을 법한 행성의 개수를 ne라 하면 (R*Lfp)ne는 생명이 있을 법한 행성의 총 개수가 된다.


행성의 환경이 생명에 친화적이라고 해서 모두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생명친화적인 행성에서 실제로 생명이 탄생하는 비율을 fl이라 하면 (R*Lfpne)fl은 실제로 생명이 발생한 행성의 총 개수가 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명이 탄생해도 예컨대 세균 정도에서 진화가 끝나버리면 지적생명체가 발생할 수 없다. 생명체가 행성에서 태어났을 때 과연 그중에서 몇 개의 행성이 지적생명체를 진화시킬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 비율을 fi라 하면 (R*Lfpnefl)fi는 지적생명체를 진화시킨 행성의 개수와 같다.


마지막 질문. 과연 모든 지적생명체가 외계와 통신이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켰을까? 필요하다면 여기에도 새로운 비율 fc를 도입하면 된다. 지적생명체 중에서 외계와 통신할 수 있는 고등문명의 비율이다. 이 모든 모수들을 곱하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즉 우리 은하에서 통신 가능한 외계문명의 개수 N=R*Lfpneflfifc이다. 이 식을 드레이크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미국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1961년에 처음 제시했다. 그 당시의 추정치를 보자면 R*=1(매년 1개의 별 생성), fp=0.2~0.5(전체 별의 20~50%가 행성 보유), ne=1~5(별 하나당 1~5개의 생명친화적 행성 보유), fl=1(생명친화적 행성은 모두 생명을 탄생시킴), fi=1(생명이 탄생하면 모두 지적생명체를 진화시킴), fc=0.1~0.2(지적생명체 중 10~20%가 외계와 통신 가능한 고도의 문명을 발달시킴), L=10³~108년(고등문명이 1000~1억년 지속됨)의 값을 대입해 N=20~50,000,000의 결과를 얻었다. 최소 수십개에서 최대 수천만개까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이 아주 엄밀한 결과를 주는 식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근거로 대략적인 추론을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결과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영국 노팅엄대학의 톰 웨스트비와 크리스토퍼 콘셀라이스는 변형된 드레이크 방정식을 이용해 지난 6월 초 통신 가능한 외계문명 개수의 최소치를 36개로 제시했다(The Astrophysical Journal, 896:58). 오차가 아주 크긴 하지만(+175-32) 꽤 희망적인 숫자이다. 다만 가장 가까운 문명도 최대 1만7000광년 떨어져 있으며 이들의 신호를 탐색하는 데에만 30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아마도 이 결과는 페르미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는 아주 엄격한 조건을 적용한 결과여서 조건을 조금 느슨하게 적용하면 체티의 수도 늘어나고 거리도 줄어들며 접촉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진다.

경향신문

지름 24㎞, 서울 면적의 4분의 3

영화 속 이 거대한 우주선의

질량과 밀도를 추정해 봤을 때

핵폭탄 1만개 맞먹는 재앙


실제 고등문명의 외계인을 만나기 어렵다면 영화 속 외계인으로 눈을 돌려 보자. 영화 속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외계인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압도적인 스케일을 선보인 외계인은 영화 <인디펜던스데이>에서 만날 수 있다. <인디펜던스데이>의 외계인은 자신들이 몰고 온 우주선의 어마어마한 크기만으로도 영화 속에서나 밖에서나 모든 지구인을 경악시켰다. 물리학자들은 그런 엄청난 구조물을 보면 일단 얼마나 큰지,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페르미 추정법을 동원해 계산부터 해 보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의 코스타스 에프티미오와 랄프 르웰린이 2006년 아주 재미있는 분석을 한 적이 있다(arXiv:physics/0608058).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지구방위군의 반격으로 외계인들의 우주선을 격침시키면 곧바로 인류에게 재앙이 닥친다.


먼저, 영화에 따르면 우주선은 대략 납작한 원반 모양이고 그 지름이 무려 24㎞에 달한다. 서울에서 24㎞의 거리를 가늠해 보자면 남북으로는 관악산에서 북한산까지, 동서로는 군자역에서 김포공항까지 정도이다. 우주선 하나가 서울의 대부분을 덮는다는 얘기이다. 실제 우주선의 원형 단면적을 계산해 보면 약 452㎢로서 서울시 면적(약 605㎢)의 4분의 3에 달한다. 이 우주선의 둘레(원주)는 75.4㎞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지하철 순환선 중 하나인 서울지하철 2호선의 을지로순환선 길이가 48.8㎞(지선 포함 총연장은 60.2㎞)이다. 그러니까 우주선 내부에 을지로순환선 하나를 넉넉하게 깔 수 있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이 지상으로 추락하면 얼마의 에너지를 방출하는지 추정해 보자. 우선 중·고등학교 수준의 공식을 하나 소개하자면, 어떤 물체가 지상의 일정한 높이에 있을 때 그 물체가 가지는 에너지는 그 물체의 질량과 지면으로부터의 높이와 중력가속도(=9.8m/sec²)의 곱으로 주어진다. 에프티미오와 르웰린은 우주선이 지상 약 2㎞ 상공에 떠 있다고 가정했다. 우주선의 질량은 얼마일까? 질량은 부피와 밀도의 곱으로 계산할 수 있다. 원반형 우주선의 부피를 알려면 우주선의 두께를 알아야 한다. 저자들은 영화를 보면서 우주선의 두께를 약 1㎞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우주선의 부피는 대략 450㎦, 즉 4.5×1011㎥이다.


마지막으로 우주선의 밀도를 추정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물의 밀도는 ㎥당 1000㎏이다. 지구의 평균 밀도는 물의 약 5.5배, 철은 약 8배, 구리는 약 9배이고 가벼운 금속인 알루미늄이 물의 약 2.7배이다. 두 저자는 외계인의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우주선의 재질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지구상의 금속보다 매우 가벼워 밀도가 물과 같다고 가정한다. 그렇게 큰 구조물을 만들어 머나먼 우주를 가로질러 올 정도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주선의 모든 부피를 이 신비의 외계물질로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의 모든 내부 공간이 철판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저자들은 대략 우주선 전체 부피의 10% 정도만 밀도가 물과 같은 외계물질로 채워졌다고 가정했다.


결론적으로 우주선의 질량은 아주 대략적으로 차수만 생각하면 1011×10%×10³㎏=1013㎏이다. 여기에 우주선이 떠 있는 높이(2000m)와 중력가속도를 곱하면 이 우주선이 가지는 에너지(중력퍼텐셜)는 대략 1017J(줄)이다. 페르미가 종잇조각을 날려 추정한 핵무기의 위력이 대략 재래식 폭약(TNT) 1만t으로, 줄로 환산하면 약 1013J이다. 그러니까 우주선 한 대가 추락하면 히로시마급 핵무기 약 1만개의 충격을 받게 된다. 지면 근처에서 대형 우주선을 공격해 격추하는 방법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종필 교수

경향신문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해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 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