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 완결 …‘어떤 시대의 끝 ’

[컬처]by 경향신문

독자와 함께 14년

아쉽거나 억울할 건 없다, 새 시대의 숙제가 시작된 것뿐이다

경향신문

네이버웹툰 가 1229편의 에피소드를 끝으로 14년의 연재를 종료했다. 누적 조회수는 70억건, 댓글은 1500만건을 기록한 이 웹툰은 비교적 후발 주자인 네이버웹툰이 빠르게 브랜드를 알린 데에도 일조했다. 웹툰 화면 캡처

네이버웹툰 <마음의 소리>가 끝났다. 2006년부터 연재했으니 햇수로는 14년이 걸렸고, 마지막 화 기준 1229편의 에피소드가 독자들과 만났다. 초등학교 1학년이 성인이 될 시간이다. 네이버웹툰이 밝힌 바에 따르면 누적 조회수는 70억건, 댓글은 1500만건. 지난 5월 완결한 <호랭총각>, 2011년 9월부터 2기로 분위기를 바꿔 현재까지 연재 중인 <히어로메이커>와 함께 네이버웹툰을 대표하는 장수 콘텐츠이자 연재 10주년을 맞아 3주간 휴재한 걸 제외하면 워낙 휴재나 마감 지연이 없던 걸로 유명했던 작품인 만큼, <마음의 소리> 완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처럼 보인다. 단순 성실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포털 다음이 웹툰 시장에서 명백히 더 우위였던 시절, 비교적 후발주자였던 네이버웹툰이 빠르게 브랜드를 알린 데에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 <노블레스>와 함께 <마음의 소리>의 공이 지대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네이버웹툰 측에선 ‘마음의 소리 땡큐소머치’라는 감사 배너를 달아 작품의 완결을 기념했고, <연애혁명>의 232, <유미의 세포들>의 이동건, <전자오락수호대>의 가스파드 등 네이버웹툰을 대표하는 인기 작가들의 축전이 이어졌다. 평생 이어질 것 같았던 인기작의 연재가 끝나는 것을 보며 <마음의 소리>의 팬이든 아니든 격세지감을 느낄 법하다. 이렇게 한 시대가 마감됐다.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이번 마지막 화에서 작가는 이렇게 술회한다. “개그 만화를 그리며 배운 게 있습니다. 남을 웃기려고 그렸고 그래서 웃으면 모두 행복하지만 웃기지 못하면 누군가를 화나게 할 수도 있단 걸요. 웃어준 모든 독자분들께 고맙고 화가 났던 분들에겐 미안합니다.” 그가 정확히 누굴 어떻게 화나게 했고, 미안하다는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그는 2015년 5월 연재한 ‘너:나’ 편에서 이상한 여성의 조건 중 하나로 ‘페미니즘’을 언급해 큰 비판을 받았고,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또 그 이듬해 ‘개그 만화 그리기 나쁜 날’에서 만화에 대한 잣대가 너무 세밀해지고 불필요한 오해로 이어지는 고충을 토로하던 중에 소위 ‘불편러’들의 높아진 윤리적 기대치까지 부정적으로 풍자하다가 역시 비판적인 반응을 얻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의 소리>가 개그 만화의 새 영역을 열었지만, 만화 바깥의 세상도 빠르게 변해갔으니까. 과거 <마음의 소리>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뒤를 이어 이말년과 귀귀가 등장했을 때 이들 특유의 조금은 뜬금없는 개그 패턴을 유형화해 총칭한 ‘병맛’이란 개념은 발화자의 의도와 별개로 이젠 그것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것이 대중문화 텍스트 독해의 중요한 관점을 형성하면서, 이들 개그에 내재해 있던 남성 커뮤니티 특유의 정서와 통념은 ‘병맛’이라는 단어가 그러하듯 숨겨진 폭력적 맥락을 드러냈다. 그에 대한 비판 때문에 과거에 비해 개그 만화를 그리기 어려워진 건 사실일지 모르지만, 또한 윤리적 감수성이 올라간 사회에서 더는 어떤 종류의 개그 코드에 대해 웃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작가가 말한 ‘웃기지 못하면 누군가를 화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다행히 조석은 귀귀가 그러했듯 억울함의 함정에 빠져 누군가를 더 화나게 하는 것에 스스로의 재능을 낭비하진 않았다.


우연이겠지만 ‘개그 만화 그리기 나쁜 날’에서 개그 만화에 대한 비판 때문에 2화부터 사과문을 줄줄이 올리다 후기에 대해서까지 사과문을 올리는 가상의 미래는 2020년이다. 작가가 개그 만화 그리기 어렵다고 토로 혹은 투덜대는 중에도 4년 동안 <마음의 소리>는 연재됐고, ‘그’ 2020년이 왔어도 반년을 채웠다. 조석이 4년 전 엄살을 피웠던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개그 만화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졌다. 이제 더는 <마음의 소리>나 <이말년 씨리즈> <선천적 얼간이들> 같은 정통 개그 히트작은 나오지 않는다. 웹툰의 심의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네이버웹툰 상위권을 채우는 <외모지상주의> <프리드로우> <연놈> <랜덤 채팅의 그녀> <싸움독학> <여신강림> 등의 학원물 중 상당수는 <마음의 소리>에서 애봉이의 외모를 희화화하던 수준과는 차원이 다른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폭력, 핍진함을 알리바이로 삼은 혐오발화를 보여준다. 혐오가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개그 코드화된 요즘의 인기작들은 모두가 행복한 것보단 누군가를 화나게 하는 걸 기본값으로 삼고 그 나머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남을 웃기려고 그렸고 그래서 웃으면 모두 행복하’길 바라는 작가에게 이러한 변화 역시 개그 만화 그리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4년 동안 <마음의 소리>를 더 연재했다. 여전히 조금은 불편한 장면들이 눈에 띄었지만, 여전히 기발한 에피소드도 많았다. 한쪽에선 더 말초적이고 비윤리적인 콘텐츠가 거리낌 없이 생산되고 또 다른 한쪽에선 윤리적 감수성의 변화에 발맞춰 <정년이> <화장 지워주는 남자> 같은 수작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여전히 현실의 변화와 분리되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집착하던 조석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웹툰 시대의 마지막 올드스쿨이라 해도 될 것이다.


작가 본인의 의도가 무엇이든 <마음의 소리> 완결이 어떤 시대의 끝을 알리는 건 그래서다. 작가는 지난해 12월 작품 후기에서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에 동의하며 “그래도 언젠가 가장 웃겼던 시절 비슷하게라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그리고 있다. 스피드가 떨어졌다면 노련한 경기운영이라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밝혔다. 여기엔 창작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래도 재밌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믿음. 사실 그 믿음은 깨진 지 꽤 오래다. 그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유행하는 소재를 때려넣는 창작 방식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지만, 유튜브, 종합격투기 등의 소재를 잔뜩 가져온 <싸움독학>이나 수많은 개그 ‘밈’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연애혁명>이 보여주듯 이제 웹툰에서 동시대적 소재를 잔뜩 도입하는 건 가장 검증된 성공 공식이다. 이제 누구도 작품 바깥의 수용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작가의 노력만으로 재밌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만약 <마음의 소리> 1화가 요즘 데뷔작으로 올라온다면 벌어질 일은 <공감.jpg>나 <돼지만화>에 달린 저주에 가까운 댓글들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면에선 <마음의 소리>에서 적절하지 못하다고 비판받았던 장면들도, 자기 뱃속에서 재미를 끌어내야 한다는 작가의 외골수적인 고집과 믿음이 변화한 현실의 수용 맥락과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에 가깝다.


조석과 <마음의 소리>가 시대착오적이었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때 가장 앞섰고, 또한 지금까지 가장 압도적인 누적 성과를 기록한 작가와 작품의 세계가 어떻게 수명을 다했는지 증언하려는 것도 아니다. 뻔한 얘기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단지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환상(illusion)을 제공하는 경험 자체가 거의 없을 뿐이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마음의 소리>는 그런 환상을 준 흔치 않은 대상이었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영원할 것 같다는 환상을 심어준 것이 이미 수명이 다한 것 같은 시대를 붙잡고 버틴 고집에 있다는 것이다.


작화 능력과 상관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웹툰 시장에 데뷔할 수 있던 시대, 작가가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가 가장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믿었던 시대, 외부 활동보단 작품 하나에만 ‘올인’하는 것이 작가로 인정받던 시대, 웹툰 창작이 현실과 독립된 영역이라는 믿음이 통용되던 시대는 웹툰 시장의 성장과 사회의 변화 안에서 조금씩 생명을 다해갔다. 그 와중에 아직 자기가 뛸 수 있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겠다며 버티던 고집 센 작가가 있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완결을 전하며 “아 이 만화 다 그린 거구나”라고 말한다. 다 쏟아낼 때까지 붙잡은 사람의 마지막 말. <마음의 소리>의 명백한 성과만큼이나 그 안에 내재한 명백한 한계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경향신문

위근우 칼럼니스트

다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마지막 회를 방영한 KBS <개그콘서트>가 그동안 시대의 윤리적 요구들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케이블처럼 비속어를 쓸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유튜브 등 뉴미디어에 자리를 뺏긴 것에 대해 남 탓과 변명을 했던 것과 비교해 ‘다 그린 거구나’라는 말은 홀가분하다.

이렇게 한 시대가 끝났다. 아쉬워할 것도 억울해할 것도 없이 새 시대의 숙제가 시작된 것뿐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2020.07.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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