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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더 커지고, 오래가고, 연중 끊이지 않고…산불이 심상찮다

by경향신문

산불-경향신문·녹색연합 공동기획

경향신문

지난 4월24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 야산에서 시작된 산불이 번져가고 있다. 이 불은 사흘간 계속되다가 축구장 2700개 규모(1944㏊)의 피해를 낸 후 꺼졌다. 연합뉴스

강수량·강수일수 감소 추세

건조해진 땅, 발화하기 쉬워

높은 기온 겹쳐 ‘대형 산불’로


산불이 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불씨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체로 인간이 만든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대부분 인간의 실수에 의한 실화다. 자연발화는 드물다. 불씨가 생겼다면 그것을 댕길 연료가 있어야 한다. 산불의 연료는 나무와 낙엽이다. 인화성이 강한 소나무, 그 바닥에 쌓여 있는 마른 낙엽 같은 것들을 만나 불씨는 비로소 불이 된다. 마지막 조건은 기상이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날이 얼마나 건조한지에 따라 ‘불의 크기’가 결정된다. 낙엽에 떨어진 불씨 하나가 작은 산불에 그칠지,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 재난으로 커질지는 전적으로 기상 조건에 달렸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눠보면 이렇다. 불의 시작점이 되는 인간의 실수는 ‘어느 정도’까진 통제할 수 있다. 산 주변의 논밭에서 무언가를 태우지 않도록 반복해서 주의시키고, 산불 위험 기간엔 산 출입을 막을 수도 있다. 연료는 그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땅에서 시작된 불이 나무를 타고 올라갔을 때, 나무가 빽빽히 들어선 숲에서 불은 더 쉽게 번진다. 나무와 나무 사이 간격을 띄워 심는 것, 가지치기를 하는 것, 불에 강한 나무를 심는 것 등은 모두 연료를 통제해 산불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은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그나마 통제가 가능한 것들이다. 그런데 기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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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주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산림항공과장(현 중앙산림재난상황실장)이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항공본부 상황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과장은 “전문인력과 헬기 같은 진화자원들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산불로 갈 만한 여지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유진 PD

“제일 중요한 것은 기상입니다. 건조한 날씨에 부는 강풍이 (산불에) 가장 영향력이 큰 인자예요.”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의 김만주 산림항공과장(52·현 산림청 중앙산림재난상황실장)이 말했다. 그는 13년째 산림청에서 산불 대응을 하고 있다. 산불이 났을 때 현장의 어디로, 몇 대의 헬기를 보내 어떻게 불을 끌지, 그가 결정한다. 지난달 강원도 원주에 있는 산림항공본부 상황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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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8년 강수량 추이. 행정안전부 ‘2019 강원 동해안 산불백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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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2019 강원 동해안 산불백서 중 2009~2018년 강수일수 및 건조주의보 발령일수 추이 그림. 백서는 “최근 10년간(09~18) 기상관측자료 통계를 살펴보면 강수일수와 강수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과장이 느끼기에 기상 조건들은 점점 ‘불의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일단 강수량과 강수일수가 모두 감소하는 추세다. “예전엔 영동지역에 2m씩 눈이 쌓이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눈 없이 지나가는 겨울이 있을 정도로 적설량이 줄고 있어요. 적설량, 강수량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의 강수량은 연평균으로 따지면 적지 않은 수준이지만, 여름철에 편중돼 있다. 산불 위험이 높은 봄·가을 기온은 점점 높아지고, 건조해지고 있다. 5월부터 시작되는 ‘이른 고온 현상’은 최근 5년간 2018년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발생했다. 지난해 가을철(9~11월) 평균 기온은 15.4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높았다. “요즘엔 ‘아차하면 대형 산불로 가겠구나’ 하는 불들이, 그런 기상 조건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전문인력과 헬기 같은 진화 자원들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산불로 갈 만한 여지들이 많아졌어요.” 눈과 비가 적게 내려 한껏 건조해진 땅에, 높은 기온이 더해지고 있다. 불이 나기 좋은, 그것도 ‘크게 나기’ 좋은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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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헬기 조종사인 이상우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운항팀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 팀장은 “5월 중순에 아카시아 꽃이 피면 산불이 끝난다는 말을 했죠. 그런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7~8월까지 불을 끄는 사례가 요즘 증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유진 PD

진화 헬기도 중대형 교체 중

“소형으로는 감당 안 될 정도”


지난해 강원도 동해안에서 일어난 산불은 이러한 기상 조건일 때, 불이 얼마나 순식간에 커질 수 있는지 정확히 보여줬다. 산림항공본부 이상우 운항팀장(50)은 1년여 전 헬기를 몰고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허무함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고성 산불은 새벽에 발생(확산)했죠. 일출과 동시에 이륙하라는 지시를 받고 기상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정말 어렵게 넘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저희가 도착했을 땐 그야말로 ‘잔불’만 남아있는 상태였어요. 불이 이미 다 휩쓸고 지나가 (더 이상) 탈 만한 게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때 느낀 게, 자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였어요.” 비행 시간 2600시간, 산불 진화 경력 13년의 베테랑 조종사에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들게 한 당시의 산불 상황은 행정안전부의 ‘2019 강원 동해안 산불백서’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흔히 ‘고성 산불’로 알려져 있지만, 2019년 4월4일 산불이 처음 시작된 곳은 강원도 인제군이었다. 오후 2시45분, 산 인근에서 쓰레기 소각 중 불씨가 산으로 튀었다. 습도 27%, 초속 5.6~6.5m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 정상부로 향하던 불꽃은 바람을 타고 북쪽과 동쪽으로 1.5~2㎞씩 튀었다. 같은 날 저녁 7시17분, 고성군의 전신주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당시 습도는 19%, 바람의 순간 최대풍속은 태풍급인 초속 32m였다. 불은 속초 시내를 향해 2시30분 만에 5.3㎞까지 번졌고, 불이 난 지 5시간 뒤인 4월5일 0시21분에는 7.5㎞까지 번져 있었다.


그와 비슷한 시각인 0시9분, 강릉시 옥계면에서도 전기초 합선으로 인해 불이 나기 시작했다. 2시간15분 뒤, 산불은 8㎞를 이동해 동해안까지 갔다. 인제의 산불은 고성·속초, 강릉에서 불이 나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타다, 이틀 뒤인 4월6일에야 진화되었다. 이 팀장은 “대형 산불의 기준은 면적으로는 100㏊ 이상, 시간으로는 24시간 이상, 헬기 대수로는 10대 이상 투입되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했다. 동해안 산불은 산림 2832㏊를 소실시켰고, 3일간 지속됐으며, 헬기 105대가 투입됐다. 2명이 사망했고, 이재민 1524명, 재산피해 1291억원이 발생했다. 백서는 이때 피해가 컸던 이유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4월4일 강풍경보, 건조경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4월5일 오전까지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다. (…)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림은 평균 풍속 10~18m/s의 강풍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 산불 확산을 가속시켰으며, 일몰 후 헬기 투입도 불가능하여 피해가 가중되었다.”


산불은 커진 것뿐 아니라 불규칙한 양상도 보이고 있다. 과거엔 산불에도 나름의 규칙성이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아래에서 시작해 위에서 끝났다. 남부지방에서 보통 그해의 첫 불이 나면, 이후 중부지방, 경기 북부로 이어지다 잦아들었다. 시기적으로는 2월쯤 시작돼 5월 중순이면 끝났다. 김 과장은 “(예전엔) 남부지역에서부터 ‘불이 올라온다’고 표현했다. 저희끼린 ‘강원도 고성까지 가면 산불이 끝난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도 “5월 중순에 아카시아꽃이 피면 산불이 끝난다고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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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나고 있는 모습.

경향성 있던 발생 시기·지역

이제는 때·장소 예측 불가능

상시·대형화 대비책 마련을


지금은 다르다. 어떤 지역에서든, 언제든, 산불이 난다. 김 과장이 말했다. “지금은 강원도 고성에서 불이 먼저 났다가, 경상남도에서 났다가 해요. 어떤 경향성을 보인다기보다는 국지적으로 조건만 되면 발화합니다.” 불이 시작되는 시기는 빨라졌고, 끝나는 시기는 늦춰졌다. “지금은 1월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10년 전쯤엔 보통 5월 중순이 되면 거의 불이 끝났거든요. 그런데 작년엔 8월까지도 불이 이어졌어요.” 1년 열두 달 중 긴장해서 산불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기간이 8개월로 늘어난 것이다. 산불은 ‘연중화’되고 있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해진 산불은 두 사람의 일 하는 방식도 바꿨다. 김 과장은 이제 어느 지역에서 산불이 나도 그 지역에 헬기들을 미리 전진배치하지 않는다. 남부지방에서부터 산불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곤 했을 때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산불이 날지 알 수 없는 지금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과거엔 (첫 산불 발생지가) 경상남도 양산이다, 하면 위쪽에 있던 헬기들을 밑으로 보내서 그쪽부터 진화를 했어요.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산불이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그쪽에 헬기를 보내지는 않아요. 그냥 다 원래 포스트에 있어요. 또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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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에도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되자, 이 팀장처럼 헬기를 직접 조종하는 이들은 ‘대기 시간’이 늘었다. “산불 기간으로 정해진 때는 항공기 가용 대수도 그에 맞춰 증가하거든요. 옛날엔 산불 위험 기간이 끝나면 거의 대기가 없어졌는데, 요즘엔 일몰 때까지 대기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요. 원래는 5월 말이면 끝났죠.” 올해 대기는 7월 초에 끝났다. 산불이 대형화되면서 소형 헬기들도 점차 중대형으로 교체되고 있다. 김 과장은 “화세가 소형 헬기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점점 커졌다”면서 “예전엔 소형 헬기 2대로도 껐는데, 지금은 그렇게 해선 못 끄는 불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올해도 큰 산불이 났다. 지난 4월24일 경북 안동 풍천면에서 난 산불은 하루 만에 진화될 뻔했지만, 강풍으로 불이 재점화돼 3일간 탄 뒤에야 꺼졌다. 강풍과 소나무림이 만나 발생한 이 산불은 축구장 2700개 규모(1944㏊)의 피해를 냈다. 김 과장이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내륙 산불이었다. “그 불덩어리가 화산 폭발 수준의 상승기류를 만들어 냈어요. 예전(2009년) 칠곡 산불이 좀 크다고 했는데, 이것은 게임이 안 됐어요.” 3일차 진화작업에 투입됐던 이 팀장은 “산림청 생활을 13년 했는데, 그렇게 화세가 세고 진화 반경이 15㎞ 이상 되는 산불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안동 산불과 같은 불이 언제든 또 날 수 있다고 본다. “바람이 동쪽으로 부는데 동쪽은 전부 산이었어요. 산불이 크게 날 수밖에 없는 최적의 요건을 갖춘 상태였죠.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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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1일 호주 산불이 확산하고 있는 모습. 호주에서 지난해 9월 발생한 대형 산불은 6개월 간 지속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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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방송인 RU-RTR이 제공한 러시아의 산불 진화 작업 모습. 2000 ha 이상의 산림이 불에 휩쌓였다. 강한 바람이 불길을 더욱 번지게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대형화, 장기화, 연중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과 권춘근 박사는 2년 전부터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활용해 전 지구와 한반도 산불 발생 패턴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세계 각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들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연구결과가 하나둘씩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남반구보다 북반구의 기온 상승이 강하며, 아마존 지역의 건조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기온 상승이 클수록 몽골, 남아프리카, 호주, 아마존,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산불 위험이 증가했다. 호주에서는 지난해 9월 발생한 산불이 올해 2월에 꺼졌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올해 들어 6월까지 산불이 1만395번 났다. 몽골과 인접한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는 6월 말까지 246번의 산불이 났다.


권 박사는 “2년 전 분석한 결과들이 묘하게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따른 한반도 산불 위험에 대해서도 분석했는데, 한반도는 “지난 40년간 봄·가을철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해, 산불위험지수 또한 상승”했고, “강수량 증가는 미미하나 상대습도가 감소해 건조일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던 호주 산불은 남한보다 넓은 면적을 태운 뒤 수그러들었다. 김 과장에게 호주 산불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호주도 원래 그 시기는 산불이 나는 때가 아니거든요. 진화 자원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진화는 되지 않고, 비가 오지 않으면 탈 것들을 전부 다 태운 후에야 (산불이) 끝나는 것을 보니, 참 저게 보이지 않는 지구의 기후변화인가 (싶어요)….”


한국은 국토의 63.5%가 산지다. 한국에서도 산불이 호주와 같이 장기화, 대형화될까. 김 과장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산림 내 축적된 임목량이나 낙엽층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래도 단위면적당 헬기나 인력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인데, 호주나 미국처럼 산불 발생 기간이 길어지면, 예컨대 한 1주일씩 간다, 한 달 간다고 하면…. 더 큰 대형 산불에 대비하는 체계를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 김한솔 기자·영상·사진 최유진 기자hans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