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푸드 ] 지극히 味적인 시장 (34)

마늘시대 가고 ‘감자천하’ 오는 장터... 막국수냐 콩국수냐, 고민되면 메밀콩국수

by경향신문

홍천 오일장


1,6으로 끝나는 날짜에 서는

먹고싶고 가고싶은 오일장


무를 넣은 지역 특산 홍총떡

아삭하게 기분좋게 씹히고

50년 세월 넘은 옛날짜장에

구워도 조려도 고소한 두부


강원도 와서 안 먹으면 섭섭할

닭갈비도 여긴 굽는 게 ‘진리’

경향신문

날짜가 1, 6으로 끝나는 날 서는 홍천 오일장을 채우는 7월의 주인공은 감자다. 과거에는 삶으면 하얀 분이 나는 ‘남작’ 품종이 많았지만, 요즘은 적당히 맛있고 잘 자라는 ‘수미’가 대세다.

서울에서 양양으로 가는 44번 국도의 경기도 끄트머리가 양평 청운면이다. 청운면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강원도 홍천이다. ‘며느리 고개’라 부르는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개가 있다. 군부대와 고개 많은 강원도를 알리듯 초병처럼 맞이하는 고개다. 참기름 공장, 산양유 공장 그리고 알코올 발효 사료 먹인 ‘홍천 한우’를 찾아 그 고개를 자주 넘곤 했었다. 고속도로 완공 후 강원도 가기가 한결 편해졌다. 반면에 거쳐서 가던 곳들이 그냥 지나치는 곳이 됐다. 그런 홍천을 오랜만에 찾았다.


홍천 오일장은 일육장, 날짜가 1, 6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선다. 홍천 읍내에 마주 보고 있는 중앙시장과 전통시장을 둘러싼 모양새다. 아침 일찍 장터에 들어서면 일단 한 바퀴 돈다. 이동식 판매대를 설치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장사꾼, 반면 봉지 몇 개 펴놓고 느긋하게 손님 기다리며 옆에 앉은 이와 이야기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느 장터든 비슷하다. 이웃한 지역의 장터를 연달아 가면 저기서 본 이를 여기서 만나기도 한다. 파는 이들의 모양새는 얼추 비슷해도 계절에 따라 나고 들어가는 것들이 있기에 장터는 변화무쌍하다. 6월의 장터 주인공이 마늘이었다면 7월은 감자다. 장터에 마늘이 비치기 시작하면 봄이 끝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마늘 사이에 감자가 조금 비치다가 쌓인 감자가 보이기 시작하면 여름 시작이다. 옥수수는 감자가 유세를 조금 떨고 나서야 나타난다. 감자가 장터 여기저기서 보인다. 아직 강원도 감자는 아니다. 강원도 감자가 아무리 유명해도 때가 있는 법. 적어도 7월 중순은 넘어야 감자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장터 구경을 끝내고 읍내에서 20㎞ 넘게 떨어진 내촌의 감자밭에 갔다. 강원도라면 조금만 고개 돌리면 천지사방에 감자밭이 널렸다. 굳이 거기까지 찾아간 까닭은 감자 품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많이 심고 즐겨 먹었던 감자 품종인 ‘남작’을 재배하고 있기에 일부러 찾아갔다. 우리가 주로 먹는 품종은 수미다.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도입한 품종으로 먹는 감자 중 열에 여덟일 정도다. 감자 과자 중에서 품종 이름을 따서 지은 것도 있을 정도로 많이 심고, 많이 먹는다. 감자를 설명할 때 유일하게 ‘라떼’를 붙일 수 있는 품종이 남작이다. “라떼는 말이야, 한여름 장마 지고 그럴 때 엄마가 감자 삶아 주곤 했는데, 하얀 분이 나던 감자였지. 요새는 본 적이 없어.” 남작 감자는 삶으면 하얀 분이 난다. 감자 성분 중 수용성 펙틴이 삶는 과정에 녹으면 그 틈으로 전분이나 당이 감자 표면에 뿌린 듯 하얗게 솟아난다. 삶은 감자를 잡으면 쉽게 으스러질 정도로 포슬포슬하다. 분질 감자와 정반대의 감자는 점질 감자다. 삶아도 분이 잘 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 수미 감자는 분질과 점질 두 가지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 ‘짬짜면’처럼, 냉온 겸용정수기처럼 둘을 갖추면서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끼지 못한다. 수미 감자를 많이 심는 까닭은 적당히 맛있고, 적당히 잘 자라는 품종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홍감자도 분이 잘 나긴 한다. 하지만 장맛비 내릴 때 김 모락모락 피우면서 먹는 흰 분 바른 듯한 모양새의 남작 맛하고 비교하기 힘들다.

경향신문

얇게 부친 메밀부침에 매콤한 무채 소를 넣고 돌돌 말아낸 홍총떡, 육계와 달리 씹는 맛이 살아있는 홍천식 토종닭 간장구이, 잘 볶은 춘장과 면의 조합이 제대로 맛을 내는 정통 옛날 짜장.

홍천 오일장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두 상설시장과 함께한다. 사연이 어쨌든 두 시장의 수많은 점포에서 가장 많이 파는 것이 ‘홍총떡’이다. 총떡은 얇게 부친 메밀부침에 다양한 소를 넣고 돌돌 만 음식이다. 제주에서는 하얗게 볶은 무생채를, 강원도는 빨갛게 볶은 소를 넣어 각기 다른 맛을 낸다. ‘고기 선호자’를 위한 것도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못 먹어 봤다. 총떡인데 ‘홍’자가 붙는다. 홍천에서 나는 농산물을 주로 이용하기에 붙였다. 속 재료의 대부분은 무다. 채 썬 무를 찌고 볶아서 아삭하게 씹힌다. 부드러운 메밀 부침개 사이에 아삭아삭한 소 조합이 꽤 좋다. 기분 좋게 씹다 보면 매콤함이 살짝 올라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사람 괴롭히는 매운맛이 아니라 기분 좋은 매운맛이다. 시장을 돌아보니 영월 오일장과 달리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다. 지나가면서 두어개 먹으면 좋을 듯싶은데 총떡의 최소 구매 개수가 5개다. 혼자 여행하는 이가 많아지는 세태에 맞게 1인분 정도의 양도 팔았으면 좋겠다.


시장 구경의 묘미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에 있다. 튀김, 도넛, 어묵, 떡 등이 있지만 그래도 면 요리가 인기다. 대표적인 것이 잔치국수다. 멸치 육수에 삶은 면 넣고 유부만 얹으면 출출한 속 달래기에 그만이다. 대부분 장터에서 빠지지 않는다. 홍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중국집이 있다. 50년 세월을 홍천과 함께해온 곳이다. 짜장면 싫어하는 사람 만나기 어렵다. 맛있는 짜장면 만나기도 그만큼 어렵다. ‘옛날 짜장’이라고 붙은 곳에 가면 큼직하게 썬 양파와 감자만 있을 뿐, 뭐가 ‘옛날’인지 알 수가 없다. 나온 짜장면에 고춧가루 조금,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는 기본 절차를 밟는다. 잘 비비고 한 젓가락 먹으면 “아, 짜장면이다” 소리가 단무지로 향하는 젓가락질보다 빨리 나온다. 먹기 좋게 썬 재료들을 춘장에 잘 볶아냈거니와 심하게 쫄깃하지 않은 면발이 소스와 잘 어울렸다. 짜장면의 면이 쫄깃하지 않으면 낯설어하는 이들에게는 맛없는 곳이다. 잘 볶은 춘장과 면의 조합을 중시하는 이라면 오랜만에 맛있는 짜장면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배달로는 참맛을 맛볼 수 없다. 오다가다 차가 막힌다면 짜장면을 먹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다. 홍천 나들목에서 가깝다. 중화각 (033)434-2020


강원도 하면 옥수수, 감자를 떠올린다. 거기에 콩도 추가하면 맛있는 여행이 된다. 콩은 어디서든 잘 자라지만 그래도 가을녘 일교차가 큰 강원도 콩이 최고다.

경향신문

막국수도 먹고 싶고 콩국수도 먹고 싶을 때 시키면 좋은 콩물 막국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만큼 결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 한여름의 막국수와 콩국수일 것이다. 홍천에서만큼은 그런 고민이 생기지 않는다. 둘 다 먹고 싶을 때 콩물 막국수를 주문하면 된다. 메밀로 순면을 만들고 홍천에서 재배한 콩으로 콩물 내어 국수를 만다. 콩의 고소함 속에 잠겨 있는 메밀 순면의 구수함이 잘 어울린다. 풀죽 가득 쑨 양념으로 담근 열무김치가 콩물 막국수의 맛을 잘 받쳐준다. 콩물 막국수는 여름 한정이고, 순면 막국수가 주력이다. 오전 11시에 문 열고 주말이 아니면 오후 5시에 닫는다. 가기 전에 전화 확인 필수다. 큰샛터막국수 (033)435-4733

경향신문

좋은 콩으로 두유를 진하게 내서 만들어 들기름에 지져낸 두부

홍천을 다니다 보면 막국수 파는 곳만큼 직접 두부를 쑤어서 파는 곳도 많다. 아침마다 두부를 만들어 순두부나 모두부로 팔기도 하지만, 매콤하게 두부를 조리거나 들기름에 지져 먹는 메뉴가 인기다. 좋은 콩으로 두유를 진하게 내서 만든 두부는 구울 때 보면 티가 난다. 현대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만든 물기 가득한 두부는 부드럽다.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기에 팬에 두른 기름을 만나면 사방팔방으로 기름방울이 튄다. 반면에 진한 두유의 두부는 얌전한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 맛있게 익는다. 두부는 초벌로 익혀 나온다. 주방에서 나는 들기름 냄새에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침이 고인다. 기름 살짝 두른 팬에 구워낸 두툼한 두부를 먹다보면 밥 생각이 별로 안 난다. 입안에 간사하게 돌아다니는 고소함이 아닌, 좋은 콩이 간직하고 있던 묵직한 고소함이 밥을 잊게 만든다. 먹다보니 1월이나 2월에 김장김치가 잘 익었을 때 다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해콩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거니와 김장김치도 딱 알맞게 익었을 것이다. 해콩으로 만든 두부를 들기름에 지진 뒤 곰삭아 아삭한 김치를 얹는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고인다. 아마도 글을 읽고 있는 이들도 필자와 같을 것이다. 잘 익은 김치가 없어도 들기름 두부구이는 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만으로도 군침 삼키는 음식이다. 양지두부촌 (033)434-6585

경향신문

토종닭 구이의 후식으로 제맛인 막국수

홍천에서 먹고 싶었던 메뉴가 토종닭 간장구이였다. 강원도의 수많은 닭갈비 식당에서 토종닭을 팔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웃한 내촌에서 일보고 찾아가기 전에 전화하니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오늘 장사 안 한다고 한다. 원래는 월요일 휴무인지라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었다. 아쉬움을 홍천에 잔뜩 묻어 놓고 왔다. 그 탓인지 이틀 있다가 다시 홍천 서석면으로 갔다. 토종닭은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항상 이야기하고 있다. 토종닭은 질겨서 백숙이나 닭볶음탕으로 먹지만 사실 구우면 더 맛있다. 구례, 하동, 순천의 토종닭 구이는 소금구이다. 홍천은 소금 대신 간장 양념구이다. ‘단짠단짠’한 간장 양념에 쫄깃한 토종닭 살맛이 더해지니 고기가 익자마자 ‘순삭’이다. 반 마리, 한 마리 두 가지 메뉴 구성이다. 입 짧은 두서너 사람이라면 반 마리가 적당하다. 2~3개월 키운 토종닭이라 프라이드치킨 반 마리처럼 양이 빈약하지 않다. 같이 내는 막국수도 전문점 못지않다. 씹는 맛이 있기에 육계를 주로 사용하는 춘천식 닭갈비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여행지에다 남겨 놓은 후회가 다시 가는 이유가 된다. 가끔은 왜 갔을까 후회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다시 가서 맛을 안 봤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 전화 없이 가면 30분 정도 음식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래밭쉼터 1577-9189


김진영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