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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지극히 味적인 시장 (37)

대천항의 산뜻한 바다 내음 입 안 가득 채워봅니다

by경향신문

충남 보령 오일장


익숙한 창난젓·명란젓은 기본

복어·민어·농어 젓갈이 떡하니

그 옆에는 삭힌 꼴뚜기도 한자리


여름 서해의 가장 맛있는 장어

회보다 붕장어 소금구이가 제 맛

소금의 역할로 단맛이 도드라져


새벽같이 달려 온 보령 가는 길

따뜻한 아욱된장국 백반 한 상

적당히 식은 밥 말아 먹는 게 진리


시내서 20분 가량 떨어진 오천항

드라마 ‘동백꽃…’ 파출소 있는 곳

원래 더 유명한 건 키조개랍니다

경향신문

가수 설운도씨 노래 중에 ‘나침반’이 있다.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로 시작하는 노래다. 강원도 평창 오일장을 다녀오고 다음으로 정해 놓은 곳이 철원이었다. 철원이 틀어지면 태백이나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경북 김천에 갈 생각이었다. 1안, 2안, 3안을 준비했지만 철원을 할퀸 장맛비가 태백이든 어디든 마구마구 할퀴고 다니기에 내 계획도 다 틀어졌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여전히 오락가락 빗줄기에 내 일정도 갈팡질팡했다. 출장이 미뤄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오랜 장마에 가을걷이해야 할 농산물 걱정이 먼저였다. 해를 본 시간이 짧으니 성장은 더딜 것이고, 습한 기운이 벌레와 곰팡이를 불러들여 가뜩이나 허약해진 농산물에 타격을 줄 듯싶었다. 비가 그친 다음 찾아온 불볕더위는 그나마 버티던 농작물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있었다. 하느님과 동업하는 농민들의 애가 타서 재가 되었을 듯싶었다.


날씨와 장 서는 시기가 맞는 곳을 검색하다가 레이더망에 충남 보령이 걸렸다. 두 달 가까이 산 좋은 강원도만 줄곧 다녔기에 바닷가도 좋겠다 싶었다. 마침 바다가 있는 보령이기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충남 보령은 대천 해수욕장을 품고 있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수산시장과 서해안에서 규모와 다양한 품목으로 손꼽히는 경매장이 있는 대천항이 있다. 사시사철 맛있는 수산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대천이고 보령이다. 머드만 있는 곳은 아니다. 한겨울에는 대구가, 봄에는 실치가 난다. 여름 바다에는 멸치가 가득하다. 봄 멸치는 산란을 위해 근해에 들어오는 큰 멸치다. 싱싱하게 멸치회로, 매콤하게 찜으로 먹는다. 여름 서해의 멸치는 잔 멸치다. 이유식이나 볶음용으로 먹는 아주 작은 멸치가 서해에서 잡힌다. 멸치가 남해 특산물로 유명하지만 서해의 것도 남해 못지않게 좋다. 서해의 멸치는 봄철에 산란한다. 산란하는 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산란 시기를 금어기로 정해 어족 자원을 챙긴다. 봄에 산란한 멸치가 잔 멸치 정도 크기가 되어 조업 개시를 해야 하는데 서해 어민들은 작업을 못한다. 산란 시기인 봄철이 금어기가 아니라 6월과 7월이 금어기라서 그렇다. 올해 여름 초입, 어민들이 해상 시위에 나섰다. 금어기를 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조정을 하자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그물 대신 플래카드를 들고 바다에서 뜻을 알렸다. 정책을 세운 시점과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다면 정책을 변경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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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과 8일 든 날에 열리는 보령장은 중앙시장과 이웃해 열린다.

3일과 8일 든 날에 열리는 보령장은 중앙시장과 이웃해 열린다. 보통은 상설시장을 감싸듯 열리는 다른 지역 오일장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오일장은 구이 김 가게가 모여 있는 상가 주변 골목에 열린다. 오랜만에 햇볕이 있는 장터, 우산 없이 다니니 비 오듯 땀이 흘러도 좋았다. 기분 좋게 시장길을 돌았다. 데자뷔,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작년 8월에 전남 담양의 장터에서 봤던 말린 고추.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첫물 고추를 따서 말린 것이 시장에 나왔다. 비가 그친 강원도에서는 감자 캔 자리에 부지런히 김장용 배추를 심었을 듯싶다. 입추가, 말복이 지나니 벌써 가을 문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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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잘 마른 첫물 고추가 시장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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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항이 인접한 보령 시장에서는 복어, 민어, 농어 등 생선 젓갈도 판다.

보령에는 세 개의 상설시장이 길 하나씩을 두고 붙어 있다. 중앙시장을 시작으로 한내시장, 동부시장이 붙어 있다. 시장의 규모가 있는 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볼 수 있다. 대천항이 이웃해 있는 관계로 수산물이 많다. 어느 지역에나 있는 것도 있지만 젓갈이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젓갈 하면 오징어젓갈이 가장 많이 팔린다. 창난젓, 명란젓이 있고 액젓도 있다. 익숙한 젓갈 대신 복어가, 민어가, 농어가 떡하니 통 안에 있었다. 그 옆에는 오래 삭힌 꼴뚜기도 한자리하고 있었다. 복어가 들어 있는 젓갈 통을 보고 있자니 사장님 왈 “걔는 쪄서 먹는 애. 먹는 방식이 좀 귀찮아서 그렇지 맛있어. 일단은 쌀뜨물에 하루를 푹 담가 놔. 그리고 다음날 찜통에서 살짝 쪄. 기가 막히지, 꼴뚜기는 잘게 잘라서 무쳐 먹으면 맛있어.” 다른 일정이 없었으면 민어나 농어 한 마리를 샀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식재료를 보면 두려움보다는 무슨 맛일까 하는 궁금함이 앞선다. 민어가 아니더라도 부세나 조기를 고추씨와 함께 절인 것도 상설시장뿐만 아니라 오일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고추씨의 매운맛과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꽃게나라 010-4411-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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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붕장어(바닷장어)는 소금구이로 먹어야 제맛이다.

시내를 벗어나 서해로 흘러가는 대천천 따라 대천항으로 갔다. 대천까지는 4차선 도로도 있다. 호젓하게 풍광을 보며 가기에 더없이 좋기에 선택한 길이지만 사실은 목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왔으니 산뜻한 비린내를 즐기고 싶었다. 비린내는 시간에 비례해 진해진다. 바닷가의 비린내는 도심의 것과 달리 산뜻함이 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장어를 선택했다. 장어는 민물장어, 붕장어, 갯장어 세 가지가 있다. 붕장어는 아나고라는 일본어 표기는 사라지는 추세고 바닷장어로 흔히 판매하고 있다. 여름 서해로 여행 오면 회보다는 붕장어구이를 즐긴다. 여름 바다가 내주는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게 장어다. 사료를 먹고 자란 민물장어와 달리 붕장어의 살은 담백하고 차지다. 양념구이도 있고 볶음도 있지만 붕장어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소금구이다. 소금의 역할은 단맛을 도드라지게 한다. 짠맛이 있어야 단맛이 빛난다. 양념은 소금이 뽑아낸 장어 살의 단맛을 지운다. 특히 여름 장어는 소금구이로 먹어야 제맛이다. 대천참숯산아나고 (041)934-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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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문턱에 더욱 맛있는 아욱으로 끓여낸 된장국 한상차림.

보령으로 가기 위해 새벽길을 떠났다. 출근길 고속도로와 만나면 30㎞ 가는 데 두어 시간 기본이기에 차라리 오전 5~6시 한적할 때 출발한다. 한적하다는 것은 출근길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제한 속도까지 속도 내기 힘들 정도로 생각보다 차가 많다. 아욱된장국 백반으로 오전 4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하는 식당에 갔다. 다른 국도 있지만 식당으로 들어오는 이 대부분이 아욱으로 주문한다. 아욱이라는 게 된장을 만나면 참 신기한 맛이 난다. 된장이라는 게 모든 재료를 잘 품어주지만 아욱만큼은 빛이 나게 만든다. 아욱은 따듯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여름이 지나 가을 문턱에서 만나는 아욱은 맛있다. 여러 가지 찬이 있는 상을 받아도 아욱국만 먹는다. 처음에는 반찬과 함께 먹다가 밥공기가 반쯤 비게 되면 밥이 적당히 식는다. 식은 밥을 아욱국에 말아 먹는 타이밍이다. 찬밥을 따스한 국에 말아 먹어야 맛있다. 라면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밥을 라면에 말면 꼬들꼬들한 맛이 안 산다. 뜨거운 밥은 수분을 많이 품고 있기에 국물이 들어갈 틈이 적다. 시간이 지나 찬 기운 스민 밥은 낮아진 온도에 따라 수분 함량도 낮아진다. 맛있는 국물이 밥 알갱이에 들어갈 틈이 그만큼 많아진다. 맛있는 국물에는 찬밥이 진리다. 인정식당 (041)933-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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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조개 산지답게 관자가 넉넉하게 들어 있는 오천항의 관자초무침.

보령 시내와 대천항에서 일을 얼추 보고는 오천항으로 갔다. 보령에 오면 꼭 가려고 하는 중국집이 오천항에 있기 때문이다. 오천항은 가을이 되면 낚시꾼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천수만에서 봄철에 태어난 주꾸미와 갑오징어가 가을이면 성어가 된다. 초보 낚시꾼들에게는 오천항이 가을에 주꾸미 잡으러 가는 항구로 여겨지지만 오래 다닌 낚시꾼들은 오천항에서 키조개 관자도 사 간다. 우리나라에서 키조개가 많이 나는 곳 중 하나가 오천항이다. 여수, 장흥 못지않은 키조개가 난다. 오천항 주변에 키조개 음식 파는 식당이 많은 것도 맛 좋은 키조개가 나기 때문이다. 오천항 중국집은 키조개 짬뽕을 낸다. 키조개 관자와 지역에서 나는 해산물로 맛을 내는 곳이다. 십몇 년 전 낚시하고 나서 매콤한 것을 먹고 싶어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맛본 짬뽕 중에서 손으로 꼽는 곳 중 하나다. 해물 넣은 티를 내려고 어설픈 해물을 넣지 않는다. 좋은 재료를 쓰고 잘 볶아 내는 기본을 잘 지키는 곳이다. 시내에서 오천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짬뽕 한 그릇 하고 고속도로를 탈 생각이었지만 못 먹었다. 문 앞에 ‘잠시 외출 중’이라는 푯말이 있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왔던 파출소 앞에서 30분 정도 기다렸지만 주인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꿩 대신 닭으로 키조개 관자볶음을 선택했다. 날씨가 쌀쌀했다면 관자초무침을 선택했겠지만 고온다습한 이 시기에는 볶음이 맛으로나 안전으로나 낫기 때문이다. 키조개 산지답게 관자가 실하게 들어 있다. 채소가 익기 전에 관자가 먼저 익는다. 관자를 먹다가 아삭하게 익은 채소를 먹는 맛이 제법 좋다. 원광수산 5호점 (041)932-2530


김진영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