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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핀 라이트

보아의 20년, 역사를 넘어 현재가 되다 [핀 라이트]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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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25일. 20년 전 이날, 가수 보아(34·본명 권보아)가 우리에게 왔다. 눈에 띄는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 그와 상반된 파워풀한 춤·노래 실력으로 무장한 만 13세의 소녀가 이후 20년간 K팝이 펼쳐갈 새 역사의 ‘선봉’이 될 줄은 당시만 해도 아무도 몰랐을 테지만 말이다.


보아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가요계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작은 거인’이었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 이름을 새긴 ‘최고의 디바’였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화려하고도 격렬한 춤, 개성 있는 음색과 흔들림 없는 라이브, 작곡·작사·프로듀싱 실력까지…. 그가 세계를 누비며 만들어 낸 ‘보아’는, 이제 세계의 대중이 K팝 아티스트에게 당연하게 기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


‘소녀 가수’ ‘한류 스타’ ‘아시아의 별’ ‘SM엔터테인먼트 이사’ ‘믿고 따르는 멘토’…. 보아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많은 수식어는 K팝의 길을 만들었지만, 그는 더 이상 여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10대엔 소녀다웠고, 20대에는 당당했다. 30대인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앞으로는 보아라는 틀에 나를 가두지 않으려고 한다.”(2018년 동아일보) 보아의 20년을 돌아보며 그가 만든 보아, 그가 넘어선 보아를 되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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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이상의 보아, 한류의 중심에 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SM 오디션에서 발탁돼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이 낯설던 시절, 3년간 혹독한 안무·보컬·언어 트레이닝 끝에 마침내 데뷔곡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로 SBS <인기가요> 무대에 처음 오른다. “끝나고 연습실 갔어요. 모니터링하고 다시 연습했던 것 같아요.” 다이내믹한 성취보다는 꾸준한 노력에 더 익숙한 것일까. 보아는 언제나 담담했다. 카메라 앞에 섰던 어린 보아도 마찬가지다. “저를 잘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저는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해요.”


기대를 넘어서는 완벽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어린 보아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자라야만 했다. 최근 보그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보아는 데뷔 초 자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 시절의 보아를 만난다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하고 싶어요. 죽기 살기로까지 애쓰지 않기를 바라죠.” 그러나 그가 마주친 현실이 워낙 혹독했다. 2001년 일본 데뷔 전부터 한·일 양국을 홀로 오가다 ‘국제 미아’가 될 뻔하기도 하고, 데뷔 직후부터는 통역도 없이 밀려 드는 일본어 인터뷰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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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쇼케이스를 망쳤어요. 소속사 에이벡스 관계자에게 얘는 단독 콘서트를 하려면 10년도 더 걸리겠다는 얘기도 들었죠.”(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이후 ‘무대 공포증’에 시달릴 만큼 힘들어하던 그에게 새 전기를 마련해준 것은 일본 네 번째 싱글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 이 싱글이 포함된 일본 첫 정규앨범은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한국인 최초 오리콘 일간,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보아는 그렇게 한류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다.


■ 선구자 너머, 있는 그대로의 보아


“보아가 없었다면 지금의 SM도 없습니다.”


2008년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는 보아의 미국 진출 기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슨 투 마이 하트’ 성공 이후 한·일 양국을 오가며 ‘넘버 원(No.1)’부터 ‘아틀란티스 소녀’ ‘마이 네임(My Name)’ ‘걸스 온 탑(Girls on Top)’ 등 숱한 히트곡을 낸 보아의 새로운 도전을 앞둔 자리였다. 이번엔 미국이었다. 최근이야 빌보드 차트에서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 K팝 가수들의 이름을 심심찮게 목격하지만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던 일. 상업적으로 큰 성취를 거뒀다고 볼 순 없지만 K팝에 또 하나의 ‘최초’를 남긴 경험이었다. 2009년 3월 발매한 미국 데뷔 앨범 <보아(BoA)>는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27위로 진입했다. 한국 가수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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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선구자잖아’, 나중엔 이 말도 싫은 거예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웃음).”(2012 KBS <승승장구>) 한류 열풍, 미국 시장 진출에, ‘지금의 SM’까지 보아가 K팝 역사에 남긴 족적은 이토록 깊지만 때때로 그 자국이 그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국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낸 6집 <허리케인 비너스(Hurricane Venus)>(2010)는 부담과 줄다리기하며 ‘새로운 보아’를 탐색해보고 싶은 그의 노력이 담겨 있다. 미국에서 만난 세계적인 프로듀서들에게 얻은 새로운 활기를 그는 작곡과 작사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7집 <온리 원(Only one)>의 타이틀곡을 직접 작곡해 대중적 성공을 이뤘고, 전곡 작사·작곡에 참여한 8집 <키스 마이 립스(Kiss My Lips)>(2015)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8집 발매 후 음악웹진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보아는 말했다. “이번 앨범은 팬을 위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저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어요. 아이돌이란 타이틀로 데뷔했을 때 10대 소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면 저 또한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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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필요한 그것, 내면이 강한 나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며 무의식적으로라도 우열을 느끼는 것이 자신을 잃는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2018 일본 버즈피드) 오랫동안 무대에서 홀로 버텨온 ‘힘’을 묻자 보아는 “나와 남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완벽주의’라는 평가를 받으며 숨 가쁘게 달려온 그의 삶, 그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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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작사한 9집 <우먼(Woman)>(2018)의 동명 타이틀곡, 보아는 외친다. “여자다운 것 강요했던 그때/ 여자다움 몰랐었던 그때/ 이젠 알아 진짜 필요한 그것/ 내면이 강한 멋진 나인 걸.” 가사가 염두에 둔 것은 2005년 곡 ‘걸스 온 탑’이다. 페미니즘이 대중문화를 이끄는 거대한 흐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고 노래해왔던 보아는 자신의 달라진 생각을 곡을 통해 갱신한다. ‘걸스 온 탑’ 당시 “왜 여자 가수는 언제나 섹시해야 하나?” 되물으며 사회가 강요한 여성성에 반기를 들고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그는, ‘우먼’에서 다시 한 발을 성큼 내딛는다. 성과 인종, 나이와 상관없이 진정한 여성은 ‘제2의 누구도 아닌 그저 나’일 뿐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보아의 꿈은 여전히 “오래오래 일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 20년간 일궈온 빛나는 역사를 뒤로하고, 보아가 매번 다시 출발선에 서는 이유다. “20주년이어도 나 하고 싶은 음악 할 거야,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20주년 앨범이니까 물론 좋은 노래가 있어야겠죠. 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얼루어) K팝의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 가수이기에 보아는 그렇게 또, ‘시작’할 것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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