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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행객들이 전해주는 ‘설렘’이 그리워요

by경향신문

프랑스 여행 가이드 진병관·박송이씨 부부 ‘코로나 이후’ 파리 생활법

경향신문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인 박송이·진병관씨 부부는 삶터인 파리에서 코로나19를 돌파하려 한다. 언젠가는 다시 파리로 올 한국인 여행객들을 떠올리며 힘든 실직의 시기를 버틴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한 채 파리 곳곳을 산책하며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달랜다. 사진은 지난 6월 초 외출제한령 해제 이후 산책 나온 박씨와 인적 드문 루브르 광장 풍경. 파리비디오노트 캡처

코로나19로 일거리를 잃은 파리의 한국인 문화해설사 부부

부부가 가장 사랑하는 파리에서 버티는 삶을 택했다

“피할 수 없으면 버티자” 만두 빚고 빵 굽고 재래시장 가고…

일상을 재발견하고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도 오랜만에 듣네.” 박송이씨가 지난 6월25일(현지시간) 프랑스 베르사유 궁 복도에서 남편 진병관씨에게 말했다. 코로나19 이전 숱하게 왔던 곳이다. 그저 흘려듣던 소음이 사무치듯 들려왔다. 박씨 말이 이어졌다. “비 오는 날 나는 냄새도 있는데….”


이들 부부는 프랑스 문화부 공인 문화해설사(Guide-Conferencier·기드 콩페랑시에)다. 지난 5월 파리에서 외출제한령이 풀린 뒤로 한국인 여행객들을 안내한 여행지를 찾곤 한다. 가는 곳마다 추억이 밀려든다. 반 고흐(1853~1890)가 생의 마지막 72일을 보낸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선 한 꼬마 손님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의 밀밭에서 달팽이를 가져다가 고흐 형제 무덤 곁 담쟁이에 올려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달팽이한테 고흐 아저씨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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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진병관씨 제공

이들은 5월27일 개설한 유튜브 ‘파리비디오노트’에 코로나19 이후 일상과 파리 풍경을 올리곤 한다. ‘랜선여행’을 겸한 가이드 방송도 진행한다. e메일과 전화로 이들 이야기를 들었다.


“(가이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니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부분이 가장 아쉬워요.” 진씨는 어떤 장소를 방문하는 것은 곧 추억을 쌓는 일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이 건네준 작은 편지 같은 게 가장 그립다.


박씨는 “여행의 설렘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현지 가이드에게 전해주시는 기분 좋은 에너지들이 있다. 그 설렘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여행객이 끊겼다. 해외의 한국인 여행 가이드들은 코로나19 이후 귀국할지 체류할지 고민했다. 부부는 머무는 쪽을 택했다. 일상에 천착하며 돌파하려 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을 재발견한다. 늘 보던 퐁네프의 석양, 늘 하던 루브르 중앙광장 산책도 새로웠다.


타인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외출제한령이 풀리고 동료 가이드 부부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너무 기쁘고 반갑더라고요.”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박씨가 말했다.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함께하는 모든 일상이 더 가치 있게 느껴져요. 우리의 세계를 둘러싼 사람들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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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진병관씨 제공

코로나19 이후 24시간을 함께 보낸다. “일도 여행도 사라지니 남은 것은 집 안에서의 삶”이라고 박씨는 말한다. 요리는 가장 관심을 갖는 일이다. 두 사람은 만두를 빚고, 빵을 구우며 시간을 보낸다.


요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땅한 벌이가 없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들은 ‘파리비디오노트’에서 ‘실직자 부부’로 소개한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진씨만 재난지원금 3000유로(약 423만원)를 받았다. 지원금과 저축을 갖고 아껴 살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과일과 채소, 육류 같은 식자재는 싸다. 프랑스는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는다고 한다. 진씨는 “노동력이 싼 주변 나라에서 농산물 수입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트보다 재래시장인 알리그르를 애용한다. 마트보다 훨씬 싸다. 6월10일 방송을 보면, 이들 부부가 알리그르에서 산 체리 1㎏은 4.99유로(약 7000원)이다. 전주 마트를 들렀을 때 체리 가격은 11유로(약 1만5500원)였다. 박씨는 “좀 있으면 반값 되니까 그때 사자”고 말한다. 재래시장에서 양파 10개, 감자 5개, 당근 2개, 호박 1개를 3.60유로(5000원)에 구매한다.


진씨가 말했다. “프랑스는 노동력이 한국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식 비용은 (서울보다) 비싸요. 외출제한령이 풀리고 딱 2번 밖에서 식사했어요.”


파리에 살려는 이들이 많아 월세는 비싸다. 두 사람이 살 만한 집을 구할 때 월 1000유로 밑으로 구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집주인은 월세를 물가상승률보다 올릴 수 없어 폭등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즐겁게 지내려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진씨는 “진심으로 지금 암흑기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 경제활동을 못하니까 가끔은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우울함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짝의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다.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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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파리비디오로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박송이·진병관씨 부부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재미와 깊이를 함께 추구하는 랜선여행 ‘빠담빠담’, 미술관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미술관 가이드로 구성한다. 루브르 소장품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설명하는 진씨, 파리 시내 건축 제한과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진씨와 장인환씨, 노트북에 미술책 요약을 정리하거나 요리와 식비 절감을 위해 집에서 만두를 빚는 부부의 모습(왼쪽부터 시계방향). 파리비디오노트 캡처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파리비디오노트’를 시작했다

랜선여행과 브이로그를 겸한 유튜브 채널에서

박물관 등 여행지를 소개하고 온라인 예술 강의도 구상 중


부부는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이 좋은 내일로 이어지길 바라며 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버틴다. 박씨가 말했다. “인력으로 극복되지 않는 상황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최대한 밝게 생각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미래를 준비하면 된다고 남편을 다독이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 이름도 ‘파리 실업자’에서 파리비디오노트로 바꿨다.


파리비디오노트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일상 브이로그가 주 콘텐츠다. “일은 못하더라도 잘 지내는 모습으로 생존 신고는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방탄소년단 결성 7주년 때 K팝 팬인 프랑스인 친구 플로렌스와 김밥을 말고, 개그맨 안영미의 캐릭터 ‘김꽃두레’의 친구 ‘민식이’에서 이름을 딴 고양이 ‘박민식’과 놀며, 코로나19로 텅 비다시피 한 루브르 중앙광장을 산책하는 일상을 올린다. 재래시장 가는 길 한국 전통 놀이로 여겨지던 사방치기 선이 그어진 것을 보는 것도 재미다. 프랑스어로 마렐(Marelle)인 사방치기는 인도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놀이다. 버스 기사석을 가로막은 안전통제선이나 인적이 드문 시내 풍경 등 코로나19로 바뀐 파리의 현재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들 부부가 더 심혈을 기울이는 건 랜선여행 코너인 ‘빠담빠담’과 ‘박물관 가이드’다. 루브르에선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같은 소장품을 설명하는 투어 가이드를 이미 올렸다.


빠담빠담 코너는 부부 가이드인 장인환·김선영씨와 함께 만든다. 아내들(박송이, 김선영)이 피디와 작가를 맡고, 남편들(진병관, 장인환)이 작가 겸 진행을 담당한다. 에비앙, 비텔, 볼빅 같은 파리 시중에 파는 생수 시음회로 시작했다가 ‘프랑스인 삶의 정신적 기반’이자 ‘현실판 페이스북’인 살롱 문화나 현대 도시 건설의 모델이 된 파리대개조 사업과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소재는 넓어지고, 주제는 깊어진다. 1885년 문을 연 레 두 마고의 헤밍웨이 지정석이나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진을 친 사르트르 일화가 깨알같이 이어진다. 프랑스를 무조건적인 동경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 문제도 짚곤 한다.


이들의 유튜브는 자극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않다. 이들은 “가장 우리다운 콘텐츠로, 예의는 갖추지만 과하게 꾸미지는 않는 모습으로, 무엇보다 ‘즐겁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 공부하면서 유쾌하게 살 거야” 독서는 가장 기본

미술·여행·문학·소설책 등 한국서 공수해와 읽고 있다


부부는 미술책, 여행책, 문학책을 꾸준히 읽으며 공부한다. 6월5일 방송에선 “아줌마, 아저씨는 지금은 실업자지만 계속 공부하고 유쾌하게 살면서 만날 때마다 재밌는 얘길 들려주는 가이드로 남을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 받는 택배 주요 물품 중 하나가 책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부탁해 7월 초 받은 택배엔 <우리 각자의 미술관> <화상 볼라르> 같은 책에 2004년 한국에서 열린 ‘이집트 유물 전시’ 도록도 들어 있다.


가이드여서, 미술 전공자가 아니어서 미술책은 더 열심히 읽는다. 진씨는 “매번 같은 장소와 같은 작품을 설명하다보니 매너리즘에 금방 빠질 수 있다. 독서는 가이드 일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가장 기본과 필수의 행위”라고 했다.


박씨는 대중소설을 즐겨 읽는데, 이 기호도 직업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니, 짧은 시간 안에 상대가 원하는 바를 캐치하는 능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 인물이나 감정 묘사를 많이 읽으면, 작은 단서로 상대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는 훈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는 직업인 만큼 풍부한 어휘력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진씨는 한국에서 벅스뮤직, 엠넷미디어 등에서 일하다 사진 공부를 하러 프랑스에 왔다. 방학 때 가이드 일을 맡은 걸 계기로 10여년간 해왔다. 박씨는 한국에서 프랑스 문학과 문화를 전공하고 파리에 와서 가이드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각각 2009년, 2010년부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먹고살 일이 막막하다보니 한국행도 고민했다. 최근 일이라곤 지난 6월8일 파리에서 열린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출간 기념 온라인 기자회견 진행과 사진 촬영을 한 것뿐이다. 당시 작가 목수정씨가 동시통역을 맡았다.


코로나19의 끝이 보이지 않고 여행은 잠시 잊혀졌지만

부부는 외친다. “여기에 이런 가이드들이 있어요”


물리적 거리 두기 같은 방역지침은 휴가철 다시 무너졌다. 진씨 표현대로라면 대처는 ‘엉망’이다. ‘파리가 텅 빈다’는 바캉스철 니스 등 프랑스 여러 유명 휴양지에서 대량으로 확진자가 나왔다.


어딜 가든 코로나19를 피할 수 없다면 ‘두번째 원점’ 같은 파리에서 버텨보자고 각오했다. 게다가 파리는 부부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파리가 아닌 곳에서의 삶은 잘 떠올리지 못한다. 이들이 인연을 시작한 곳도, 결혼한 곳도 파리다. 처음 온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파리는 변한 게 없다. 한결같은 도시는 부부의 젊었을 때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산책할 곳이 너무 많아 좋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해야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 전시를 자주 볼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을 붙잡는다.


코로나19의 끝이 보이지 않지만, ‘가이드’로 승부를 보려 한다. ‘파리비디오노트’ 채널이 매개다. 이들은 ‘여행’ 자체가 잊힌 상황에서 현지에 남은 가이드가 어떤 방식으로 투어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채널 구독자수가 늘면 유튜브 라이브로 가이드 투어를 하려 한다. 온라인 미술 강의도 구상 중이다.


코로나19가 끝나 파리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유튜브 채널로) 여기 이런 가이드들이 있어요!”라고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 프랑스나 파리에 관련해 궁금한 건 언제든 ‘파리비디오노트’에 남겨달라고 전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