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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가을, 마음은 스산~ 발길은 서산!

by경향신문

서산 오일장 ‘동부시장’


서산 가는 길에 비가 함께했다. 가수 ‘비’라면 좋겠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였다. 차창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을 보면서 아주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봄에 내리는 비는 ‘금’, 추석 직전에 내리면 ‘똥’이라던 사과 생산자의 말이 생각났다. 똥 맞으면서 농원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을 생산자 모습도 같이 말이다. 올해는 하느님과 동업하기 참 힘들었던 해로 기억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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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시장엔 햇밤도 나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장통은 한적하다.

서산 오일장은 서산시 중심에 있는 동부시장에서 열린다. 2와 7일이 낀 이칠장이었다. ‘었다’는 과거형이다. 서산 오일장은 과거형이다. 충남에서 안내한 오일장 일정표에 서산시 오일장도 있었지만 지금은 열리지 않는다. 주변에 할인점도 있거니와 다른 지역의 쇠퇴한 재래시장과 달리 여전히 사람이 붐비는 동부시장이 오일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오일장 날짜만 있는 오일장 이야기다. 지금 담담하게 풀어내지만 현장에서는 세 분 할머니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에 잠시 ‘멍’ 때렸다. 멍한 상태에서도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햇밤이 눈에 띄었다. 만물에 단맛이 드는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며 시장 구경에 나섰다.

꽃보다 향기롭다, 바다향 가득 꽃게

서산 시내를 지나도 바다 향기가 나지 않는다. 태안을 가야 비로소 바다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서산의 동서남북에서 남북이 바다다. 북쪽으로는 가로림만과 대호만을 이고 다리 쪽으로는 천수만을 감싸고 있다. 바다가 가까운 시장의 공통점은 싱싱한 해산물이 많다는 것이다. 서산 동부시장은 어물전이 강세다. 금어기 풀린 수게가 잔뜩 있다. 게는 껍데기가 벗겨지면서 성장을 한다. 막 탈피한 여름 게는 껍데기가 물렁물렁하다. 무게가 덜 나가기에 잠수를 못하고 바다 위를 떠나기도 한다. 가끔 배 타고 바다에 나가면 부지런히 헤엄치는 꽃게를 만나기도 한다. 한여름에 산란과 탈피한 게들이 가을이 되면 살을 찌운다. 산란한 암게보다는 수게가 살을 먼저 찌운다. 그래서 봄에는 암게를, 가을에는 수게를 더 쳐준다. 꽃게 사러 갈 때는 조수 간만의 차를 보고 가면 조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 물때에 가면 꽃게가 많이 잡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물을 물이 지나는 길목에 내리기에 꽃게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물이 움직이지 않는 조금 물때는 적게 잡혀 비싸다. 봄철이나 가을날에 꽃게를 산다면 물때부터 봐야 한다.


서산의 북쪽에는 이제 막 인기몰이를 시작한 쌉싸름한 해초가 난다. 시장에서 팔리는 해초의 이름은 감태, 서산 9미에 당당히 올린 이름도 감태다. 하지만 감태는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실제 이름은 ‘가시파래’다. 김처럼 말려서 먹기도 하고 남도 지방에서는 새콤한 맛을 더하기 위해 멸치액젓과 양념 넣고 김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해외로 나간 감태는 영국, 홍콩 등지에서 새로운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감태의 참 매력은 살짝 구워 밥과 함께할 때 제대로 빛이 난다. 서산에는 오래전부터 감태로 명인 지정을 받은 바다숲 감태가 유명하다. 바다숲 (041)667-5884

제대로 삭히고 말려 ‘겉바속촉’ 유과

서산 9미 중에서 추석 즈음 불티나게 나가는 게 생강한과다. 한과 중 유과의 시작은 ‘삭힘’부터다. 찹쌀을 보름 정도 삭히고 말려 가루를 낸다. 가루로 반죽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다시 또 건조한다. 그렇게 해야 유과 속에 얇은 층 천 개가 겹겹이 쌓여 유과의 특징인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이 된다. 찹쌀을 제대로 삭히지 않으면 속은 커다란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는 모습이 된다. 제대로 된 유과는 속만 보면 알 수 있다. 서산은 이웃한 태안과 경북 안동, 전북 완주와 더불어 생강이 많이 나는 곳이다. 생강을 달곰하게 해서 말린 것을 편강이라 한다. 편강이나 생강가루를 넣어 만든 서산의 한과는 달곰함 속에 쌉싸래한 생강 맛이 살아 있어 맛있다. 내고향 생강한과 (041)664-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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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살짝 두른 가마솥 뚜껑에 구운 동부시장 호떡.

어느 시장이든 장이 서면 호떡집이 불난 듯 사람이 몰린다. 종이컵에 방금 튀기듯 구워낸 호떡을 손에 들고 시장 보는 동안 생긴 허기를 달래는 이들이다. 불난 호떡집이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데면데면 바라만 봤다. 호떡은 구워야 제맛이라고 생각하기에 기름 흥건히 해서 튀기는 것을 보고 지나쳤다. 서산 시장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호떡집에서 발목이 잡혔다. 그렇게 데면데면 지나쳤던 호떡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굽고 있었다. 기름은 아주 살짝이, 뒤집은 가마솥 뚜껑 위에서 굽고 있는 호떡을 바라보고는 바로 1000원 지폐를 꺼냈다. 들고 다니며 먹을까 하다가 탁자 하나 차지하고 맛있게 먹었다. 모든 게 귀했던 시절의 호떡은 기름이 많지 않았다. 식용유가 흔해지면서 호떡의 맛이 변했다. 이는 빈대떡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다양한 씨를 넣든 말든 호떡은 구워야 제맛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개인 입맛이지만 튀겨낸 것은 도넛의 일종이지 호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부시장에 간다면 꼭 한 번은 먹어야 할 음식이다.

보름 전에 마신 술도 말짱 깨는 우럭젓국

주인장 아빠에게 권하지 말라는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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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엔 딸 이름의 “아빠에게 술 주지 마세요”라는 호소문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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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젓국의 주인공은 우럭보다 젓국이다. 새우젓이 생선의 감칠맛을 끌어낸다.

서산 동부시장에 ‘요리하는 남자’가 있다. 식당 상호이면서 실제로 요리하는 이도 남자다. *이런 이름의 시장 식당 주인은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면 귀향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간판을 봤을 때 섣불리 그리 생각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주인장이 없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조림이 올려진 걸 보니 잠시 자리를 비운 듯싶어 시장 구경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뭐든지 섣불리 예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남자가 있었다. 이 ‘아빠 남자’가 손님들하고 잘 어울리는지 딸의 호소문도 벽에 내걸렸다. “아빠랑 오래 살고 싶습니다. 아빠에게 술 주지 마세요”라고 말이다. 서산을 가면서 꼭 먹고 와야지 다짐하고 내려갔던 터라 우럭젓국을 주문했다. 말린 우럭을 쌀뜨물에 불리고는 채소와 두부를 넣고 끓여낸 음식이다. 우럭젓국으로 불리기에 사람들은 말린 우럭이 주인공이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실상은 우럭 뒤에 오른 ‘젓국’이 주인이다. 앞에 생선은 무엇을 갖다 놓아도 상관없다. 말린 농어로 끓이면 농어젓국, 말린 대구로 끓이면 대구젓국이다. 생선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말린 생선의 깊고 시원한 감칠맛을 깔끔하게 끌어내는 역할이 바로 새우젓이다. 새우젓이 없으면 젓국도 없다. 목포에서도 말린 우럭으로 국을 끓인다. 거기서는 새우젓을 넣지 않는다. 그래서 목포에서는 ‘간국’이라 부른다. 우럭젓국의 매력은 시원함이다. 생선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감칠맛이 만들어진다. 그 감칠맛이 오롯이 녹아든 국물은 15일 전에 먹은 술도 해독하는 능력을 지녔다. 우락부락한 아빠 남자가 음식을 낸다. 밑반찬마저도 깔끔하고 맛깔나다. 대박집 010-9555-0660

잘 낚아야 제 맛, 박속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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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은 주로 나물로 해먹는다. 가장 잘 어울리는 식재료 중 하나가 낙지다. 사진은 동부시장 좌판에 나온 박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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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낙지 한마당의 박속 낙지. 낙지를 살짝 데쳐야 보드라운 식감이 살아난다.

예전에 붕어 낚시에 한창 빠져 있었다. 2000년 초반이었다. 가을날에 서산에 있는 중왕리 수로로 낚시를 하러 갔다가 근처 식당에서 박속 낙지를 먹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지역의 특산 음식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 동네에 가야 맛을 볼 수 있거니와 그 음식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박속 낙지가 딱 그런 음식 중 하나였다. 이름만 보고는 호박 속을 파내고 그 속에 낙지를 넣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막상 주문하니 하얀 박속에 낙지는 없고 넓은 냄비에 나박나박 썰어 놓은 박속만 있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생낙지가 나왔다. 이내 뜨거운 물 속에 있다가 내 배 속으로 자리 이동을 했다. 낙지를 먹고 나서는 밥이나 칼국수 면을 선택해 식사하면 마무리다. 서산 시내를 나와 당진과의 경계인 삼길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삼길포가 목적지는 아니다. 그때 갔던 식당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중왕리 수로 근처라는 것만 기억날 뿐, 상호도 떠오르지 않고 식당 형태도 가물가물했다. 거의 20년 만에 찾아갔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옛날 식당 건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옆에 새롭게 식당을 꾸민 것만 달랐다. 박속 낙지를 주문했다. 그때도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다. 다른 점은 박속 낙지가 어떤 음식인지는 안다는 것이었다. 박속 낙지를 먹을 때는 요령이 있다. 낙지를 잘 낚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지는 오래 끓이면 질겨진다. 낙지를 넣고 다리가 오므라들기 시작하면 일단 꺼내야 한다. 대가리를 넣고 다리는 샤부샤부 하듯 살짝 데쳐야 낙지 특유의 보드라운 식감을 맛볼 수 있다. 낙지를 잘 낚아야 제대로 된 낙지 맛을 낚을 수 있다. 낙지 한마당 (041)662-9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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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읍성 뚝배기 소머리곰탕.

서해안 고속도로 나들목 중에서 서산 해미 나들목이 있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데, 끼니 때 해미를 지나친다면 바로 나들목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시내로 간다. 시내 많은 식당 중 전국적 명성을 얻는 중국집도 가끔 가지만 주로 소머리곰탕을 먹으러 간다. 출장이었는지 아님 낚시였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이른 새벽은 확실한 어느 날이었다. 식당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식당 마당에 커다란 소 대가리 몇 개가 커다란 대야 속에 있었다. 곰탕을 끓이기 전에 핏물 빼는 모습이었다. 놀랐지만, 그전에 도축장에서 소와 눈을 마주치고도 한 시간 뒤에 고기 먹으러 간 적도 있었기에 담담히 곰탕을 주문했다. 곰탕 국물을 맛보니 서울 주변에서 먹었던 꼬릿한 소머리곰탕과 달리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같이 나온 마늘장아찌도 맛있었다. 보통은 곰탕 먹을 때 김치랑 주로 먹는다. 여기서는 김치보다는 마늘장아찌랑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출장을 다니며 밥 먹으러 나들목을 빠져나가게 만드는 식당 중 하나다. 읍성 뚝배기 (041)688-0020


김진영 식품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