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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도시 떠나 산·숲 가꾸며 ‘천천히’ 살아갑니다

by경향신문

자연을 더 깊게 들여다볼까요…횡성 ‘노아의숲’·‘숲슬랭 인 횡성’

경향신문

‘노아의숲’ 대표 숲지기인 박주원씨는 산 곳곳에 꽃을 심었다. 정상 쪽엔 구절초 군락을 만들었다. 횡성호가 훤히 내다보이는 이곳은 일몰 지점이기도 하다. 석양과 구절초는 한데 어우러지면 장관을 만들어낸다. 정상 부근 숲속 카페(아래 작은 사진)는 휴식과 강의를 위한 공간이다.

“은행원은 퇴직하면 경쟁력이 없다고들 해요. 은행을 차릴 순 없으니까요.” 박주원씨가 웃으며 말했다. 강원도 횡성 산을 사들여 이주한 이유를 두고 농담 반으로 내놓은 말이다. 박씨는 신한은행 부행장 등을 지낸 금융인이다.


2013년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에 16㏊ 규모 산을 구입했다. 당시 자영 독림가(篤林家) 기준이 15㏊였다. ‘신흥부촌’으로 진작 떠오른 경기 서판교 아파트를 처분했다. 최근까지 8억원이 올랐다고 한다. “귀촌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세속적인 질문을 던졌더니 박씨가 다시 웃으며 답했다. “어리석은 일이죠. 해봐야 뭐 해요. 여기 와서 일하면 됐어요.”


부행장 지낸 금융인 박주원씨


퇴직하고 ‘집테크’ 대신 산을 샀다

“푹 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열고

텃밭으론 성에 안 차 산책로 냈죠

숲 여행자들과 만나는 건 축복”


박씨는 일본 부동산도 연구한 금융 전문가다. 퇴직 뒤 ‘집테크’에 매달리고 싶진 않았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잘 사는 게 뭔지 기준과 방식이 바뀌면 좋겠다. 1인당 GNP가 3만달러니, 4만달러니 중요하지 않다. 환경 등을 생각하면서 약간 불편한 걸 감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많이 벌진 못해도 제 삶을 살아야죠. 좋은 먹거리와 맑은 물과 공기 덕에 잘 산다”고 말했다. 횡성에 오며 전기차도 구입했다.


퇴직 즈음 고향인 경기 화성시 봉답면 와우리에서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중학교 방학 때예요. 땔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는데, 걱정이 씻은 듯 사라져요. 그만한 치유가 없다고 봤어요. ‘산에나 가자’ 해서 온 거죠.”


애초 소일거리 용도의 텃밭만 두려 했다. 산을 가꾸면서 일이 커졌다. 텃밭 정도로 성에 안 찼다. 부인 진영숙씨도 함께 들어와 꽃씨를 뿌리고, 채소를 키우며 약초를 길렀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도 냈다. 박씨가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인부들과 함께 일했다. 진씨가 싸온 샌드위치와 김밥을 인부들과 나눠 먹으며 산을 다듬어갔다. 정상엔 명상과 경관 감상을 위한 전망대도 만들었다. 21㏊(2016년 5㏊ 추가 구입) 가격이 서판교 아파트 판 값의 반도 안 되지만, 이런저런 시설을 만드느라 빚까지 냈다. 이 산림을 정원처럼 만들고 싶다는 꿈은 버리지 못했다.


농고와 농대를 나온 게 도움이 됐다. “전공할 때는 농사 안 짓고 딴짓하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귀한 전공을 했다”며 웃었다. 새 전공도 준비했다. 2015년 3월 한림성심대 산림치유지도사 과정에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손님에게 숲 해설과 산림 치유 지도를 진행했다.


박씨 부부는 이곳에 ‘노아의숲(noaforest.modoo.at)’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숲 이름엔 귀촌의 목적이 뚜렷하게 들어 있다.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의 노아에 ‘늘 아이들처럼 호기심과 꿈을 잃지 않고 산다’는 박씨 희망을 담은 ‘老兒’를 넣었다. 박씨는 “히브리어로 ‘쉬다’는 뜻도 들었다”고 말한다. 게스트하우스 당호(堂號)도 ‘소요재(逍遙齋)’와 ‘휴선재(休仙齋)’로 지었다. 박씨는 “손님들이 이곳에서 게으름도 피우며 주변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버리고 비워내길 바란다”고 말한다. 소요재와 휴선재는 횡성호 한쪽 핵폭발에도 견딘다는 벙커형 콘크리트 저택과 대비됐다.


문인이나 퇴직 교사 같은 이들이 입소문을 듣고 왔다. 가톨릭 신자들이 피정 장소로도 찾았다. 종종 숲 해설이나 명상을 진행했지만, 정식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노아의숲 목적과 목표를 더 뚜렷하게 하게 된 건 김소민씨를 만난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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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자인 김소민씨(사진 왼쪽)와 ‘노아의숲’ 대표 숲지기 박주원씨가 지난달 28일 숲 정상 약초원 내 전망대에서 작은 사유림과 산림 관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태기산 등 횡성 일대 명산에 둘러싸인 이 전망대에선 야간 산행과 명상 프로그램이 열린다.

대기업 퇴사한 김소민씨


사유림을 큐레이션하기로 했다

“관광공사와 손잡고 산주 발굴해

차 덖기 체험 등 여행 콘텐츠 제안

유료 사유림 관광, 길을 만들었죠”


김씨도 이력이 독특하다.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다. 삼성SDI 중앙연구소 연구전략그룹으로 이직했다. 극도의 경쟁을 경험했다고 한다. “몇 달 만에 연구원 수십명이 연구소를 떠나는 일이 있었어요. 그 일에 간접적으로 참여해 정신적으로 탈진했어요. 나에게도 닥칠 일이라고 생각하니 불안했습니다.”


퇴사하고 창업을 고민했다. 제1 기준은 ‘도시를 떠나자’였다. 여러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했다. 한국 산림 면적은 국토의 64%인 640만㏊이고, 독일은 31%인 1100만㏊인데 산림일자리가 2만5000명 대 100만명이란 점에서 새 일자리가 더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임업은 모바일(사업)과 달리 현금이 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큰 흐름을 잘 타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역발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에서 자연으로’ ‘인공에서 자연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경쟁에서 독립으로’ ‘노오력(노력)에서 자쾌(自快)로’란 열쇠 말을 뽑아냈다. 사회적 경제의 시대가 오리라는 믿음도 창업 의지를 이끌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농업회사법인 일구팔삼과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k-network.org)다. 김씨는 “국유 휴양림이나 국립공원 말고도 소규모의 좋은 사유림도 많다고 생각했다. 작은 숲의 독특한 색깔들을 방문자의 취향별로 골라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 쉽지는 않았다. 김씨는 “영화 속 김태리가 될 줄 알았는데, 나는 김태리가 아니고, 세상은 ‘리틀 포레스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창업지원 프로그램 문을 두드렸다. 여기저기 다니며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고 해 전국 각지 사람을 만났다. 낙엽송을 주제로 ‘골든 포레스트’ 트레킹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고객이 직접 팬 장작으로 찜질하는 ‘엉뜨엉뜨(엉덩이가 뜨거워)’라는 아이디어가 실제 호응을 얻었다. 아이디어와 실천이 경험으로 축적되고, 그 속에서 다시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고용노동부 주최 소셜벤처경연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2019년엔 한국관광공사의 산학연관 협력 지역관광 프로젝트에 뽑혔다. 공사가 지역관광 활성화와 관광 프로젝트 발굴을 육성하려고 시작한 사업이다. 공사는 ‘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염두에 뒀다. 공사는 ‘사업화’ ‘컨설팅’ ‘프로젝트 간 네트워킹’ ‘대외 홍보’ 등을 지원한다. “(대상자들이) 1~2년 지원 기간 자체 성장 역량을 마련하고, 지원 기간 종료 후에도 지역 내 협업 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게 목표”(김종훈 관광일자리팀장)다.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의 ‘3Go(산촌 Go 감성 Go 맛 Go)’가 충남 서천 ‘슬로우랩’의 ‘슬로우리트릿’, 울산 월드라온의 ‘태화강 SUP 레저 생태문화관광’ 프로젝트와 함께 선정됐다.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언택트 시대, 산촌에 콘택트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숲슬랭 인 횡성’이란 이름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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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박씨와 만난 것에 대해 “한국관광공사랑 청년이 손을 잡고 산주를 발굴했다”고 말한다. 김씨는 박씨 부부가 방문자들에게 무료나 저가로 제공하던 ‘좋은 일’을 ‘상품’이 되도록 했다. 마음속에 품던 아이디어에 숨을 불어넣었다. “일본 가니까 도시락통이 이쁘더라”는 진씨 말에 ‘명이나물 주먹밥과 금화규꽃샐러드 도시락’을 만들었다. 곰치, 엄나무순, 참두릅, 표고버섯 등 직접 재배한 재료로 만든 ‘조식’도 예약제 상품으로 내놓았다.


유료화나 상품화를 두고 김씨는 “표준화”라며 이렇게 말했다. “무료로 퍼주다 보면 어느 순간 산주에겐 큰 부담이 돼요. 방문자는 돈 안 내는 걸 당연하게 여기죠. 산주들이 체험이나 관광으로 소득을 잘 못 올리는 이유가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속 가능한 관광 콘텐츠’를 염두에 뒀다는 말이다. 김씨는 “유료 사유림 관광은 이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수준”이라고 했다.


노아의숲 정상으로 올랐다. 돌이 많은 길이었다. 박씨가 말했다. “이 노란색의 미역취는 가을에나 볼 수 있는 드문 꽃이에요. 유기물질이 돌을 타고 내려오면서 퇴적이 돼요. 그 덕에 돌길에서도 꽃들이 잘 살아났죠.” 그는 150만가지 미생물을 고용했다고 표현한다. 박씨는 인간들도 숲속 생물처럼 경쟁하면서도 돕고 살아야 하리라 여긴다. 박씨를 처음으로 만난 곳은 지난달 28일 횡성호수인데, 그때도 호수길을 함께 걷는 내내 식물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게 뭐 같아요? 꽃잔디라는 녀석입니다. 이건 구절초라는 친구고요.” 그는 식물들을 ‘친구’나 ‘녀석’으로 불렀다. 김씨가 말했다. “애정으로 산을 가꾼 산주랑 같이 걸으면 개안이 돼요. 저 꽃을 왜 심었는지를 듣다 보면 인생을 오롯이 들을 수 있죠.”


노아의숲 정상 전망대는 두 군데다. 약초원 전망대에선 태기산, 청태산, 치악산, 어답산 등 횡성 명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박씨는 “야간 명상 프로그램을 여기서 진행한다. 참가자들이 밤하늘을 바라볼 때 처음엔 무서워하지만, 30여분쯤 지나면 자신에게 몰입한다”고 했다.


숲속 카페 위쪽 전망대에선 횡성호 일대를 감상할 수 있다. 박씨는 전망대 주변에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꽃인 구절초를 심었다. 석양이 질 무렵 구절초 군락은 횡성호에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은 횡성호에 수몰된 마을의 망향민 이야기와 진한의 마지막왕 태기왕과 군사들이 피 묻은 갑옷을 씻어냈다는 유래를 지닌 ‘갑천(甲川)’의 역사를 작은 숲 여행과 연계하려고 한다.


박씨에게 이 프로젝트의 제1 목적은 돈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스스로 예약 인원도 제한했다. 약초나 꽃을 더 심고, 길을 가꾸려는 생각이 우선이다. 박씨는 “나무처럼 천천히 가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아의숲을 잘 가꾼 뒤 청년에게 인계하려고 한다. “자식이든 타인이든 나보다 열정적으로 노아의숲을 가꿀 수 있는 젊은이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노아의숲에서 박씨 부부의 열정을 확인한다. 이들은 산에서, 밭에서, 취사장에서 억척스럽게 노동했다. 가톨릭 신자인 부부는 수도사와 비슷한 삶을 사는 듯 보였다. 이들은 사람 만나는 일을 축복이라 여기며 환대하려 한다. 취사장 겸 식당엔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을 새긴 목판이 걸려 있다.


횡성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