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무쇠 같던 몸이 골골, 세상은 엄살이라고…‘아픈 20대’의 삶

by경향신문

경향신문

질병의 고통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담론과 상상력을 길어내는 청년들. 최근 책 <난치의 상상력> 을 펴낸 안희제(오른쪽). <천장의 무늬> 를 펴낸 이다울씨(왼쪽). 권호욱 선임기자

나는 ‘아픈 몸과 함께’ 사는 세상을 원한다

‘아픈 청춘’ 이다울·안희제


고등학교 때 배드민턴 선수였다. 서울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내려 평창동 집까지 40분씩 걷곤 했다. 답답하면 ‘느린 앞사람’을 앞질렀다.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을 겪으며 바뀌었다. 집에 배드민턴 라켓은 남아 있지 않다. 이젠 ‘느린 앞사람’이 되어 추월당한다. 25세 안희제(사진 오른쪽)의 이야기다.


대안학교 시절, 가을마다 열리는 학교 씨름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자기 몸집의 두 배 되는 상대도 뒤집을 만큼 힘이 좋았다. 히말라야 트레킹도 거뜬히 해냈다. 원인불명의 통증을 만났다. 학교를 쉬고 아르바이트도 멈췄다. 지하철역 문손잡이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26세 이다울(왼쪽)의 삶이다.


청춘은 쇠라도 씹어 삼켜야 한다. ‘아픈 청춘’은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현실에선 더하다. 2등 시민으로 간주된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질병을, 아픔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안희제와 이다울은 달랐다. “답답하고 억울해서”(안) “혼란스럽고 불안해서”(이) 질병의 고통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결과물을 모아 <난치의 상상력>(안)과 <천장의 무늬>(이)를 펴냈다. ‘아픈 청춘’으로 살고자 결심한 안희제는 “좀 느리고 아파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건강한 몸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건강 중심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내길” 바랐다. 이다울은 “모두의 아픔이 보다 자세히 말해졌으면 좋겠다. 엄살이라는 말이 우리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적고 말하고 듣는 일이 원활해졌으면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시대, 많은 이들이 아프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공포와 불안에 짓눌려 있다. 코로나19는 마땅히 싸워야 할 대상이다. 가능하다면 퇴치·박멸해야 한다. 하지만 퇴치도 박멸도 불가능한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통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100% 건강한 사람은 없다. 누구든,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다.


지난 23일 서울 신도림동에서 안희제·이다울을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몸의 고통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길어내고 있다.



경향신문

이다울(왼쪽)은 질병으로 ‘납작해진’ 몸을 구해내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희제는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을 읽고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했다. 당시 쓴 서평이 글쓰기의 출발이다. 두 사람이 지난 23일 서울 신도림동에서 걷고 있다.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권호욱 선임기자

“젊은 사람이 왜 아파?” 세상은 엄살이란 말에 중독돼 있어


힘이라면 장사였던 26세 이다울과

배드민턴 선수였던 25세 안희제,

둘은 각각 통증의 일상을 책으로 엮는 등

아픔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을 넓히고 있다


이다울은 대안교육공간에서 청소년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안희제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 칼럼을 쓰고 있다. 공통점도 있다. 8학기째(이), 5학기째(안) 휴학 중인 대학생이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 스스로 점검했다. 뭘 조심해야 할까,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장해제됐다. 담담하고 솔직했다. 비관도 낙관도 없었다.


- 언제부터, 어떤 질병을 갖고 있나요.


이 = 2016년부터 머리, 목, 턱 어깨, 등에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많이 아플 때는 사람들 말이 잘 안 들릴 정도였어요. 턱이 안 벌어져서 양치도 힘들었고요. 목디스크인가 싶어 정형외과 가서 X레이를 찍었지만 디스크는 아니었습니다. 물리치료 받고, 체외충격파·도수치료도 받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의사들도 이상하다고 할 정도였어요. 답답한 마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증상을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류마티스내과에 가보라고 권하더군요. 통증이 시작된 뒤 2년 후 류마티스내과에서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고 통증 치료하는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우울감이 커져서 2017년부터 항우울제·항불안제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아 약을 먹었어요. 모두 (정확한 병명이 아니라) ‘추정’ 진단입니다.


안 = 2014년 재수할 때인데 엉덩이 근처에 종기 비슷한 게 났어요, 제가 원래 아픈 걸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잘 참는 타입입니다. 맹장염으로 인한 통증도 참다가 복막염이 됐을 정도예요. 그러다 보니 종기가 너무 커져서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재수술해야 한다기에 대장항문 전문 병원에 갔습니다. 그러곤 크론병 진단을 받았지요. ‘펜타사’라는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호흡곤란을 겪었습니다. 이후 약 종류를 많이 바꿔서, 얼마나 많이 바꿨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입니다. 지금은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면역력을 정상치보다 좀 낮게 유지하는 게 저한테는 건강한 상태예요.


- 지금은 어떤 상태입니까.


이 = 초반보다는 덜 힘들지만, 통증이 없던 삶은 잘 기억나지 않는….


안 = 저도 개운한 삶이 기억이 안 납니다. 잠을 잘 못 자요. 영어에 ‘페인솜니아(Pain+insomnia·고통+불면증)’란 말이 있습니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감이 바로 오더라고요. 통증 강도를 1~10으로 나누잖아요. 그런데 ‘파이(π·원주율)만큼 아프다’는 말이 있어요. 파이가 3.14159…하면서 소수점 이하가 끝없이 계속되잖아요. 견딜 만한데 끝나지는 않는 고통을 말합니다. 제가 그런 상태예요.


이 = 파이만큼 아프다, 그런 용어가 유통되면 좋겠어요.



경향신문

안희제가 쓴 책 <난치의 상상력> (왼쪽)과 이다울의 <천장의 무늬> .

이다울은 책 <천장의 무늬>에 썼다. “정확히 똑같은 아픔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각자 개별적으로 고유한 아픔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 ‘질병은 노인의 것’ ‘청년과 건강은 동의어’로 간주되곤 합니다. 청년으로서 자신의 질병을 말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이 = ‘젊은 사람이 왜 그래?’라는 말이 듣기에 편치 않았어요. 젊은 내가 왜 그런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몸과 질병이 모두 납작해지고 단순해지는데, 그걸 구해내고 싶었어요. 계속 아프다 보니, (제 상황을) 차트에 담긴 질환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원인이나 이유를 모르니까 혼란스러웠고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불안이 많이 찾아들었습니다. 아픈 원인을 모르니까 상태가 나아져도 왜 나아졌는지, 류마티스내과 약을 먹어서 나아진 건지, 생리가 끝나서 그런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혼란스러운 과정을 잘 관찰해서 담아보자, 그게 환자나 질병을 좀 더 구체화하는 작업이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 질병을 드러내는 데 대한 불안감은 없었습니까.


이 = 있었어요.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를 직업적으로 안 써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감…. 그럼에도 말 안 하면 못 버티겠더라고요.


안희제도 공감했다. “답답하고 억울해서요!”


안 =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할 때 자꾸 지각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렸어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데,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안 읽는 책 버리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모두 남학생만 뽑았어요. 사실 저보다 잘할 여학생이 많은데 말이죠. 건강한 남자인 줄 알고 뽑아놨을 테니 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끝까지 얘기 안 하고 버티다가, 왼팔에 염증이 생겨서 그만둬야 했습니다. 팔에 힘이 안 들어가니까요. 제 잘못도 아닌데, 억울해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한두 줄짜리 메모를 남기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아픈 사람들이 쓴 책이나 글을 보게 되면서 ‘내가 아픈 이야기도 말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 SNS라는 공간에 대해 자기를 과시하거나 불행을 전시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다정한 공간이기도 한 거예요. 트위터에 누군가가 ‘어떤 증상 때문에 힘들다. 방법이 없느냐’는 트윗을 남기자 따뜻한 멘션들이 달리는 걸 봤어요. 아픈 사람들의 유대를 느끼며 ‘반짝반짝 빛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글쓰기는 트위터에서 시작한 건가요.


이 = 네. 상기된 마음으로 ‘내 통증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을 한페이지 반 분량으로 써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메일이나 메시지로 응답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화가 난 상태였거든요. ‘세상은 엄살이란 말에 중독돼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무슨 뜻입니까.


이 = 아픈데도 병명을 못 찾을 때 엄살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도 ‘내가 정말로 아픈 게 맞나?’ 의심하기도 했어요.


안 = 공감해요. 전 크론병 환자로서 상태가 괜찮은 쪽입니다. 정말 안 좋은 분들은 누워서 링거만 맞기도 하거든요. 저는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저 보고 잘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사실 그 사람들은 제가 잘 돌아다닐 때 모습만 보는 것이거든요. 집에서 쉬며 힘을 모아서 밖에 나가고 제 생활은 반쯤 누워 있는 건데 말이죠.


통증 없는 개운한 삶 기억나지 않지만 ‘아픈 몸’도 삶이에요


머리·목·턱에 통증을 느낀 지 2년,

섬유근육통 진단받은 이다울…

세상이 비장애인·건강한 사람 중심인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젠 몸으로 알게 돼


크론병 진단받은 안희제,

내 잘못도 아닌데 억울해서 질병을 말하기 시작…

걷는 게 힘들어진 뒤로는 추월당하는 노인의 마음을 떠올려


질병을 만나기 전 이다울과 안희제는 운동을 잘하고 좋아했다. 이다울은 여덟 살 때 동네 훌라후프대회에서 우승해 농산물 상품권을 탔다. 열한 살 때는 철봉 매달리기의 일인자였다. 안희제는 아마추어 배드민턴 선수였다. 서울시 대표로 활약했다.


- 아프기 전후의 삶이 많이 달랐을 듯합니다. 어떤 혼란과 고뇌를 겪었는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 버티는 종목을 잘했어요. 승부욕도 강했고요. 아프고 나선 너무 힘들었죠. 일단은 활동 공간이 달라지니까요. 대학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했는데 못 다니게 되고, 지속적 알바도 못 하게 됐어요. 대중교통을 긴 시간 타기 어려워서, 자주 가던 영화관이나 전시장에 못 가는 게 제일 속상하죠. 지하철역 문손잡이는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어요. 바람이 불면 더하거든요. 전보다 노인의 몸짓이나 이야기에 눈길이 가요. 최근엔 갖고 싶은 게 생겼어요. 끌고 다니는 캐리어형 장바구니요. 책이 무거워서 전자책을 들고 다니는데, 사야겠다 싶어요. 노인들 보면서 아픈 몸으로 사는 방법에 힌트를 얻는 느낌입니다. 세상이 비장애인 중심, 건강한 사람 중심인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젠 몸으로 알게 된 거죠.


안 = 걷는 걸 좋아했는데, 아픈 뒤론 힘들어졌습니다. 재수할 때 점심 저녁 시간에 친구들이 축구나 농구 하면 끼지 못하고, 밥도 함께 못 먹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학원과 가까운 주택단지를 산책하곤 했지요. 그 동네 지리를 다 외울 지경이 됐습니다. 상실감이 컸어요. 배드민턴 라켓을 오래 안 쓸 때는 줄을 빼놓는 게 관행인데 처음에는 그걸 안 했어요. ‘곧 다시 치게 될 거야’ 하면서요. 그러다 결국 가위로 잘랐지요. 이제는 부러진 라켓 하나 빼고는 없어요. 다 빌려줬거든요. 원래 빨리 걸어서 앞사람들을 추월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 길을 막던 느린 사람이 됐어요. 추월당할 때, 기분이 묘합니다. 나한테 추월당할 때 노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원래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속도가 사실 얼마나 빨랐나 싶어요.


이다울의 친구인 작가 이슬아는 경향신문 칼럼에 썼다. “(내가) 이다울 작가가 투병 과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하자, 이 작가는 나의 표현을 부드럽고 확실하게 정정해주었다. 자신은 투병(鬪病)이 아니라 치병(治病)을 하고 있다고. 병과 싸우는 게 아니라 병을 다스리는 것에 가깝다고.”



경향신문

이다울(왼쪽)은 질병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치병(治病)을 삶의 방식으로 택했다. 안희제는 “질병이 있다고 관계나 제도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카데미 회의실에서 촬영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난 투병 아닌 치병을 선택…연결감 느끼는 게 가장 힘이 돼


- 병을 다스리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요. 싸우는 것과는 또 어떻게 다릅니까.


이 = 통증이 사라지면 제일 좋겠지요. 하지만 사라질 수 없다면, 계속 치료받을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안의 질병과 싸운다고 하면, 제 아픈 몸을 부정하고, 질병과 몸을 분리하고,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을 분리하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아픈 몸을 갖고 사는 방법이 뭘까, 아픈 몸을 갖고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너무 아플 때는 ‘(저 질병을) 패고 싶다’는 공격성이 생기기도 하지만요.


-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건 뭔가요.


이 = 세상에 접근할 수 없는 게 많아지니까. 관계에 있어 아쉬움이 컸어요. 그런데 요즘 ‘줌’ 같은 화상채팅이 보편적으로 쓰이잖아요. 친구들이랑 이번 달부터 매일 만나고 있어요. 밤 9시면 접속해서 각자 할 일을 합니다. 글을 쓰거나 읽거나. 카페에서 각자 공부하는 것처럼요. 뭔가 하다 고개를 돌리면 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상쇄됩니다. 글을 쓰면 피드백도 주고받고요. 요새 그게 제일 큰 기쁨이에요. 연결감이라는 감각이 대단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안 = 지난해 가을부터 식물을 기르고 있어요. 레몬 먹다 씨앗 심고 마늘, 바질, 파슬리도 심고요. 1년쯤 데리고 살다 보니까, 지금 쟤한테 물을 줘야 하는지 안 줘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조리개 들고 가 살펴보고, 쟤가 꽃을 피웠네 살피지요. 루틴을 만들어주니 안정감이 생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속도에 비하면 식물이 느리잖아요. 느린 생명체들이랑 같이 살아가는 게 좋아요. 저도 느리니까요.


이 = 전 유기묘를 입양한 지 1년 조금 넘었어요. 처음에는 소통이 안 될까 봐 겁이 났습니다. 얘가 원하는 걸 내가 모르면 어떡하지? 아까 (안희제씨가) 루틴을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고양이가 온 후부터 매일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이 생기니까…. 물 채워주고, 먹이 채워주고, 똥 치우고. 하루 세 번 놀아주고 하니까,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무엇보다, 존재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러워요.


- 글쓰기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안 = 사실 많이 읽지도 많이 쓰지도 않았어요. 경제학과로 입학해서 문화인류학과로 옮긴다고 할 때, 어머니가 ‘말도 안 된다. 너같이 읽지도 쓰지도 않는 애가 무슨 문화인류학이냐’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좋아하는 책(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너무 좋아서 한 시간 만에 서평을 썼습니다. 말이 그냥 쏟아져 나왔어요. 그 글로 사계절 서평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놀라셨죠. 크론병 환우회에 가면 ‘나으실 거예요’라든가 식단 이야기 같은 게 주류예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유일한 도구가 글쓰기라서, 계속 쓰는 것 같습니다.


이 = 글쓰기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이자 유희인 것 같아요. 공간 제약이 없고, 준비물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요. 무엇보다 글이라는 것이 아주 평범한 것도 특별한 걸로 만들고, 아주 특별한 것도 평범한 걸로 만들고, 아주 익숙한 것도 낯선 걸로 만들고, 아주 낯선 것도 아주 익숙한 걸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이야기가 무엇이든, 제가 가공하고 편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습니다.


- 만성질환 환자로서, 타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점이 있지요.


안 = 음식을 가려 먹는다고 까다롭게 봅니다. 만남도 그렇고요. 제 상태를 제가 예측하지 못하니까 언제 만날지 확신할 수 없거든요. 언제 볼까 하면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나하고 친해질 생각이 별로 없나 보다’ 싶은 분위기를 풍겨요.


이 = 저도 비슷해요. 친구들한테 거절할 때, 오해할까 봐 스스로 마음이 쓰입니다.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워서 SNS에 글을 쓰게 된 측면도 있어요.


아픈 사람을 분리·배제하는 건강중심적 공동체 바꿔야


-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을 대할 때 유의했으면 하는 건 뭔가요.


안 = 딱 한마디만 하고 싶습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못 나갈 만해서 못 나가는 거고, 당일 취소할 만해서 취소하는 거고. 꾀부린다고 넘겨짚지 마세요. 타인의 몸을 의심할 권리란 없습니다.


이 = 완전 동의!(웃음)


안희제는 <난치의 상상력>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코로나19 참사’로 규정한다. 그는 기저질환자의 사망을 단순히 안타깝거나 아쉬운 일로 여겨선 안 된다고 봤다. 청도대남병원 폐쇄병동 사례를 예로 들며, 건강한 몸의 안전만을 보장하는 불평등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감염의 원인을 질병으로 축소하는 것은 ‘오직 건강만을 수호하는’ 건강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참사를 개인화하며, 구조를 감추는 ‘기저질환’이라는 단어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 건강중심주의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요.


안 = 이 사회는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건강해야 하고, 건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어떻게든 건강한 상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건강중심주의적 공동체는 아픈 사람을 자책하고 움츠러들게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배려하기보다, 언제든 사람을 추방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낫지 않는 아픈 사람들, 즉 만성 난치질환 환자들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만 모두가 생존할 수 있습니다.”


- 100%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크든 작든 어딘가 아픈 사람이 다수일 겁니다. 이 다수를 위한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습니까.


안 =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아프면 ‘낫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아프면 분리되는 게 전제인 거죠. 이 전제를 바꿔야 합니다. 낫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낫지 않더라도 돌아와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즉 직장 다니고 공부하면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질병이 있다고 해서 관계나 제도에서 배제되고, 기회를 박탈당해선 안 됩니다. 과도한 보호주의·분리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 질병을 두고 ‘특정한 사람들에게 운 나쁘게 생기는 일’이라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했어요. ‘난 살면서 아파본 적이 한번도 없어.’ 그러곤 ‘잔병치레는 했고, 깁스는 해봤고…’ 하는 겁니다. 질병·환자·아픔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협소하고 고정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잔병치레만 하는 ‘건강한 사람’이고, ‘아픈 사람’은 딴 세상 사람으로 분류하는 거죠. 아픔에 대한 인식과 상상력이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니까요.


이다울·안희제의 책은 나란히 2쇄를 찍으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두 사람 다 몸과 아픔과 질병에 대해 계속 말하고자 한다. 이다울은 발칙한 꿈도 꾼다. 침대 위에서의 낭독회다. “참여자들이 잠옷 바람이어도, 문장을 몇 줄 읽을 수 없어도, 반려견이 짖어도 계속되는” 그런 낭독회 말이다. 안희제는 두 번째 책 원고를 넘긴 상태라고 했다. 아픈 사람이 식물을 기르는 이야기를 썼다.


두 사람과 헤어진 후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또 얼마나 무신경한 것이었나.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