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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민초의 목숨을 품었던 숲은 돌무더기로만 남아…

by경향신문

‘대몽 항쟁의 흔적’ 전남 해남 금강산성

경향신문

산 정상 남동쪽 능선에 금강산성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학자들은 대몽 항쟁 시기 축조한 입보용 산성이라고 본다. 산성이 든 금강산은 해남 사람들에겐 북한 금강산 못지않은 진산이다.

“금강산(金剛山)은 현의 동쪽 10리에 있는 진산이다. 산에 옛 성(古城)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지>에 나온 전남 해남 금강산성에 관한 기록이다. <대동지지>와 <증보문헌비고>에도 “금강산 고성(古城)의 터가 있다”고만 나온다. 학자들이 역사 기록의 한 줄을 두고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맞추어 갔다. 정밀지표조사와 발굴(시굴)조사를 시행했다. 여러 시기 축성 기법을 연구했다. 고대문화재연구원이 2018년 낸 잠정 결론은 금강산성이 13세기 대몽 항쟁기에 건설한 입보산성(入保山城)이라는 것이다.


지난 17일 금강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남동쪽 방향 능선으로 거친 돌덩이가 길을 이루었다. 별다른 안내 표지가 없다. 옛 문헌의 한 줄 기록이나 2018년 조사 결과를 모른다면, 그저 돌길이나 거친 등산로로 여길 수 있다. 조감해야 네모꼴 성벽의 전체 윤곽이 드러난다. 정상을 분기점으로 북동·남동쪽 능선과 골짜기를 막아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총 길이는 1087m.


대몽 항쟁기 성곽의 목적·성격이 바뀐다. 고려는 11~12세기 청야(淸野) 전법을 썼다. 적군이 유용하게 쓸 만한 성 밖 모든 물자를 없앴다. 식량이나 물자 확보를 막으려는 전법이다. 13세기 몽골의 침입 때 군현 중심지 성곽들은 투석기 같은 공성용 무기를 막기 힘들었다. 수양제와 당태종 때보다 개량화한 무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청야 전법 한계로 수세에 몰린 고려는 산과 섬에 성을 만들어 지방 군현민을 보냈다. 몽골 기마병과 공성용 무기 진입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여러 학자들이 대몽 항쟁기에 자연적 이점을 활용한 입보용 산성이 늘어났다고 본다. 고대문화재연구원은 “금강산 정상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성내는 외부로부터 은폐돼 있고, 충분한 내부 공간을 확보했다. 변란 시 은신처로 삼으려고 쌓은 성인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금강산은 일년 내내 계곡 사이로 물이 흘렀다. 물 확보도 수월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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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바라본 금강산성. 해남군 제공

왜 해남 금강산에 입보용 산성을 지었을까. 대몽 항쟁 시기 산성 중 사적으로 지정된 곳 중 하나가 진도 용장성(1236호)이다. 용장성은 해도입보(海島入保) 산성이다. 1259년 고려의 항복 뒤 삼별초는 1273년까지 진도와 제주를 거점으로 항전을 이어갔다. 그때 지은 성이다. 고대문화재연구원은 금강산성도 당시 축조돼 용장성의 배후 산성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금강산성은 당시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친 배수진 같아 보였다. 1254년(고종 41년) 한 해 원나라로 끌려간 포로 수는 20만6800여명이다. “살육된 사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몽골군이 지나간 마을은 모두 잿더미가 됐다.” <고려사>에 나온 기록이다. 지정학의 위치가 초래한 전란의 수난과 고통은 이어졌다. 해남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사이 울돌목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이 벌어진 곳이다.


‘작은 성벽(堡·보) 안에 들어와 보호를 받다’는 뜻의 ‘입보’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산성의 주목적이 방어인데, 그 방어의 목적은 주민 보호라는 걸 명시한 말이다. 국가나 군대의 존재 의의와도 이어지는 말일 듯하다.


해발 488m 금강산(金剛山)은 북한 금강산과 한자도 같다. 디지털해남문화대전을 보면 여러 유래가 나온다. 북한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게 그중 하나다. 옛 해남 사람들이 북한 금강산을 동경해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금강경(金剛經)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금강사란 절이 있었다’라는 한 줄 기록만 남았다.


해남 금강산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자료를 찾다 이런 보도를 확인했다.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동리)가 전남 해남 군민회관에서 제21회 한국문학심포지엄을 열고 북괴 금강산 발전소 건설 중단 등 ‘현 정국사태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결의, 채택했다.”(경향신문 1986년 11월1일자). 남북한의 금강산과 문인의 역할도 다시 들여다본다.


해남 사람들에겐 진산(鎭山)이다. 도읍이나 촌락을 받치는 ‘진산’을 사람들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 진산은 정신적인 지킴이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해남은 뿌리요, 금강산은 꽃이고, 월출산은 열매이니, 해남에 인물이 나오는 땅”(대흥사 13대 강사 범해각안)이란 말을 되새기곤 한다. 해남 금강산 이름이 북한 금강산 이름에서 따왔다는 유래가 맞다면 ‘소(小)금강’이라 낮추지 않은 이유를 이들 문헌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해남 중심인 읍내는 금강산 완만한 자락에 안기듯 들어 있다.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은 금강산과 어우러진 해남읍을 선녀가 가야금을 타는 모습으로 봤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의 조건 중 하나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금강산 남쪽 기슭 유희춘 집 뒤에 큰 바위 하나가 있다. 유희춘은 선녀의 눈썹을 닮은 바위란 뜻의 미암(眉巖)을 호로 썼다.


해남군청 부근 해남등대원에서 산길을 타고 오르면 해남 읍내 전경이 등산로 고비고비 소나무를 뚫고 나타난다. 금강산은 행정구역으로 해남읍, 옥천면, 마산면에 걸쳐 있다. 임도가 이 세 개 읍·면의 산허리를 타고 흐른다. 해남군은 내년 공사에 들어가 2023년까지 ‘금강산 둘레길’을 만들기로 했다. 총 연장은 34.26㎞다. 기존 임도가 23.81㎞ 나 있다. 군은 기존 임도와 등산로 2.08㎞를 정비하고, 8.37㎞의 새 임도를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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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임도를 걸으면 해남을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임도(林道)는 주로 목재 같은 임산물을 옮기려고 만든다. 환경파괴 논란도 인다. 산불 예방이나 진화, 숲가꾸기에 필수라는 반론도 있다. 걷기나 명상, 산악자전거 유행 이후 휴양이나 레저 자원이란 인식이 점차 더해졌다. 산림청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임도 100선’을 낸 게 2008년이다. 해남군은 금강산 둘레길에 트레킹, 바이킹, 산책로를 조성하고, 나무를 심으려 한다.


이날 자전거를 타고 기존 임도를 다녔다. 금강산 자락의 팔각정이 있는 미암체육공원에서 출발했다. 임도와 등산로, 국도를 번갈아 타며 목적지인 해남 읍내로 향했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해남을 한 바퀴 돌았다. 일주하면 어떤 지리의 총체가 어렴풋하게나마 잡힌다. 읍내 아파트, 면의 논밭 풍경이 이어진다. 산과 들판이 임도를 따라 양분된다. 해남 너머 지평선이 때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곳에 산성을 지은 대몽 항쟁기의 지정학도 가늠한다. 그 유명한 해남겨울배추 밭이 한겨울 황량한 벌판의 녹색지대처럼 돋보였다. 해남은 해양성기후라 겨울에도 배추가 자란다. 수도권 기온에 맞춰 옷을 입고 왔더니 등허리에 땀이 찼다.


지금 해남 금강산 둘레 임도는 주로 자갈길이다. 걷기에도, 자전거 타기에도 좋지 않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난다. 중간중간 잘 다져진 흙길이나 숲길 덕에 고비를 극복한다.


하루 온종일 다녔는데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의 루트긴 한데, 타지에서 일부러 걷거나 명상하러 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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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둘레길’인데 만대산도 포함한다. 금강산 줄기에서 갈라진 산이다. 한 바퀴 돌면 같은 산이나 다름없다. 이름만 구분했을 뿐이다. 금강산으로 부르든, 만대산으로 부르든 무슨 대수일까 싶다. 만대산에 관한 기록도 많지는 않다. 조선 후기 문신 양득중이 만대산에 사는 사촌형 ‘옥천 선생’을 제재로 시를 지어 덕촌집에 실었다.


“대(竹) 침상은 소슬하고 대자리가 서늘하니/ 선생이 더위 씻고 잠에 드시네/ 세상사일랑 떠들썩하게 전하지 마오/ 슬픔과 기쁨들 모두 하늘에 맡겼다네/ 사철 아름다운 흥취 참으로 쾌적하니/ 그 쾌적함이 찾아오면 한바탕 잘 뿐.” 옥천 선생은 만대산 작은 물가에 작은 집을 지어 ‘면재(眠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양득중은 “대개 성품이 저절로 평안하고 고요해짐은 잠을 쾌적하게 자는 데서 크게 얻어진다”(한국고전종합 DB)고 썼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은 무심하게 그저 존재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저 시의 흥취와 평온함을 현장에선 대입하긴 힘들었다. 언제 쾌적한 숙면(熟眠)을 취할 수 있을까.


해남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