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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새벽 기상해 자기계발..2030은 왜 ‘미라클 모닝’에 열광하나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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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어 있는 오전 4시30분, 대학생 이세라씨(24)는 하루를 시작한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이불을 갠 뒤 책상에 앉아 ‘오늘 할 일’을 메모지에 정리한다.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며 유산소·근력 운동과 요가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신문을 읽으며 흥미로운 기사나 칼럼을 요약한다. 이어 독서를 하고 인상적인 구절은 필사한다. 여기에 명상과 수어·일본어 공부까지 마치면 그만의 ‘미라클 모닝’이 종료된다. 이처럼 이씨가 부지런한 아침을 보낸 것은 17일을 기준으로 66일째가 됐다.


2030세대 사이에 미라클 모닝 열풍이 불고 있다. 미라클 모닝은 2016년 미국인 저술가 할 엘로드가 쓴 동명의 자기계발서에서 따온 개념이다. 오전 6시 이전, 이른 시간에 일어나 독서·운동 등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유튜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에 키워드 검색을 하면 나오는 게시물만 20여만건에 달한다. 2000년대 초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침형 인간’ 신드롬의 부활일까. 청년들은 왜 미라클 모닝에 열광하는 것일까.


미라클 모닝의 실천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운동이나 명상, 외국어·경제 공부, 신문 읽기 등 각자 원하는 활동으로 ‘루틴’(생활습관)을 구성한다. 거창한 계획뿐 아니라 ‘이불 개기’나 ‘물 1ℓ 마시기’ 등과 같은 소소한 습관도 포함될 수 있다. 참가자들의 기상 시간은 오전 4시부터 6시까지로, 실행 시간도 ‘아침’이란 범주 안에서 자유롭게 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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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꼽은 미라클 모닝의 효과는 ‘자존감 상승’이다. 지난해 4월부터 9개월째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이종광씨(31)는 체크 리스트에 적힌 할일들을 하나씩 지우며 느끼는 성취감이 크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일어나기로 한 시간에 일어나고, 하고자 했던 일을 해내면서 자존감과 삶의 만족도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크루즈 승무원 손유정씨(26)도 비슷한 변화를 느꼈다. 3개월 차인 그는 “일찍 일어나 커튼을 걷으면 극소수의 집만 불이 켜져 있는데 그걸 볼 때 남들보다 하루를 길게 산다는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미라클 모닝을 실천 중인 공무원 김혜원씨(39)도 “매일 아침 하는 모든 것들이 꾸준히 축적돼 하루하루 더 나은 내가 된다는 확신이 들고 스스로 긍정적으로 판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라클 모닝의 유행에는 코로나19 확산도 한몫했다. 손씨가 일하는 크루즈는 지난해 3월부터 출항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출항 재개까지 귀중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미라클 모닝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미라클 모닝을 실천해온 프로그래머 최병일씨(41)도 “주변 또래 직장인 중에 퇴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상황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데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얻은 아이디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은퇴 생활이 없는 ‘인디펜던트 워커(독립적 노동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낳은 우울과 절망의 시대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청년들을 미라클 모닝으로 이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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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의 인기는 18년 전 ‘아침형 인간’ 열풍과 어느 정도는 겹쳐진다. 일본 의사 사이쇼 히로시가 2003년 쓴 동명의 책을 시작으로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설파하는 자기계발서가 쏟아졌다. 자기계발 붐은 2010년대 접어들어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공고히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반동적으로 ‘힐링’과 ‘욜로’ 열풍을 불러왔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 이른바 ‘힐링 에세이’라 불리는 서적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참가자들은 미라클 모닝에는 단순한 스펙 쌓기가 아닌 ‘자기 돌봄’(셀프 케어)의 개념이 녹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세라씨는 “미라클 모닝은 일종의 자기계발이 맞다”면서도 “기존의 ‘노오력’과 달리 특정한 사회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게 아니다. 자기주도적으로 삶을 꾸리고 스스로를 돌보기 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힐링·욜로의 대척점이 아닌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종광씨가 “릴랙스(휴식)가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아침 일찍 운동으로 땀을 흘리고 명상을 하며 심적 안정감을 얻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에 청년들이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통해 정신건강을 지키려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미라클 모닝의 유행은 청년들의 (자신감을 측정하는) 활력 지수 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맥락 등과 함께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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