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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김수영, 그가 현재를 산다면 갈비 대신 햄버거 패티에 분개했을까

by경향신문

복잡한 서울에서 표석 따라 걸으며 상상하기

경향신문

종로2가 김수영 생가 터 맞은편엔 햄버거 체인 가게가 들어섰고,

다른 표석들 안팎엔 화단·분리수거함,버스정거장이 늘어섰다


서울 종로2가 ‘김수영 생가 터’ 앞에서 김수영(사진)이 현재를 산다면 햄버거집 패티를 두고 옹졸하게 점장이나 노동자에게 분개하며 격하고 험한 욕을 해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그는 ‘왕궁’이 아니라 ‘기름덩어리 갈비’에 분개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종로2가 도로변 김수영 생가 터 표석 맞은편엔 대형 햄버거 체인 가게가 들어섰다. 앞서 들른 창신동 ‘경성궤도회사 터’ 표석은 다른 햄버거 체인이 든 건물의 모차렐라 베이컨 버거 광고판 아래 설치됐다.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표석(標石, 푯말·표지석이라고도 한다)은 “사라진 문화유산 터나 역사적 사건 현장을 기억, 기념하기 위한 표지물”이다. 역사 못지않게 두드러지는 건 현재의 도시, 지금의 서울이다. 표석은 도시 재개발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표석 안팎엔 화단과 분리수거함, 버스정거장과 전철역 출입구가 늘어섰다. 대기업 지점 건물이나 광고판이 지금 서울을 드러낸다.


표석은 “특정한 시간대 역사적 사건이 존재했던 공간을 확인하고, 표석 문구로 그 사건, 단체 혹은 인물이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표석 하나로 기억을 만들고, 기념하긴 쉽지 않다. 폐사지는 너른 공간에 주춧돌이라도 남았지만, 대부분의 표석 주변에 당시를 상기하는 것들은 다 사라졌다.

#사라진 곳에서 상상하기

서울 시내 표석은 총 323개…

눈여겨보는 이 드물지만,

사라진 공간을 머릿속에 세우며

지식이 입체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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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포도청 터’와 ‘최시형 순교 터’엔 1544년 포도청 설치부터 1898년 최시형 순교에 이어 단성사 역사를 담은 기념물이 들어섰다.

표석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30여개 현장을 다닐 때 표석을 유심히 보던 이는 한 사람뿐이다. ‘좌포도청 터’와 ‘최시형 순교 터’에서다. 이곳엔 표석 말고도 볼거리가 있다. 종로3가 치안센터 경계를 이루는 벽엔 1544년 포도청 설치부터 1898년 최시형 순교에 이어 단성사 역사를 담은 기념물이 들어섰다. 남 말할 일은 아니다. 경향신문사 부근 ‘흥화문 터’ 표석은 입사하고 수천번 오갔을 텐데 이번 취재를 하고 나서야 그 위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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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사 부근 ‘흥화문 터’를 알릭리는 표석.

표석 답사 또는 여행은 능동적인 일이 필요하다.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 사라진 공간을 회상하거나 상상해야 한다. 지식으로 3차원의 공간을 머릿속에 세우는 일이다. 공간과 공간을 잇고 맥락도 만들어야 한다. 현장을 다니면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지식이 입체적인 인식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누린다.

#주제 잡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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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은 현재 서울도 드러낸다. 경성궤도회사 터는 햄버거 가게 광고판 아래 설치됐다.

‘경성궤도회사 터’는 1930~1961년 동대문에서 뚝섬과 광장리(현 광나루)를 오가던 궤도전차의 시발지다. 종로 일대를 오가는 궤도전철은 익숙해도 뚝섬행 궤도전철은 낯설다. 표석으로 옛 서울의 공간을 확장한다. 경성궤도회사 터 맞은편은 ‘전차 차고 터’다. 1899~1968년 운행한 전차 차고지가 있던 곳이다. 대중 상대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 최초 영화 상영지 한성전기회사 기계창도 이 터에 자리 잡았다. 철도와 영화 역사가 교집합하는 곳이다.


표석을 잇다 보면 공간의 면모, 의미가 더 잘 드러난다. 경성궤도회사 터에서 2.5㎞ 떨어진 곳에 ‘성동역 터’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25일 경춘철도회사가 부설한 사설철도다. 경춘선이 여기서 출발했다.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의 임산물, 농산물을 많이 운반했다고 한다. 서울 약령시장 등 일대 여러 시장이 발달한 것도 이 덕이다. 이 사설철도는 1970년 청량리역으로 이전하면서 헐렸다.


323개(서울시 관리 기준)의 표석을 두고 주제 답사나 여행이 가능하다. 1월 말 출간된 <표지석 따라 걷기>(정도환 지음, 큰그림)는 1900년대 책, 교육 관련 표석을 주제로 잡았다. ‘보성사 터’ 같은 ‘책을 만들던 곳’, 회동서관 등지의 ‘책을 팔던 곳’에다 ‘정신여학교 터’ 같은 ‘가르치던 곳’으로 분류했다.


전국역사지도사 모임은 ‘표석을 따라’ 시리즈를 3권 냈다. 2019년 출간한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유씨북스)는 3·1독립운동의 만세시위 현장, 무장의거 현장, 독립운동 단체 공간, 일제침탈 현장을 따라간다. 2018년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는 전기·전화·전차 같은 신문물과 백화점의 등장, 서양의학이 중등교육, 언론 같은 근대 국가사회의 체제를 다룬다. 2016년 낸 책은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이다.

#풍경이 있는 곳

풍경이라 할 만한 곳에 있기도 하다,

‘장원서 터’ ‘성삼문 선생 살던 곳’은

정독도서관 진입로로 ‘북촌길’로 주목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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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 선생이 살던 집터’ 표석은 대나무 화단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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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운동 기념터’는 인사동 승동교회 느티나무 아래 있다.

표석 주변은 삭막하다. 도로변 등지에 많이 설치했기 때문이다. 건물에 세 들기도 했다. 표석 자체를 따지면 ‘표지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미건조하다고 ‘동상’처럼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풍경이 없는 건 아니다. ‘3·1독립운동 기념터’는 인사동 승동교회 느티나무 아래 있다. 십수미터 떨어진 ‘이율곡 선생이 살던 집터’ 표석 위치는 대나무 화단 앞이다. 잿빛 건물을 배경으로 표석과 대나무가 잘 어우러진다. 표석 좌우 쌓인 비료 포대와 행사용 플라스틱 의자가 대나무 앞 표석의 운치를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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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곡 선생 살던 집터’ 좌우 비료포대와 행사용 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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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 터’는 덕성여고 정문 아래 놓였다. 덕성여고는 지난해 말 감고당길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길은 북촌의 ‘장원서 터’와 ‘성삼문 선생 살던 곳’ 표석과 이어진다.

‘율곡로’라는 이름이 집터에서 나왔다. 율곡로 3길(감고당길)은 ‘걷기 길’로 뜬 곳이다. ‘감고당 터’는 덕성여고 정문 아래 놓였는데, 교정 소나무 밭과 어우러진다. 덕성여고는 지난해 말 이 길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덕성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이름이다. ‘장원서 터’와 ‘성삼문 선생 살던 곳’ 표석이 들어선 정독도서관 진입로도 북촌길로 주목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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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 답사하기 좋은 곳은 북촌 일대다. 이미 걷기 길로 뜬 곳이다. 정독도서관 진입로엔 조선 시대 궁궐에 과일을 공급하던 장원서와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 집, 최초의 관립중등학교(경기고)를 알리는 표석이 들어섰다. 감고당길(여성독립운동가의 길)과도 이어진다.

‘안동별궁 터’ 표석은 율곡로3길 초입 안국빌딩 화단에 있다. 바로 곁 서울공예박물관 예정지는 안동별궁 문화재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2019년 조사 땐 안동별궁의 정화당, 경연당 등 흔적을 확인했다.

#‘인권서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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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분수대광장 ‘4·19 최초 발포 현장’엔 ‘서울인권’을 새긴 동판이 있다. 지난달 30일 이곳을 찾았을 때 인권 표석 너머로 김진숙 복직 단식장과 세월호 유족 단식장이 보였다.

안동별궁은 조선 왕족 거주 공간이다. 경복궁 쪽으로 갈수록 왕족에 관한 터가 많이 나온다. 왕조 중심의 역사 서술이 표석 설치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서울시가 2016년부터 진행한 ‘인권 현장 표석’은 기존 표석의 봉건성을 극복하려는 듯하다. 현대 국가폭력과 항쟁의 현장을 바닥 동판으로 기록하고, 기념한다. 58개를 설치했다.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15세 소년 노동자 문송면이 일하던 ‘협성계공 터’, 노동자와 시민 학생들의 연대가 이뤄진 ‘구로동맹 파업 터’, 시내버스 안내양 40여명이 처우개선과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했던 ‘새한버스 기숙사 터’, 식모가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는 등 인권이 유린된 ‘궁정파출소 터’에 동판을 깔았다.


청와대 영빈관 맞은편 사랑채 분수대광장은 ‘4·19 최초 발포 현장’이다. 지난달 30일 이곳을 찾았을 때 ‘인권서울’ 동판 너머 ‘세월호 유족 단식장’과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농성장’이 보였다. 단식자 중 한 명인 송경동 시인이 경찰의 해산 경고 방송에 항의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뛰어가다가 제지당했다. 그는 이날 탈진해 쓰러졌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의 단식 중단 권고에 그는 “최소한의 상식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목숨을 걸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단식을 이어간다. 이틀 전 도보행진 중이던 김진숙은 “39일째 굶고 있는 시인의 얼굴, 사람들이 코앞에서 말라가고 있는데, 청와대는 비닐 한 장, 가림막 하나 막을 생각만 하지 생명에는 무관심합니다. 이 시대 민주주의와 인권의 민낯”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다시 표석의 효용, 의미, 한계를 되새겨본다. 이곳에 ‘인권서울’ 표석을 설치할 때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은 “시민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시민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분수대광장에서 공허하게 맴도는 듯했다. 인권을 바닥에 새긴다고 반인권이 종식되는 건 아니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