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비걸(B-Girl)’ 김예리, 브레이킹으로 편견과 한계를 깨다

[컬처]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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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김예리의 꿈은 올림픽 메달 색깔에만 달려있지 않다. 강윤중 기자

‘브레이킹’.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브레이크 댄스를 2024년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며 공표한 명칭이다. 브레이킹은 오랜 시간 ‘비보잉(b-boying)’으로 통용됐다. 비보잉은 여성 브레이커 댄서를 뜻하는 ‘비걸(b-girl)’을 포괄하지 못했다. 브레이킹은 미국 힙합 선구자들이 불렀던 이름인 동시에 ‘비보이(b-boy)’와 비걸을 포괄하는 성 중립적 단어였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YGX 아카데미 스튜디오에서 비걸 김예리(21·닉네임 ‘YELL’·사진)를 만났다. 정상급 비보이 크루 ‘갬블러 크루’ 소속인 동시에 YG엔터테인먼트 자회사 YGX 소속 안무가인 그는 올림픽 메달을 딴 국내 유일의 댄서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유스) 올림픽 브레이킹 부문에서 동메달을 수상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브레이킹 국제대회 ‘레드불 비시 원’ 2019년 한국 대회에서 우승했고, 지난해 ‘레드불 E-배틀’ 월드파이널에선 4강에 진출했다.


카메라 앞에 선 김예리는 연습실을 크게 한 바퀴 걸은 뒤 상체를 서서히 움직였다. 은색과 연보라색 투톤의 짧은 머리가 몸의 움직임에 맞춰 흩날렸다. 파워무브 동작에 들어가기 앞서 스텝을 밟던 그가 연습실 바닥으로 낮게 몸을 던졌다. 머리와 어깨로 몸을 지탱해 다리를 들어올리더니 순식간에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자다가도 일어나 할 수 있다”는 ‘레인보우’(한 손을 짚고 뒤로 넘는 기술)도 연이어 선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 앉은 김예리는 정중한 태도로 마스크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청각장애 4급인 그는 상대의 입모양을 함께 봐야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긴 하지만,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잘 안 들려서요.”


IOC는 전 세계 브레이킹 인구를 약 100만명으로 추산했다. 한국 비보이는 약 1만명, 비걸은 약 30명으로 추산된다. 비걸 김예리는 어딜 가나 ‘홍일점’이다. 그의 춤을 두고 사람들은 ‘여자답지 않다’거나 ‘남자 같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럼에도, 의지와 성실함으로 편견의 벽을 하나둘 넘는다. 그러면서 “더 많은 소녀가 나를 보고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말한다. 브레이킹 유망주로 불리는 김예리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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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걸(B-girl)’ 김예리가 서울합정동 YGX 아카데미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오늘도 ‘열심히’ 버텨내 꿈은 역사에 남는 거니까”

- 브레이킹을 시작한 계기는요.


“부모님 신조가 ‘건강하게만 자라라’였어요. 수영·축구·배드민턴 안 해 본 게 없죠. 춤도 운동으로 시작했어요. 방송댄스를 먼저 배웠는데,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하는 여자 아이돌 안무가 안 맞았어요. 남자 아이돌 안무만 주로 췄어요. 그러던 중 비보잉 대회 영상을 봤어요. ‘프리즈(물구나무서서 한쪽 팔로 멈추는 동작)’ 하나만 배우면 춤으로 짱 먹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웃음) 중학교 2학년 때 학원을 찾아가서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 브레이킹을 시작하고 어딜 가나 ‘홍일점’이었다고요.


“네. 지금 팀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 부모님이 춤추는 걸 반대하진 않았나요.


“춤에 너무 몰입하니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지원을 끊으셨어요.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학교 마치면 집 근처 놀이터에서 2시간씩 연습을 했어요. 나중엔 동네에 소문이 났더라고요. ‘놀이터에 춤추는 여자애가 있는데, 잘하더라’라면서요. 춤은 계속 추는데 성적이 오르니, 1년쯤 지나서 학원 다니는 걸 다시 허락해주셨어요.”


-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브레이킹을 하기 전엔 머리도 길고, 안경도 쓰고, 모범생 이미지가 강했어요. 성격이 조용한 편이기도 하고요. 중학교 입학하고 한때 따돌림을 당했어요. 짓궂은 장난이 괴롭힘으로 넘어갈 무렵 수련회를 갔어요. 장기자랑 무대에서 남자 아이돌 곡에 맞춰 혼자 춤을 췄어요. 1등을 해서 상품을 타니까, 이미지가 바뀌었어요. 2학년이 돼서도 한 친구 때문에 급식을 못 먹을 정도로 힘든 때가 있었어요. 그때도 스트레스를 춤으로 풀었어요.”


- 춤을 진로로 삼은 건 언제인가요.


“예고에 진학하면서요. 지금도 완전히 댄서로만 살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좌우명이 ‘Limitless(한계는 없다)’거든요. 기본 정체성은 ‘비걸’이지만 관심이 있는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고에 진학한 것도 춤만 추겠다기보다, 춤을 더 잘 출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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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중 기자

- 비보이 크루엔 언제 들어갔나요.


“고2 때요. 배틀 없이 연습실에서 이틀간 연습만 하다 가면 알아서 뽑겠다고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제일 열심히 했어요. 잃을 게 없었거든요. 합격생 네 명 중 한 명이 됐어요. ‘안 뽑힐 수 없겠다’ 생각하긴 했어요.”


- 갬블러 크루 역사상 첫 비걸인가요.


“3번째였어요. 버틴 건 처음이에요.”


- 크루에 들어가면 뭐가 달라지나요.


“비보이·비걸은 일단 혼자 활동하기 어려워요. 연습실도 있어야 하고요. 정확한 피드백도 받아야 해요. 메이저팀에 들면 대회를 나가서 이름값도 받아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 연습량은 얼마나 되죠.


“보통 오후 5시에 모여서 10시까지 연습을 해요. 전 10시 이후가 본격적인 연습 시간이었어요. 오빠들 눈치를 안 봐도 되니까요. 연습실 마지막 정리는 항상 제 차지였어요.”


- 크루에서 막내인가요.


“정식 멤버 중엔 막내예요.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온 친구가 고3이라서 전체로 따지면 그 친구가 막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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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리(오른쪽)는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올림픽 브레이킹 비걸 부문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IOC 홈페이지

남자들과 마냥 비교는 곤란

신체 특성상 차이 분명 있어

비보이·비걸 나누는 게 맞아


- 한국 비걸은 몇 명인가요.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다섯명? 다 따지면 스무명 조금 넘는 것 같아요.”


- 비걸끼린 교류가 있나요.


“활동 지역이 다르면 자주 만나진 못해요. 같은 지역이면 친하죠. 만나면 더 반가운 건 있어요. 경쟁자이면서도 꼭 있어야 하는 존재들이니까요.”


- 한국 비걸신이 유독 작은 걸까요.


“유독 한국이 더뎌요. 해외에선 비걸을 포함해 브레이킹신 자체가 커지는 추세예요. 일본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면, 러시아는 최근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유럽은 ‘루키’가 많죠.”


- 왜 이런 격차가 벌어지는 걸까요.


“한국에선 여전히 언더(하위)문화 느낌이 강해요. 일본과 러시아는 지원은 물론이고 공장인가 싶을 만큼 트레이닝 시스템이 잘돼 있어요. 일본에 갔는데 체육관에서 아기들 수백명이 헤드스핀을 돌고 있는 거예요. 학교에서 수업으로 가르치기도 하고요. 한국이 세계 대회를 휩쓸곤 있지만, 경제활동으로 비치지 않으니 ‘비보이들은 뭐 먹고살아’ 얘기가 나오죠.”


- 브레이킹은 오랜 기간 남성 댄서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어요.


“춤 자체가 남자 신체에 유리해요. 기술은 더 그렇죠. 춤의 기본이 멋이고 힘이다 보니 애초에 시도도 많이 안 해요. 남자들은 ‘다쳐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무작정 시작하거든요.”


- 문화는 어떤가요.


“가부장적인 문화가 있어요. 앞선 세대 언니들이 힘들었어요. 능글맞은 장난을 친다거나 성적으로 무시하는? 전 그런 일은 없었어요. 대신 춤에 있어 편견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남자를 따라 한다’ ‘여성스러운 느낌을 살리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요. 파워풀하고 에너지를 크게 쓰는 춤을 선호하는 것뿐인데. 속상한 건 무작정 ‘여자들 춤은 재미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신체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마냥 남성과 비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 그런 비교가 비걸 진입장벽을 높이는 거네요.


“예전엔 ‘열심히 해서 남자들이랑 동등하게 해야지’란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달라요. 비보이와 비걸 대회를 무조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브레이킹 대회는 남녀 구분 없이 치러졌거든요. 비걸은 무조건 예선 탈락이었어요. 괴물이 아닌 이상 ‘잘하는 비걸’이 ‘잘하는 비보이’를 이기기가 쉽지 않잖아요. 다행히 2018년부터 메이저 대회에서 비걸 부문을 따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레드불 비시 원이 2018년부터 비걸 파트를 신설했고요. 이게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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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열린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김예리는 2등을 차지했다. 김예리 제공

‘좀 하다 나가겠지’ 말하는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고야 만다” 버티게 됐죠


- ‘버틴다’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어요. ‘비걸 김예리’를 버티게 한 동력은 뭔가요.


“장르 불문하고 ‘잘한다’ 하는 댄서들을 보면 몸이 힘들어도 연습을 하게 돼요.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죠. 팀에 들어가고 2년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어요. ‘좀 하다가 나가겠지’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팀이 파워무브, 기술로 유명하다 보니 현재 몸 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기술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결승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데, 대놓고 ‘네가 결승을 갈까?’ 말하는 경우도 있었죠. 결국엔 결승을 갔어요.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하고야 만다.”


- 비걸로서 희열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요.


“대회겠죠? 2019년 레드불 비시 원 한국 예선에서 우승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그 대회를 계기로 팀 오빠들 잔소리도 많이 벗어났고요.(웃음) 청소년(유스) 올림픽은 세계 대회이긴 했지만, 나이 제한이 있었잖아요. 언니들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컸는데, 나이 제한을 두지 않은 대회에서 이긴 건 처음이었어요. 벽을 하나 넘은 기분이었죠. 우승하고 많이 울었어요.”


- 2018년 KBS 댄스배틀 오디션 프로그램 <댄싱하이>에 출연했어요.


“출연 이후 저를 보고 (비걸을) 시작하게 됐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미디어에 노출 되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어요. 사실 동메달도 2년 전에 딴 거잖아요. 당시엔 뉴스 하나 안 나왔거든요. 여전히 비걸이 아니라 여자 비보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 춤을 출 때 청각장애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요.


“일상생활엔 지장이 없는데, 소리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진행자의 마이크 소리나 관중 환호성이 음악과 겹쳐지면 구분이 어렵죠. 보청기를 바꾸고 한 달 만에 대회에 나갔더니 노래가 안 들리더라고요. 당황했어요. 대회에선 어떤 노래가 나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해요. 실수에 대한 걱정은 그 다음이죠.”


- 짧은 머리가 상징이기도 해요.


“머리를 바닥에 대는 동작이 많은데, 춤을 출 때마다 긴 머리가 얼굴을 치더라고요. 중3 때부터 이 머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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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중 기자

브레이킹 입지 줄고 있지만

“잘하고 있다” 말에 힘 얻어

영향력 있는 사람 될 거예요


- 유스 올림픽은 어떻게 출전하게 됐나요.


“세계댄스스포츠연맹(WDSF) 사이트에 공고가 떴어요. 한국은 지원자가 적었어요. 국가당 남녀 다섯명씩 자리가 주어졌는데, 여자는 4명밖에 지원을 안 해서 전원 다 붙었어요. 남자는 7명 참가해서 5명 통과하고요.”


- 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했나요.


“아시아 예선에서 2등, 월드파이널에서 3등을 했어요.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어요. 다만 대진운은 아쉬웠어요. 첫 배틀에서 긴장을 했는지 점수가 잘 안 나왔거든요. 결승에서 만나고 싶던 친구와 준결승에서 만났어요. 일본의 ‘람’이란 친구인데, 최대한 늦게 만나고 싶었어요. 근데 월드파이널과 본선 모두 준결승에서 만났죠.”


- ‘올림픽 메달을 딴 최초의 한국 댄서’라는 수식어가 주는 부담은 없나요.


“부담감은 어쩔 수 없어요. 올림픽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미리 걱정은 안 하려고요.”


- 안무가 크루에 속해있기도 해요. 여기선 어떤 일을 하나요.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해요.”


- 인스타그램을 보니 해외팬이 많아요.


“코레오크래퍼(안무가)신이 커지면서 댄서들 대우가 좋아졌어요. 반면 브레이킹을 포함한 스트리트 댄스는 입지가 줄고 있어요. 코로나19로 배틀도 많이 줄었고요.”


- 장르별 불균형이 있는 거네요.


“K팝 영향으로 안무가들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고, 춤 자체도 접근성이 좋으니까요. 대신 안무가신에 저 같은 사람이 있으면 브레이킹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늘지 않을까 싶어요. 두 장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요. 브레이킹은 연습이 많이 필요한데, 연습 시간이 부족해요. 타 장르를 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팀 오빠들이나 비걸 선배들이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셔서 그 말을 믿고 힘내려고요.”


- 어깨가 너무 무거운 거 아닌가요.


“많이 무거워요!(웃음)”


- 브레이킹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저의 꿈을 이뤄줬어요. 춤 외에 취미도 별로 없어서 이거 안 했으면 뭐 했을까 싶긴 해요. 분명히 공부만 파진 않았을 것 같은데. 춤 없는 삶이 상상이 안 돼요.”


- 목표가 뭐예요.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혼자 잘하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저를 보고 여러 시도를 하는 친구들이 생기거나 밑의 사람도 끌어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2021.02.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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