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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자동차 ‘작명’의 세계…암호 같은, 너의 이름은

by경향신문

차 모델에 잘 어울리는 건 물론

부르기 쉽고 긍정적 이미지 반영돼야

경쟁사 등록 단어 피하고 나라별 정서 고려

출시 전 ‘태명’으로 불러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에 빠진다. 훌륭한 이름이 건강과 행복, 명예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체들은 차 이름이 모델에 잘 어울리고, 부르기 쉽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판매가 잘된다고 믿는다. 세계 유명 완성차 업체들은 주요 모델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차 이름 짓기도 사람과 비슷

일반적으로 자동차도 사람처럼 태어나기 전에 ‘태명’을 받는다. 신차 개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 코드명’이 그것이다. 제네시스는 첫 전기차를 개발 중인데, 현대차그룹 내에서 ‘JW’란 프로젝트명으로 불리고 있다. 자동차 진짜 이름은 디자인이 최종 확정된 뒤에 짓는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상품 개발 콘셉트와 외관 디자인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멋진 이름이나 단어들은 경쟁 업체나 다른 산업 분야에서 이미 상표권을 등록한 경우가 많아 적당한 이름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나라별로 언어와 정서가 달라 애써 차 이름을 찾아내도 포기할 때가 많다. 현대차의 한 해외 연구소는 자체 개발한 신차의 이름을 ‘BRAZZA’로 지어 본사에 보고한 적이 있었다. 역동적인 주행 성능과 감각적인 스타일에 잘 어울린다는 게 추천 이유였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의 속옷을 가리키는 단어와 발음이 같아 채택되지 못했다.

경향신문

현대차 싼타페

SUV에 유명 휴양지 이름

싼타페는 미 뉴멕시코 도시

팰리세이드도 지역명 따와


상표권 같은 법적인 문제를 피하고, 차급이나 모델 특징을 소비자에게 쉽게 인식시키기 위해 완성차 업체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의 작명법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차는 주요 수출국가의 유명 휴양지 이름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붙인다. 소형 SUV 코나는 하와이 빅아일랜드 북서쪽에 위치한 휴양지, 싼타페는 미국 뉴멕시코의 휴양도시다. 투싼은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지역이며, 대형 SUV 팰리세이드는 캘리포니아 남부 해변 지역인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따왔다. 실내 공간과 주행 감성이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기후와 풍경처럼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이유에서다.


세단은 차량의 개성이나 특징이 담긴 단어나 신조어로 이름을 짓는다. 쏘나타는 클래식 악곡의 한 형태로, 까다로운 연주에 걸맞게 혁신적인 성능과 기술이 담긴 차라는 의미다. 그랜저는 ‘웅장, 장엄, 위대함’이란 뜻으로 자사의 최상급 모델임을 상징한다. 사회에 갓 진출한 새내기들이 엔트리카로 즐겨 구입하는 아반떼는 스페인어로 ‘전진’ ‘발전’이란 뜻을 지녔다.

경향신문

기아 스포티지

스토닉·셀토스·쏘렌토…

UV 이름 첫 글자 ‘S’로

세단은 K5처럼 문자+숫자

경향신문

제네시스 G70

제네시스의 이니셜 ‘G’

차급 상징하는 숫자 조합

70은 준중형 모델 의미


기아는 스토닉, 셀토스, 스포티지, 쏘렌토에서 보듯 SUV 이름 첫 글자를 ‘S’로 시작하는 작명법을 사용한다. 세단은 K5처럼 문자와 숫자를 결합하는 ‘알파뉴메릭’ 방식이 동원된다. K는 사명인 기아(Kia)의 이니셜이다. K에 준중형은 3, 중형은 5, 준대형은 8, 대형은 9를 붙인다. 기아는 조만간 출시될 K7 완전변경 모델의 이름을 K7에서 K8로 바꿨다. 덩치가 커지고 주행 성능과 편의장치도 대폭 개선한 만큼 이름까지 업그레이드해 그랜저를 잡겠다는 포석이다.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차명 체계도 기아와 비슷하다. 제네시스의 이니셜 ‘G’와 차급을 상징하는 숫자가 조합된다. G 다음에 붙는 70·80·90은 각각 준중형, 준대형, 대형 모델을 뜻한다. SUV 모델은 GV를 숫자 앞에 붙여 이름을 만든다. ‘V’는 ‘다재다능한’을 뜻하는 ‘Versatile’에서 따왔다. 조합하면 다양한 기능을 가진 럭셔리 SUV란 의미가 된다. GV 뒤 숫자는 세단처럼 크기를 뜻하는데, GV80보다 덩치가 큰 대형 SUV가 나오면 ‘GV90’란 이름이 붙여질 가능성이 있다.

벤츠·BMW는 알파벳과 숫자 조합

경향신문

벤츠 S500

차체 크기 나누는 알파벳S

대형·E 중형·C 준중형

500은 출력 크기 나타내

경향신문

BMW 540i

중형 세단 뜻하는 숫자 5

40은 4000cc급 출력 의미

i는 ‘가솔린 엔진’ 모델


메르세데스 벤츠는 1993년 C 클래스 출시 이후부터 알파벳과 숫자를 이용한 명명법을 적용하고 있다. 알파벳은 차체 크기에 따라 A(소형), C(준중형), E(중형), S(대형) 클래스로 나뉜다. 알파벳 뒤에는 ‘300’ 같은 세 자리 숫자가 붙는다. 과거에는 배기량을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출력의 의미가 더 많다. 숫자가 높을수록 출력이 높은 차란 뜻이다. 예컨대 E300과 E350은 2.0ℓ 4기통 싱글 터보엔진이지만 E300은 245마력, E350은 299마력을 낸다. 세단 가운데서도 4도어 쿠페는 이름 체계가 다소 다르다. E 클래스 플랫폼으로 만든 4도어 쿠페는 CLS라 불린다. CLA도 판매 중인데, 이는 A 클래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4도어 쿠페를 뜻한다. 모델명 마지막에는 엔진 타입 및 구동 방식도 표시된다. 디젤 모델은 ‘d’로, 사륜구동 모델은 ‘4MATIC’을 붙여 구분한다.


BMW의 차명 체계는 벤츠보다 더 구체적이다. 1부터 8까지의 숫자와 X, Z, L, i, d, e 등 6개의 알파벳으로 모델명을 만든다. BMW는 모델명만 봐도 차급이나 성능, 연료 종류를 쉽게 알 수 있다. 알파뉴메릭 방식을 적용하지만 세단에는 320i와 530i처럼 숫자가 먼저 나온다. 1과 2는 소형, 3과 4는 준중형, 5와 6은 중형, 7은 대형을 뜻한다. 이 숫자는 다시 홀수와 짝수로 형태를 구분하고 있다. 홀수는 세단이나 해치백, 왜건 등 전통적이면서도 실용성을 중시한 모델에 붙여진다. 짝수는 쿠페나 컨버터블처럼 디자인을 중시하고 실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모델에 적용된다. 예컨대 320i는 4도어지만, 420i는 2도어다.


앞의 숫자는 엔진 배기량을 나타낸다. 초기에는 2000㏄ 엔진을 탑재하면 ‘20’이, 3000㏄ 엔진에는 ‘30’을 붙였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엔진 다운사이징이 진행되면서 배기량보다는 엔진 출력의 의미가 좀 더 강해졌다. 2000㏄ 엔진이라도 3000㏄급 출력이 나올 경우 530i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름 맨 마지막에 위치한 알파벳은 연료 종류다. i는 가솔린 엔진, d는 디젤 엔진, e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이다. 7시리즈는 모델명 마지막에 대문자 L이 붙기도 한다. 이는 회장님들이 선호하는 쇼퍼 드리븐용 롱 휠베이스 모델이다. 반면 SUV는 알파벳이 먼저 붙는다. ‘X’가 앞에 나오는데, 크로스오버와 사륜구동을 뜻한다. X 뒤에는 차급을 나타내는 숫자가 조합된다. X1은 소형, X3는 준중형, X5는 준대형 SUV다. 덩치는 X5와 비슷하지만 디자인이 쿠페형인 모델은 X6란 이름이 붙었다.

‘그대 이름은 바람…’

경향신문

아우디 Q7

사륜구동 콰트로의 ‘Q’

차급별로 Q3·Q5·Q7·Q8

숫자 클수록 엔진 사양 높아


지구촌에 부는 ‘바람’을 차 이름으로 사용하는 브랜드도 있다. 폭스바겐 중형 세단 파사트는 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부는 무역풍, 제타는 제트기류란 뜻이다. 해치백 모델 골프도 멕시코만에서 부는 강력한 북남풍을 지칭하는 단어다. 반면 최근에 출시된 아테온은 ‘Art’와 영겁의 시간을 뜻하는 ‘Eon’의 합성어로 전통적인 작명법에서 벗어났다. SUV 모델은 기아처럼 이름 첫머리에 모두 ‘T’를 붙인다. 소형 SUV 티구안은 호랑이와 이구아나의 합성어, 투아렉은 북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에 사는 투아렉족에서 따왔다. 최근 출시된 티록은 바위처럼 단단한 SUV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우디는 벤츠, BMW처럼 알파벳에 숫자를 조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세단은 ‘A’, SUV는 아우디 고유의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Quattro)의 첫 글자인 ‘Q’를 모델명 첫머리에 놓는다. A와 Q 뒤에는 차체 크기 등을 상징하는 1에서 8까지의 숫자가 붙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차체가 크고 엔진 사양이 높다. A1과 A3는 해치백, A4·A6·A8는 정통 세단, A5와 A7은 패스트백 디자인을 갖고 있다. SUV는 차급별로 Q3, Q5, Q7, Q8가 생산된다. 가끔 S7이나 RS7처럼 S와 RS가 조합을 보게 되는데, 이는 고성능과 초고성능 모델이다. 아우디 역시 엔진 출력과 형식, 사륜구동 탑재 여부를 차명 뒤에 표시한다. ‘아우디 A6 40 TDI 콰트로’는 166~200마력 출력을 내는 디젤 터보엔진과 사륜구동 콰트로 시스템을 장착한 차량이라는 의미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