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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브레이브걸스가 보여줬다, 버티다보면 기회가 온다는걸 [인터뷰]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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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작은 무대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해체 위기의 걸그룹을 되살린건 대형 기획사의 자본도 유튜브 알고리즘도 아닌, 과거의 자신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노력이었다. 2017년 발매곡 ‘롤린’으로 역주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이야기다.


‘롤린’ 열풍은 한 유튜브 영상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4일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브레이브걸스_롤린_댓글모음’이 게시 열흘여 만에 660만 조회수를 넘긴 것. 브레이브걸스의 군부대 공연 영상에 환호하는 국군 장병의 함성을 이어붙인 영상은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 “인민군도 흔들어제낌”이라는 재치있는 댓글로 화제를 모았다. 군인들과 K팝팬들 사이에서 ‘숨어 듣는 명곡’으로 유명했던 이 곡은 발매 4년 만인 9일 현재 ‘벅스’ ‘지니’ 등 주요 음원차트 1위에 올라있다.


좋은 노래는 역주행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영화 <매드맥스>를 연상케 하는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가오리춤’을 따라 추는 군인들과, 그런 군인들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 멤버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 영상을 보다보면 ‘가수의 자리는 무대’라는 낡아 보이는 명제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주변에서 ‘잘 안 될것’이라는 시선이 많았어요. 대표님을 만류하시던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그냥 ‘아, 우리는 안 될 운명인가보다’ 체념하고 있었죠. 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5분 동안은 그런 생각을 잊고 무대에 임했어요.”(유정) 8일 서면으로 만난 브레이브걸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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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의 공식 데뷔는 2011년이다. 유명 작곡가인 ‘용감한 형제’(본명 강동철)가 제작을 맡았다. 대형기획사 소속 소녀시대·원더걸스의 성공 이후 일주일에 한 팀꼴로 걸그룹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 중소기획사 소속인 브레이브걸스의 전략은 ‘섹시’였다. 선정적인 의상과 안무로 반짝 화제를 모았지만, 그럴수록 멤버 개인의 매력은 오히려 가려졌다. 2016년엔 대대적인 멤버 교체를 거쳐 7인조로 재편됐다. ‘2기’로 불리는 지금의 멤버 4명(유나, 유정, 민영, 은지)가 합류한 것도 이 시기다. <변했어> <하이힐> 등 3~4개월 간격으로 싱글을 발매하며 야심찬 새 출발에 나섰지만 음원 성적은 저조한 편이었다. 멤버들의 연이은 탈퇴로 마음 고생도 심했다.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진 것은 2017년. 비운의 명곡이 될 뻔한 ‘롤린’이 발매되면서다. “‘롤린’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이건 대박이라고 생각했어요. 트로피컬 사운드의 신나는 댄스곡이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었거든요.”(은지) 하지만 이번에도 아쉬운 기획력이 발목을 잡았다. 뱀파이어 콘셉트와 섹시한 안무가 신나고 청량한 노래 분위기와 부조화를 일으킨 것. 그렇게 사라질뻔한 ‘롤린’의 생명력을 연장시킨 건 ‘이 명곡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K팝팬들의 입소문이었다. 이후 섹시함을 걷어내고 청량함을 강조한 리믹스 버전 ‘뉴 롤린’(2018)이 발매된 것도 팬들 공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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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는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1위 가수’라 불릴 정도로 군인 팬덤이 탄탄하다. 화제가 된 무대 영상 대부분은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국방TV <위문열차> 공연 영상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이 무대에 선 것은 선임에서 후임으로 이어지는 군인 팬들의 ‘철저한 인수인계’ 덕분이었다. “공백기에는 무대가 너무 고픈데 저희를 불러주신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이제는 거의 가족이라고 생각해요.”(민영)


하지만 기회는 생각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롤린’ 이후 이어진 3년간의 공백기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무작정 연습실에 갔어요. 공백기가 길어지다보니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다 같이 노력했거든요. 안무선생님과는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안무가 뭘까, 멤버들과는 우리의 매력을 어떻게 보여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유나) 지난해 8월 나온 마지막 싱글 <운전만해>는 그 고민이 종합된 집합체다. 안무부터 의상, 콘셉트까지 멤버들의 고민이 가득 담긴 곡이었지만, 장마와 태풍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사실상 마지막 시도였던 <운전만해>의 부진 이후, 브레이브걸스는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다. 평균 나이 29.5세. 걸그룹 평균에 비추면 적지 않은 나이인만큼 진로 고민도 많았다. 가장 어린 유나는 지난해 12월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평소 패션에 관심이 있던 은지는 의류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역주행 영상이 올라오기 불과 며칠 전엔 숙소 생활도 정리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랬던 역주행의 순간은 모든 것을 포기하기 직전에 찾아왔다. 작은 무대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멤버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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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의 다음 목표는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고 롱런하는 그룹”이 되는 것이다. ‘롤린’ 같은 청량한 댄스곡으로 ‘서머퀸’ 타이틀을 쥔 뒤, 발라드 같은 다른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서야 팬분들이 ‘브레이브걸스 팬’이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랜 시간 지금까지 곁에서 응원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신 ‘피어레스’ 여러분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민영)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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