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엔 이미 아기자기한 봄맛이 방울방울 [지극히 味적인 시장 (51)]

[푸드]by 경향신문

경남 삼천포 종합·수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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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사천과 삼천포의 통합 이야기가 나온다. 삼천포 출신 배역을 연기한 김성균씨가 ‘사천과 삼천을 더해 칠천포로 하자’는 제안을 하다가 쫓겨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천 갈 때면 그 장면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간다.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름답고 맛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사천은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은 통영과 거제, 오른쪽은 남해다. 삼천포대교가 모개섬, 늑도를 이어 남해 창선면까지 10여분이면 간다. 푸른 바다를 두른 아기자기한 해안선이 예쁜 곳이 사천. 바다에서는 맛난 것이 많이 나왔고 대표 어종이 쥐치였다.


삼천포는 쥐치로 만든 쥐포의 메카였다. 1950년대부터 쥐치 산업이 활발했다고 한다. 필자도 2004년 국내산 쥐치에 MSG를 넣지 않고 만든 쥐포를 기획하면서 삼천포 쥐포가 유명한지 알았다. 쥐치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쥐포는 말쥐치로 만든다. 말쥐치로 만든 쥐포여야만 씹는 맛이 제대로 난다. 조미료가 내는 감칠맛과는 다른 맛이 있다. 예전에는 삼천포 근해에서 잡히는 쥐치 어획량이 많았다고 한다. 바다 상황이 바뀌고, 남획으로 어획량이 급감해 요즘은 부산이나 강원도에서 가져와 가공한다고 한다. 그나마 작년 12월과 올해는 그 바다의 작황마저 나빠 작업을 거의 못한다고 한다. 가는 길에 삼천포 쥐포공장도 보려 했지만, 다음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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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에는 종합시장, 중앙시장, 수산시장이 있다. 동네 마실 가듯 슬렁슬렁 걸어갈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그중에서 매 4, 9일 든 날이면 종합시장에 오일장이 선다. 일단은 시장의 모양새가 여느 곳하고 달랐다. 4층 아파트의 1층은 상가, 2~4층은 살림집이다. 오일장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골목을 채우고 주변을 둘러싼 모양새다. 한쪽은 수산물, 나머지는 나물을 비롯한 농산물이다. 장터를 돌아다니는 상인들은 도로에 천막을 세우고 흥을 돋운다. 이웃한 고성보다 장터 크기는 작아도 아기자기한 맛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봄이 일찍 얼굴 내미는 남도답게 3월 초의 장터에는 원추리, 머위, 곰보배추(정식 명칭은 뱀차즈기)를 비롯해 단골인 달래, 냉이, 쑥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수산물 코너에는 가자미나 도다리가 많았다. 봄이 오면 몸이 넓적한 생선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산란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살의 맛이 퍼석퍼석하고 단맛이 없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얕은 바다에 산란하러 들어온 멸치가 좌판 여기저기 눈에 띈다. 멸치는 봄이 오면 기장을 비롯한 남도의 바다에 얼굴을 내민다. 3월 남도의 인기스타 중 하나가 멸치다. 횟감으로, 조림용으로 많이들 사 간다.


문어와 낙지, 주꾸미와 몇 가지 생선 사이에 잔털을 뒤집어쓴 게가 눈에 띈다. 털게라고 부르지만, 밤송이게가 정확한 명칭이다. 털겟과의 게는 맞지만 강원도나 차가운 물에서 잡히는 털게가 따로 있기에 밤송이게로 불러야 한다. 가격 차이도 크게 난다. 털게는 한 마리에 10만원 언저리다. 밤송이게는 시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몇 마리에 2만~3만원이다. 작년 2월 마산 진동에서 구경하고 1년 만의 재회다. 작년에는 국물용으로 살 거 아니면 사지 말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날이 따스해지면서 살이 차는 녀석이라 2월에는 살이 없지만 따스한 햇볕에 살이 좀 찼을까 싶거니와 게 좋아하시는 장모님 생각에 가격을 물었다. “다섯 마리 2만원요.” “안짝에 따로 있는 거 다해서는요?” “어~ 다해서 5만5000원만 주소.” 그날 밤 장모님 드릴 때 한 마리만 빼고 드렸다. 그 한 마리를 쪄서 맛봤다. 기대만큼의 살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바다는 아직 찬 겨울임을 잠시 잊었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 봄나물이 나와도 육지의 대한 추위와 맞먹는 영등철 바다이기에 아직 살이 덜 찼다. 밤송이게 맛은 꽃게의 달곰함과 홍게의 진한 향이 합쳐진 맛이다. 작은 몸체 안에 진한 맛을 품고 있다. 벚꽃이 피고 질 때 남도의 바다에서 밤송이게를 만난다면 제대로 맛을 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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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출발해 아침나절에 삼천포항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주변을 보니 졸복국 파는 곳이 많다. 미나리 넣고 끓인 시원한 것이 딱 맞겠다 싶다가도 왠지 뭔가 더 있을 거 같은 막연한 기대감. 혹시라도 바지락탕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수산시장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다녔다. 봄에 맛이 드는 것 중 빠지면 섭섭한 것이 바로 바지락.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지점을 기수역이라 한다. 영양성분이 많아 해양생물의 터전이 되거니와 그곳에 나는 수산물은 맛있다. 기수역에서 나는 것 중에서 조개류가 특히 더 맛있다. 재첩이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곳에서 많이 난다. 섬진강 하류인 하동이 재첩으로 유명한 까닭이다. 재첩만 맛난 것이 아니라 대합이나 백합, 바지락도 재첩 이상으로 맛나다.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을 막아 만든 진양호의 물이 가화강으로 통해 흘러 사천 바다로 들어온다. 바지락 하면 갯벌을 연상한다. 물 빠진 너른 갯벌에 삼삼오오 모여 호미로 바지락 캐는 모습 말이다. 갯벌이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형망’이라는 어구를 사용해 바지락을 채취한다. 쇠로 만든 도구로 바다의 바닥을 긁는다. 쇠에 달린 그물에 펄과 조개가 담기면 펄은 빠져나가고 조개만 남는다. 깊은 바다의 조개는 그렇게 잡는다. 먹이 활동을 왕성히 한 덕에 깊은 바다에서 나는 바지락은 살집이 튼실하다. 해장국 간판이 눈에 띄었다. 식당 출입구 앞에는 해감 중인 바지락이 수족관마다 쌓여 있다. 재고 없이 문 열고 들어갔다. “바지락 해장국 주세요” 하니 바구니 들고 나갔다가 들어오고는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해장국이 나왔다. 분식점에서 내주는 라면보다 빨랐다. 바지락 해장국에 따로 육수는 필요 없다. 물 끓이고 바지락 넣고 마늘 조금, 청양고추 조금이면 그만이다. 감칠맛과 짠맛은 바지락이 알아서 내준다. 껍데기와 살을 분리하는 사이 국물이 식는다. 거기에 밥을 더하면 딱 맞는 온도가 된다. 여러 반찬이 있지만 손이 잘 안 간다. 반찬이 맛없어서가 아니라 뽀얀 국물이 품고 있는 맛이 반찬을 잊게 만든다. 선미해장국 (055)833-9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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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 사천에서 석쇠를 그리 부른다고 한다. 모테 구이면 석쇠 구이다. 사천 나들목을 나오면 근처의 모테 구이 전문점이 있다. 기사식당의 단골 메뉴로 고추장이나 간장 양념을 해서 연탄불에 구운 돼지고기 백반이다. 화력 좋은 연탄불에 간장 양념한 고기를 태우지 않고 구워냈다. 간장과 설탕 양념이 강한 불에 잘 구워지니 불맛이 일품이다. 불맛이 타이밍을 지나치면 탄내가 된다. 불맛과 탄내의 경계선을 잘 탄 맛이다. 이 집의 장점이 고기 맛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1인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인분 이상 주문해야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많다. 2인분 이상 주문 가능 표시조차 없는 식당에서 앉았다가 쫓기듯 나온 적이 많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혼자라고 했다가 안 된다고 해서 나온 적도 있다. 이 집은 백반이 9000원이다. 혼자인 경우는 1000원 더 받는다고 메뉴판에 명시되어 있다. 1인분 주문하면서 눈치 볼 필요가 없어 마음 편히 식사했다. 백반에서 반찬 수를 줄이거나 아니면 이 식당처럼 1인분은 돈을 조금 더 받는 형태로 밥 좀 편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늘었으면 좋겠다. 유화식당 (055)854-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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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동네와 함께하는 식당이 있다. 식당이 중식당이라면 낯선 동네라도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사천에도 그런 중식당이 있다. 시장 구경하다 오후 2시30분경 사천이 처가인 후배가 추천한 식당을 찾았다. 그 시간이면 얼추 점심 손님이 빠져 ‘혼밥’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지만 못 먹었다. 점심 장사를 끝낸 주방장 겸 사장님이 일 보러 나가셨다고 한다. “우린 6시 전에 문 닫아.” 테이블 4개뿐인 홀을 지키는 할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네” 대답하고는 5시에 다시 와서 맛을 봤다. “간짜장, 비빔 짬뽕밥, 볶음밥 추천요.” 중식당의 영원한 딜레마,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넘어서는 갈등을 폭발시키는 후배의 문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볶음밥을 주문했다. 잘 볶은 밥과 볶음밥의 영원한 단짝 계란탕까지 더해진 맛들어진 한 상이 차려졌다. 밥 먹으면서 슬쩍 본 짬뽕, 다음에는 짬뽕이다. 동일반점 (055)833-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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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김진영|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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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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