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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금강이 품은 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 두 걸음

by경향신문

켜켜이 쌓인 역사가 머무는 도시, 공주

경향신문

공산성 성곽길을 돌면 공주의 과거와 현재가 드러난다. 금강 물줄기가 이 백제 유적을 따라 돈다. 고려, 조선의 유적도 볼 수 있다. 공산성을 오래 지킨 건 느티나무 같은 고목들이다. 사진은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과 공북루.

무령왕릉·공산성이 남아있는

‘웅진백제’의 중심지이면서


동학농민운동의 최후 격전지

하숙마을 있는 반죽동·봉황동

제민천 주변 ‘레트로’로 부흥


공주역 주변은 한산했다. 역명만 보고 시내일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웅진백제 도읍이자 한때 충청의 행정·교육 중심지였던 공주에 역은 없었다. 한국 근대 철도 역사 이후 처음 공주에 생긴 역 주변에서 보이는 건 논밭과 송전탑이다. 2000년대 세종시와 고속철도 건설을 두고 충남의 여러 지자체가 역 입지와 역명, 지자체 간 통합 문제 등을 두고 다퉜다. 지금의 공주역 입지는 그 논쟁과 갈등의 산물 같아 보였다.


4일 낮 12시10분, 택시 한 대가 역 앞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공주 공산성과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대전 한빛탑 이미지 로고와 금강부릉이 활자를 인쇄한 래핑용 인화지가 택시 문짝에 붙어 있었다.


‘금강부릉이 기사님’ 노수욱씨는 금강부릉이 공주시 2호차를 몬다. 이틀 전 홈페이지(ggtaxi.kr)에서 예약했다. 노씨가 공주역을 두고 ‘고객님, 당황하셨죠’라는 톤으로 입지 문제를 지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착하고 유순해서요.” 강퍅하지 못해 지역 잇속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뜻의 말이다. 이내 공주 자랑으로 이어진다. “여긴 큰 재해가 없어요. 기후가 좋아요. 바람도 세지 않고요. 다른 지역은 (농작물 키우려고) 스프링클러도 많이 하잖아요. 여기는 비도 잘 내려 가뭄이 없어요.”


목적지는 공산성과 무령왕릉 등 ‘웅진백제’의 중심지다. “기사님이 추천하는 곳으로 가도 좋다”고도 했다. 공주역에서 우금티터널을 지나자마자 노씨가 “이곳도 보라”며 차를 세운 곳이 동학혁명위령탑과 우금티전적 알림터다.


동학농민운동의 최대, 최후 격전지다. 드라마 <녹두꽃>의 배경 중 하나다. 위령탑은 1973년 세웠다. 탑 앞 건립기와 탑신 감사문의 ‘박정희’ ‘5·16혁명’ 같은 글자를 파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우금티 전투에 관한 짧은 영상도 관람했다. 영상은 ‘사민여천’ ‘성평등의 시작은 동학이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 같은 깃발을 비춰주며 끝이 났다.


이 동학정신은 1920년대 공주 농민운동에서도 이어졌다. 김갑순 같은 대지주와 그의 마름들의 횡포 때문에 소작농들이 고통받았다. 1927년 2월 주외면 소작인 20여명이 모여 만든 게 노농회(勞農會)다. 지주와 소작인 간 불평등 계약 체결을 교정하는 ‘소작상조’와 성인 남녀와 아동의 문맹타파를 목적으로 한 ‘무산(자) 교육’ 등 4대 강령으로 내세웠다. 노동 천시를 개선해 신성한 노동성을 배양한다도 목적에 넣었다.


웅진백제의 중심에 이르려면 제민천을 따라가야 한다. 금학동과 웅진동에 걸친 제민천은 원도심 전체를 가로지른다. 노씨는 “코로나19 이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했다. ‘비대면’이 가능해 뜬 곳이다. 다리와 도로 곳곳엔 공주 관련 전시물을 부착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 전문)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의 작품이 도로 밑기둥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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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천 곁 하숙마을.

제민천 줄기엔 이른바 ‘핫플레이스’와 ‘레트로’로 뜬 곳이 이어진다. 공주로 유학 온 충청권 학생들이 모여 촌을 이룬 반죽동 하숙마을이 그중 하나다. ‘역사도시’ 공주는 사범대학과 교육대학 덕에 ‘교육 도시’라고도 불렸다. 1923년 지은 충남금융조합 회관 건물은 지금 공주역사영상관이다.


반죽동과 봉황동 일대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 서점이 들어왔다. 세종시 등지에 밀려 쇠락하는 도시 공주는 원도심 개발과 골목길 재생으로 그나마 활력을 찾았다. 옛 건물들이 많다. 반죽동 호서극장 건물 자리 상단 간판 자리엔 극장 이름 네 글자가 남아 있다. 이 극장 앞엔 <巴里(파리)는 안개에 젖어> 상영 당시 찍은 교복 입은 학생 사진 패널이 걸려 있다. 노씨도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 걸 기억한다.


공주시는 지역 관광자원을 ‘소문난 칠공주’로 소개한다. 공주(公主)와 공주(公州)의 동음이의를 활용한 작명이다. 2006년 동명의 드라마 이름을 끌어들인 듯했다. 예를 들어 하숙마을은 ‘추억공주’다. 황새바위 등 천주교 순교 유적은? ‘순교공주’다. 어감이 좋지는 않았다.


공주에서 무령왕릉 같은 백제 역사 유적과 우금티 전적터 같은 근대 유적에 하나를 더하면 ‘천주교 박해’ 유적이다. 동학운동과 농민운동, 천주교 박해 같은 핍박과 억압의 역사가 공주의 역사를 관통한다. 노씨 표현대로라면 ‘유순한 사람들’에게 강건한 저항과 실천이라는 게 면면히 내려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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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등 송산리고분군.

지도로 보면 백제 유적인 송산리고분군과 공산성 사이 황새바위 성지가 있다. 이 성지는 제민천 바로 곁이다. 정상으로 오르다 보면 야구선수 박찬호가 다닌 공주중학교가 드러난다. ‘공주중 38회’ 글자를 넣은 박찬호 역투 대형 간판 너머로 학생 선수들이 공을 던지고, 치고, 달렸다. 송산리고분군 웅진백제역사관 대각선 맞은편에 들어선 게 세리공원이다. 1998년 US여자오픈 때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공을 쳐 내던 장면을 재현한 박세리 동상이 공원 입구 쪽에 서 있다. 동상 제작자 이름을 보니 ‘한국투혼21 건립추진위’다.


송산리고군분 개별 무덤엔 들어갈 수 없다. 웅진백제역사관에 무령왕릉 등 발굴 고분을 재현해뒀다. 노씨는 “예전 학생 때는 실제 무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날 고분군에 문화재청 직원들이 조사를 나왔다. 직원 한 명이 “29호분 관련 조사를 하고 있다”고만 전했다.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년이 되는 해다. 문화재청과 공주시는 4월부터 송산리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등 여러 행사를 연다.


제민천이 주민 생활 터전을 한줄기로 꿰며 흐른다면 금강은 백제의 여러 유적을 유유히 끼고 돈다. 두 물줄기가 공주의 고대와 근현대를 이룬다. 옛 백제는 지금 이리저리 갈린 듯했다. 금강 공주보 해체를 두고 찬반 주장을 각각 담은 현수막이 금강변 옛 백제 유적지를 따라 걸려 있다.


1970년대 고교 시절을 보낸 노씨가 옛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릴 때 금강 백사장에서 수영도 하고 놀았어요.” 고마나루 솔밭도 소풍 장소였다.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이다. 한자로 쓴 게 웅진(熊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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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태동지인 고마나루.

이날 공주엔 비가 내렸다. 운무가 낀 듯 공주 일대가 뿌옇게 보였다. 공산성에 이르렀을 때 빗줄기가 굵어졌다. “비도 오는데 차에 계시라”는 권유에도 노씨가 우산을 들고나왔다. “성벽에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느라고 오래된 느티나무들을 많이 베어냈어요.” 성곽을 따라 도는 길에 말했다. 와중에 살아남은, 수백년은 족히 되는 고목들이 성마른 가지를 드러내며 성벽 좌우에 늘어섰다.


공산성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 중 하나이다. 한 바퀴를 돈 다음 ‘서문에서 바라본 공주 시가지’ 안내판이 나왔다. 황새바위와 송산리고분군, 고마나루와 정지산 유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서문 앞이 한때 ‘미나리꽝’이었다는 사실도 표기했다. 이 안내판은 시가지 쪽이 아니라 성 안으로 향해 있다. 노씨가 말했다. “이정표도 마찬가지예요. 만드는 사람, 설치하는 사람 따로 있어요.”


‘소문난 칠공주’ 수백년 전에 나온 게 ‘공주십경시’다. 서거정(1420~1488)이 공주를 유람하며 지은 한시다. 전체 10수 중 제1수가 ‘금강의 봄놀이’를 다룬다. 추적추적한 빗줄기 때문인지 “긴 날 따스한 바람은 정신을 앗아가네”라는 구절이 아스라이 느껴졌다.

‘3시간에 5만원’ 금강 따라 한 바퀴…여행 스타일 따라 가성비는 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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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부릉이 기사님’ 노수욱씨가 학창 시절 소풍 장소였던 고마나루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금강부릉이’ 타보니


금강부릉이 택시는 대전·공주·익산시와 부여군 4곳에서 운영한다. ‘금강 따라 백제 역사 기행’을 표방한다. 기본 3시간에 5만원. 추가 요금은 시간당 1만5000원이다.


3시간에 5만원? 금강부릉이는 ‘가성비가 좋다’고 선전하는데, 이는 상대적이다. 목적지를 많이 잡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다닌다면 이 선전이 맞다. 박물관도 천천히 둘러보고, 산책길도 느긋하게 걸으면 3시간으로 부족하다. 지난 4일 취재 때 10곳가량을 다니느라 2시간을 추가했다. 홈페이지(ggtaxi.kr) 추천코스는 이동과 체류 시간을 감안해 외곽을 포함하면 3곳, 시내는 5곳 정도만 목적지로 정했다.


예약 때 ‘공주역 출발’이라고 적었다. 노수욱씨는 공주 시내에서 역까지 차를 몰고 나와야 했다.


시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역까지는 24㎞가량으로 택시비가 2만원 정도 나온다. 홈페이지엔 ‘(승객이) 원하는 장소에서 출발’이라 안내돼있는데, 노씨가 가진 기사 매뉴얼은 출발 장소를 ‘터미널’로 썼다. 이날 처음 금강부릉이 기사를 맡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본인 탓도 있다며 돈을 받지 않으려는 노씨에게 시내에서 역까지 편도 요금을 지급했다. 이런 혼란도 정리해 홈페이지에 적시해야 할 듯했다.


금강부릉이는 현지인 기사가 ‘숨겨진 관광지 등지를 안내해준다’고만 공지했다. 그 안내가 택시 안에서만 이뤄지는 건지, 목적지 동행까지 포함하는 건지 모호하다. 차 밖으로 나와 해설하려는 기사와 이동만 하려는 승객, 차 안에서 설명만 하려는 기사와 목적지까지 함께 가주며 안내하길 바라는 승객이 엇갈릴 수 있다. 이런 기준도 정리해 홈페이지에 명시하는 게 필요할 듯했다.


‘금강부릉이 기사님’은 20~30년 무사고 경력을 갖춘 모범 운전자들이다. 홈페이지에서 차종과 무사고 경력 횟수를 볼 수 있다. ‘비흡연’도 기록했다. 애향심과 사명감을 지닌 개인택시 기사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자체가 따로 기사들에게 돈을 지원하진 않는다. 자원봉사 성격도 있는 셈이다. 노씨는 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혔다. 익산시가 10명, 대전시 9명, 공주시와 부여군이 각각 5명이다. 여성 기사는 노씨를 포함해 2명이다.


노씨는 공주를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해외여행도 1년에 한두 차례 30여곳을 다녔다. ‘금강부릉이 기사님’이 되기 전에도 택시에서 외지 승객들에게 공주를 안내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노씨는 “공주 안내를 더 잘하고 싶다. 시에서 문화해설사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주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