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수탈과 오염의 역사 공간, 한국 자생화의 정원으로

by경향신문

오지, 깊은 자연의 또 다른 말…경북 영양군


[경향신문]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등록문화재인 ‘용화광산 선광장’

일월산서 캐온 광석의 광물 걸러내

1976년 폐광 뒤 30년간 방치된 땅

영양군, 오염원 매립·야생화 심어


고대 마야 도시 칼라크물의 건축물 같다. 오랜 시간 풍화한 콘크리트가 흙빛을 냈다. 15층의 계단식 사다리꼴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15~28도 경사 산자락에 파묻히듯 들어가 산의 일부가 된 듯하다.


용화광산 선광장(選鑛場)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경북 영양군 용화리 대티골 동쪽에 지었다. 일월산에서 캐낸 광석을 이곳으로 옮겼다. 금, 은, 동, 아연 등 돈 되는 광물을 걸러냈다. 동아일보 1940년 4월19일자를 보면, ‘유례 드문 세계적 아연 보고(寶庫)’라는 표현이 나온다. 일제 수탈 현장이다. 정부는 2006년 ‘광업 발달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 가치가 높다’며 등록문화재(제255호)로 지정했다.


이 거대 건축물 주변엔 3개의 안내판이 들어섰다. 각각의 내용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복잡다단한 해석을 드러낸다. “지역사회와 국가산업 발전” “인근(에) 주민 1200여명이 살았고, 1939년 전기도 공급된 곳” “1896년부터 외국인들이 한국 광산 자원을 수탈”이라는 문구가 3개 안내판에 따로 적혔다.


‘일월 용화광산의 유래’라는 제목의 안내판엔 익숙한 기업명 하나가 보인다. ‘1964년 영풍광업(주) 인수 광업권자 최기호 탐광 착수.’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기호는 영풍그룹 공동 창업자다. 1949년 장병희와 함께 만들었다. 1966년 영풍광업은 용화광산에서 광석을 생산한다. 1976년 탐광을 종결했다.


나무에 가려진 또 다른 안내판엔 “1976년 폐광 후 제련 과정에서 사용한 비소 등 화학성 독성물질로 오염된 광미와 폐광석 등에 의한 토양오염으로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땅이 되었으며, 오염된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계곡에는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채로 30년간 방치”됐다는 글이 적혔다.


1994년 12월 당시 한국환경기술개발원이 낸 ‘휴·폐광된 금속광산 지역의 오염 관리대책’을 보면, 용화광산 주변 토양의 중금속은 비오염 지역보다 비소가 44배(22.0PPM) 높게 나타났다. 광산 지역에서 3㎞ 떨어진 곳에서도 비소가 41배(21.6PPM) 높았다.


안내판에 ‘영풍’이란 이름에 주목한 건 이 기업의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문제 때문이다. 영풍광업은 1970년 영양군 옆 봉화군 석포면 산골짜기에 이 제련소를 만들었다. 2014년에야 일대 환경오염 문제가 알려졌다.


영양군 용화광산에선 영풍이란 기업의 책임은 묻혔다. 언론 보도에도, 문헌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영풍과 용화광산의 관계는 저 안내판 연혁에서만 찾을 수 있다.


용화광산 선광장 앞이 ‘일월 자생화공원’이다. 영양군은 2001년부터 오염원을 매립하고, 야생화를 심었다.


영양군 관계자는 “당시 영풍이 오염 피해 보상이나 자연복원 지원을 한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한때 흉물이자 환경오염 근원지가 자연복원 가치를 드러내는 상징 장소로 탈바꿈했다. 영양군은 보존한 선광장 꼭대기에 전망대도 만들었다.


전망대 맞은편이 일월산이다. 동학농민군이 여기 숨어들었다. 한말 의병장 신돌석의 주무대가 일월산이다. 이 일대는 빨치산의 최후 거점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은닉하거나 게릴라전을 펼치기 좋았던 건 일월산을 포함한 영양군 일대가 오지였기 때문이다. 오지는 ‘낙후’란 단어가 연상되면서 어감이 좋지 않지만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깊숙한 땅’이란 뜻일 뿐이다.


오지의 지표 하나가 ‘응급의료 전용헬기 착륙장’ 도로안내 표지판이다. 영양군 도로를 오가면 이 표지판이 하나씩 나타난다. 큰 병원이 주변에 없다. 도로는 주로 1차선이나 2차선이다. 2021년 5월 기준 영양군 인구는 1만6494명, 전국 288개 시·군·구 중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데는 울릉군(9032명) 하나다.


사람이 적으니 오염원도 적다. 오지는 청정 자연 공간의 다른 이름이다. 경상도의 ‘BYC’(봉화·영양·청송)는 전라도의 ‘무진장’(무주·진안·장수), 강원도의 ‘영평정’(영월·평창·정선)과 함께 청정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어간다.


BYC와 영평정의 영월은 외씨버선길로도 이어진다.


청정 공간을 그저 이룬 것은 아니다. 수몰 예정지 주민들이 3년 동안 반대 운동을 벌이며 영양댐 건설을 막아냈다. “물 수요에 따라 댐을 건설하려 했다기보다, 댐 건설 자체를 정해놓고 물 쓸 곳을 찾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민들은 “군민을 물속에 넣으면서까지 정치를 해야만 하나요”라고 적은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정부는 2016년 댐 건설을 백지화했다.


수몰 위기에 빠질 뻔한 게 검마산과 백암산에서 발원해 죽파리와 기산리, 대산골, 송하리를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는 장파천이다. 영양 하면 수하계곡이 유명한데, 장파천의 수려함도 못지않다. 죽파리 쪽 장파천은 ‘영양 자작도(島)’라 불리는 30㏊ 규모의 자작나무 숲(죽파리 산39-1)으로 이어진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맞은편 일월산은 게릴라전 적소

휴대폰 신호 못 잡는 자작나무 숲

그 숲길 따라 흐르는 ‘죽파계곡’

‘순수’의 정서 느낄 청정 자연 공간


자작나무와 자작나무 숲.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달군 열쇳말 중 하나다. ‘산림관광지로서 인제 자작나무 숲에 대한 소셜미디어 이용자 인식 연구’를 보면, 자작나무 숲 방문객은 늘어난다. ‘아름답다’ ‘좋다’ ‘가다’ ‘보다’ ‘사진’ 같은 단어 출현 빈도가 높다.


자작나무만 분류하면 ‘스피커’ ‘인테리어’ 같은 단어도 뜬다. 천마총 천마도의 캔버스가 자작나무다. 기름 성분이 많다. ‘화촉(華燭)’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다.


숲은 또 어떤가. 자작나무 숲은 여러 정서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흰백색의 자작나무 껍질에서 ‘순수’의 정서를 느낀다. 수십m 곧게 뻗은 몸통에서 ‘지조’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뜬 곳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다. 영양과 인제 두 곳의 자작나무 숲을 다녀온 이는 “영양 자작나무 숲길은 평탄하다. 숲길 따라 계곡도 흐른다”고 말했다. 영양의 장점으로 꼽은 것들이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양 자작나무 숲엔 스마트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당하거나 걷기를 즐기려는 이들에겐 적격의 장소다. 군은 취사나 야영, 물고기잡이는 금지했는데, 탁족(濯足)은 가능하다.


장파천은 장수포천과 수하계곡 물길로 연결된다. 수하계곡 쪽에 들어선 게 수비면 수하리 영양 반딧불이천문대다. 지난 17일 영양군 초청 투어 마지막 일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천문대 구호는 ‘불을 끄고, 별을 켜다’이다. 인공조명을 찾기 힘들다. 몇 안 되는 가로등은 조도가 낮다. 수비면은 한국에서 가장 밤하늘이 어둡다고 한다. 이 일대는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천문대는 고가의 천체 망원경을 둔 곳인데, 천문대 박찬 주무관은 “드러누워 밤하늘을 보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는 “낮은 밝고, 밤은 어두운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용화광산 오염원 복원과 영양댐 저지와 이어지는 말 같았다.


영양군엔 숙박시설이 많지 않다. 영양 생태공원사업소(yyg.go.kr/np)에서 반딧불이천문대 부근 캠핑장, 수련원·펜션을 예약할 수 있다. 반딧불이천문대 체험 예약도 이곳에서 가능하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울진군 죽변리

등대길 하트해변 따라 늘어선 ‘스카이레일’

주변 소공원엔 자생 대나무 가득


경북 영양군 인접 군 중 하나가 울진군이다. 영양군 수비면에서 구주령을 타고 울진군 온정면으로 넘어갔다. 울진은 강원도 관할이었다가 1963년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울진을 보려면 죽변으로 가야 한다. 지난 18일 죽변항은 오가는 배들로 분주했다. 오징어 하면 울릉도인데, 경북 울진에도 오징어가 넘쳐났다. 정박한 오징어잡이 배로 갈매기들이 몰려들었다. 선원 한 명이 호스 물로 새들을 내쫓았다. 오징어의 산란과 부화 서식지가 죽변 바다에 있다고 한다. 대게도 많이 잡는데, 영덕군과 원조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아 ‘대게’다. 죽변(竹邊)은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종과 마을의 기원이 어울린다.


죽변에서 또 유명한 게 등대길의 하트해변이다. 해안선이 하트 모양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2004년 드라마 <폭풍 속으로> 촬영지로 쓰던 주택이 하트해변 언덕에 있다.


울진군은 죽변리와 후정리를 연결하는 왕복 4.8㎞의 ‘죽변 해안스카이레일’을 다음달 개통한다. 지난 18일 울진군 초청으로 죽변을 찾았을 때 시승했다. 수면 수m 위를 시속 5㎞로 서행하는 레일에서 바다와 항구, 해안가 풍경을 조감할 수 있다. 해안가 걷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모노레일에 대한 호오는 갈릴 듯하다. 예전 죽변등대공원에서 바라보이는 하트해변을 기억하던 이는 “모노레일이 해안선 풍경을 해쳤다”고 말했다.


하트해변은 죽변등대공원 둘레길로 이어진다. 길과 주변 소공원엔 자생 대나무가 가득하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죽변에 지난해 들어선 게 국립해양과학관(kosm.or.kr)이다. ‘천체의 움직임과 해수면의 변화’ 같은 해양과학에 관한 전시가 많다. 개장하고 명소로 부각한 건 해중전망대. 과학관에서 길이 393m 다리로 연결된다. ‘동해 위를 걷는 체험’을 주려 만들었다. 수심 7m 해중전망대 아래로 내려가면 해양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인간이 어류를 가둬놓고 관람하는 수족관과 반대로 바다생물이 수중 건축물 내 인간을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관 관람은 온라인 예약해야 한다. 지금 무료다. 코로나19 때문에 전체 시설 공개나 프로그램 운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해중전망대는 환기 문제 때문에 문을 닫았다. 과학관 측은 시간당 인원 제한 등 방역 방안을 마련해 이르면 7월 다시 문을 열겠다고 했다. 다리 이동과 해상 조망은 가능하다.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경향신문 프리미엄 유료 콘텐츠가 한 달간 무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