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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내가 키운다’ PD “한부모 가족의 불편하고 뭉클한 육아, 현실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by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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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상이몽> 안 봐요. 다들 보세요? 난 안 봐요.” JTBC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 첫 회, 방송인 김나영의 농담 덕분에, 한부모 가족의 가장이자 양육자로서 각자의 육아 경험을 나누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인 출연진의 긴장이 비로소 녹아내렸다. JTBC 캡처

“우리는 <동상이몽> 안 봐요. 다들 보세요? 난 안 봐요.”


국내 처음으로 ‘솔로 육아’에 주목한 관찰 예능 JTBC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 첫 회, 방송인 김나영이 던진 말을 자꾸 곱씹게 된다. 그의 농담 덕분에, 한부모 가족의 가장이자 양육자로서 각자의 육아 경험을 나누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인 출연진의 긴장이 비로소 녹아내렸다. 터진 것은 공감의 웃음이었다.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부터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까지, 연예인의 사생활이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여주겠다는 기세로 쏟아져 나온 관찰 예능의 홍수 속에서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들의 삶은 당연하다는 듯 배제돼왔다. 결혼한 남녀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정상 혹은 이상으로 간주하는 관찰 예능의 대전제 앞에 씁쓸하게 채널을 돌려야 했던 많은 이들의 웃음이 함께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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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내가 키운다> 연출을 맡은 김솔 PD. JTBC 제공

방송 2회만에 ‘편견 깨는 힐링 예능’이란 호평을 받고 있는 <내가 키운다>의 김솔 PD를 지난 16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그는 “한부모 가족이 보편화된 가족 형태로 자리 잡았지만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며 “변화된 현실을 보여주며 사회적 편견을 깨는 대화의 창을 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당초 ‘독박육아’부터 ‘주말부부’까지 다양한 이유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지만, 현재 <내가 키운다>는 이혼 후 양육을 전담하고 있는 방송인 김나영, 배우 조윤희·김현숙과 MC 채림 등 ‘싱글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자연스레 한부모 가족의 특수성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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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내가 키운다> 에는 이혼 후 아이의 성을 엄마 성으로 바꾸는 이야기 등 한부모 가족의 특수성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JTBC 캡처

“마냥 행복한 이야기보다는 불편한 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아들 하민이의 성을 엄마 성으로 바꾸는 중인 김현숙씨, 부모가 함께 있는 다른 가족 앞에서 딸 로아에게 온전한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는 조윤희씨, 어린 두 아들을 혼자 놀이동산에 데리고 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김나영씨,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빠 역할 놀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채림씨…. 한부모 가족이기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각각의 문제들을 ‘리얼하게’ 다뤄갈 생각입니다. 매번 고민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숙제들을 주인공들이 어떻게 풀어가는지 보여줄 거예요. ‘솔로 육아’에 초점을 두다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여타 관찰 예능과는 차별화되는 ‘작지만 큰 다름’이죠.”


집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연예인의 사소한 일상을 시청자에게 전한다는 관찰 예능의 기존 포맷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TV에서도 현실에서도 쉽게 배제되고 잊히는, ‘솔로 육아’의 주인공들을 카메라 앞에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키운다>가 보여주는 재미는 새롭다. 이벤트나 상황극으로 연출된 ‘예쁜 육아’ 대신 하루하루가 도전이고 생존인 현실의 ‘진짜 육아’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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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내가 키운다> 는 아이들이 출연하는 여타 관찰 예능과 달리 ‘먹방’, ‘애교’보다는 식욕이 없어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 등 육아의 현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JTBC 캡처

“주양육자인 엄마와 아이의 긴밀한 교감을 있는 그대로 담다보니, 보통 아이들이 출연하는 방송에 등장하는 ‘먹방’이나 ‘애교’는 잘 나오지 않아요. 실제 육아가 그런 ‘예쁜 모습’으로만 채워져있는 건 아니잖아요. (조윤희의 딸) 로아는 너무 귀엽지만 식욕이 없어 밥을 잘 먹지 않고, (김나영의 아들) 이준이는 예민한 성격이라 잘 울고 삐쳐요. 기존 육아 예능이 보여줬던 귀여운 모습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게되는 것은 아닌가, 혹여 한부모 가족에 대한 편견을 더하게 될까 걱정했지만 결론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였어요. 한부모 가족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이야기잖아요.”


관찰 예능을 만드는 접근법도 달라져야 했다. ‘보여주기’에 집중한 제작진의 연출법은 출연진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연령주의나 성별 고정관념 등의 낡은 프레임으로 해석될 여지를 최소한으로 좁힌다. “다른 방송과는 달리 PD가 전지적 시점으로 상황을 단정하고 정리하는 식의 자막을 지양하고 있어요. 대신 벌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관찰한 뒤 이해한 그대로 묘사하려 하죠. 아이들 말 자막을 넣을 때에는 한 장면을 수십번씩 돌려보며 ‘얘는 이렇게 말하려고 한 걸까?’ 심각하게 회의도 하고, 어떨 땐 출연자분들께 전화를 드려 ‘저희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어머님 보시기엔 어떠냐’ 여쭤보기도 해요.” 예능보단 다큐에 가까운 접근법이지만,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했기에 나오는 뭉클한 장면들이 화면을 채운다. ‘이준이는 왜 세상에 왔어?’ 엄마의 질문에 ‘엄마 보고 싶어서 왔어’라고 속삭이는 아이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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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내가 키운다> 에는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 했기에 나오는 뭉클한 장면들이 화면을 채운다. JTBC 캡처

TV 속으로 들어온 한부모 가족, 솔로 육아의 현실은 각자의 삶에서 어렵게 분투하던 ‘싱글맘’, ‘싱글파파’들에게 처음 만나는 공감의 장이 되어준다. 녹화 첫날, 스튜디오에서 어색한 첫 만남을 가졌던 출연진들은 서로의 일상 영상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그 너머의 힘듦과 고민까지 이해하는 깊은 공감을 이뤄냈다. “남들에게 편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어렵게 털어 놓게 되기까지, 그 과정을 긴 말 없이도 알 수 있는 사이잖아요. 녹화 첫날 많이들 우셨어요. 뒤에서 제작진들도 많이 울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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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내가 키운다> 녹화 첫 날, 스튜디오에서 어색한 첫 만남을 가졌던 출연진들은 서로의 일상 영상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그 너머의 힘듦과 고민까지 이해하는 깊은 공감을 이뤄냈다. JTBC 캡처

김 PD는 “유튜브를 통해 육아 일상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온 김나영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거나 그런 결심을 앞둔 이들에게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아왔다”면서 “SNS에서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하셨다”고 말했다. 지금도 유튜브에 올라온 <내가 키운다> 조각 영상들에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긴 세월을 토로하는 엄마, 아빠들의 고백 댓글들이 넘친다. 방송을 통해 이혼과 한부모 가족에 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반성들도 수천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공감을 산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가족, 솔로 육아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내가 키운다>의 롱런을 기대하는 이유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