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인 아줌마’들의 반란…아줌마가 자랑스러워지는 그날까지 춤추자

[라이프]by 경향신문

중년 여성들의 치열한 삶을 치하하고 그들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기 위해 30여 명의 미국 한인 아줌마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의 중년 여성 댄스 공연팀 Ajumma EXP다. Ajumma EXP 제공

사회 통념상 ‘아줌마스럽다’는 긍정을 담아낸 단어는 아니다. 퍼스널 컬러 따윈 없는 연분홍 립스틱, TPO 상관없는 화려한 꽃무늬 의상,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파마머리’, 안면을 뒤덮는 까만 선캡 같은 ‘아줌마 아이템’을 두고 ‘촌스럽다’는 표현으로 비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바꿔 생각해보면 화려한 색과 꽃을 좋아하고 몸에 지니는 것은 그들만의 로맨틱 감성이다. 요즘 ‘힙하다’는 젠지 세대 중에는 꽃무늬를 즐겨 입는 이들도 많지 않은가. 또한 헤어펌은 빈약한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살리는 스타일링이며 선캡은 선글라스보다 편하고 자외선으로부터 얼굴 전면을 보호하는 실용 만점 아이템이다.


미국 한인 2세 아줌마들도 “아줌마의 통념을 뒤바꾸겠다”고 나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거주 40~50대 여성으로 구성된 ‘Ajumma EXP(아줌마 이엑스피)’는 플래시몹 댄스 모임이다. 이들은 공연에 나설 때면 선캡, 전대(히프색), 파마머리 등 과장된 ‘아줌마 스타일’로 변신한다. 아줌마는 가족에겐 강한 버팀목 같은 존재지만 사회에 나오면 철저히 소외자로 살았다. ‘Ajumma EXP’ 멤버들은 치열하게 살았기에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중년 여성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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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 EXP를 구성하는 자칭 ‘아줌마’ 30여 명은 미국 사회에 억척스레 뿌리내린 이민자 2세 출신이 대부분이다. Ajumma EXP 제공

지난 1월 한국계 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인마트 시온마켓에서 뽀글뽀글 파마 가발, 선캡 그리고 허리춤에 전대로 무장한 여성 열댓 명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유쾌한 춤사위가 이어졌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들의 춤을 신기한 듯 감상하고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Ajumma EXP가 1월13일 ‘한인의날’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플래시몹이다. 특정 시각 한 장소에 모여 번개 같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플래시몹은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인 장치가 되기에 택한 공연 방식이다. 모임을 구성하는 아줌마 30여명은 미국 사회에 억척스레 뿌리내린 이민자 2세 출신이 대부분이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사업가, 교사, 심리학자, 요가강사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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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립된 Ajumma EXP의 가입 조건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40대 이상 샌디에이고 거주자다. 여기에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졌다면 가입 통과다. 이들은 몇 번의 플래시몹 행사를 통해 미국 내에서도 독특하고 재밌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미국 CBS뉴스가 이들의 활동을 조명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 <서머타임>에 삽입될 힙합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했다. 지난 2월에는 백악관에서 개최하는 공연에 초대받았다(이들의 공연곡인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의 사용 허가가 나지 않아 향후를 기약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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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 EXP 창립 멤버 이앤 킴, 그는 샌디에이고 ABC뉴스 전 앵커다. 현재는 비영리 미디어 예술 단체인 Pacific Arts Movement 창립 이사로 활동 중이다.

Ajumma EXP의 창립 멤버이자 샌디에이고 ABC뉴스 전 앵커인 이앤 킴은 1965년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하고 한국인에게 문을 열기 시작한 1970년대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 킴은 이민 당시 한두 살 무렵이라 한국인 정체성은 희미하지만 가족에게 헌신적인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아줌마’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한국 아줌마의 힘은 강했어요. 한국전쟁, 정치적 견해, 산업혁명 혹은 외환위기로 어쩔 수 없이 낯선 땅으로 이주했던 그들은 차별 속에서도 평생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을 키워냈죠. 마침내 중년이 되어 자신의 성공에 안착한 그들의 여정을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Ajumma EXP가 만들어진 계기는 친구들이 준비한 이앤 킴의 생일 파티 이벤트였다. 친구들은 그를 놀라게 하려고 1980년대 아줌마처럼 차려입고 파티에 참석했다. 재미로 한 아줌마 차림은 뜻밖의 각성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마치 본연의 모습이 된 것처럼 해방감을 느꼈고 아줌마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보자는 대화에서 Ajumma EXP가 탄생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꾸민 ‘아줌마스러움’이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앤 킴은 “우리의 아줌마 의상이 오늘날 한국 중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현재 40~50대 한국 여성은 멋있고 아름다우며 훨씬 더 젊어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줌마로 변장함으로써 대중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줌마라는 멸칭에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확신시키고 싶어요. 다소 과장된 복장으로 시선을 끈 후 그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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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멤버 소니아 손 친은 회계사다. 현재 미국의 유력 투자사에서 근무 중인 워킹맘이다 (사진의 오른쪽).

또 다른 Ajumma EXP 창단 멤버 소니아 손 친은 회계사다. 현재 미국의 유력 투자사에서 근무 중인 워킹맘이다. 그는 아줌마 의상의 실용성에 대해 극찬한다. 선캡은 햇볕 차단과 함께 자신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고 꽃무늬 바지는 자유로움을 준다.


“편안함과 실용성을 강조한 아줌마 스타일은 여기 샌디에이고 환경에 매우 적합해요. 여긴 햇볕이 너무 강해 외국인들도 커다란 차양 모자를 쓰고 햇볕 보호용 팔토시, 장갑까지 끼고 다니거든요. 여기 사람들도 K아줌마와 같은 길을 걷고 있죠.”


Ajumma EXP는 한 번도 춤을 춰본 적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때로는 막춤 같아 보이는 플래시몹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안무가 출신 멤버인 멜리사 아다오가 안무를 담당하고 멤버들은 개인 연습 후 4개월간 12회 정도 만나 차고와 야외 등지에서 동작을 맞췄다.


“우리 아줌마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살펴보면 항상 감명을 받아요. 춤을 익히는 것 자체도 어렵고 가발 같은 분장을 하고 추면 훨씬 더 어려워지죠. 바쁜 일상에서도 서로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더욱 끈끈한 동지애를 쌓을 수 있죠.”


Ajumma EXP의 공연은 모두 재능기부로 이루어진다. 때로는 지역사회 행사나 결혼식에서도 공연 요청을 받지만 봉사단체인 만큼 수익이 나는 행사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Ajumma EXP 멤버이자 비영리병원 소아과 의사인 수안 박은 관객 반응에 대해 “처음에 우리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다가 플래시몹 공연이란 걸 인식한 후에는 카메라를 들고 녹화하기 시작한다”며 “공연이 끝나면 댄스팀에 어떻게 가입할 수 있는지 문의해오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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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 EXP 멤버로 열심히 활동 중인 수안 박은 비영리병원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미국인 젠은 아들의 출신국 문화와 가까워지고 싶어 Ajumma EXP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중국계, 아프리카계 멤버도 있는데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점차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한국 문화를 일부 경험하기 위해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CBS는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한인의날’ 기념행사에 몰린 수천명의 관객 소식을 전하며 한국 문화가 미국 사회에서 주류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jumma EXP가 ‘아줌마’ 콘셉트를 내걸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데에는 K컬처의 인기가 지대하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아 “정말 큰일(big deal)”이라고 놀라워한다.


“아들의 고등학교에 생긴 한국어 동아리는 한국계가 아닌 미국 학생이 만들었어요. 동아리의 초점은 K컬처에 몰두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자랄 때 한국 관련 동아리가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한국계에 의해 시작됐을 텐데 말이죠. 격세지감을 느껴요.”(소니아 손 친)


“제 아들이 한국 젊은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뒤 ‘BTS 멤버처럼 멋지다’는 말을 많이 들었대요. 마침내 한국인인 게 ‘쿨’한 것이 된 거예요!”(이앤 킴)


“제 환자들은 대부분 히스패닉계 미국인인데 많은 사람이 K드라마를 보면서 접한 한국 문화에 열광해요. 몇 가지 한국어를 익혀서 저한테 이야기하곤 하죠. 일부 과체중 환자는 K팝 댄스를 배우면서 체중이 줄기도 했어요.”(수안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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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umma EXP는 한인 뿐 아니라 K컬처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 멤버들도 합류하고 있다. Ajumma EXP 제공

그간 미국인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백인 기준으로 정의됐다.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이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던 이앤 킴은 ‘드디어’ 한국인인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내 한국의 이미지가 180도 바뀌는 걸 지켜본 그는 시대의 증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K컬처 위상 덕분에 제 얼굴이 아름답고 감사하게 느껴져요. 내가 중국인이나 일본인 혹은 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죠.”


소니아 손 친은 금발 머리에 파란 눈동자 친구와 한국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반가운 시간이라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 인기가 매우 많아요. 비한국계들은 한국의 생활 방식에 대해 궁금해하며 물어오곤 해요. 친구의 딸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주제가를 흥얼거리는 것은 일상이 됐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딱 좋은 시기예요.”


중년을 응원하는 목표를 가진 만큼 앞으로도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더는 아줌마로 불리는 것이 불쾌하지 않고 자랑스러운 날을 향해 춤을 출 것이다. 이앤 킴은 “한국에서는 ‘아줌마’라는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며 “기혼 여성은 ‘이모’나 ‘언니’로 불리다가 아줌마를 건너뛰어 ‘할머니’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그의 포부는 단단하다. “우리는 사라져가는 K아줌마 정신을 포용하고 긍정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활동하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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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에서, 야외에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Ajumma EXP의 목표는 지난 1월 음악 저작권 문제로 성사되지 못해 아쉬운 백악관 공연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아가 80대가 되어서도 춤을 출 수 있는 할머니 댄스 공연팀이 되는 것이다. Ajumma EXP 제공

멤버들은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보는 한국 누리꾼들의 관심에도 감사를 전했다. 이앤 킴은 “아줌마를 통해 한국인과 재미교포의 틈을 메우고 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의 일부를 전파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축복”이라고 전했다.


Ajumma EXP는 올해 음원 저작권 문제로 무산됐던 백악관 공연을 내년에는 꼭 이루고 싶다.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더 큰 꿈은 삶의 기쁨과 대중을 만나는 긴장감을 가져다준 Ajumma EXP 활동을 20년, 30년 후에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다. 최고령 할머니들의 플래시몹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2022.07.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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