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헹구는 길 해남 달마고도
거대한 바위들이 산봉우리를 이어가며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는 해남 달마산. 남쪽의 금강산이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이곳에 지난가을 달마고도가 개통되었다. 이 길은 바다를 통해 인도불교가 전해졌다는 천년고찰 미황사를 출발해 산 중턱을 빙 돌아 미황사로 다시 돌아오는 17.5km의 둘레길이다. 오가는 사람이 교행하려면 슬쩍 옆으로 비껴서야 할 정도로 조붓한 길이지만 걷기여행의 감칠맛은 그 어느 길 보다 좋다는 찬사를 받는다.
![]() 길은 천년고찰 미황사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
일행들과 미황사 달마산 다원에 예약해둔 연잎밥 도시락을 찾아 걷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걸으면 7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지만 중간에 식당이 없으므로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양손에 쥔 등산 스틱으로 길을 찌르며 짙푸른 숲길로 시작되는 달마고도를 걷는다. 등산 스틱이나 노르딩워킹용 스틱은 두 발에 집중되는 노고를 두 팔로 나눠 몸을 고르게 쓰도록 돕는다. 달마고도 같은 장거리 숲길에서 하체의 피로를 덜어내는데 특히 유용하다.
![]() 미황사 달마산 다원의 연잎밥 도시락. 공양주의 손맛이 여간 맵자한 것이 아니다. 미리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1만 원). |
걷기여행길 조성의 모범이 되다.
길 초입부터 사스레피나무와 삼나무, 편백나무, 동백나무 등이 녹음의 터널을 만든다. 아침이슬에 젖은 숲길은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더욱 싱그럽게 채색하고, 어둑한 곳에는 엽록소가 없어 반투명한 자태로 돋아나는 나도수정초의 고결한 자태가 하얗게 빛난다.
![]() 그늘진 곳, 나도수정초가 꽃말처럼 숲속의 요정처럼 돋았다. |
숲이 헐거워져서 바다 쪽으로 시야가 터질 때면 섬들이 수북이 쌓인 다도해 경관이 두 눈 가득 차오른다. 달마고도는 산과 바다가 펼쳐내는 장쾌한 경관을 뛰어넘는 길 자체가 주는 감흥이 크다. 길 주변에서 채취한 돌을 쌓아 석축을 깔고, 또다시 돌을 주워 땅에 묻어 경사면에서 흘러내리는 흙을 잡았다. 굴삭기 같은 중장비는 일절 사용 않고 곡괭이, 삽, 호미만으로 길을 닦아낸 것이다.
![]() 숲이 헐거워지며 바다 쪽 풍광이 열리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된다. |
사람 길은 사람 손으로 만들어야 좋다는 간단한 원칙을 달마고도는 지켜냈다. 굴삭기가 길을 넓히고 쇠기둥을 박아 나무데크를 놓는 기계시공이 횡횡하는 우리나라 길 조성 현실에서는 사람 손으로 길을 낸다는 원칙을 감당하기 어렵다.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이 간단한 원칙이 달마고도에서 철저하게 적용된 까닭은 이렇다.
![]() 사람의 힘만으로 닦아낸 길, 걷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이 길을 처음 제안한 미황사 금강 스님은 달마산 순례 길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지길 원했다. 그리고 이 길의 노선설계와 시공감리를 맡은 ㈜하늘그린의 권경익 대표는 걷는 길은 사람 손으로 닦아야 걷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인력시공 철학을 갖고 있었다. 금강 스님과 권 대표의 만남으로 인력시공 원칙이 끈질기게 고수될 수 있었고, 결국 우리나라 걷기여행길의 모범이 될 만한 달마고도가 세상에 태어났다.
![]() 돌 하나하나에 스민 손길과 땀방울을 안다면 걷는 의미가 더 커지지 않을까. |
권 대표가 달마산을 헤집고 다니며 찾아낸 노선을 설계도면으로 옮긴 후, 매일 40~50명의 인부들이 10개월 이상 달마산에 머물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곳에 굴삭기 기름 냄새가 아닌 사람 향기가 나는 까닭은 이 모든 사람의 노력과 집념의 결과다. 그래서 걷기여행길 조성과 관계된 행정기관 담당자나 시공회사 책임자들이 직접 걸어봐야 할 모범사례로 달마고도를 첫 손에 꼽을 만하다.
![]() 매일 40~50명의 인부들이 10개월간 구슬땀을 흘리며 닦아낸 길이다. |
사람의 길, 사람 손으로 만들다.
달마산은 능선에서 쏟아져 내린 바위들이 경사면을 뒤덮은 너덜지대 여러 곳을 지난다. 걷기 불편할 수 있지만 너덜지대 돌들을 요리조리 돌리고 작은 돌로 메워서 걷기에 편하도록 세심하게 정리했다. 이런 곳은 그늘 없는 대신 뻥 뚫린 시야가 보상되어 특별한 묘미를 준다.
![]() 가끔 만나는 너덜지대는 돌을 돌리고 메워놓아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 |
새벽까지 비가 내렸던 날, 바다 건너 완도의 산봉우리가 산안개를 띠처럼 두른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완도 하늘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 보면 안개가 도넛처럼 산봉우리를 감싸고 있을 풍광이 마음에 그려진다.
![]() 섬이 수북이 쌓인 다도해가 길벗이 되어주는 달마고도. |
두 발은 달마고도를 딛고 있으나 마음은 완도 하늘 위를 자유로이 날고 있다. 생각이 자유로운 것은 안전이나 길 찾기에 마음 씀 없이 편안하게 걷는다는 뜻이다. 바다 풍광과 바위, 흙, 산안개, 온갖 나무, 새들이 곡괭이질과 삽질만으로 만들어진 달마고도 위에서 아무런 모순 없이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걷는 사람도 그 조화로움의 하나로 길 위에 스며든다.
![]()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정방향으로 걷는 것이 좋다. |
달마산은 중국불교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대사의 불심(佛心)이 머무는 산이라고 한다. 선종은 내 마음속 부처를 찾는 구도를 행하여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불교의 종파다. 달마고도를 걸으며 내 마음속 부처를 찾진 못했지만 이 길은 걷는 이들을 저 아름다운 저 풍경 속에 넣고 흔들어 마음을 헹구어 낸다. 길을 다 걷고 미황사로 돌아온 겉모습은 조금 피곤해 보였으나 마음속 온갖 스트레스, 걱정, 불안을 깡그리 헹구어낸 덕분에 부처 곁에 한 발짝 다가간 듯 맑고 고요해졌다.
달마고도 7시간을 걸어내고 다시 본 미황사 대웅보전은 그 자체가 거대한 향불이 되어 부처님께 공양되는 듯 보였다. 활짝 열린 대웅보전 앞문으로 얼비치는 부처님이 인자하게 웃으며 ‘이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조금 알듯하냐?’며 묻는 듯했다.
![]() 미황사 대웅보전 부처님도 칠흑 같은 밤이면 후불탱화의 권속들과 달마고도를 걸으며 2500년 전 못다 한 설법을 이어갈 것만 같다. |
![]() 미황사의 내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려주는 승탑. 길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 대웅보전 부처님도 갑갑한 대웅보전 밖으로 나와 후불탱화 속 권속들과 달마고도를 걸으며 2500년 전 다 하지 못한 설법을 이어갈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꽤 그럴듯해 보일 만큼 달마고도는 아름다웠다.
걷기 여행 필수 정보
- 걷기 여행 코스 : 약 17.5km 미황사~큰바람재~노지랑골사거리~몰고리재~인길~미황사
- 총 소요시간 : 7시간 내외
- 교통편
*대중교통 : 해남버스터미널에서 미황사행 군내버스 이용.
*주차장 : 미황사 주차장
걷기 여행 TIP
- 화장실 : 미황사
- 음식점 및 매점 : 미황사 달마산 다원 연잎밥 도시락(사전예약 필수)
- 식수 : 미황사
- 길 안내 : 파란화살표를 따라 정방향으로 걸으면 길찾기 쉬움
- 코스 문의 :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915
- 길 상세 보기 : 본 코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두루누비 웹사이트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루누비
글, 사진 : 윤문기 여행작가